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쿄올림픽 펜싱 남자 사브르 단체전 금메달을 합작한 ‘펜싱 어벤져스’ 김정환과 구본길, 김준호, 오상욱(왼쪽부터)이 7일 스포티비뉴스와 만났다. ⓒ고양, 곽혜미 기자
-‘펜싱 F4’ 김정환~구본길~김준호~오상욱 인터뷰
-캐릭터도 정한 ‘어펜져스’…“인상파 토르는 김준호”
-“역대 최악의 골판지 침대? 숨은 반전이 있어요”

[스포티비뉴스=고양, 고봉준 기자] 태극마크의 무게감과 굵은 땀방울로 가득했던 검과 투구, 펜싱복은 잠시 벗어놓았다. 그러자 그동안 숨겨놓았던 환한 미소와 편안한 표정 그리고 장난꾸러기 같은 모습이 자연스럽게 튀어나왔다. ‘펜싱 F4’부터 ‘펜싱 어벤져스’, ‘어펜져스(어벤져스와 펜싱의 합성어)’ 같은 화려한 별명보다 그저 ‘4형제’라는 친숙한 수식어가 가장 먼저 떠오른 이유였다.

도쿄올림픽 펜싱 남자 사브르 단체전 금메달을 함께 일궈낸 김정환(38)과 구본길(32·이상 국민체육진흥공단), 김준호(27·화성시청), 오상욱(25·성남시청)을 7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빛마루방송지원센터에서 만났다. 이들은 최근 계속된 방송 프로그램 출연과 개인 일정 소화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잠시 짬을 내 특유의 팀워크와 친형제 못지않은 케미스트리를 뽐냈다.

2012런던올림픽의 뒤를 이어 대회 2연패를 달성하며 한국 펜싱의 역사를 새로 쓴 이들은 귀국하기가 무섭게 눈코 뜰 새 없는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다. 세계무대를 주름잡는 실력 그리고 훤칠한 외모, 끈끈한 팀워크가 더해져 전 국민적인 인기를 얻은 덕분이다. 비록 달콤한 휴식은 잠시 뒤로 미뤘지만, 미소에는 여유와 행복이 흘러넘쳤고, 인터뷰가 시작되자마자 피곤함도 잊은 채 완벽한 케미스트리를 뽐냈다.

먼저 도쿄올림픽 개인전 동메달리스트이자 맏형인 김정환이 “펜싱 국가대표 남자 사브르 맏형 김정환입니다”고 당차게 인사를 건네자, 구본길과 김준호, 오상욱이 뒤따라 둘째와 셋째, 막내로 자신을 소개했다. 이처럼 영락없는 4형제의 우애를 뽐낸 국가대표들과 나눈 허심탄회한 대화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체중이 6㎏ 빠졌지만…그래도 행복해요”

-먼저 귀국 후 근황이 궁금하다.
오상욱 : 많은 분들이 격려해주셔서 정말 감사했다. 특히 개인적으로는 고등학교 3학년 수험생들로부터 ‘힘이 난다’는 메시지를 많이 받아서 더욱 뿌듯했다.
김준호 : 현지에선 많이 느끼지 못했는데, 한국으로 오니 정말 많은 분들이 저희를 알아봐 주시고 찾아주셨다. 이러한 국민들의 격려로 금메달을 딸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구본길 : 사실 한국으로 오면서 ‘이제 좀 쉬어야겠다. 가족들이랑 시간을 좀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너무나 큰 관심을 받았다. 스케줄이 생각보다 정말 많더라, 하하.
김정환 : 국민 여러분의 응원으로 목표였던 금메달을 획득했다. 실감은 잘 나지 않지만, 이 순간을 즐기려고 한다.

-인기를 증명하듯 이번 대회에선 어펜져스라는 별명을 새로 얻었다.
오상욱 : 어펜져스라는 별명이 우리와 가장 잘 맞는 것 같다. 어벤져스의 캐릭터가 다 다르듯이 우리 멤버들의 색깔이 다르지 않나.
김정환 : 나는 펜싱계의 태사자라고 불리고 싶었는데 20대 동생들은 태사자가 누구인지 모르더라.
구본길 : 형, 저는 알아요. 별명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나는 개인적으로 어펜져스가 가장 좋다. 이전에도 (김)준호가 한 번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F4는 외적인 부분을 평가하는 느낌이 강하지만, 어펜져스는 우리의 실력까지 높게 봐주시는 것이라고. 참고로 나는 어펜져스에서 ‘아이언맨’ 캐릭터를 맡겠다.
김정환 : 형이 총대 멜게. 내가 ‘헐크’ 할게.
오상욱 : 그럼 제가 ‘캡틴 아메리카’ 할게요. 아, 준호 형은 ‘토르’ 해야겠다. 항상 인상 쓰고 있으니까, 하하.

▲ 김정환과 구본길, 김준호, 오상욱(왼쪽부터)이 7일 스포티비뉴스와 인터뷰 도중 밝게 웃고 있다. ⓒ고양, 곽혜미 기자
-방송 출연 스케줄이 꽉 차 있다고 들었다.
김정환 : 귀국 후 일정이 정말 많아서 체중이 6㎏이나 빠졌다. 그래도 하루하루가 재미있다.
오상욱 : 감사하게도 많은 곳에서 찾아주셔서 생각지도 못했던 방송 출연을 하고 있다. 자랑을 하나 하자면, 시청자들께서 아실 만한 예능 프로그램은 거의 다 나가고 있는 것 같다(웃음).

-누가 가장 예능 프로그램 체질인지 궁금하다.
김준호 : 다들 선수 출신이라 그런지 감각이 있어서 적응은 빠르게 했다. 그래도 (구)본길이 형이 예능은 가장 잘한다. 체질상 혼자 이야기를 많이 하면서 본인 컨디션은 ‘업’ 시키고, 듣는 사람들 분위기는 ‘다운’ 시키는 재주가 있다.
구본길 : 하하. 사실 나보다는 맏형인 (김)정환이 형이 완전 방송 체질이더라.

-반대로 방송에서 가장 얼었던 선수는 누구인가?
오상욱 : (모두가 자신을 쳐다보자) 동의한다. 방송이 쉽지 않았다. 변명을 하나 하자면, 방송을 나갔는데 MC분들과 연배가 조금 맞지 않더라. 그래서 긴장이 쉽게 풀리지 않았다.
김준호 : 처음 예능 프로그램을 찍으면서 느꼈다. 방송하시는 분들은 정말 천재라는 사실을.

-광고 섭외도 많다고 들었다. 혹시 꼭 찍고 싶은 CF가 있는지.
구본길 : 내 이름이 구본길이라서 그런지 어떤 분들은 내가 LG그룹 일가인 줄 아신다. 사실 전혀 상관은 없다. 그래도 가전제품 광고에서 불러주시면 참 감사할 것 같다, 하하.
김정환 : 자동차 광고가 욕심난다. 동생들이 잘생겨서 팬들이 저희를 F4로 띄워주셨는데 이를 자동차의 4가지 모드로 바꿔보면 어떨까 한다. 컴포트, 스포츠, 오프로드, 어반처럼 말이다.
김준호 : 와, 아이디어 좋다. 이건 형이 미리 생각해 온 것 같은데?
김정환 : 보시는 분들께서 오해하실 수도 있는데 전혀 아닙니다(웃음).

▲ 구본길과 김정환, 김준호, 오상욱(왼쪽부터)이 7월 28일 일본 지바 마쿠하리메세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펜싱 남자 사브르 단체전 결승전에서 이탈리아를 45-26으로 꺾고 정상을 밟은 뒤 시상식에서 금메달을 들어보이고 있다.
◆“골판지 침대? 반전이 있었어요”

-도쿄올림픽 이야기를 해보겠다. 먼저 김정환의 국가대표 복귀 과정이 화제였다.
김정환 : 2018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을 단체전 금메달로 아름답게 마무리하고 은퇴를 결심했다. 이후 모든 것을 잊고 푹 쉬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새인가 일상생활이 매일 똑같고 의미 없다고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승리의 쾌감으로 중독돼 있던 것이다. 그즈음, 본길이가 와서 ‘도쿄올림픽까지는 형이 마무리를 해주십쇼’라고 이야기하더라. 그래서 마음을 다잡고 벼락치기식으로 준비를 해서 겨우 태극마크를 다시 달았다.
구본길 : (김정환에게 귓속말로) 형, 내가 형 은퇴를 만류한 이야기를 다들 좋아하시는 것 같아.

-오상욱은 3월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아서 어렵게 이번 대회를 준비했다.
오상욱 : 코로나19 확진 후 경기력이 확실히 떨어져 있었다. 특히 스텝이나 순간적인 센스가 이전 같지 않았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내 자신을 깎아내렸다. 그러자 형들이 ‘너는 잘하고 있다. 어차피 외국 선수들은 너를 이길 수 없다’며 용기를 북돋아 주셨고, 자신감을 되찾게 됐다.

-이번 대회 에피소드도 궁금하다. 개막 초반 최대 화제는 선수촌의 골판지 침대였다.
구본길 : 일본으로 가기 전 골판지 침대 기사를 봤다. 역대 최악이라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속으로는 설마설마한 마음이었다. 그래도 명색이 올림픽인데 그런 침대를 썼을까 의심을 했다. 물론 선수촌으로 들어가자마자 가장 먼저 확인한 것은 침대였다.
김정환 : 실제로 선수촌 침대 재질이 일반적이지는 않았다. 사과박스나 과일박스 같은 재질이었다. 물론 한두 명이 눕는다고 무너질 정도는 아니었지만, 원가를 너무 아꼈다는 생각은 지울 수 없었다. 그런데 여기에서 반전이 있었다. 입촌 후 잠을 푹 못 잘 줄 알았는데 첫째 날과 다음날 모두 숙면을 했다, 하하.“

-다른 나라 선수들과의 선수촌 에피소드는 없나.
김준호 : (질문이 나오기 무섭게 형들이 일제히 동생들을 쳐다보자) 나는 개인적으로 이번이 첫 올림픽이었다. 아무래도 세계적인 축제인 만큼 기대를 많이 했는데 무관중 경기여서 너무나 아쉬웠다. 또, 선수촌 생활도 자유롭지 못했다. 다른 나라 선수들과도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다른 종목도 구경하고 싶었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선수들이 많이 모이는 식당도 코로나19 우려로 거의 가지 않았다.
오상욱 : 무관중 이야기가 나와서 생각이 났는데 개인전 때는 긴장이 하나도 되지 않았다. 그런데 개인전 경기가 끝나고 나서 기사가 올라오는 것을 보면서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관중이 없어도 나를 보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됐다. 그때부터 정신을 차렸다.
구본길 : 가장 큰 걱정은 음식이었다. 대회를 잘 치르려면 식사가 가장 중요한데 현지 문제로 걱정이 많았다. 그래도 다행히 진천선수촌 식당 스태프분들이 일본까지 오셔서 도시락을 정성스럽게 만들어주셨다. 그 힘으로 우리가 금메달을 딸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펜싱 4총사 인터뷰는 ②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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