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OC 총회를 앞두고 문을 연 서울 올림픽 전시관은 많은 인기를 끌었다. ⓒ대한체육회 90년사

[스포티비뉴스=신명철 기자] 정부의 제4차 올림픽 유치 대책 회의 결정에 따라 김동휘 외무부 차관을 수장으로 국무총리실 행정 조정관, 외무부 정보문화국장, 문교부 체육국장 그리고 문화공보부, 서울시, KOC 관계자들이 후속 대책 회의를 열고 관계 부처 과장급으로 실무 지원반을 운영하기로 했다. 또한 효율적인 업무 추진을 위해 외무부는 유치 활동을 총괄하고 문교부는 실무 대책반 운영에 필요한 인력 지원을, 문화공보부는 대외 홍보물 제작과 배포를 책임지는 등 정부의 업무 분담도 정리됐다.

정부가 올림픽 유치를 위해 총력 체제를 가동하면서 이규호 문교부 장관은 문교부, 외무부, KOC로부터 보고 받은 그동안의 활동 정보를 종합해 노태우 정무장관과 전두환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이규호 장관으로부터 올림픽 유치 전망이 한층 밝아졌으며 남은 기간 총력을 기울이면 승산이 있을 것이라는 보고를 받은 전두환 대통령은 무슨 일이 있어도 올림픽을 유치해야 한다는 단호한 뜻을 밝히고 노태우 정무장관을 총사령탑으로 만전을 기하라고 지시했다.

전두환 대통령의 특명을 받은 노태우 장관은 1981년 9월 4일 올림픽 유치를 위한 비상 대책 회의를 소집하고 이규호 문교부 장관, 노신영 외무부 장관, 박영수 서울시장, 전상진 KOC 부위원장 등 관계자들에게 범 국민적인 유치 활동을 펼치라고 지시해 막바지 유치 활동은 탄력을 받았다.

노태우 정무장관이 유치 활동의 사령탑을 맡으면서 유치 활동은 활기를 띠었고 정부의 올림픽 유치 대책반은 즉시 바덴바덴 IOC 총회 현장에서 활동할 유치단 구성에 착수했다. 바덴바덴 총회를 불과 3주일 앞두고 구성된 대표단은 체육계와 재계의 유력 인사들을 주축으로 107명으로 짜여졌다. 당시 정치적 사정으로 대외 활동을 할 수 없었던 박종규 전 KOC 위원장도 정부의 특별 배려로 막판 유치단에 합류해 빼놓을 수 없는 올림픽 유치의 주인공이 된다.

6명의 공식 대표는 박영수 서울시장, 조상호 KOC 위원장, 정주영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이원경 KOC 상임 고문, 유창순 무역협회장, 이원홍 한국방송공사 사장으로 이들 가운데 정주영 회장이 유치위원장을 맡아 현장에서 진두지휘했으며 국무총리실 이선기 행조실장과 이연택 제1 행정조정관이 정부 측 실무 지원단 책임을 맡았다.

올림픽 유치단이 총회 장소인 서독 바덴바덴으로 출발하기에 앞서 실무 대책반이 최종 점검한 IOC 위원들의 성향은 예상 투표자 82명 가운데 한국 지지 26명, 호의적 고려 6명, 중립 34명, 반대 16명으로 분석돼 그 시점까지 분명한 의사 표명을 유보한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의 위원들을 집중 공략하면 승산이 있을 것이라는 다소 아전인수격인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 객관적인 여론은 나고야의 확실한 우세였지만 현지에서 막판 활동 여하에 따라 상황이 뒤바뀔 수도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버리지 않았다.

한국은 그동안 펼쳐 온 활동을 토대로 나고야 공략 대책을 수립한 결과 첫째 서울시의 경기장 시설이 도상(圖上)에 머물고 있는 나고야보다 훨씬 우수하고, 둘째 남북 분단으로 선수단 안전에 문제가 있다는 우려에 대해서는 올림픽 개최로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한편 동서 냉전의 시대도 마감할 수 있으며, 셋째 한국과 같은 개발도상국가가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러 올림픽 운동 확산에 기여할 수 있으며 마지막으로 서울과는 달리 나고야는 많은 시민들이 올림픽 유치를 반대하고 있다는 사실 등을 부각시킨다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뒤늦게 발동을 건 유치단은 1981년 9월 18일 대한항공편으로 김포국제공항을 출발해 파리를 경유해 현지 숙소 사정으로 서독 프랑크푸르트에서 1박한 후 20일 바덴바덴에 입성했다. 출발에 앞서 김포국제공항 귀빈실에 모인 유치 대표단의 표정은 유치 가능성보다는 절망적인 분위기로 매우 어두웠고 박종규 전 KOC 위원장의 동행도 뒤늦게 알려졌다.

IOC 총회 개막을 열흘 앞둔 1981년 9월 20일 현지에 도착한 유치단은 서울에 대한 냉담한 반응과 IOC 수뇌부를 비롯한 국제 스포츠계 인사들의 부정적인 태도에 절망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각계각층 인사들로 짜여진 유치단 내 불협화음도 만만치 않았다. 현지 분위기로 미뤄볼 때 만약 올림픽 유치에 실패할 경우 뒤따를 책임 문제를 비롯해 복잡한 내부 사정으로 불안해 했으나 특유의 친화력과 리더십을 갖춘 정주영 위원장의 지도력으로 불협화음은 사라지고 각자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자세를 보였다.

그러나 이 같은 절망적인 분위기는 9월 22일 오전 바덴바덴의 옛 철도역 자리에 설치된 올림픽 유치 신청 도시들의 전시관이 문을 열면서 확연히 바뀌고 있었다. 서울과 나고야, 겨울철 올림픽을 신청한 캐나다의 캘거리, 스웨덴의 팔룬, 이탈리아의 코르티나담페초 등 5개 전시관이 일제히 문을 열어 관람객을 맞이한 결과 서울관이 큰 인기를 끌었다.

전시관을 찾는 사람은 IOC 위원을 필두로 국제 스포츠계 인사들과 현지 주민들 그리고 관광객들이 주류를 이뤘는데 이들의 입에서 전시관에 대한 평가가 내려진 것이다. 전시관 넓이는 30여 평에 불과했지만 서울 올림픽 주 경기장의 모형도를 중심으로 한국의 전통 문화와 한국 전쟁 이후 눈부신 발전상이 패널과 입체적 영상물로 조화를 이뤄 눈길을 끌면서 서울이 뉴욕이나 도쿄에 비해 손색없는 현대적 도시라는 사실을 입증했다.

뿐만 아니라 5명의 대한항공 여승무원과 3명의 미스코리아 출신 미인들이 화사한 한복 차림으로 미소를 띠며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로 전시관 안내를 맡아 ‘미인계’를 썼다는 구설수까지 오르내리며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또한 1936년 일장기를 가슴에 달고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한 손기정과 분데스리가에서 활약하고 있는 세계적인 축구 스타 차범근이 전시관에서 안내를 겸해 사인을 해 주자 서독 현지인들로부터 최고의 인기를 끌었다.

조그마한 휴양 도시 바덴바덴 곳곳에는 전시관에서 나눠 준 태극 문양의 부채를 비롯한 기념품들이 자주 눈에 띄었고 개관 당일에는 사마란치 IOC 위원장을 비롯해 30여 명의 IOC 위원들이 다녀가는 등 연인원 1만여 명이 몰려들어 대성황을 이뤘다.

반면에 올림픽 유치를 부동의 사실로 여기고 있던 나고야의 전시관은 지극히 단조로운 사진 전시에다 일본항공 여승무원들이 근무 유니폼을 입고 평범한 안내를 맡아 서울과는 비교가 되지 못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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