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OTV NEWS=박대현 인턴기자] 1947년 4월 15일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초로 ‘검은 피부’ 선수가 경기에 출전했다. 그가 타석에서 스윙을 하고 베이스를 훔치는 모습에 많은 이들이 낯설어했다. MLB 첫 흑인 야구 선수 '위대한 선구자'로 칭송받는 야구인. ‘영원한 No.42' 재키 로빈슨 이야기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2004년부터 매년 4월 15일을 '재키 로빈슨 데이'로 지정해 로빈슨의 업적을 기리고 있다. 68년 전 로빈슨이 피부색의 장벽을 깨고 그라운드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미국 사회는 충격에 빠졌다. 현지 언론은 1903년 흑인 최초로 복싱 챔피언에 등극한 잭 존슨 이후 최대 사건이라며 앞다퉈 보도했다.

동료들은 그와 라커룸을 함께 쓸 수 없다며 노골적으로 무시했다. 몇몇 단장은 “프로에게 실력 다음으로 중요한 건 화제성”이라는 인터뷰를 했다. ‘야구선수 로빈슨’보다 대중의 관심을 끄는 ‘피부색이 다른 로빈슨’이 더 탐난다는 의미였다. 로빈슨의 주변은 늘 그의 실력보다 피부색을 먼저 언급했다.

검은 피부를 논하기 전에 그는 뛰어난 야구선수였다. 로빈슨은 1947년에 내셔널리그 신인왕, 49년에는 리그 MVP에 선정되었다. 그는 메이저리거로 그라운드를 누볐던 10년 동안 소속팀 브루클린 다저스를 월드시리즈로 여섯 번이나 이끌었다. 공·수·주 3박자를 갖춘 훌륭한 우타자였던 그는 통산 타율 0.311 137홈런 1518안타 734 타점을 기록했다. 이러한 활약을 바탕으로 1962년에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

뛰어난 야구실력은 주변 사람의 시선도 바꿔버렸다. 동료들이 그를 '진짜 다저스맨'으로 인정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던 중 라커룸에 협박 편지가 도착했다. ‘다음 경기에도 나오면 42번을 죽이겠다’라는 내용이었다. 그때 한 동료가 “우리 전부 42번을 달면 누군지 모르겠지”라며 가볍게 얘기했다. 농담처럼 던진 이 말은 메시지를 담은 기념행사로 발전했다. 매년 4월 15일마다 모든 MLB 선수들은 등번호 42번을 달고 경기를 뛴다.

최근 리그 내 흑인 선수 비율이 급감하고 있다. 1996년 17%에서 지난해 8%까지 떨어졌다. 흑인 선수가 떠난 자리는 히스패닉 선수들이 고스란히 메웠다. 1996년 20%에서 지난해 29%로 증가했다. 미국과 쿠바의 국교 정상화 이후 쿠바선수들까지 대거 유입될 전망이다. 한동안 흑인 선수의 감소는 이어질 것이다.

메이저리그는 NBA나 NFL과 달리 대형 신인이라도 바로 1군 무대에 데뷔하기가 어렵다. 마이너리그를 짧게라도 경험하고 빅리그 로스터에 이름을 올린다. 데뷔 첫해부터 리그 판도를 뒤흔드는 루키가 나오기 어려운 구조다. 이는 야구가 농구와 풋볼 등에 비해 유인책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이유다. 운동신경이 좋은 젊은 흑인들은 2군 생활을 겪지 않고 바로 데뷔할 수 있는 농구와 풋볼을 선택한다. 로빈슨이 어렵게 개척한 'Road to MLB'가 정작 여러 상황적 요인 탓에 로빈슨의 후손들이 외면하고 있는 셈이다.

30개 구단은 로빈슨의 등번호였던 42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했다. 그를 ‘영원한 No. 42'로 만들어줬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누구나 하기 힘든 일이 있다. 재키 로빈슨은 그 일을 해냈다. 혹독한 인종차별 속에서도 '콜럼버스의 달걀'처럼 가장 먼저 닫힌 사고를 열었던 선수. 1년의 단 하루라도 그를 기억하는 사람이 많아지는 건 행복한 일이다.

[사진] 재키 로빈슨 ⓒ Getty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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