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산 베어스 스페인어 담당 최우진 통역(왼쪽)과 유네스키 마야 ⓒ 두산 베어스
[스포티비뉴스=잠실, 김민경 기자] "방출이 결정되고 인사하는 날 마야도 울고, 나도 울었다. 마야가 감독님 뵙고 마지막 인사할 때도 내가 너무 울어서 통역을 못 했다."

지금은 웃으며 이야기하는 초보 통역 시절 추억이다. 최우진(29)씨는 2015년 두산 베어스에서 처음으로 스페인어 통역을 담당했다. 10살에 부모님을 따라 도미니카공화국으로 이민을 가서 10년을 살아 스페인어에 능통했다. 2015년은 대학 휴학 상태라 두산에서 1년 동안 아르바이트를 했고, 대학을 졸업하고 2017년과 2018년은 LG 트윈스에서 통역 생활을 이어 갔다. 최 씨는 두산이 2019년 호세 미구엘 페르난데스(32)를 영입해 스페인어 통역이 필요하다는 말을 듣고 다시 유니폼을 갈아입었다. 

여러 선수를 만나도 첫 선수 유네스키 마야(39)와 기억이 가장 애틋하다. 마야는 그해 4월 9일 잠실 넥센 히어로즈(현 키움)전에서 생애 처음이자 KBO리그 역대 12번째 노히트노런을 달성하며 1-0 완승을 이끌었지만, 13경기, 2승5패, 68⅓이닝, 평균자책점 8.17로 부진한 뒤 짐을 쌌다. 

최 씨는 마야가 두산과 작별한 날 누구보다도 많이 울었다. 그는 "마야는 내가 맡은 첫 선수였다. 진짜 기억에 남는다. 첫해니까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정을 정말 많이 줬다. 회사 형들이 다 그랬다. '너는 어떻게 보면 외국인 선수의 친구가 될 수 있지만, 첫째는 비즈니스 관계고 직장 동료'라고. 그런데 정을 너무 줘서 마야가 방출됐을 때 마야도 울고 나도 엉엉 울었다"고 이야기했다. 

이어 "마야가 김태형 감독님과 인사하러 갔을 때도 내가 정말 꺽꺽 울어서 통역을 못 했다. 울어서 통역을 못 하니까 마야랑 악수를 하고 계시더라(웃음). 감독님 만나고 나와서 선수단과 마지막 인사하는 자리에서도 통역을 못 하고 울기만 해서 혼났다. 그래서 기억에 제일 많이 남는다. (김)현수 형은 아직도 놀린다. 감독님도 내가 너무 나라 잃은 것처럼 울어서 뭐라고 말 안 하시더라"고 말하며 웃었다. 

마야는 야구 선수의 삶을 알게 해 준 선수이기도 하다. 최 씨는 "마야는 정말 정 많고 착한 선수인데, 경기 날만 예민해진다. 경기 날은 출근하면 헤드셋 끼고 나는 물론이고 아무랑 말을 안 한다. 처음에는 '나를 무시하나'라고 생각했다. 일을 모르니까. 지금은 안다. 선발이 그날 하루를 위해서 얼마나 많은 준비를 하고, 얼마나 많은 운동을 하고, 부담감을 느끼는지 아는데 그때는 몰랐다. 알고 나서는 출근하면 인사만 하고 '필요한 것 있으면 말해'하고 다른 곳에 가 있었다. 그 정도로 예민한 선수였는데 경기 끝나고 마운드에서 내려오면 순하고 착하다. 마야는 지금도 연락을 하면서 지낸다. 안부도 묻고, 팀이 페르난데스와 계약했을 때는 마야가 '착한 친구니까 잘 부탁한다'고 연락을 남기기도 했다"고 밝혔다. 

▲ 왼쪽부터 최우진 통역, 조쉬 린드블럼, 호세 미구엘 페르난데스 ⓒ 두산 베어스
초보 통역은 이제 외국인 선수들이 찾는 통역이 됐다. 스페인어를 쓰는 야구 선수들은 대부분 중남미권 출신이라 도미니카공화국에서 스페인어를 배운 최 씨와 대화가 편할 수밖에 없었다. 최 씨는 "통역을 원래 잘 못 했다. 한국에 왔을 때는 스페인어는 잘하는데 한국말을 못 했다. 군대를 통역 쪽으로 가면서 한국말이 트였다. 또 스페인어와 남미 스페인어가 다르다. 말은 비슷한데 발음이나 쓰는 단어, 야구 용어도 다르다. 그래서 선수들과 더 편하게 소통이 가능한 것 같다"고 말했다. 

실무는 운영팀 김승호 부장, 남현 과장, 김용환 대리에게 배워 나갔다. 최 씨는 "정신적 지주이자 멘토인 분들이다. 첫해는 아무것도 모르고 선수 옆에만 계속 있었다. 시야가 오로지 마야였다. 형들이 조언해 준 덕분에 업무 시야도 넓히고, 노하우도 쌓아 나갈 수 있었다. 그래서 늘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이야기했다.

통역으로서 가장 보람을 느낀 순간은 지난해 페르난데스가 지명타자 부문 골든글러브를 받았을 때다. 페르난데스는 지난해 197안타로 리그 1위에 올랐고, 올해도 타율 0.372(266타수 99안타), 12홈런, 48타점 맹타를 휘두르고 있다. 

최 씨는 "페르난데스가 골든글러브를 받았을 때 정말 뿌듯했다. 나한테 대리 수상을 하라고 해서 '싫어요'라고 쑥스러워했는데, 속으로는 뿌듯했다. KBO리그 현존 최고 타자 가운데 한 명이라고 생각한다. 페르난데스가 과소 평가되는 점도 있는 것 같은데, 내게는 늘 최고다. 외국인 선수가 잘 적응해서 잘하면 그것만큼 좋은 게 없다"고 말하며 미소를 지었다. 

▲ 라울 알칸타라(왼쪽)와 페르난데스(오른쪽)가 장난치는 것을 지켜보며 최우진 통역은 늘 웃는다. ⓒ 두산 베어스
한국 생활 적응을 마친 페르난데스는 올해 팀에 새롭게 합류한 라울 알칸타라(28)와 크리스 플렉센(26)을 살뜰히 챙기고 있다. 최 씨에게 일상생활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일도 줄었다. 배달 음식을 주문할 때만 부탁하는 정도다. 

최 씨는 "페르난데스와 알칸타라는 페퍼로니 피자를 좋아한다. 피자 또는 치킨을 시켜 먹고 싶을 때만 찾는다. 두 선수 다 한국 생활 2년째라 어디를 같이 가달라고 하는 일은 적은 편이다. 알아서 혼자서 하려고 하는 편이다. 착해서 되도록 쉬는 날은 통역을 귀찮지 않게 하려 한다. '나도 쉬는 날, 너도 쉬는 날인데 부탁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는 마인드를 가진 선수들이다. 외국인 선수 중에는 월요일에 꼭 운동해야 하는 선수가 있다. 선발투수의 경우 불펜 피칭이 월요일에 걸리면 꼭 해야 하는 선수가 있는데, 알칸타라는 전날 또는 다음날 해도 되니까 나오지 말라고 한다. 고지서 같은 게 오면 확인해주고, 전력 분석을 같이해주는 정도"라고 설명했다.

외국인 선수들의 친구로 함께 지내며 덕분에 웃는 일도 많다. 최 씨는 "처음에는 페르난데스와 알칸타라가 같은 언어권이라 플렉센이 겉돌 것 같다고 우려를 많이 했다. 페르난데스가 영어를 잘 못 하는데 밥을 먹든 뭘 하든 무조건 셋이서 다닌다. 동생들이니까 잘 챙기고 조언도 많이 해준다. 팀 분위기를 흐릴 것 같은 행동을 하면 페르난데스가 조언을 해주기도 한다. 알칸타라가 영어가 되니까 내가 없어도 셋이서 일요일 경기 끝나고 밥을 같이 먹는다. 나도 가끔 초대하면 같이 먹는다. 페르난데스는 알칸타라를 많이 놀린다. 경기장 출입구 기둥에 선수들의 사진이 붙어있는데 알칸타라 사진이 끝쪽에 잘 안 보이는 곳에 붙어 있다. 페르난데스가 출근할 때마다 '플렉센도 보이는데 알칸타라 너는 어디 있냐' 이런 식으로 놀린다. 같이 있으면 늘 웃는다. 워낙 흥이 많은 선수들이기도 하다"고 했다. 

늘 선수들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그가 선수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다치지 말라"였다. 최 씨는 "야구를 잘하고 못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다치면 할 수가 없다. 2018년에 가르시아(LG) 부상 때 2개월 동안 이천에서 같이 숙소 생활을 했다. 옆에서 지켜보는 게 더 힘들다. 운동을 못 하고 치료만 받으니까 일정은 아침 8시부터 12시면 끝나는데, 야구를 할 수 있는데 싫어서 안 하는 게 아니니까. 하고 싶은데 못하는 것을 옆에서 보면 속상하다. 그래서 다치지 말고 부상 조심하라고 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통역으로서 목표는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우승이다. 최 씨는 "야구단에서 일한다고 하면 밖에서는 화려하고 멋있게 보는데, 솔직히 회사원이다. 회사원에게 목표를 물으면 안 잘리고 열심히 하는 게 목표라고 할 것이다(웃음). 나도 똑같다. 특별한 목표가 있다면 우승 반지를 더 모으고 싶다. 지금은 2015년과 2019년 우승 반지 2개가 있다. 직원들은 등번호가 없지만, 이름을 새겨 반지가 나온다. 지금 같이 일하는 직원들은 대부분 3개씩 갖고 있다. 우승 반지는 선수들의 자부심이기도 하지만, 우리도 자부심이 있다"며 또 하나의 우승 반지를 함께 끼는 날을 기대했다.

스포티비뉴스=잠실, 김민경 기자
저작권자 © SPOTV 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