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용택은 시즌에 앞서서나 경기에 앞서 늘 경건한 마음으로 준비를 한다. 타격을 잘하기 위해서라면 '준비를 위한 준비'까지 하는 프로다. ⓒ곽혜미 기자

[스포티비뉴스=이재국 기자]

“타격폼만 수십, 수백 가지입니다.”

LG 트윈스에 온 뒤 박용택(41)을 가까이에서 직접 지도해 봤던 신경식(59) 퓨처스 타격코치는 혀를 내둘렀다.

“투수에 따라 다르고, 같은 투수라도 그날 컨디션에 따라 다른 타법을 구사합니다. 횟집 사장님이 생선에 따라 회를 두껍게 뜨기도 하고, 얇게 뜨기도 하듯 박용택은 그때그때 다른 타법을 들고 나가더라고요. 스탠스를 넓게 벌리기도 하고, 좁히기도 하죠. 노스텝으로 치기도 하고, 테이크백을 조금씩 달리 변화시켜요. 다른 팀에 있을 때는 잘 몰랐는데 LG 오고 나서 박용택이 왜 잘 치는지 확실히 알게 됐습니다.”

‘학다리’ 신경식 코치는 이웃집(OB~두산 베어스)에서 선수와 코치로 오랫동안 활약했다. 2013년 라이벌 구단인 LG 유니폼을 입은 뒤 1군과 퓨처스팀을 오가며 쌍둥이 군단의 타격코치를 맡고 있다. 2018년 1군 타격코치로 박용택이 양준혁(2318안타)을 넘어 역대 개인통산 최다안타 신기록을 쓰는 순간을 함께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선수로서, 타격코치로서 여러 팀에서 수많은 타자들을 지켜본 그의 눈에도 박용택은 남달라 보이는 듯했다.

“박용택은 야구장에 올 때부터 수많은 타격폼 중에 그날그날 자신의 타격을 미리 몇 가지 준비하고 옵니다. 당일에 쓸 칼을 골라 나오듯이 말이죠. 타격의 장인 같다고나 할까? 준비부터 정말 프로 중의 프로라는 걸 느꼈습니다.”

▲ 박용택은 타격의 흐름을 따라잡기 위해 후배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메이저리그에서 뛰다 돌아온 김현수(왼쪽)는 선배에게 자신의 경험담을 아낌없이 들려준다. ⓒ곽혜미 기자
박용택은 팔색조 같은 그 타법의 준비를 위해 무수한 시간과 싸워왔다. 야구를 잘할 수 있는 길이라면 어디든 달려간다. 미국 야구, 일본 야구 가리지 않고 잘 치는 타자들의 타격폼을 연구하고 따라해 본다. 이미 자신만의 타격 이론과 방식이 정립돼 있는 고수지만 은퇴를 앞둔 지금까지 타격의 수를 배우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

후배들에게 묻는 것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김현수(32)는 “박용택 선배님은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하시는 분 같다. 최신 트렌드에 맞춰 가려고 정말 연구를 많이 하신다. 나한테도 메이저리그 선수들은 어떤 훈련을 하는지, 연습 방법은 어떤 것이 있는지 시간이 날 때마다 묻곤 하신다”고 말했다.

김현수뿐만 아니다. 최근 타격감이 좋거나 폼이 좋아보이는 후배가 보이면 붙잡고 물어본다.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런 ‘불치하문(不恥下問)’의 자세는 시대의 흐름에 대응하고 세월과 싸워 나가는 박용택의 밑천 중 하나다.

“타자는 타석에 투수를 이기기 위해 들어가지만 수동적인 존재죠. 투수가 던지는 공의 변화를 따라가야 하잖아요. 그래서 타격에 관한 기본기와 정석이라는 것은 없다고 생각해요. 정말 그런 게 있다면 4할을 치고, 5할도 치는 타자가 나와야죠. 세상에 똑같은 타격폼은 없어요. 같은 타자가 쳐도 타이밍에 따라 다 달라요. 결국 타자는 어떤 공을 만나든 가장 잘 싸울 수 있는 수많은 방법을 미리 준비하는 게 중요하죠. 그게 수십 개인지, 수백 개인지는 모르지만.”

▲ 박용택은 어떤 공을 만나든 가장 잘 싸울 수 있는 타격폼을 수백 가지 준비해 놓은 타자다. ⓒLG 트윈스
그가 집에 소장하고 있는 안경만 해도 수십 개다. 야구장에 올 때도 여러 개의 안경을 들고 나온다.

박용택은 이에 대해 “모자란 사람이 그런 것에 의지하고 싶은 거다”며 웃더니 “훈련을 하거나 경기를 하다가 안경이 어떻게 될지 모르지 않나. 안경을 여러 개 준비하는 것도 경기를 잘하기 위한 준비 중의 하나”라고 설명했다.

“야구를 귀하게 대한다”는 류지현(49) 수석코치의 전언처럼, 박용택은 야구 자체를 경건하게 준비한다. 비시즌에는 정갈한 마음가짐으로 시즌을 준비하고, 시즌 중에는 경기를 위한 준비, 타석을 위한 준비, 공 1개를 상대하기 위한 준비들을 차례차례 한다.

그리고,

그 수많은 준비들을 준비해 놓는다. 한마디로 ‘준비를 위한 준비’까지 하는 '준비택'이다.

#박용택 #엘지트윈스 #안타왕 #은퇴 #이별이야기

<8편에서 계속>

■ '안타왕' 박용택, 10가지 이별이야기?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찾아온다. 그 공평한 시간은 야속하게도 우리에게 또 한 명의 레전드와 작별을 강요하고 있다. 2002년 데뷔해 2020년까지 줄무늬 유니폼 하나만을 입고 19시즌 동안 그라운드를 누빈 LG 트윈스 박용택(41). 수많은 기록과 추억을 뒤로 한 채 그는 약속대로 곧 우리 곁을 떠난다. 이제 선수로 볼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그를 그냥 떠나 보내자니 마음 한구석이 아리고 허전하다. ‘한국의 안타왕’ 박용택이 걸어온 길을 별명에 빗대 은퇴 전 10가지 에피소드 형식으로 다시 한 번 정리해 보고자 한다.

※이 연재물은 2018년 월간중앙 기고문과 기자의 SNS에 올린 글을 현 시점에 맞게 10가지 에피소드 형식으로 각색한 것입니다.

스포티비뉴스=이재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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