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뜨거운 전주성.
▲ 김신욱 결승 골.
[스포티비뉴스=전주, 유현태 기자] 지난 24일 오후 6시께 '전주성' 전주월드컵경기장은 시끄러운 응원 소리로 가득찼다. 안방에서 경기하는 전북 현대 팬들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원정 팀' 우라와 레즈의 팬들이다. 붉은 색 유니폼을 입고 전주성의 남쪽 응원석을 수많은 걸개로 가려버렸다. 이들은 전북 현대와 우라와 레즈가 격돌하는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 G조 4라운드를 보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날아왔다.

킥오프가 가까워오자 녹색 유니폼을 입은 전북 팬들도 반대편 관중석을 채우기 시작했다. 평소에도 응원 열기가 대단하지만, 유난히 절도 있는 북 소리와 큰 목소리가 느껴진다. 이미 킥오프 전부터 경기장은 들끓는다. 전북 관계자에게 묻자 우스개소리처럼 "2007년의 기억 때문"이라고 말한다. 

2007년 전북과 우라와는 당시 ACL 8강에서 만났다. 결과도 우라와가 웃었지만 더 큰 충격은 우라와 팬들이 줬다. 당시 우라와 팬들은 전주성 남쪽 관중석을 빨갛게 물들였다. 해외 원정 팬들의 열정이 충격으로 다가왔던 것. 이 관계자는 "우라와는 여러모로 참 잘하는 클럽"이라며 팬들의 열성에도 높은 평가를 내렸다. 

우라와는 지역 밀착을 성공적으로 이뤄내 일본에서도 가장 충성도 높은 팬 층을 보유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지난 시즌에도 경기당 35502명을 불러모아 J리그1에서 평균 관중 1위를 기록했다. 전북도 2018년 경기당 11907명으로 K리그1에서 최다 관중을 동원했다.

두 팀 모두 ACL에서 우승 경력을 갖춘 강호다. 전북은 2006년과 2016년 ACL 타이틀을 차지했다. 그리고 우라와는 전북을 따르듯 2007년과 2017년 ACL 정상에 오른 바 있다. 우라와의 ACL 2회 우승 기록은 J리그 팀 가운데 최고 기록이다. 전북은 K리그 6회, FA컵 3회 우승을 차지했고, 우라와 역시 J리그 1회, 일왕배 3회 우승을 포함해 늘 상위권을 유지한다.

전북과 우라와는 성적에서도, 팬 문화에서도 이제 각 리그를 대표하는 팀이라 할 만하다. 말하자면 전북과 우라와의 경기는 K리그와 J리그의 '꾼'들이 모인 경기였다. 피치 밖에서부터 전북 팬들이 밀리지 않으려고 했던 이유도 우라와에 대한 경계심의 발로였을 것이다.

▲ 여기는 사이타마스타디움2002가 아닌데.

이런 팬들이 있는데 전북 선수들의 의지 역시 강할 수 밖에 없다. 풀타임 활약한 임선영은 "상대가 우라와다. 우라와 팬들도 많이 와서 녹색 옷 입으신 분들이 더 많았던 것 같다"면서 "경기장에 나설 때마다 소름이 돋는다. 감사하고 영광"이라며 팬들의 목소리가 주는 힘을 설명한다.

전북은 초반부터 강력하게 상대를 밀어붙였다. 전반전 비록 득점은 하나 뿐이었지만 전북은 무려 16개의 슛을 쏟아냈다. 그동안 우라와에는 단 2개 슈팅만 내줬다. 지난 시즌까지 전북의 트레이드마크였던 '닥공(닥치고 공격)'의 연속이었다. 김신욱의 머리도 적극적으로 활용했지만, 모라이스 감독의 색을 살려 리턴패스, 원터치 패스를 적극 활용하며 다채롭게 공격을 쏟아냈다. 전반 12분엔 로페즈가 전방 압박으로 공을 끊어낸 뒤 역습해 골을 뽑았다. 후반 3분엔 로페즈의 크로스를 김신욱이 높은 타점을 살린 헤딩으로 마무리했다. 전북다운 승리였다.

아시아 무대를 오랫동안 누비며 싸운 경험을 십분 살린 결과다. 결승 골의 주인공 김신욱은 "이번 경기는 지난 시즌하고 비슷한, 선 굵은 축구를 했다. 아시아 팀들에 잘 먹혔고 우승도 했다. 그렇게 운영을 많이 했다. 감독님은 수비적으로 많이 잡아주셨다"고 말한다. 2017시즌 당시 심판 매수 스캔들로 출전권을 박탈당한 것을 제외하고, 2010시즌부터 10년간 ACL에 꾸준히 출전하며 쌓은 경험과 노하우의 힘이다.

선수들도 큰 경기에서 투지는 불태우지만 침착해진다. 임선영은 "확실히 경험이 있고 없고는 차이가 있다. 여유가 생기긴 했다. ACL에선 큰 대회에선 긴장감 놓지 않고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어  "(경기를 앞두고) 따로 이야기한 건 없다. 감독님하고 미팅을 많이 했다. 홈이니까 조금 더 강하게 해서 승리하자고 말했다. 서로 말을 하지 않아도 '우리는 전북'이라 이겨야 한다는 승리 DNA가 있다. 자기가 알아서 스스로 마음가짐을 다지고 나서서 팀이 강해지는 것 같다. 각자 알아서 한다"면서 전북의 강한 정신력을 설명한다.

전북은 ACL에서 이기는 법을 알고 있다. 우라와 역시 경험이 많은 팀이지만 전북의 힘은 그보다 더 강했다. 이번 시즌 대구FC와 경남FC가 ACL에 첫 출전했다. 모두 가능성은 보였지만 현재 3위로 16강 진출이 1차 목표다. 반면 전북은 승점 1점만 추가하면 16강 진출을 확정한다. 역시 능숙하게 아시아 클럽대항전을 치르고 있다. 울산 현대 역시 2승 2무로 조 선두를 달린다는 점을 고려하면 경험의 힘을 체감할 수 있다.

▲ 전북 승리의 오오렐레

최강희 감독의 장기집권이 막을 내리고 전북은 새로운 시기를 맞았다. 지난 3월 13일 부리람 유나이티드와 치른 ACL 원정 경기에서 0-1로 시즌 첫 패배를 기록했다. 뒤이어 열린 17일 K리그1 3라운드에서 강원FC에도 0-1로 패배했다. 전북이 '예전 같지 않다'는 말이 나왔지만 이제 안정을 찾았다. 전북은 K리그1 순위표 가장 위에 이름을 올렸고, ACL에서도 우라와를 연파하고 조 선두를 달린다.

시즌 초반 김신욱도 "작년 분위기가 된 것 같다. 지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시즌 초반부터 그런 분위기가 잡혔어야 하는데 이제서야 좀 나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전북은 올해도 능숙하게 우승 컵을 향해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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