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조영준 기자] 아시아는 분명 리듬체조의 변방이었다. 이 종목은 오랫동안 동유럽 선수들이 점령했다. 1980년대 중반에는 루마니아가 세계 최고의 선수들을 배출했고 불가리아도 리듬체조 강국으로 군림했다.

그러나 2000년대에 들어서며 러시아가 리듬체조의 '절대 강국'으로 발돋움했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예카테리나 세레브라인스카야(우즈베키스탄)가 금메달을 획득한 이후 2000년 시드니부터 2012년 런던올림픽까지 러시아가 1위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는 율리아 바수코바(러시아)가 금메달을 획득했고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는 알리나 카바예바(러시아)가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올라섰다. 특히 카바예바는 자신의 이름이 붙은 고유의 기술(카바예바 피봇)을 선보이며 '역대급 선수'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카바예바를 뛰어넘는 선수가 4년 뒤 등장한다. 예브게니아 카나예바(러시아)는 리듬체조 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2연패(2008, 2012)를 달성한다. 출전하는 대부분의 대회에서 1위 자리를 놓치지 않은 카나예바는 2012 런던올림픽 금메달 획득 이후 명예롭게 매트를 떠났다.

당시 런던올림픽에는 리듬체조의 변방인 한국에서 온 소녀가 선전했다. 당시 18세였던 손연재(21, 연세대)는 개인종합 5위에 오르는 성과를 거뒀다.

긴 팔과 다리 그리고 훤칠한 신장과 유연함은 리듬체조 선수들의 필수 조건이다. 이러한 조건을 볼 때 아시아선수들이 불리한 것은 사실이다. 한국과 일본 중국 등 동아시아 국가들은 한동안 국제대회에서 별다른 성과를 올리지 못했다. 구 소비에트 연방 국가 중 아시아에 편입된 국가들이 그나마 분전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손연재는 아시아 최강을 넘어 '월드클래스'로 성장했다. 손연재가 본격적으로 아시아 무대에 도전한 무대는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16세 소녀로 팀의 막내였던 그는 당시 아시아의 상두마차였던 안나 알라브예바(카자흐스탄)와 율리아 트로피모바(우즈베키스탄)에 이어 동메달을 획득했다.

2013년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아시아선수권에서 손연재는 한국 리듬체조 사상 첫 국제대회 금메달을 획득했다. 그리고 지난해 인천아시안게임에서는 '아시아 퀸'의 자리를 지키며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올라섰다.

지난해까지 손연재는 '아시아 퀸'의 자리를 놓고 덩센유에(중국)와 경쟁을 펼쳤다. 덩센유에는 손연재처럼 체격 조건에서 불리한 점이 있었다. 그러나 빠른 몸놀림과 탄탄한 기본기를 내세워 정상권 선수들과 경쟁을 펼쳤다. 이들의 ‘마지막 승부’가 펼쳐진 인천아시안게임에서 손연재는 최종 승자가 됐다. 당시 은메달을 획득한 덩센유에는 은퇴를 선언했다.

손연재는 인천 아시안게임의 영광을 뒤로하고 아시아선수권 2연패에 도전한다. '2015 아시아 리듬체조 선수권'이 지난 10일부터 충북 제천시 세명대학교체육관에서 진행되고 있다. 대회 첫 날 손연재는 볼에서 실수를 범했지만 후프에서 18.100점을 받으며 개인종합 및 종목별 예선 중간 순위 1위를 달리고 있다.

현재 손연재의 새로운 아시아 도전자는 엘리자베타 나자렌코바(20, 우즈베키스탄)이다. 리듬체조의 메카인 러시아에서 체계적인 수업을 쌓은 점이 나자렌코바의 장점이다. 쟁쟁한 선수들이 즐비한 러시아에서 좀처럼 기회를 얻지 못한 그는 우즈베키스탄으로 귀화한 뒤 에이스 노릇을 하고 있다.

현재 후프와 볼 점수를 합친 중간점수에서 나자렌코바(35.400)는 손연재(35.700)에 0.3점 차로 뒤쳐져있다. 남은 곤봉과 리본 연기에서 개인종합 결선에 진출할 15명이 결정된다. 또한 종목별 결선에 출전한 선수들도 가려진다.

이번 대회는 나흘 동안 10번이 넘는 경기를 치러야한다. '강행군' 속에서 끝까지 체력을 유지하는 이가 '아시아 퀸'에 등극할 유리한 고지를 점령할 것으로 전망된다.

인천아시안게임 개인종합 동메달리스트인 아나스타시아 세르듀코바(18, 우즈베키스탄)도 이번 대회 메달 후보다. 세르듀코바는 대회 첫 날 볼에서 큰 실수를 범하며 16점대에 그쳤다. 일본의 기대주인 하야카와 사쿠라(18)는 두 종목에서 17점 대의 점수를 받으며 무난한 출발을 보였다.

아시아에서 리듬체조에 오랫동안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투자한 국가는 일본이다. 일본은 이온컵을 비롯한 각종 국제대회를 치르며 인지도를 높였다. 또한 탄탄한 저변 속에서 유망주들을 육성했지만 '월드클래스' 선수는 등장하지 않았다.

하야카와와 또다른 일본의 에이스인 미나카와 카호(17)는 현재 손연재의 훈련지인 러시아 노보고르스크에서 땀을 흘리고 있다. 최고의 훈련지에서 기량을 닦은 하야카와는 올 시즌 월드컵 대회 10위권에 진입하며 한층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만 21세인 손연재는 이번 대회에 출전 선수 중 최고령이다. 20대 중반 선수들이 보이는 유럽과 비교해 아시아는 선수 생명이 짧다. 아시아 최고 자리를 놓고 펼쳐지는 '꽃들의 전쟁'은 손연재 외의 선수들의 활약도 중요하다.

대회 첫 날 '차세대 기대주'인 천송이(18, 세종고)는 후프(16.700, 6위) 볼(16.250, 공동 6위)에서 분전했다. 손연재의 독보적인 활약과 천송이의 선전으로 한국은 우즈베키스탄에 이어 팀 순위 2위를 달리고 있다.

리듬체조의 변방에서 중심으로 조금씩 이동하는 아시아에서 한국은 어느 정도의 성적을 거둘까.

[사진1] 그래픽 ⓒ 스포티비뉴스 김종래

[사진2, 3] 손연재 ⓒ 스포티비뉴스 한희재 기자

[사진4] 엘레자베타 나자렌코바 ⓒ 스포티비뉴스 한희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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