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1년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 여자 단체전에서 우승한 ‘코리아’ 선수들(위) 같은 해 포르투갈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FIFA(국제축구연맹)) U 20 월드컵 전신] 8강에 오른 ‘코리아’ 선수들. 남북은 1945년 분단 이후 처음으로 단일팀을 꾸려 두 대회에 나섰고 기대 이상의 성과를 올렸다. ⓒ대한체육회

[스포티비뉴스=신명철 기자] 남북 단일팀으로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아경기대회(8월 18일~9월 2일)에 출전할 북한 선수들이 베이징을 경유해 29일 인천국제공항으로 들어왔다.

이날 한국에 온 북한 선수단은 34명이다. 여자 농구 선수 4명과 카누 선수 18명, 조정 선수 8명 그리고 지원 인력 4명이다. 

북한 선수들은 곧바로 숙소인 충북 충주의 한 연수원으로 이동했다. 여자 농구 선수들은 한국 국가 대표 선수 훈련장인 진천선수촌에 들어갈 계획이었지만 선수 관리 등의 이유로 카누 조정 선수들과 함께 연수원에서 생활하기로 했다. 

카누와 조정 선수들이 30일부터 훈련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북한 여자 농구 선수들은 대만에서 열리고 있는 윌리엄 존스컵 국제 대회에 참가하고 있는 한국 선수들이 귀국한 뒤인 다음 달 1일부터 단일팀으로 손발을 맞출 것으로 보인다. 

통일 독일로 나선 1992년 바르셀로나 여름철 대회(알베르빌 겨울철 대회) 이전, 1956년 멜버른 여름철 대회(코르티나 담페초 겨울철 대회)부터 1964년 도쿄 여름철 대회(인스부르크 겨울철 대회)까지 이뤄진 동·서독 올림픽 단일팀처럼 전체 종목에서 단일팀이 꾸려진 것은 아니지만 아시안게임에서는 처음으로 구성된 남북 단일팀이기에 자카르타-팔렘방 대회는 한국 스포츠사에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됐다. 

남북의 경기력 차가 본격적으로 벌어지기 시작한 1980년대 이전, 아시안게임은 남북 체제 경쟁의 대리 무대로 남북 선수들은 강한 압박감 속에 치열한 싸움을 해야 했다. 

이제부터 약 3주간 펼쳐질 단일팀 합동 훈련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의사소통이다. 글쓴이는 남북 스포츠 교류 현장에서 의사소통 문제로 몇 차례 당황했던 적이 있다.

1990년 베이징 아시아경기대회 기간 있었던 어느 종목 남북 관계자 회식에서 좋았던 분위기가 갑자기 가라앉은 일이 있었다. 대동강 잉어 회에 룡성 맥주가 몇 잔씩 돌면서 분위기가 고조되자 한국 선수들과 임원들이 먼저 한국 유행가를 불렀고 북한 선수들과 임원들이 이에 답하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1절이 끝나갈 무렵 한국 임원 한 명이 선수들을 이끌고 회식 장소를 떠나 버렸다. 이렇다 저렇다 설명도 없이. 이 모임을 주선한 조총련계 재일 동포 경기인 H 아무개 씨와 뒷날 이 종목 단체 서기장(한국으로 치면 종목 단체 전무이사)이 되는 P 아무개 그리고 국제 대회에서 낯을 익힌 L 아무개 선수에게 무엇인가 오해가 있었던 모양이라고 설명한 뒤 자리를 뜨지 않은 글쓴이를 비롯한 몇몇 사람이 자리를 마무리했다.

▲ 지난 2월 열린 평창 동계 올림픽에 출전한 여자 아이스하키 ‘코리아’ 선수들. 2010년대 후반 새롭게 펼쳐지는 남북 관계에서 스포츠가 다시 한번 더 앞장서는 계기가 됐다. ⓒ한희재 기자

다음 날, 선수들을 이끌고 나간 임원에게 자리를 뜬 까닭을 물으니 “그 노래가 혁명 가요인 것 같아서”라고 답했다. ‘혁명 가요가 아니고 혁명 가요 같아서’였다. 노랫말에 대한 이해 부족 또는 오해였을 수 있다.

1945년 제국주의 일본의 무조건 항복에 이어 한반도에 접근해 있던 미군과 소련군이 북위 38도를 경계로 각각 남쪽과 남쪽에 주둔하면서 시작된 남북 분단은 반세기를 넘어 80년 세월을 향해 가는 동안 남북한 양쪽에 큰 간격을 만들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의사소통의 기본인 언어다. 글은 크게 바뀌지 않을 수 있으나 말은 생물과 같이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에 서로 뜻이 통하지 않을 수 있고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도 있다. 

북한 사람과 만났을 때 가장 먼저 당황하게 되는 말 가운데 하나가 “일 없습네다”이다. 1987년 뉴델리에서 열린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때 한국 여성 임원이 정성껏 만든 김밥을 북한 선수단에 주려하자 대뜸 나온 말이기도 하다. 이 말은 북한어 특유의 억양도 그렇고 기분 나쁘게 들릴 수 있는데 이 상황에서 실제 뜻은 “고맙습니다만 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괜찮습니다” 정도의 말로 겸양의 뜻이 담겨 있다. 

그렇다면 경기 현장에서는 어떤 말이 오갈까. 앞에 있는 회식 자리에서 북한의 P 아무개 선수는 술이 채 두어 순배가 돌기도 전에 얼굴이 빨개졌다. “P 선수, 술이 약해요. 얼굴이 금세 빨개지네.” “내레 수분 조절을 세게 해서리. 대회 마치고 나면 술이 금방 취합네다.”

‘수분 조절이 뭐지’라며 나름대로 머리글 쓰면 해석하고 있는데 옆자리에 앉은, 이 종목의 국제통인 K 아무개 교수가 “체중 조절이요”라고 귀띔했다. 

베이징 아시아경기대회가 끝나고 두어 달 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프르에서 만난 북한의 세계적인 수비 전형 탁구 선수 리근상은 글쓴이와 얘기하는 내내 ‘제10차 대회’라고 했다. 한국의 유남규 현정화와 북한의 리근상 김성희 등이 출전한 이 대회는 제10회 아시아탁구선수권대회였다. 북한에서는 제*회를 제*차라고 한다. 

그리고 대화하는 동안 선수단 내 어느 선수가 ‘지도원’과 사이가 좋지 않다고도 했다. 국내 스포츠 팬들도 잘 알고 있듯이 북한 스포츠에서 지도원은 감독 또는 코치다. 은퇴를 앞둔 북한 선수들에게 앞으로 무엇을 할 거냐고 물으면 십중팔구 “지도원 되는 공부를 하갔시요”라고 한다. 

종목 이름에서 마라톤은 마라손 또는 별칭으로 ‘백공오리’라고 하는데 이는 오리의 종류가 아니고 마라톤 풀코스인 42.195km가 대략 105리이고 이를 북한식 숫자 읽기로 한 것이다. 유술은 유도를 뜻한다. 

북한이 바꿔 놓은 우리말 스포츠 용어 가운데 상당수는 억지스러워 보인다. 그러나 북한에서 우리말로 바꿔 놓은 스포츠 용어 가운데 한국이 쓰는 경우도 있다. 리바운드를 뜻하는 튄공이 대표적이다. 복싱 용어인 잽을 톡톡치기로 바꿔 놓은 건 재치가 느껴진다. 

평양 인근과 금강산에서 매우 제한된 인원만 하는 것으로 알려진 골프 관련 용어도 북한은 우리말로 바꿔 놓았는데 아이언을 쇠채, 우드를 나무채라고 한다. 이 말은 쓰다 보면 자연스럽게 느껴질 것 같다. 

그러나 그린을 안착지(安着地)로 바꿔 놓은 건 왠지 부자연스럽다. 더구나 한자어다. 북한도 우리말로 바꾸기가 어려운 스포츠 용어는 그대로 쓴다. 골프의 버디 보기 등이다. 

스포츠 용어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남북의 언어 이질화 문제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분단이 오래 지속되면 인종적으로 북한인 또는 남한인이 될지도 모른다는 얘기처럼 언젠가는 양쪽에서 쓰는 말을 통역해야 뜻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걱정하는 이들도 있다. 과장된 얘기일 수도 있지만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지난 2월 평창 겨울철 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에 이어 자카르타 아시안게임 단일팀 그리고 앞으로 이어질 종목별 남북 합동 훈련과 단일팀 구성 등 스포츠 교류가 남북의 이질감 해소 과정에 앞장서게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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