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신수가 마이너리거 시절이던 2004년 2월 스프링캠프 참가를 앞두고 찍은 기념사진.
[스포티비뉴스=고봉준 기자, 이충훈 영상 기자] 2000년 8월 캐나다 에드먼턴에서 열린 제19회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에서 한국은 역대 3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어렵사리 올라간 결승에서 미국을 9-7로 꺾고 정상을 차지했다.

이 대회 MVP는 7경기를 모두 나와 18이닝 동안 12안타 32삼신 5실점으로 호투한 좌완투수에게 돌아갔다. 부산고 3학년 추신수였다.

또래들 사이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친 추신수는 이 대회를 발판삼아 꿈을 실현했다. 시애틀 매리너스와 총액 135만 달러 계약을 맺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러나 ‘꿈의 무대’에서의 삶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2001년부터 수년간 1000달러 안팎의 적은 월급만을 받으면서 생활해야 했기 때문이다. 메이저리그 장벽은 너무나 높았고, 좀처럼 살림살이가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그랬던 추신수에게 마침내 밝은 희망의 빛이 보였다. 2005년 4월 22일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와 홈경기를 통해 메이저리그 데뷔전을 치렀다. 9회 대타로 나와 1루수 땅볼로 물러났지만, 추신수로선 5년의 기다림을 끝내는 귀중한 순간이었다.

이듬해 7월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로 트레이드된 추신수는 조금씩 날개를 펼치기 시작했다. 2008년 94경기에서 타율 0.309를 기록하며 가능성을 보였고, 2009년부터 주전 외야수로 자리 잡았다.

2009년과 2010년, 2013년 20홈런-20도루 클럽을 연달아 가입한 추신수는 2013년 12월 텍사스 레인저스와 7년 1억3000만 달러라는 대규모 FA 계약을 맺었다. 역대 코리안 빅리거 최고액이었고, 당시 기준으로도 메이저리그 역사상 27번째로 많은 액수가 담긴 계약서였다.

추신수가 2014년 텍사스 유니폼을 입고 처음 받은 연봉은 1400만 달러였다. 처음 풀타임 주전으로 뛰었던 2009년 연봉이 42만3000달러였다는 점을 감안할 때, 비교가 되지 않는 고액이었다.

물론 메이저리그 정상의 자리로 올라선 추신수는 한때 자신의 처지와 비슷한 후배들의 삶을 외면하지 않았다. 지난해 코로나19로 마이너리그 상황이 어려워지자 구단 산하 190명의 마이너리거들에게 1인당 1000달러씩을 기부했다. 추신수는 “나는 지금도 마이너리그 시절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식비를 아끼며 아들 기저귀를 사야 했던 시기를 떠올린다”고 기부 배경을 말했다.

▲ 2012년 클리블랜드 시절의 추신수(오른쪽 2번째).
이처럼 남달랐던 행보만큼이나 추신수가 남긴 기록도 위대했다. 메이저리그 통산 성적은 1652경기 타율 0.275 218홈런 1671안타 782타점 961득점. 역대 아시아 출신 야수 중 최다홈런과 최다타점 기록도 보유자가 바로 추신수이기도 하다.

1982년생으로 이제는 황혼의 시기로 접어든 추신수는 23일 전격 한국행을 발표했다. SK 와이번스의 새 운영 주체인 신세계그룹과 계약을 맺고 KBO리그로 데뷔하기로 했다.

눈물 젖은 빵을 먹던 마이너리거에서 한 해 수백억 원의 고액 연봉을 받는 스타플레이어로, 또 후배들에게 온정을 나누는 베테랑으로서 20년의 세월을 보낸 추신수. 늦깍이 신인 KBO리거가 된 추신수는 “야구 인생의 끝이 어디까지일지는 모르겠지만, 팬분들께 그라운드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겠다는 약속은 꼭 드리고 싶다. 설레는 마음으로 한국으로 돌아가겠다”고 소감을 말했다.

스포티비뉴스=고봉준 기자, 이충훈 영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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