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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PBA 출범 2년 만에 위기…적신호 켜진 韓 당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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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현 기자, 정형근 기자
기사승인 2021.01.0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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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칭 '국내 당구 프로리그' PBA(프로당구협회)가 한국 당구에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

프로화가 시급한 과제라는 명분을 내걸고 출범한 PBA는 심각한 내분에 휩싸였다. 경기인을 중심으로 한 통상적인 경기단체와 달리 오직 사업을 위한 마케팅 도구로 리그가 출범됐고, 각자 이해관계가 엇갈리기 시작하자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PBA는 지난달 중순 마케팅 대행 계약을 체결한 '브라보앤뉴'와 계약 해지를 결정했다. 임직원 부당 해고와 선수 상금 지체 입금, 허위사실 유포 등을 이유로 브라보앤뉴 측에 계약 해지 공문을 발송했다. 브라보앤뉴는 PBA의 귀책사유가 사실관계에 모두 어긋난다며 법정 다툼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통성 논란도 불거졌다. 당구인이 아닌 사업가가 주도해 만든 프로 단체를 '진짜 프로'로 인정할 수 있느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당구계 목소리가 구조적으로 배제된 채 이뤄진 프로화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스포티비뉴스는 KBF(대한당구연맹)와 PBA 임직원은 물론 선수와 마케팅회사 직원을 다각도로 인터뷰하면서 사분오열 위기에 몰린 한국당구 문제점을 짚어봤다.

① PBA 출범 2년 만에 위기…“브라보앤뉴 계약 해지” vs "38억 부채"

2019년 1월 출범한 PBA는 국내 유일의 프로 당구 단체를 표방했다. 스포츠마케팅 전문회사 '브라보앤뉴'의 이희진·장상진 대표는 PBA 설립을 주도했다.

PBA의 실질적 운영 주체는 브라보앤뉴였다. 브라보앤뉴는 PBA 마케팅 대행사로서 스폰서십과 중계권 판매 등 실무를 맡아 자금 조달을 책임졌다.

브라보앤뉴 임원들은 PBA의 요직을 꿰찼다. 장상진 대표는 PBA 부총재, 김영진 브라보앤뉴 전 상무는 PBA 사무총장에 올랐다. 김영수 총재는 이희진·장상진 대표가 추대한 인물이다. 브라보앤뉴 선수 매니저는 PBA 홍보 업무까지 진행했다.

그런데 최근 두 달 새 브라보앤뉴 이희진, 장상진 대표가 ‘뉴(NEW)’의 오너와 갈등을 빚고 퇴사했다. 영화 투자 배급사인 NEW는 브라보앤뉴의 모회사다.

퇴사 후 장 전 대표는 PBA 부총재로서 이사회 및 임시총회를 개최했고 이 자리에서 브라보앤뉴와 '계약 해지' 방침을 세웠다.

PBA는 지난해 12월 17일 계약 해지 가능성을 담은 공문을 브라보앤뉴에 통보했다. 귀책 사유는 크게 3가지를 꼽았다. 브라보앤뉴가 당구 관련 업무를 맡은 직원을 퇴사시키고 선수 상금의 지체 입금, 하도급 대행업체의 대금 미납 등으로 PBA 명예를 실추시켰다고 주장했다.

▲ 한 당구 커뮤니티에 올라온 브라보앤뉴와 계약해지 공지. PBA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해당 내용을 찾을 수 없다. PBA 측은 "일부 PBA 선수들에게만 공지한 부분이다. 내용과 해석이 맞다"고 밝혔다.
▲ 지난해 12월 21일 브라보앤뉴가 발표한 입장문
그러나 NEW는 정면으로 반박했다. NEW 관계자는 "브라보앤뉴를 퇴사하기 전부터 장상진, 이희진 전 대표가 신규법인을 설립하려 했다. 당사의 자원을 별도 법인을 준비하는 발판으로 활용한 정황을 확인했고 그래서 사임한 것"이라면서 "(자기 회사를 따로 차려) PBA와 연계된 사업을 진행하려는 움직임도 포착했다"고 밝혔다.

"브라보앤뉴는 PBA와 독점적인 마케팅업무 대행 계약을 맺고 있다. 만약 PBA가 새로운 회사와 일을 하려 한다면 (계약상) 당연히 브라보앤뉴와 사전 '합의'를 통해야만 가능하다"고 재차 강조했다

PBA 업무 담당자들을 해고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조직개편 일환으로 효율적인 업무 시스템 구축을 위한 조치가 있었을 뿐 부당 해고는 없었으며, 오히려 적극적인 퇴사 만류에도 두 전직 임원이 설립한 회사로 자리를 옮기기 위해 사직한 경우가 다수라고 덧붙였다.

NEW의 김우택 회장은 “PBA는 불법적인 계약 해지를 위해 허위사실을 유포하기 전에 (설립 초기임에도) 38억 이상의 부채를 안고 있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면서 "브라보앤뉴는 PBA 발전을 위해 자금 대여 및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당사는 PBA 선수 297명을 대신해 대한당구연맹과 (아마추어 자격) 복권 및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진행 중이다. 소송 비용을 감당하는 주체 역시 PBA가 아닌 브라보앤뉴”라고 말했다.

장 전 대표가 브라보앤뉴를 떠난 시점부터 PBA를 둘러싼 갈등은 예고된 일이었다는 게 당구계 안팎의 시선이다. 현재도 PBA 부총재를 맡고 있는 장 전 대표는 실제 퇴사 후 브라보앤뉴 핵심 인력을 데리고 새로운 회사를 만들었고, 이 새 회사가 PBA 마케팅 대행 업무를 맡게 될 것이 유력하다.

PBA 측에선 독자적으로 마케팅 업무를 수행할 것이라 말하지만 현재 PBA 이사회는 장상진, 이희진 전 대표 계열이 장악하고 있다. PBA가 두 사람 입김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을 거라는 게 당구계 중론이다.

② 기업 홍보만 초점, 사업 도구로 전락한 PBA…“프로 명칭 쓴다고 모두 프로인가”

PBA는 스스로를 '프로당구협회'라고 정의했다. 그러나 그간 행보를 보면 PBA는 특정 회사의 이익 극대화를 위해 만든 자회사 성격이 짙다. 장상진, 이희진 대표가 몸담은 법인을 지배회사로 두는 모양새를 강하게 띄고 있는 것이다.

PBA 주요 임원이 회사를 차리고, 자신의 회사에 PBA 마케팅 대행을 주는 기형적인 구조가 ‘프로당구협회’라 불리는 조직에서 이뤄지고 있다.

류석 브라보앤뉴 총괄대표는 "PBA 설립 당시 우려가 컸지만 그래도 한국 당구계를 위해서 잘됐으면 하는 바람이 모두에게 있었다. (성공하면) 시장 파이가 커지는 일이니까. 그런데 전직 대표라는 분들이 저렇게 (브라보앤뉴를) 나가서 PBA를 개인사업화 시켜버리면 (당구계가) 어떻게 생각하겠나. 그간 PBA에 투자한 회사들은 또 어떻겠는가. 브라보앤뉴 모회사인 NEW만 PBA에 약 230억 원을 투자했다. 우리는 법적으로 해결하고 돈만 받으면 사실 (PBA에) 별 미련 없다. PBA를 해야 하긴 하지만 다른 곳도 당구이기 때문에 PBA만 고집하지 않고 넓게 생각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15년 이상 당구계에 종사한 관계자는 “마케팅 대행사가 만든 PBA는 돈벌이 수단에 불과하다. 선수들은 마케팅 수단으로 이용당하고 있을 뿐”이라며 “KBF 선수들은 PBA에서 뛰는 선수를 ‘프로’로 인정하지 않는다. 프로 이름 달고 만든 단체라고 모두가 프로인가. 어제 KBF에서 뛰던 선수가 오늘 PBA에서 뛰면 하루아침에 프로가 된다. PBA는 프로라는 명칭만 쓰고 있을 뿐"이라고 꼬집었다.

③ 당구인 아닌 '업자'가 주도…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다

당구인이 아닌 '사업가'가 주도해 만든 프로 단체라 시작부터 꼬였다는 지적도 있다.

PBA 창립을 기획한 발기인 명단을 입수한 결과 당구인으로 꼽히는 사람은 김치빌리어드 김종율 대표, 큐스포츠 방기송 대표, 임정환 선수협회장 셋뿐이었다. 나머지 6인은 스포츠마케팅과 매니지먼트, 중계권 사업 등에서 경력을 쌓은 인물들이었다.

당구인으로 분류된 3명조차도 장상진, 이희진 전 대표와 관련된 사람이란 비판이 나온다. 당구계 목소리가 구조적으로 배제된 채 프로화가 이뤄진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당구계 인사는 "기본적으로 프로화는 모든 스포츠가 바라는 일이다. 시장 볼륨을 키우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라면서도 "다만 전제가 있다. 기존 문화를 존중하고 발전시키는 형태의 프로화여야 한다. 그래야 넓은 공감대를 확보하면서 탄탄하게 종목 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고 밝혔다.

"반면 PBA는 이미 다 판을 짜놓고 외부 단체에 합류 여부를 문의한 경우였다. 기존 당구계를 완전히 무시하고 프로화를 강행한 케이스"라고 비판했다.

당구를 공공재 성격으로 이해하는 대한당구연맹 등 기존 단체와 트러블은 예견된 일이었다. PBA가 이익 추구에 몰두한 나머지 당구계를 아우르는 노력에는 소홀했다는 분석이다.

해당 인사는 "PBA는 업체 선정부터 비딩(경매)을 거치지 않고 모두 특정 회사의 이해관계자, 관련자들하고만 계약을 맺었다. 이 지점에서 PBA를 바라보는 외부의 신뢰가 크게 손상됐다. 아무리 포장해도 그들만의 '독과점' 시장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를 지닌 것이다. 그들에게 당구는 수익 창출 도구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④ 이전투구 치닫는 PBA, 해법은 없나

프로화를 놓고 한국 당구계가 이전투구 양상에 휩싸이면서 당구인들은 해법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세계 캐롬 시장의 80%를 차지하는 한국당구 잠재성을 온전히 발현하기 위해서라도 '이대로 가면 안에서부터 무너진다'는 위기의식을 공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브라보앤뉴 고위 관계자는 제2의 프로 단체 출범을 언급했다. PBA 헤게모니 싸움에 집중하는 대신 또 하나의 프로 리그를 창설해 당구계 영향력을 강화하겠다는 포석이다.

해당 관계자는 "PBA와 대한당구연맹, 세계캐롬당구연맹(UMB)을 아우르는 새로운 '리그' 출범을 구상하고 있다. PBA만 프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양한 통로를 열어두고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당구계는 브라보앤뉴의 구상에 우려 섞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양 측이 진통이 예상되는 상생안 협상을 외면하고 미봉책으로 수습하려 한다는 시선이다. 이견차를 못 좁히고 각자 입장을 고집한 결과 한 종목에 2개 프로 단체가 양립하는 촌극이 빚어질 수 있음을 우려하는 것이다.

이 탓에 애꿎은 선수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 선수들은 PBA와 브라보앤뉴, 양 측으로부터 압박을 받는 처지에 놓였다.

팀리그 운영권을 쥔 PBA는 출전 기회 박탈을 거론하며 브라보앤뉴와 계약 해지를 종용하고 있다. 브라보앤뉴는 계약 불이행 시 페널티를 언급하고 있다. 검증된 기량과 높은 인지도를 지닌 상위 랭커는 그나마 낫다. 관계자들 전언에 따르면 중하위권 선수가 받는 심리적 압박이 훨씬 더 크다. 선택에 따라 일터가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당구를 후원하는 스폰서 기업도 PBA와 브라보앤뉴 간 주도권 마찰에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다. 각 기업이 코로나19 여파로 허리띠를 졸라매는 상황에서 난맥상에 빠진 당구계에 심각한 우려를 보내고 있다.

PBA의 한 고위 관계자는 "풍부한 인프라와 시장성에 비해 아직은 펀더멘털이 취약한 당구 시장에서 대회 하나가 없어지거나 한두 개 (팀리그) 구단만 해체해도 회복 불능의 나락으로 빠질 수 있다. 스폰서 기업이 줄줄이 후원을 포기하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할 수 있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당구인들은 종목의 최대 프로퍼티(자산)인 선수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서라도 PBA를 둘러싼 갈등 해결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한 당구계 인사는 "대한당구연맹은 아마추어, PBA는 프로를 맡는 구조를 적극 고민해야 할 필요가 있다"면서 "그러려면 PBA가 외부와 원만한 관계 정립을 시도해야 한다. 모든 스포츠의 젖줄은 아마추어임을 자각하고 기존 제도권 역할을 인정해야 (당구계 전체가) 살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PBA가 프로와 아마추어 모두가 출전하는 교류전을 개최하거나 유소년·지방 대회 유치, 유소년 육성 기금 출연 등으로 대한당구연맹과 보폭을 맞추는 상생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약 20년 전 한국 당구는 프로화를 추진하다 좌초된 경험이 있다. 집단 이익을 우선한 결과 당구계 전체가 오랜 침체 늪에 빠진 기억을 모두가 인지하고 있다.

단체 간 갈등이 지속된다면 선수는 물론 선의의 투자자까지 피해를 입을 수 있다. 이는 '프로화 좌초 시즌2'로 가는 지름길이다. 집단 논리에 우선한 편 가르기보다 통합과 상생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할 이유다.

스포티비뉴스=정형근, 박대현 기자
제보> jhg@spotv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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