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흥민(오른쪽)이 위대한 조력자로 기억될 수 있을까. ⓒ연합뉴스
[스포티비뉴스=자카르타(인도네시아), 유현태 기자] "손흥민의 득점이 하나 뿐이다. 경기력에 대해서 평가해달라." 베트남과 4강전을 치른 뒤 한 외신 기자가 손흥민의 이번 대회 기록을 언급하며 질문을 던졌다. 이 질문엔 '손흥민이 부진하다'는 뉘앙스가 느껴졌다. 손흥민은 이번 대회 4번의 선발 출전,1번의 교체 출전에서 1골을 기록하고 있을 뿐이다.

"득점이 중요한 게 아니다. 정신적 지주고 팀을 이끄는 선수다." 김학범 감독의 대답. 공격수라고 하더라도 골이 전부는 아니라는 것이다.

손흥민의 아시안게임 출전 여부는 최종 명단 발표 전부터 초미의 관심사였다. 국제축구연맹(FIFA)가 지정한 대회가 아니라 토트넘 구단에서 차출에 응할 의무가 없었다. 하지만 손흥민으로선 금메달을 따게 될 경우 따르는 '예술체육요원'으로 군 복무를 대체하는 혜택에 욕심이 났을 상황. 손흥민은 구단을 설득했다. 대한축구협회에서도 A매치 참가 횟수를 조정하고 아시안컵 차출 시점을 조정하면서 도왔다.

가장 크게 기대한 바는 역시 득점. 프리미어리그에 2015-16시즌 진출한 이래 정확히 100경기에서 30골을 넣었다. 측면 공격수로서 득점력을 입증한 선수다. 아시안게임에서도 물오른 득점 감각을 과시할 것으로 보였다. 아무래도 아시안게임엔 한 수 아래 상대들이 많지 않은가.

그런 손흥민은 조별 리그 3차전 키르기스스탄전에서 골을 터뜨린 뒤 3경기에서 침묵하고 있다. 키르기스스탄전에서도 따지고 보면 코너킥을 연결했으니 필드 골은 하나도 없다.

하지만 이미 손흥민은 득점 이상의 몫을 하고 있다. 자신이 승리의 주역이 되지 않아도 괜찮다. 수비에 가담하고 욕심없이 패스를 내준다. 비판 여론에 힘들어하는 후배를 위해 페널티킥을 양보하기도 한다. 피치 밖을 벗어나면 '형님'이자 '선배'로서 선수들을 다독이고 때론 채찍질한다. 팔에 감긴 주장 완장은 허울이 아니다.

녹아웃스테이지에 진출하고 나서 만난 첫 상대는 이란. 조별 리그에서 경기력이 부진해 부담이 될 수도 있는 상황. 손흥민은 풀타임을 뛰면서 온힘을 쏟았다. 근육 경련이 두 번이나 일어났다. 손흥민은 경기를 마친 뒤 근육 경련이 나고도 뛴 이유를 질문 받자 "나보다 어린 선수들이 너무 열심히 해줘서 정말 고맙다. 열심히 했다기보다는 팀을 위해 당연히 해야할 일이다. 아직까지 부족하다"고 말했다. 자신의 고생만큼 함께 뛰는 동료들을 생각한 발언이었다.

이번 대회에선 득점만큼 알토란 같은 도움도 연결하고 있다. 손흥민은 벌써 도움을 3개 기록했다. 고비였던 우즈베키스탄전에서만 2도움을 올렸고, 베트남과 경기에서도 황의조의 결승 골이 손흥민의 발에서 시작됐다. 손흥민은 우즈베키스탄전을 마치고 "(황의조가) 계속 득점하면서 리듬을 타고 있어서 내가 수비에 힘을 보태줄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주고 있다. 황의조에게 부담을 주기 싫어하지만 스스로 잘해내서 여기까지 오게 됐다"고 말했다.

피치에서 뿜는 존재감도 여전하다. 손흥민을 모르는 선수들은 없다. 당연히 집중 견제를 하게 되고 여기서 다른 선수들이 움직일 공간이 난다. 손흥민은 베트남전을 마친 뒤 "나 말고 골을 넣을 수 있는 선수가 많다. 뒤로 내려오면서 베트남 선수들이 나를 견제하고, 다른 선수들에게 공간을 열어준 게 도움이 된 것 같다. 내가 그런 점을 영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플레이를 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어차피 목표는 금메달. 팀의 승리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손흥민의 득점이 멈췄지만 팀은 순항하고 있다. 손흥민은 "어느 포지션에서 뛰든 상관 없다"며 자신의 임무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제 마지막 한 경기가 남았다. 다음 달 1일 인도네시아 보고르 파칸사리스타디움에서 열리는 결승전에서 일본을 꺾는다면 김학범호는 금메달을 목에 건다. 손흥민이 위대한 '조력자'로 역사에 이름을 남길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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