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9년 호주 오픈 남자 단식에서 우승한 노박 조코비치. 그는 이 대회 7회 우승 기록을 세우며 역대 남자 단식 최다 우승자가 됐다. ⓒ Gettyimages
▲ 2019년 호주 오픈 남자 단식에서 우승한 노박 조코비치(오른쪽)와 준우승한 라파엘 나달 ⓒ Gettyimages

[스포티비뉴스=조영준 기자] "제 컨디션이 100%였다해도 오늘 같은 노박(조코비치)을 이기는 것은 힘들었을 것입니다"

'흙신' 라파엘 나달(33, 스페인, 세계 랭킹 2위)은 깨끗하게 자신의 패배를 인정했다. 또한 승자의 품격을 살려주며 자신이 아닌 상대방이 최고임을 쿨하게 말했다.

세계 최고의 자리에 있는 선수가 이런 발언을 하기는 쉽지 않다. 나달은 '황제' 로저 페더러(38, 스위스, 세계 랭킹 3위)와 '무결점' 노박 조코비치(32, 세르비아, 세계 랭킹 1위)와 '테니스 올 타임 넘버원'을 다투고 있다.

그는 누구도 넘지 못할 것 같았던 페더러의 장벽을 넘었다.

나달과 페더러가 맞붙는 경기는 '클래식 매치'라 부른다. 클래식 매치에서 나달은 23번 이겼고 15번 졌다. 그는 페더러를 상대로 상대 전적에서 우위를 보였고 클레이코트에서는 테니스 역사상 자신이 최고임을 수차례 증명했다.

나달은 클레이코트에서 열리는 유일한 그랜드슬램 대회인 롤랑가로스 프랑스 오픈에서 무려 11번이나 정상에 올랐다. 그러나 조코비치와 상대 전적에서는 25승 28패로 근소하게 뒤져있다.

2010년 전까지만 해도 나달은 조코비치를 상대로 우위에 있었다. 그러나 2011년 이후 상황은 변했다. 조코비치와 나달은 2011년 윔블던과 US오픈 결승전에서 만났다. 두 경기의 승자는 모두 조코비치였다.

▲ 남자 테니스 역대 그랜드슬램 최다 우승자인 로저 페더러(20회)와 라파엘 나달(17회) 노박 조코비치(15회) 피트 샘프라스(14회) ⓒ ATP 홈페이지 캡쳐

이듬해 1월 열린 호주 오픈에서 이들은 3연속 '파이널 매치'를 펼쳤다. 이 경기는 무려 6시간 가까이 진행됐다. 두 선수는 모두 보는 사람들이 안쓰러울 정도로 젖먹은 힘까지 발휘했다.

결국 조코비치가 기나긴 승부 끝에 최종 승자가 됐다. 역대 그랜드슬램 대회 결승 최장 시간을 기록한 이 경기는 테니스 역사에 길이 남을 명승부로 남았다.

2011년 조코비치는 페더러와 나달이 지배한 테니스 시대를 허물었다. 조코비치는 2015년과 2016년에는 최고의 전성기를 보냈다. 그는 2015년부터 이듬해까지 커리어 그랜드슬램( 4개 그랜드슬램 대회 : 호주 오픈 롤랑가로스 프랑스오픈 윔블던 US오픈에서 모두 우승)을 달성했다. 조코비치는 2016년 마지노선으로 불린 롤랑가로스에서 정상에 등극했다.

최고의 자리에 오른 그에게 '시련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었다. 조코비치는 2017년 단 한 개의 그랜드슬램 타이틀도 거머쥐지 못했다. 그는 테니스 선수에게는 치명적인 팔꿈치 부상으로 고생했다. 다시는 전성기 기량을 회복하기 어려울 거라는 전망도 나왔다.

지난해 호주 오픈 16강전에서 조코비치는 정현(23, 한국체대, 세계 랭킹 25위)에게 0-3으로 무릎을 꿇었다. 그러나 1년이 지난 뒤 그는 전성기를 뛰어넘는 기량을 펼치며 우승 컵을 거머쥐었다.

▲ 멜버른파크에서 조코비치의 우승을 축하하는 세르비아 국민과 테니스 팬들 ⓒ Gettyimages

조코비치는 27일 호주 멜버른에서 열린 호주 오픈 결승전에서 나달을 3-0(6-3 6-2 6-3)으로 완파했다.

이 경기에서 조코비치는 서브 에이스 8개를 꽂아 넣었다. 그는 남자 테니스를 대표하는 강 서버는 아니지만 절묘한 자리에 내리꽂는 서브 정확도는 일품이다. 서브 에이스 8개를 기록하는 동안 더블 폴트는 하나도 나오지 않았고 첫 서브 성공률은 72%였다.

특히 첫 서브가 들어갔을 때 득점을 올리는 확률은 무려 80%를 기록했다. 네트 플레이에서도 나달을 압도한 그는 네트 포인트 득점 확률이 89%를 기록했다.

누구를 만나도 밀리지 않는 그라운드 스트로크 능력과 상대 코트 구석구석에 꽂히는 정교한 공격은 예술에 가까웠다. 서브와 공격, 수비 등 어떤 점에서도 헛점을 찾아볼 수 없었던 조코비치의 경기력은 '무결점'으로 요약된다.

나달의 장점 가운데 하나는 빠른 움직임으로 상대의 강한 공격을 받아낸다는 점이다. 그러나 예측할 수 없는 곳에 떨어지는 조코비치의 공격에 그는 혀를 내둘렀다. 경기를 마친 나달은 "모든 공을 받아낼 수 있다면 방법을 찾았을 것이다. 그러나 조코비치를 압박할 수 없었다"며 아쉬워했다.

나달의 지도자인 카를로스 모야(스페인) 코치는 "조코비치는 놀라운 수준의 테니스를 했다. 믿을 수 없을 정도"라며 상대의 경기력에 감탄했다. 그는 "조코비치는 누구를 만나도 이길 수 있었을 것"이라며 칭찬했다.

나달은 "상대가 모든 것을 잘하면 (패배에 대해) 불평할 수 없다"고 말했다.

▲ 멜버른 파크 로드 레이버 아레나에 모은 관중들의 갈채에 답례하는 노박 조코비치 ⓒ Gettyimages

조코비치는 호주 오픈 남자 단식 역대 최다인 7회 우승을 달성했다. 통산 15개의 그랜드슬램 대회 타이틀을 거머쥔 그는 페더러(20회)와 나달(17회)의 뒤를 이었다.

테니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세 명의 선수는 동시대에 활약하고 있다. 이번 호주 오픈에서는 스테파노스 치치파스(21, 그리스)가 돌풍을 일으키며 세대교체를 예고했지만 여전히 '빅3'의 장벽은 매우 높다.

특히 조코비치는 2015년과 2016년 보여준 최고의 기량이 물이 오른 상태다. 조코비치는 지난해 호주 오픈 16강에서 떨어졌을 때 1년 뒤 우승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는지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그는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생각했다"며 "거만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나는 항상 나 자신을 믿는다. 이것이 내 성공의 비결"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SPOTV 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