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도굴' 포스터. 제공|CJ엔터테인먼트
[스포티비뉴스=김현록 기자]명당 자리를 되짚어 쇠막대로 맨땅을 찌르던 남자가 땅속에서 희한한 소리를 듣고는 나자빠진다. 흙 속에 산 사람이라니,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흘러나오는 음악과 시작하는 애니메이션 오프닝. 흑백의 간결한 터치로 완성된 실루엣만으로 주요 캐릭터를 소개하며 '도굴'(박정배)은 시작한다. 땅 파는 케이퍼무비의 야심찬 출사표다.

흙맛만 봐도 자리를 알아보는 천재 도굴꾼 강동구(이제훈)는 전국의 수집가가 군침을 흘릴 금불상을 손에 넣는 데 성공한다. 비밀 수장고에 보물을 채우느라 혈안인 재벌 회장이 움직이고, 그를 뒤에 업고 접근한 미모의 큐레이터 윤실장(신혜선)은 더 큰 건수를 제안한다. 강동구는 선수들을 모아 판을 키운다. 고분벽화 전문가 존스 박사(조우진)에 이어 삽질의 달인 삽다리(임원희)까지. 이윽고 그들은 한 번도 세상에 나타난 적 없는 전설의 보물을 꺼내러 나선다.

개성도 특기도 다른 도둑들이 힘을 합쳐 벌이는 기상천외한 한 탕. '오션스 일레븐'부터 '도둑들'까지, 케이퍼 무비의 매력과 힘이야 이미 수없이 검증된 바다. 틀이 비슷하더라도 얼마나 신선한 판을 짜느냐가 첫 관건이라면 '도굴'(감독 박정배)는 일단 합격점이다. 땅 파고 무덤 뚫어 고물 아닌 보물을 건지는 도굴꾼 이야기는 일단 제대로 만들어진 적이 없었다.

'도굴'은 아직 더 파낼 곳이 남았나 싶은 대한민국을 무대로 하면서도 그럴듯한 이야기를 짰다. 도둑질과 사기극을 주재료로 코미디 한 스푼, 러브라인 한 방울을 섞었다. 흥미로운 설정에 그치지 않고 점점 커지는 판을 '제대로' 보여주는 데 들인 공도 적잖다. 불상부터 도자기, 벽화와 족자에 이르는, 본적 없지만 남다른 포스를 내뿜는 소품은 물론 흙의 질감에다 고구려 고분 천장구조까지 꼼꼼하게 신경쓴 미술과 세트 덕에 큰 화면으로 보는 맛이 있다. 사극 '남한산성'을 통해 완벽에 가까운 프로덕션을 보여줬던 사이렌픽쳐스는 현대극에서도 그 장기를 발휘했다.

탄탄한 기초공사 위에서 배우들이 신나게 어우러졌다. 오랜만에 고뇌와 무게를 훌훌 털어내고 맘껏 까부는 이제훈이 신선하다. 분량은 물론이고 할말도 할일도 많은 캐릭터에 잔망미까지 곁들였지만 딱 선을 지켰다. 허허실실 사랑스런 도굴 박사님이 된 조우진은 다크포스를 쫙 빼도 매력적인 배우임을 입증한다. 2번째 영화를 내놓은 신혜선은 똑부러지게 제 몫을 해내며 소포모어 징크스 없는 스크린 안착을 알린다. 임원희는 그냥 임원희이면 된다.

범죄보다 오락에 방점이 찍힌 케이퍼 무비로서 '도굴'은 허허실실 가볍게 즐기기에 부담없다. 쉽고 명확하다. 그 덕에 늘어난 말의 향연은 '도굴'의 장점이자 단점인데, 그 속에서도 '듣는 맛'을 발견할 수 있다. 말 맛으로 어디 내놔도 안 빠지는 배우군단이 '딕션이란 이런 것'임을 보여준다.

11월 4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114분.

김현록 기자 roky@spotv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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