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산 베어스 크리스 플렉센이 포효하고 있다. ⓒ 잠실, 한희재 기자
[스포티비뉴스=잠실, 김민경 기자] 가을 베테랑은 배트를 던졌고, 가을 초짜는 관중 호응을 유도하며 포효했다. 이래서 두산 베어스가 무섭다. 

두산은 4일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0 신한은행 SOL KBO 준플레이오프' LG 트윈스와 1차전에서 4-0으로 완승했다. 올해 준플레이오프는 코로나19 여파로 3전2선승제로 축소 운영돼 1차전 승기를 잡는 것이 더더욱 중요했다. 두산은 기선 제압에 성공하며 플레이오프 진출까지 1승을 남겨뒀다. 

경기 내내 LG를 압도했다. 선봉장은 '가을 초짜' 크리스 플렉센(26)이었다. 플렉센은 올여름까지도 100% 신뢰를 주지 못했다. 100만 달러를 받은 메이저리그 유망주 출신답게 좋은 공을 갖고 있었지만, 경기 운영 면에서 미숙했다. 마운드에서 생각이 많아져 투구 수 조절에 실패하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왼발 골절 부상에서 돌아온 후반기 플렉센은 180도 달라졌다. 9경기에서 4승1패, 52⅔이닝, 73탈삼진, 평균자책점 2.05로 활약하며 다가올 가을을 기대하게 했다. 

플렉센은 최고 구속 155km짜리 강속구를 꽂아 넣으며 LG 타선을 제압했다. 직구가 워낙 좋으니 커브, 슬라이더, 체인지업, 커터 등을 조금씩만 섞어 던져도 압도할 수 있었다. 

결정적인 장면은 6회에 나왔다. 3-0으로 앞선 6회초 2사 후 김현수를 유격수 오른쪽 내야안타로 내보내면서 잠시 상황이 꼬였다. 투구 수 100구를 넘긴 상황. 다음 타자는 로베르토 라모스였다. 플렉센은 전력으로 라모스와 붙었고, 볼카운트 1-2에서 포수 스트라이크아웃 낫아웃 삼진으로 라모스를 돌려세운 뒤 크게 포효했다. 관중들을 향해 양팔을 들어 올리며 호응을 유도하기도 했다. 

1차전 데일리 MVP로 뽑힌 플렉센은 "그 순간에는 정신을 잃은 것 같다. 정말 중요한 이닝이었는데, 잘 마무리해서 여러 감정이 들었다. 팀에 힘을 주고 싶었고, 팬들의 열정적인 응원에 에너지를 돌려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고 털어놨다. 

이런 큰 액션의 신호탄은 '가을 베테랑' 오재원(35)의 배트플립이었다. 오재원은 2-0으로 앞선 4회말 1사 1, 3루 기회 추가점이 필요한 상황에서 우중월 적시 2루타를 날려 3-0으로 거리를 벌렸다. 이때 홈런인 줄 알고 타구가 뻗어 나가자마자 힘껏 배트를 던졌다. 결과는 홈런이 아니었지만, 팀 사기를 끌어 올리기에는 충분했다. 오재원은 6회말에도 적시타를 추가하며 베테랑의 임무를 200% 수행했다. 

▲ 두산 베어스 선수들이 승리 후 기뻐하고 있다. ⓒ 잠실, 한희재 기자
오재원은 "내가 제일 형이다 보니 마음가짐은 (주장일 때랑) 비슷하다. 이런 경기일수록 더 파이팅하고 선수들에게 말 한마디 더 걸어주고 하는 것이 내 몫인 것 같다. 다들 몇 년 동안 (큰 경기를) 해왔던 선수들이다. 큰 책임감이나 의무감이 생기지는 않는다. 더 편하게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있다"고 이야기했다. 

두산과 처음 가을을 경험한 플렉센은 "두산이 강팀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기려는 열망이 강하다는 것을 훈련에서부터 느꼈다. 페르난데스의 1회 홈런(2점)이 좋은 분위기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두산은 김태형 감독이 부임한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지금 주축 선수들 대부분이 지난 5년의 추억을 공유하고 있다. 2015년은 3위로 시작해 한국시리즈 우승했고, 2018년은 1위로 한국시리즈에 직행해 맥없이 준우승에 그치기도 했다. 2016년과 2019년은 한국시리즈 4전 전승으로 통합 우승을 차지했다. 이 경험들이 그라운드와 더그아웃을 가리지 않고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이 기운은 그대로 젊은 선수들에게 전달된다. 플렉센을 비롯해 최원준(1⅓이닝)-이승진(⅔이닝)-이영하(1이닝) 등 상대적으로 가을 경험이 부족한 선수들까지 흐름을 탔다. 

포스트시즌이 열리기 전부터 가을에 가장 껄끄러운 팀으로 두산이 거론됐다. 이제 겨우 한 경기지만, 왜 두산이 가을이면 더 무서워지는지 충분히 증명했다.

스포티비뉴스=잠실, 김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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