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3년 대구에서 열린 제22회 하계 유니버시아드 개회식 전경. ⓒ대한체육회

[스포티비뉴스=신명철 기자] 2003년 8월 21일부터 31일까지 대구에서 열린 제22회 대회는 경기 결과를 살펴보기 전에 먼저 몇 가지 상기해 볼 만한 일들이 있다. 제22회 대회의 대구 유치가 결정된 1995년 국제대학스포츠연맹(FISU) 총회 이후 발생한 일련의 사태들이다.

먼저 대회 준비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무렵인 1997년 12월 터진 ‘IMF 사태’가 있다. 경기장과 각종 시설의 증·개축을 맡았던 기업체들이 잇따라 부도를 내며 쓰러졌고 대회 운영에 직간접으로 관련된 수백 개 용역 회사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체불 임금을 견디다 못해 하나둘씩 문을 닫아야 했다.

경기장을 하나도 새로 짓지 않고 기존의 시설들을 개·보수해 사용한다는 초긴축 정책으로 겨우 대회 준비를 마무리해 갈 무렵인 2003년 2월 대구 시내 한복판 지하철역에서 참사가 발생해 대구 시민은 물론 온 국민을 충격에 빠뜨렸다. 비슷한 시기에 발생한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의 확산도 세계 대학생들의 스포츠 축제를 반 년도 남겨 놓지 않은 대구시에는 악재가 아닐 수 없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대회 개막 직전에는 북한 선수단이 “남한의 보수 단체들이 8∙15 행사 때 김정일 장군을 모독해 대회에 참가할 수 없다”고 선언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우여곡절 끝에 막을 올린 대구 대회에는 174개국에서 1만1,215명의 선수단이 참가해 사상 최대 규모가 됐다. 15년 전 서울 올림픽에 동서 양 진영의 대부분 국가들이 참가한 것과 비견될 만한 일이었다.

▲ 2003년 대구에서 열린 제22회 하계 유니버시아드 기간 화제를 모았던 북한 응원단. ⓒ대한체육회

15~16개의 금메달로 종합 2위에 오른다는 목표를 세운 한국은 그 배에 가까운 26개의 금메달을 따고도 3위에 그쳤다. 러시아와 금메달 숫자는 같았지만 은메달이 11개, 동메달이 15개로 러시아(은 22 동 34)에 비해 훨씬 적었다. 1위는 중국(금 41 은 27 동 13)이 차지했고 197명의 선수단에 응원단 306명 등 530명으로 구성된 북한은 전 경기 무실점이라는 수준급 경기력을 과시하며 딴 여자 축구 금메달을 포함해 금메달 3개와 은메달 7개, 동메달 3개로 9위에 랭크됐다.

한국이 획득한 26개의 금메달 분포를 보면 태권도가 남녀 16개 체급 가운데 10개를 석권해 톡톡히 효자 노릇을 했고 양궁은 6개 가운데 5개, 유도는 7개 중 4개의 금메달을 거둬들였다. 개최국의 선택 종목으로 부여된 3개 종목에서 전체 금메달의 70%가 넘는 19개의 금메달을 차지했다.

양태영은 체조 개인 종합과 단체전, 링, 평행봉 등 4개 종목을 휩쓰는 뛰어난 실력을 자랑해 한국 선수단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활약을 펼쳤다.

경기 외적으로 관심을 끈 것은 북한 선수단의 일거수일투족이었다. 8월 17일 입국할 예정이었던 북한 선수단이 8∙15 행사를 이유로 불참을 시사했을 때 상당수 외국 언론이 철수 방침을 세웠다는 사실이 북한 선수단의 ‘상품성’을 잘 설명한다.

북한 선수단이 가는 곳에는 언제나 삼엄한 경계가 펼쳐졌고 일반인이 접촉하는 것을 차단해 시비가 생기기 일쑤였다. 그런 와중에 8월 24일 북한 기자단이 북한 체제를 비판하는 보수 단체 회원들과 충돌하는 사태가 발생해 전극만 북한 선수단장이 남은 경기를 보이콧하고 철수하겠다는 성명서를 발표하자 이창동 문화관광부 장관이 유감을 표명했다.

제23회 대회는 2005년 8월 11일부터 21일까지 터키 이즈미르에서 열렸다. 2년 전인 2003년 대구 대회에서 종합 순위 3위의 사상 최고 성적을 올렸던 한국은 이 대회에 선수 148명과 임원 50명 등 198명의 대규모 선수단을 파견해 금메달 15개 내외로 5위 진입을 노렸지만 결과는 이에 미치지 못했다.

금메달 4개와 은메달 3개, 동메달 1개의 강세를 보인 양궁을 제외하곤 12개 나머지 종목에서 대부분 기대 이하의 부진을 보여 금메달 11개와 은메달 14개, 동메달 8개로 종합 순위 7위에 머물렀다.

한국 선수단 가운데 양궁 다음으로 선전한 종목은 여자 펜싱이었다. 이 종목에는 세계 상위 랭커들이 대다수 출전해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대회에 못지않은 경기 수준을 보인 가운데 금메달 1개와 은메달 2개를 따는 선전을 펼쳤다. 플뢰레의 이혜선이 결승전에서 세계 랭킹 1위 마게리타 그람바시(이탈리아)를 꺾어 금메달의 주인공이 됐고 선수층이 얇은 사브르에 출전한 김금화는 준결승전에서 세계 랭킹 5위 엘라나 네카에바(러시아)를 누르고 결승에 올라 세계 랭킹 12위 소피아 벨리카야(러시아)에게 패하기는 했지만 금메달에 못지않은 은메달이라는 평가를 받았고 단체전에서 예상 밖의 은메달을 추가했다.

주요 국가들이 대표 1진급을 파견해 특별히 강세를 보인 나라 없이 치열한 메달 레이스를 벌여 상위 8개국이 금메달 10개 이상을 획득한 가운데 러시아가 금메달 25개와 은메달 16개, 동메달 23개로 1위에 올랐고 중국(금 21 은 16 동 12)과 일본(금 18 은 16 동 20)이 각각 2, 3위에 랭크됐다. 건국 이후 처음으로 국제 종합 경기 대회를 개최한 터키는 금메달 10개와 은메달 11개, 동메달 6개로 한국에 이어 8위를 차지했고 북한(금 5 은 6 동 13)은 24위를 기록했다.

제24회 대회는 2007년 8월 8일부터 18일까지 방콕에서 150개국 1만 1,000여 명의 대학생 스포츠맨들이 참가한 가운데 펼쳐졌다. 선수 221명과 임원 66명 등 해 287명의 선수단이 15개 전 종목에 참가한 한국은 금메달 15개와 은메달 18개, 동메달 18개로 중국(금 32 은 29 동 26), 러시아(금 28 은 27 동 37), 우크라이나(금 28 은 20 동 18), 일본(금 19 은 15 동 22)에 이어 종합 순위 5위를 차지했다.

전통의 강세 종목인 태권도와 유도 이외에 수영, 육상, 펜싱, 사격, 배드민턴 등으로 금메달 종목이 다변화됐다는 점에서 특히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활약을 보인 선수가 수영의 정슬기였다. 당시 연세대 2년생이던 정슬기는 평영 여자 200m에서 2분24초67의 대회 신기록으로 우승해 1995년 후쿠오카 대회에서 남자 배영 200m의 지상준이 금메달을 딴 이후 12년 만에 수영 금메달을 한국 선수단에 선사했다. 정슬기는 자신의 주 종목이 아닌 50m와 100m에서는 메달은 따지 못했지만 4차례나 한국 신기록을 경신해 221명의 한국 선수 가운데 가장 돋보였다.

육상에서는 남자 세단뛰기 간판스타 김덕현이 17m02를 뛰어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남자 경보 20km에 출전한 박칠성은 1시간24분42초로 중국의 추야메이에게 5초 뒤져 은메달을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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