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내일의 기억' 서유민 감독. 제공|아이필름 코퍼레이션
[스포티비뉴스=김현록 기자]"감개가 무량하네요." 

2021년 첫 미스터리 스릴러, 영화 '내일의 기억'의 서유민 감독(47)의 첫 마디였다. 우여곡절 끝에 개봉하면서 영화 외적 논란으로 먼저 떠들썩해지는 통에 맘고생을 했지만, 공개 이후엔 탄탄한 스릴러로 조금씩 입소문을 타고 있다. 시나리오 작가로 먼저 이름을 알린 서 감독은 '외출' '행복' '열정같은소리하고있네' '덕혜옹주' 등의 여러 영화의 각본을 썼다. 동시에 연출작을 준비하며 수많은 이야기들을 써내려갔다. "셀 수 없을 만큼 썼다. 휴먼드라마, 음악영화, 멜로영화, 로맨틱 코미디도 있었다"던 서 감독은 하지만 눈을 찡긋 하며 웃었다. "영화는 스릴러죠."

▲ 영화 '내일의 기억' 서유민 감독. 제공|아이필름 코퍼레이션
서 감독의 첫 스릴러 '내일의 기억'은 사고로 기억을 잃은 뒤 미래를 보게 된 아내 수진(서예지)이 혼란스러운 기억의 퍼즐을 맞춰가며 남편 지훈(김강우)의 감춰왔던 실체를 알아가게 되는 이야기다. "가장 가까운 사람에 대한 공포를 다루고 싶었다"는 서 감독은 잃어버린 자신을 찾아가던 여주인공이 믿었던 남편에게서 낯선 기운을 감지하며 느끼는 공포와 서스펜스를 과장 없지만 쫄깃하게 그려내며 준비된 이야기꾼의 장점을 맘껏 발휘한다. 시작부터 펼쳐진 수많은 단서들을 하나하나 모아 이르는 뜻밖의 반전도 짜릿하다.

서유민 감독이 기억을 잃은 여자와 그의 남편을 테마로 '내일의 기억'을 처음 준비한 것이 지금으로부터 무려 8년 전. 수정과 퇴고를 거듭하며 지금에 왔다. 이야기를 끌어가는 두 캐릭터, 수진과 지훈의 감정을 어떻게 그릴지가 가장 고민이었다. 그는 "톱니가 짝짝 맞는 이야기다. 하나의 설정을 바꾸면 그것이 다 어긋나서 계속 맞춰줘야 했다"며 "관객들이 '아니 그건 뭐였어' '이건 해결이 안됐네' 하는 아쉬움이 없도록, 모든 게 맞춰지면 좋겠다 했다. 동시에 최대한 복잡하지 않고 쉽게 전달할 수 있도록 노력을 많이 했다"고 귀띔했다.

"그렇게 십몇년을 꿈꿨잖아요. 단편 하다가 연출부 하다가 드디어 메가폰을 잡으니까 책임감도 컸어요. 어깨가 무겁고 하지만 제가 쓴 시나리오를 직접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엄청난 기쁨이었거요. 시나리오를 쓰면 감독님이 잘 구현해주시겠지 믿고 기다리는 입장이었는데, 직접 현장에서 같이 만들어가는 재미가 있더라고요. 시나리오만 쓰면 굉장히 외로워요. 현장에서는 서로 이 영화를 잘 만들기 위해서 합심해서 노력하니까 어떨 때는 감동적이기도 하고 뭉클하기도 했어요."

가장 먼저 승선한 김강우는 특히 많은 의견을 나눈 상대였다. 여주인공 서예지가 주어진 각본에서 최선을 다하는 스타일이라면, 김강우는 촬영 전은 물론 현장에서도 치열하게 의견을 개진하는 스타일. 첫 만남부터 받은 시나리오를 챙겨 와 수많은 아이디어를 쏟아내는가 하면, 평일 주말을 가리지 않고 중국집 배달음식을 먹으며 논의를 거듭했단다. 그렇게 탄생한 김강우의 캐릭터 연기를 두고 서유민 감독은 "최고의 연기"라며 "완벽하다 생각이 들 정도로 연기에 있어서는 한 컷 한 컷 아쉬움이 하나도 었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의외로 남자 주인공이 연기하기에 더 어려운 역할이라 생각했거든요. 김강우 배우 생각이 났죠. 예전부터 좋아했어요. 선과 악이 공존하는 얼굴에다, 특히 스릴러 할 때 빛을 발하시죠. '사라진 밤'을 보고 어떻게 저렇게 잘하시나 했죠. 의견도 디테일해요. 지훈이 아내를 위해 밥을 차리는 장면에선 왠지 계란이 얹어진 김치볶음밥이 좋을 것 같다 든지, 붉은빛 토마토주스를 갈았으면 좋겠다든지. 시나리오의 틈을 메워주셨다고 할까요. 너무 좋은 의견들이라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었어요."

▲ 영화 '내일의 기억' 서유민 감독. 제공|아이필름 코퍼레이션
김강훈, 염혜란 등 함께한 배우들의 다른 면면도 눈길을 끈다. 둘 모두 '동백꽃 필 무렵'으로 주가가 급등하기 전 '내일의 기억'에 함께했다. 될성부른 떡잎은 알아본다고, 김강훈은 오디션부터 눈길을 사로잡아 서 감독이 어머니를 붙들고 "꼭 같이하자" 이야기를 했을 정도였다. 현장에서도 어른스럽고 프로같은 면모를 발휘했단다. 염혜란은 '아이 캔 스피크'를 보고 반해 출연을 제안한 경우다. "유머를 넣어 능청스럽고 맛깔나게 해주셨다"며 서 감독은 눈을 빛냈다.

서예지는 사실 김강우와 함께 영화의 주축이다. 서예지가 연기한 수진 캐릭터에게 주체적인 여성 서사를 부여하기 위해 고민도 많이 했던 터다. 다만 개봉을 즈음해 과거 김정현의 드라마 '시간' 하차를 둘러싼 논란과 폭로가 이어지고 다른 논란이 꼬리를 물면서 '내일의 기억'까지 영향을 미친 터. 개봉 전 예매율 1위에 올랐지만 마냥 기뻐만 할 수 없는 상황에 서유민 감독은 조심스럽지만 힘있게 이야기했다.

"이럴 때일수록 영화라는 것이 누구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많이 해요. '내일의 기억'이 저만의 영화도 아니고 배우나 스태프 한 분의 영화가 아니잖아요. 100명 넘는 사람들의 열정과 꿈이 인생을 걸고 노력하는 영화, 그렇게 많이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그 분들의 노력이, 영화는 영화로서 정당한 평가를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내부에서는 최선을 다하고 있거든요. (예매율 1위 소식에) 관객 분들이 영화를 영화로 봐주시는구나 생각이 들어 감사드리는 마음이에요."

서유민 감독의 차기작은 이미 정해졌다. 주걸륜 계륜미 주연의 대만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 리메이크다. 아직 첫 영화가 개봉하지 않은 신인 감독으로는 이례적인 행보다. 주연은 도경수가 이미 캐스팅됐다. 서유민 감독은 "만날 사진을 본다. 눈빛이 초롱초롱 영롱하다"고 귀띔하며 다시 시나리오 수정 무한반복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어려서부터 영화가 좋았어요. 다른 예술도 좋지만 가장 재미있고 감동을 주고 위로를 주는 것이 영화였네요. 저도 그런 재미와 위로를 드릴 수 있는 사람이고 싶어요. 감히 이런 일을 할 수 있나 두려움도 있었지만, 결국은 오랫동안 버티고 있다보니까 영화를 만들게 됐네요. 재미와 위로와 감동을 드리고자 노력하겠습니다."

▲ 영화 '내일의 기억' 서유민 감독. 제공|아이필름 코퍼레이션

스포티비뉴스=김현록 기자 roky@spotvnews.co.kr


저작권자 © SPOTV 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