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때론 너무 뻔히 보이는 볼 배합이 큰 화를 부르기도 한다. 너무 교과서적인 배합이 독이 될 수 있다.
24일 잠실 LG전에 나서는 KIA 배터리가 그랬다. 딱 한 장면이었지만 그 순간의 선택이 승패를 갈랐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었다.
너무 지나치게 교과서적인 볼 배합이 제구 미스와 더해지며 치명타가 됐다. 2회 쐐기타를 내주는 장면이 그랬다.
KIA 선발투수 터너는 1회 수비 실책이 있었지만 2점으로 실점을 막으며 1회를 끝냈다. 무사 1, 2루 위기까지 몰렸던 점을 고려하면 나름대로 선방한 1회였다.
그러나 2회 무려 4점을 내주며 무너지고 말았다. 2아웃을 잡은 이후에만 4점을 내줬다는 점에서 매우 뼈아픈 이닝이 됐다.
너무 교과서적인 볼 배합이 대량 실점의 이유가 됐다.
2사 후 정주현과 이천웅이 연속 안타로 1,2 루가 된 상황. 2번 타자 오지환이 타석에 들어섰다.
볼 카운트는 2-2였다. 5구째, KIA 배터리의 선택은 눈 높이의 높은 공이었다. 3구째 KIA 배터리의 선택은 터너의 주 무기 중 하나인 각도 큰 커브였다.
이 커브에 오지환은 크게 헛스윙을 했다. 커브에 타이밍을 맞추지 못했다고 볼 수 있었다.
때문에 눈 높이의 공을 던진 뒤 그 높이에서 떨어지는 커브를 던지면 헛스윙을 유도할 수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충분히 계산 가능한 수 싸움이었다.
문제는 상대 타자인 오지환도 그런 볼 배합을 머릿속에 그릴 수 있었다는 점이다. 눈 높이로 높은 공을 던진 뒤 그 높이에서 낮게 떨어지는 커브를 던지면 속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는 점이 중요했다.
결과적으로 KIA 배터리의 커브 선택은 우익 선상에 떨어지는 2루타로 이어졌다.
커브를 선택한 것이 나빴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그랬다면 완전히 볼로 떨어지며 헛스윙을 유도할 수 있어야 했다. 하지만 터너의 커브는 스트라이크 존으로 스~윽 밀려 들어갔다. 이 공을 커브를 머릿속에 그리고 있던 오지환이 놓칠 이유가 없었다.
교과서적인 볼 배합이 통하기 위해선 교과서에 나온 대로 이상적으로 공이 들어가야 한다. KIA 배터리의 커브 선택은 크게 떨어지는 볼을 가정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공은 너무 평범하게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했다.
볼 배합은 허를 찌르는 것이 좋을 수도 있지만 교과서적인 배합 또한 필요하다. 교과서적이라는 건 그만큼 많은 타자들이 당한다는 뜻도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투는 가장 큰 적이다. 교과서적으로 던지면서 뻔히 예상할 수 있는 코스로 공이 들어가는 것은 절대 피해야 한다.
KIA 배터리의 이날 2회 선택은 그래서 패착이 됐다. 눈 높이의 볼 이후 떨어지는 커브를 던지는 선택이 나빴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 공이 평범하게 스트라이크 존으로 밀려 들어갔다는 것이 문제였다.
선택에 20%의 아쉬움이, 제구에 80%의 아쉬움이 남는 볼 배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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