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응원해준 팬들에게 감사 인사하는 '태극전사' ⓒ곽혜미 기자
▲ 만원 관중이 나와야 가능한 '카드섹션' ⓒ곽혜미 기자
[스포티비뉴스=서울월드컵경기장, 유현태 기자] 한국 축구가 호시절을 맞았다. 물론 따뜻한 애정을 되찾은 지금 더 잘해야 '봄날'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서울월드컵경기장에 가려면 지하철을 타고 간다. 보통 2호선을 타고 합정역에서 6호선으로 환승한다. 공교롭게도 회사 역시 서울월드컵경기장 근처라 자주 지나는 길이다. 합정역은 아주 익숙하다. 12일 저녁 6시 50분께 합정역은 평소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붐볐다. 2호선에서 6호선으로 갈아타는 환승 통로는 사람들이 가득 차서 움직이기도 어려웠다.

대다수가 한국 축구 대표팀을 보기 위한 사람들이었다.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지는 우루과이와 친선 경기를 보려는 것. 나는 일을 하러 가야하니 서둘러야 한다. 

어쩔 수 없다. 지하철 환승을 하려다가 버스를 타러 역을 나섰다.  버스에도 사람이 꽉 찼다. 거리를 찾아보니 2.5km 정도가 된다. 부지런히 걸으면 경기 시작 30분 정도 전에는 도착할 수 있을 것 같다. '걷기'로 한다. 더구나 회사 선배들이 먼저 가있으니 우선 부지런히 움직여보기로 한다. 합정역에서 봤던 733번 버스가 마포구청역까지 2개 역을 이동할 때까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길이 막힌다는 뜻이다.

왜 이리 길이 막힐까. A매치 때문인 것은 알지만 사실 오랫동안 겪어보지 못한 현상이다. 경기장 근처야 붐빈다지만 거리가 꽤 떨어진 합정역부터 이렇게 붐빈 기억이 좀처럼 나질 않는다. 경기에 찾은 관중 수를 보니 이해가 간다. 우루과이전을 찾은 관중은 64170명이다. 입장권은 매진된 상태로 사실상 '만원 관중'이다. 지난해 3월 치렀던 시리아와 러시아 월드컵 최종 예선 당시 관중은 30352명에 불과했다. 2016년 11월 우즈베키스탄전에서도 30526명이었다.

합정역부터 걷는 사람도 나 혼자가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 누군가는 서울시가 운영하는 자전거 '따릉이'를 빌려 타고 움직인다. 자세히 보니 한국 대표팀 유니폼을 비롯해 토트넘, FC서울 등 축구 유니폼을 입은 이들이 보인다. 모두 축구 팬이다. 그들의 얼굴에는 기대감이 읽힌다. 독일을 이기고,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고, 칠레와 비긴 한국 축구를 향한 기대감이다.

예전의 대표팀이 그랬다. 유럽 축구가 지금처럼 흔해지기 전 A매치는 축구 팬들이 기다리는 중요 이벤트였다. A매치 날 경기장 근처는 잔칫날처럼 들썩였다. 한국 대표팀을 간절하게 응원하곤 했다. 하지만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실패와 2018년 러시아 월드컵 준비 과정에서의 졸전들로 팬들의 마음은 짜게 식었다.

▲ 경기 시작 몇 시간 전부터 서울월드컵경기장 근처는 북적였다.

한국 축구를 떠났던 팬들의 마음이 돌아온 듯하다. 선수들이 간절하게 뛰었고 멋진 경기를 했다. 'FIFA 랭킹 5위' 우루과이를 2-1로 잡으면서 결과도 잡았다. 

선수들도 지금의 좋은 분위기를 잇는 것이 중요하다고 인식하고 있다. '주장' 손흥민은 "팬분들이 모든 선수들 때문에 경기를 보려 와주신다. 너무나도 감사하다. 따로 특별히 해줄 수 있는게 없고 경기장에서 승리하는 것밖엔 없다"며 "감사라는 말로도 부족하다.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고 강조했다.

관중은 수적으로도 증가했지만, 대표팀을 바라보는 시선이 더 애틋해졌다. 선수들의 움직임 하나에 함께 환호하고 탄식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경기장 분위기는 환상적이었다. 장현수는 "내 축구 인생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을 만큼 멋진 경기였다"고 설명했다.

물론 아직도 할일이 많다. 앞으로도 혼신의 힘을 다하는 경기를 해야 하고, 또 좋은 경기력을 내야 한다. 앞으로도 발전을 위해 힘을 내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조금 더 나아간다면 대표팀의 젖줄인 K리그 역시 더 많은 팬들을 유치해야 한다. 카드 섹션으로 남측 관중석을 'K리그 로고'로 채웠지만 알아보는 이들이 얼마나 있었을까. 그렇지만 대표팀과 K리그의 인기에 상관 관계가 없다고 속상해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K리그 선수들도 대표팀에서 뛴다. 대표팀을 향한 관심이 높아지면 자연스레 스타들도 생기기 마련이다. 당장 K리그가 '벼락 인기'를 누리긴 쉽지 않지만 대표팀의 인기는 분명 호재가 될 것이다. 물론 지금의 긍정적 분위기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활용할가는 고민으로 남을 것이다.

이제 '봄'이 다시 왔다고 표현해도 괜찮을까. 당장 모든 것이 좋아질 순 없다. 그렇지만 지금 분위기를 잇는다면 분명 한국 축구에도 봄은 올 것이라 믿는다. 쌀쌀한 10월 서울월드컵경기장의 분위기는 5월의 봄날처럼 뜨끈했다.
저작권자 © SPOTV 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