제72회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작,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제작 바른손이엔에이)이 21일(현지시간) 프랑스 칸의 뤼미에르 극장에서 공식상영을 갖고 베일을 벗었다. 돌아온 봉준호 감독의 가족극은 지극히 구체적인 삶을 통해 자본주의의 양 극점을, 그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한국사회의 현실을 꼬집는다. 신랄하게, 그러나 재밌게.
출발은 이 한 줄이다. "전원백수인 기택(송강호)네 장남 기우(최우식)가 고액 과외 면접을 위해 박사장(이선균)네 집에 발을 들이면서 시작된 두 가족의 만남이 걷잡을 수 없는 사건으로 번져가는 가족희비극."주인공은 휴대전화가 끊기고 몰래 쓰던 윗집 와이파이까지 비밀번호가 걸려버린 반지하방 전원백수 가족이다. 명문대 재학증명서까지 위조해 친구가 소개해준 부잣집 여고생 과외 아르바이트 자리를 얻은 백수 장남 기우는 슬그머니 백수 동생 기정(박소담)을 그집 미술교사로 끌어들인다. 지금껏 공개된 예고편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기생충'은 여기까지다.
봉준호 감독은 공개서한이나 다름없는 글을 써서 이후의 이야기는 "최대한 감춰달라"고 부탁했다. 과연 그랬다. 공개된 '기생충'을 보고 나니 왜 봉준호 감독이 이례적인 메시지까지 남겨가며 스포일러 자제를 부탁했는지 고개가 끄덕여진다.
'기생충'은 내내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이야기다. 꽉 짜인 이야기는 복선과 상징으로 가득해 단 한 장면도 허투루 흘려보낼 순간이 없다. 실업의 위기가 청년과 중장년을 가리지 않는 시대, 생존을 위해 어디든 매달려야 하는 백수 가족의 뻔뻔함과 절박함은 예측 불허의 이야기로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그리고 뜻밖의 결론에 가 닿는다. 그 과정은 흥미로우며 몹시 재미있고 때론 섬뜩하기도 하다. 거기에 짠한 여운까지. '기생충'을 온전히 즐기고 싶은 관객이라면 최대한 스포일러를 피하시라.봉준호 감독은 '기생충' 곳곳에 자신의 인장을 깊숙이 새겼다. 블랙코미디와 가족드라마, 호러와 사회비판을 아무렇지 않게 오간다. '플란다스의 개'로 시작해 '살인의 추억'과 '괴물', '마더'를 떠올리는를 연상시키는 장면과 요소가 가득하며 '설국열차'와 '옥자'의 문제의식을 공유한다. 극단의 부와 극단의 가난을 은유하듯 수직 배열한 '기생충'은 어마어마한 낙차로 내리꽂힌다.
하지만 겁먹을 필요는 없다. '기생충'은 은유와 상징이 가득하지만 지극히 대중적이며 영리한 영화니까. '봉테일' 봉준호가 빼곡히 채워놓은 은유와 유머는 한국의 관객이라야 100% 이해할만한 것들이지만 극단적 빈부의 비극은 국적과 상관없는 공감을 자아내기에 충분할 것 같다. 개개인의 삶을 세밀히 들여다보며 거대한 담론을 끌어들이는 봉준호 감독의 솜씨는 여전히 매끄럽다. 그는 빈부를 말하지만 가난한 이를 그저 동정하거나 편들어주지 않고, 부유한 이를 그저 부러워하거나 적대시하지 않는다. 그 아슬아슬한 균형 속에 우습다가도 슬프다가도 가끔 울화가 치미는 우리들의 자화상이 고스란히 담겼다.무시무시한 영화처럼 배우들의 연기도 무시무시하다. 쫀쫀한 가족드라마답게 앙상블이 돋보인다. 모든 배우가 제 몫을 한다. 송강호는 1998년 프랑스 축구팀을 이끌었던 지네딘 지단처럼 움직이다가도 때론 메시 같고, 때론 호날두같다. 최우식은 영화의 시작이자 끝이며, 조여정과 이정은의 새로운 매력이 빛난다.
'기생충' 공개 이후 외신의 극찬이 이어지고 있다. 황금종려상이야 어디까지나 심사위원단의 마음에 달린 것. 김칫국을 마실 필요는 없겠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무시무시한 영화가 나왔다.
한국개봉은 5월 30일. 15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131분.
스포티비뉴스=칸(프랑스), 김현록 기자 roky@spotv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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