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병수 강원FC 감독 ⓒ한국프로축구연맹

[스포티비뉴스=유현태 기자] 지난 2월 K리그 미디어데이에 참석한 강원FC 김병수 감독에게 질문을 던졌다. "강원의 축구를 어떻게 보면 좋을까요?"

김 감독은 "수비를 하다가 공격으로 나가는 스타일은 아니다. 먼저 공격하고 수비를 대비한다. 모든 게 뜻대로 되지 않지만, 공격권을 쥐고 경기를 운영하고, 또 공을 빼앗기면 빠르게 되찾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답변했다. 이어 "너무 이상적인 축구죠?"라며 웃더니 "지속적으로 들여다보고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감독에겐 시간이 조금 필요하고 선수들도 실행하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하다. 조금 지나면 속도를 내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시간이 필요하다는 설명이었다.

강원의 행보는 김 감독의 말과 비슷하다. 시즌 초반 9경기에서 3승 1무 5패를 기록했다. 하지만 5월 들어 치른 3경기에서 3연승, FA컵을 포함하면 4연승 행진을 벌이고 있다. 어느새 6승 1무 5패 승점 19점으로 5위에 이름을 올렸다.

최근의 결과만큼 중요한 것은 내용이다. 강원의 축구는 보는 맛이 있다. 아기자기한 패스 전개와 최후방부터 전방까지 이어지는 속도감이 느껴진다. 강원의 득점 장면은 개인의 능력에 의존한 것보다 함께 만들어가는 장면이 많기 때문에 눈이 즐거운 것일지도 모른다. 강원의 축구를, 김병수식 축구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 '병수 볼'의 키워드 : 수적 우세, 속도감

김 감독은 전술에 관련된 질문에 늘 무심하게 대답하곤 한다. "김병수 축구에서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가요?"라고 물으면 "경기를 보면 아실 겁니다"하고 대답하는 식이다. 준비한 것을 피치에서 직접 확인하라는 의미일 터. 강원 축구를 이해하려면 다른 이들의 목소리를 빌려야 했다.

최근 강원의 중원을 책임지는 한국영은 "피치를 공격, 중원, 수비 지역으로 셋으로 나눴을 때 항상 한 명 이상 수적 우위를 점할 수 있도록 포메이션을 짜주신다. 가운데에선 빨리 전방으로 나가는 것을 강조하신다"고 말한다. 결국 키워드를 뽑자면 '수적 우세'와 '속도감'이다. 

축구 경기장은 22명이 커버하기에 넓지만 동시에, 모든 지역을 쓸 순 없다. 강원은 특정 지역에서 수적 우위를 점하려고 한다. 선수가 많이 모이면 공격이 편해진다. 패스하기도 쉽고, 수비가 막아야 할 곳이 많아지니 드리블로 치고 나갈 공간도 늘어난다. 이런 수적 우세를 살리려면 속도가 중요하다. 예를 들어 중원의 수를 순간적으로 늘려 공간을 만들더라도 전진하지 못하면 상대 수비, 미드필더들은 다시 조직을 갖춘다. 한 번 상대를 무너뜨리면 수비에서 공격까지 빈틈을 연속적으로 공략해가야 한다.

12라운드에서 맞대결을 펼친 성남FC 남기일 감독도 "빌드업을 잘하고 미드필더 수도 많다. 김지현, 김현욱 등 볼 간수를 잘하는 선수들이 좋다. 점유율을 잘 유지하고 골문까지 갈 수 있는 팀"이라고 강원을 평가했다.


◆ 빌드업 메커니즘

강원은 스리백과 포백을 혼용해서 쓴다. 경기마다 콘셉트를 다르게 한다기보다 경기 중 수시로 형태가 변한다. 바로 언급한 수적 우위를 점하기 위한 것이다. 강원이 볼을 안정적으로 점유하면 측면에 배치된 수비수들은 윙어처럼 전진한다. 그리고 중원의 수를 늘린다. 스리백의 한 명이 전진해 미드필더 2명과 함께 중원에 배치된다. 역시 중원에서 수적 우세를 점하기 위한 것으로 강원이 점유율을 잡았을 때 세밀하게 공격을 풀어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다.

김현욱, 정석화가 주로 담당하는 측면 미드필더도 중앙 쪽으로 가담해 중원의 수를 늘린다. 전진한 윙백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김 감독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이드 플레이'를 적극적으로 살릴 수 있다.

반면 상대의 공격이 강한 경우는 공격보다 수비에 무게를 두고 경기를 운영하기도 한다. 사실상 파이브백 형태로 수비를 쌓기도 한다. 상대에 맞춰, 상황에 맞춰 유연하게 수를 늘리고 줄인다. 예를 들어 시즌 초반 베테랑 미드필더 오범석이 수비형 미드필더와 스리백 가운데 좌우 중앙 수비수를 오갔다. 경기 상황에 따라 위아래로 움직였다. 유연하게 변했다. 

한국영은 "여태껏 경험하지 못한 포메이션, 포지션, 볼 받는 위치나 자세까지 세세하게 지도해주신다"고 설명한다. 사실상 경기를 시작할 때 포메이션이 경기 중 그대로 나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 승리를 즐기는 강원FC ⓒ한국프로축구연맹

◆ 공간을 향한 패스 전개

공간을 확보했으면 이제 속도를 살리는 것이 과제다. 공격수 김지현은 "감독님은 항상 볼을 받는 선수가 더 중요하다고 하신다"고 말한다. 강원의 패스 전개를 보면 공을 잡고 있는 선수 주변에서 활발하게 움직인다. 패스를 주고 움직이는 2대1 패스는 물론이고, 패스를 주고받는 선수 외에 다른 선수가 움직이는 이른바 '3자 움직임'이 활발하다. 선수들이 공에 시선이 쏠리는 것은 당연한 일, 강원 선수들이 먼저 공간을 읽고 움직이면 수비의 견제를 피해 전진하는 방법이 된다.

또 하나 강원의 특징은 패스가 공간으로 향한다는 것. 백패스와 횡패스를 하더라도 발앞보다 움직이는 동료의 앞에 패스를 넣어 속도를 살리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런 패스들이 모이면 위협적인 찬스를 만들 수 있는 전진 패스로 연결된다. 김지현은 "짧은 패스를 바탕으로 속도감이 있는 축구를 펼친다"며 "감독님은 전진 패스를 좋아하신다"고 말했다.

그래서 선수들에게 요구되는 것도 활동량이다. 프로 2년차 김지현이 최근 많은 출전 기회를 잡는 이유다. 김지현은 "제가 가진 장점은 많이 뛰어주면서, 폭넓게 움직여주는 것 같다. 항상 적극적으로 해주시길 원한다"며 "다양한 움직임을 시도한다"고 말한다. 정조국과 제리치는 페널티 박스 안에서 골 냄새를 맡는 능력이 뛰어난 선수들. 하지만 김 감독의 스타일상 폭넓게 움직이면서 숫자 싸움에 도움을 주고 공간을 향해 뛰는 공격수가 필요하다.


◆ 떠오르는 플랜B

확고한 색의 축구를 전개하지만 하나의 방식만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 선수에 맞게, 상대의 전술에 맞게 다른 경기 운영을 펼치기도 한다. 12라운드 성남전은 그래서 의미가 컸다. 성남의 촘촘한 수비진을 뚫기 위한 방책이었다. 성남은 수비-미드필더 간격이 좁고 많이 뛰는 팀이다. 강원이 평소 즐기는 짧은 패스 전개로도 흠집을 내기 쉽지 않다. 정조국은 "성남이 전체적인 수비가 좋다. 우리가 측면에서 제리치, 정조국에게 강하게 올려주라고 요구했다. 성남 선수들이 그걸 조금 까다로워한 것 같다"고 말했다.

강원은 최전방에 제리치와 정조국이 함께 출격하는 투톱을 썼다. 그리고 왼발잡이 정승용을 오른쪽에 변칙 배치하면서 크로스 패턴을 자주 활용하려고 했다. 결과는 2-1 승리. 전반전 강원의 패턴이 잘 먹히자 성남은 수비형 미드필더를 둘로 늘리면서 여기에 대응했다. 그러자 김 감독은 많이 뛰는 김지현을 투입했다. 그리고 김지현은 측면과 중앙을 활발하게 오가더니 경기 종료 직전 결승골을 뽑았다. 

선수들도 확신이 있었다. 투톱으로 출전했던 정조국은 "사이드 플레이를 많이 요구하신다. 저나 제리치나 박스 안에서 움직임이 좋은 선수다. 그걸 또 가장 잘한다.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팀에 또 하나의 옵션이 될 것 같다"고 평가했다. 미드필더 한국영은 "세컨드 볼이나 수적 우위를 점할 수 있도록 이야기를 많이 하셨다"면서 "체력적으로만 잘 버티면 결과를 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투톱 전술은 플랜A는 아니다. 김 감독은 성남전 기자회견에서 "플랜A는 되지 않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대신 상대와 상황에 따라 쓸 수 있는 플랜B의 존재는 강원에 힘이 될 전망이다.

▲ 김지현과 제리치(왼쪽부터) ⓒ한국프로축구연맹

◆ 선수들에게도 신선한 충격, 팬들에게도 즐거움

강원 선수들은 김 감독과 생활을 즐겁다고 말한다. A매치만 41경기 출전에, 월드컵에도 출전했던 베테랑 미드필더 한국영이 "축구를 신선하게 배우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표현할 정도. 노련한 공격수 정조국도 "결과까지 가져오니 팀이 얻는 자신감, 선수 개개인이 얻는 자신감도 크다고 생각한다"며 김 감독에 대한 절대적 신뢰를 말한다.

이렇게 쌓이는 신뢰는 달라지는 경기력과 결과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것이 더 큰 자신감으로 커진다. 정조국은 "분위기를 탔다고들 한다. 이런 상황이 오기까지 선수들, 코칭스태프가 정말 많은 노력을 했다"며 "결과까지 가져오니 팀이 얻는 자신감, 선수 개개인이 얻는 자신감도 크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팬들 역시 이른바 '병수 볼'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강원이 K리그에서 가장 강한 팀이라서가 아니다. 하지만 강원은 K리그에서 가장 뚜렷한 스타일을 가진 팀 가운데 하나다. 다양한 축구를 즐기고 싶고, 서로 다른 축구가 경쟁을 펼치는 것은 축구 팬들이 경기를 보는 또 하나의 즐거움. 강원과 김 감독이 K리그에 새로운 활력소가 될 수 있는 이유다.

스포티비뉴스=유현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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