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딩 시절 설기현

(편집자 주) 스포티비뉴스는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축구계 인사들를 소환해 A대표팀 경기를 중심으로 현역 시절을 회상하고 무용담(?)도 나누는 '나의 A-스토리'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아파치' 김태영(천안시 축구단 감독)을 시작으로 '조헤아' 조현우(울산 현대) 골키퍼, '진돗개' 허정무(대전 하나시티즌 이사장), '황새' 황선홍(대전 하나시티즌 감독), '세오' 서정원(전 수원 삼성 감독), '왼발의 달인' 하석주(아주대 감독), '용대사르' 김용대(라커룸 코리아 대표)까지 만났습니다. 연재를 거듭하면서 A를 구성하는 다양한 인물을 만나달라는 독자 분들의 이메일, 댓글 등이 생각 이상으로 쏟아졌습니다. 이에 부응하기 위해 그 폭을 넓히려 애쓰겠습니다. , 현직 선수는 물론 이들의 뒷이야기를 가슴에 품고 있는 주변인까지 두루두루 만나 전달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안더레흐트 시절 챔피언스리그에 나선 설기현

미지의 땅 벨기에? 설기현에겐 기회의 땅!

[스포티비뉴스=신문로, 박주성 기자 이성필 기자] 스물한 살의 어린 설기현(41)은 벨기에가 어디에 있는 나라고, 어떤 언어를 사용하는지도 모른 채 벨기에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유럽이라는 것만 알았지 프랑스어와 네덜란드어가 혼용되고 작은 나라라는 것은 전혀 몰랐다. 

대한축구협회는 2002 한일월드컵을 앞두고 A대표팀의 전력 향상을 위해 직접 유망주들의 해외 진출을 추진했다. 그 1호가 바로 '설바우두' 설기현이다. 전설의 브라질 공격수 '히바우두'에 빗대 '설바우두'라 불린 설기현은 이름도 생소한 벨기에 주필러리그의 로얄 앤트워프 유니폼을 입고 프로로 데뷔했다.

미지의 동양인 설기현은 처음부터 눈에 띄는 재능이었다. 2000-01시즌 27경기에서 11골을 넣으며 팀 구성원 모두를 놀라게 했다. 차범근(67)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유럽 리그에서 활약하는 한국인의 두 자릿수 득점이었다. 이런 활약은 설기현을 벨기에 명문팀인 안더레흐트로 이끌었다. 축구 선수 설기현은 안더레흐트에서 자신의 이름을 확실하게 알렸다. 한국인 최초로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UCL)에 뛴 선수가 됐다. 벨기에 슈퍼컵에서는 해트트릭도 기록했다.

최근 축구를 접한 팬들은 설기현의 이런 활약을 잘 알지 못한다. 경남FC 감독이라는 것 외에는 그저 예능프로그램에 한일월드컵 동료 안정환(44)의 호출로 출연했던 사람으로만 기억한다.

잦은 폭우가 내리던 8월 중순, 사회적 거리 두기 단계가 2.5단계로 격상되기 전 서울 광화문 신문로의 한 카페에서 방역에 신경 쓰며 안전하게 만난 설 감독은 멋쩍은 웃음으로 이를 인정했다.

"그만큼 시간이 많이 흐른 거죠. 그때는 지금처럼 언론(=방송 중계)이 발달이 하지 않아 실시간으로 (유럽) 경기를 본다거나 끝나고 본다는 그런 게 없었어요. 또, 사람들이 지금처럼 축구에 관심이 많지 않았죠. 그래서 '유럽에 갔었지' 정도로 알고 있는 분들이 많아요. 지금은 한국 선수들 경기는 다 중계하잖아요? 그때는 경기 끝나면 기자가 새벽에 전화했어요. '이겼나, 골 넣었냐'라고 물었어요. 골을 넣으면 전화 인터뷰를 하기도 했죠.”

벨기에는 기회의 땅이었다. 유럽 축구에서는 네덜란드, 포르투갈과 더불어 인재 배출로 빅리그 구단들의 관심을 받는다. 이곳에서 설기현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PL)로 진출할 힘과 능력을 키웠다. 결국 앤트워프에서 안더레흐트로 이적했고 이후 잉글랜드 챔피언십(2부 리그) 울버햄턴 원더러스를 거쳐 PL 레딩, 풀럼FC까지 한 걸음, 한 걸음 높은 무대를 향해 전진했다.

"예전에는 유럽이라고 말하면 다 잘하는 줄 알았죠. 제가 봐도 주필러리그에는 잘하는 팀도 있고, 그렇지 못한 팀도 많아요. 그런데 벨기에 리그는 조금만 잘하면 다른 팀으로 갈 수 있어요. 네덜란드, 독일 이런 곳으로 가죠. 빅클럽에 갈 재목이 된다면 네덜란드에서도 빅3로 꼽히는 아약스, PSV 에인트호번, 페예노르트 같은 팀에 가요. 독일 중하위권으로 가는 것보다 이런 팀들로 가는 게 낫죠. 거긴 챔피언스리그나 유로파리그에 나가기 때문이죠. 잘하면 바로 빅리그 빅클럽에 갈 수도 있고요. 그래서 벨기에 리그 수준이 (유럽 5대 리그와 비교해) 엄청 높을 수는 없어요. 잘하는 선수들이 바로바로 팔려나가니까요.”

하지만, 설 감독은 유망주들의 무조건적인 해외 진출을 경계한다. 그는 어느 정도 수준이 있는 선수들이 가야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과 많은 것들이 달라 그렇다.

“해외로 나가는 친구들이 많은데 잘 안 되는 경우도 많아요. 제가 봤을 때는 수준이 있는 친구들이 가야 해요. 저도 잘될 수 있었던 게 청소년 월드컵 등에서 뛰면서 외국 선수들을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어요. 거기서 적응했죠. 언어도 다르고, 시설도 다르고, 잔디도 정말 달라요. 축구하기가 쉽지 않죠. 그래도 1~2년만 잘하면 바로 좋은 팀에 갈 수 있습니다. 하위 리그에 거쳐 가면 높은 단계에서 어려움을 겪어도 버틸 힘이 생깁니다. 벨기에, 네덜란드가 발판으로 높은 곳으로 가기에는 좋은 곳이에요.”

▲ 이승우 ⓒ신트트라위던

기량 뛰어난 이승우, 기술만 갖고 살아남을 수 없다


20년 전 설기현이 벨기에 땅을 밟았던 것처럼 2019년 이승우가 신트 트라위던 유니폼을 입고 벨기에에 진출했다. FC바르셀로나 유소년팀에 입단하며 많은 관심을 받았던 이승우는 1군 데뷔에 실패하고 이탈리아 세리에A 엘라스 베로나로 이적했다. 이탈리아에서도 이승우는 많은 것을 보여주고 싶었지만, 자신의 재능을 꽃피우지 못했다.

절치부심하던 이승우가 선택한 곳이 바로 벨기에였다. 첫 시즌 이승우는 출전 부족으로 웃지 못했다. 감독이 이승우를 마음대로 배치하는 등 궁합도 맞지 않았다. 다행스럽게도 새 시즌 초반은 나쁘지 않다. 호주 출신으로 아시아 선수의 특징을 잘 파악한 케빈 머스켓 감독의 중심 선수로 자리 잡고 있다. '벨기에 선배' 설 감독은 이승우에게 조언을 전했다.

“벨기에 리그가 비교적 쉬워 보여도 리그마다 스타일이 다릅니다. 이승우의 기량은 큰 문제가 없어요. 청소년 때 경기를 보면 정말 잘했죠. 기량은 뛰어난데 단지 그 리그에 얼마나 적응하는지가 문제에요. 축구를 거칠고, 단순하게 하고, 힘으로 하는 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적응력을 키워야 할 필요는 있어요."

그래서 이승우는 힘을 키우는 데 주력했다. 기술이야 기본기가 있으니 나쁠 것 없지만, 체격이 좋은 유럽 선수들을 상대하는 것은 분명 도전이기 때문이다.

"유럽은 피지컬을 많이 사용해요. 기술만 갖고는 살아남을 수 없어요. 그런 피지컬에 적응된다면 수준이 조금은 낮아 활약하기 좋은 리그에요. 이승우의 실력은 의심의 여지가 없어요. 리그 적응이 중요하죠.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거기서 조금만 잘하면 바로 안더레흐트나 네덜란드 빅3에서 바로 데려가려고 할 거예요. 그런 팀들은 거리가 가까워서 매주 경기를 보러 오니까요.”

▲ 잉글랜드로 진출한 설기현

벨기에를 떠나 축구 종가잉글랜드로 가다

한일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달성한 후 설기현은 자신감을 얻었다. 설기현의 달라진 모습이 화제일 정도였다. 설기현은 안더레흐트에서 눈부신 활약을 하며 주필러리그 스타가 됐다. 2002년에는 발롱도르 50인 후보에 뽑히기도 했다.

상승세를 이어간 설기현은 2014년 울버햄턴의 제안을 받았다. PL에 진출하고 싶었던 그는 벨기에로 갔던 것처럼 밑에 단계부터 차근차근 올라가기 위해 울버햄턴의 제안을 수락했다. 2006년에는 레딩으로 가며 꿈의 무대 PL에 진출했다.

"처음에는 힘들었습니다. 벨기에에선 피지컬로 문제가 없었는데 영국에선 저보다 작은 선수에게 몸싸움에서 밀렸어요. 힘이 완전히 달랐어요. 영국은 심판들도 보수적입니다. 공이 날아올 때 몸싸움을 하는데 서로 멱살을 잡아도 심판이 불지 않더라고요. 아무튼 챔피언십은 축구가 정말 단순했습니다. 정말 킥엔러시였다는 표현이 맞아요. 그래도 몇 개월 지나니까 적응이 됐습니다. 여기서는 힘 싸움을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잉글랜드를 중심으로 한 '영국' 축구는 과거 '뻥축구'로 유명했다. 축구 종가면서도 월드컵에만 나가면 죽을 썼다. 최근에야 PL의 경쟁력이 올라가고 지도자들도 다양하게 나오면서 대표팀의 경쟁력까지 올라갔지만.

“빨리 영국에 가고 싶었습니다. PL에 바로 가면 좋았겠지만 오라는 팀이 없었어요. 벨기에는 5년 정도 있었고 영국에 가고 싶었죠. 그때 울버햄턴에서 윙어를 찾다가 저를 불러줬습니다. 거기서 잘하면 PL로 가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가서 보니 아스톤빌라, 맨체스터, 리버풀 등 거리가 가까운 팀들이 참 많았어요. 제가 축구를 못 해서 그렇지 잘만 했다면 오라는 팀은 더 많았을 것 같아요.”

설기현의 전성기를 꼽으라면 단연 레딩 시절이다. 당시 설기현은 PL 선수 랭킹 11위까지 오르며 최고의 모습을 보여줬다. 2006년 8월에는 레딩 이달의 선수로 선정되기도 했다. 가장 유명한 골은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전에 나온 일명 ‘접기골’이다. 요시 베나윤을 앞에 두고 접고 또 접은 후 강력한 슈팅으로 슈퍼골을 만들었다. 골 세리머니도 접기였다. 설기현은 당시 골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접으면서 '이 공을 어떻게 처리하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앞에 수비가 갑자기 없어졌어요. 그리고 골문이 딱 보였습니다. 어설픈 슈팅으로 빼앗겼으면 역습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심플하게 슈팅을 했죠. 코너킥이나 아웃이 되는 게 좋은 선택이었습니다. 굉장히 잘 맞았다는 느낌을 받았고 그대로 골이 들어갔습니다. 그때 슈팅이 참 잘됐을 때였어요. 그런데 골 넣고 너무 뛰다 보니 체력적으로 부담이 됐었어요. 따라서 템포 조절을 했습니다. 앞으로는 너무 빨리 뛰면 안 된다고 생각하기도 했어요.”

▲ 설기현과 박지성(오른쪽)

▲ 손흥민

아시아 편견 깬 손흥민, ‘해버지는 나 말고 박지성!


PL에서 활약했던 설기현은 손흥민(28)의 활약을 보며 매일매일 놀라고 있다. 주연이 아니라 늘 조연이었던 아시아 선수가 PL 중심에서 그것도 주인공으로 뛰고 있어 그렇다. 손흥민이 나오기 전 아시아 선수는 늘 조연이었다. 박지성(39), 설기현이 그랬다. 하지만, 손흥민은 다르다. 토트넘의 공격을 책임지며 PL 최고의 스타로 활약하고 있다.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생각해요. 아시아 선수가 유럽에서 주연으로 뛰는 건 정말 특이한 사례입니다. 손흥민은 아시아 선수로서 특별한 플레이를 하는 것 같아요. 거의 결정을 짓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토트넘을 살리고 있죠. 정말 대단합니다. 분명한 건 대단한 플레이를 하고 있다는 거예요. 아시아 선수의 편견을 깨는 역할을 해내고 있죠. 축구를 하는 친구들에게는 '저렇게도 할 수 있구나' 하는 희망을 주고 있습니다. 이 친구가 어디까지 갈 수 올라갈 수 있을지는 본인도 모를 것 같습니다.”

자연스럽게 '영원한 캡틴' 박지성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설기현은 레딩에서 뛰며 박지성과 맞대결도 경험했다. 당시 세계적인 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8년이나 버틴 박지성은 해버지(해외 축구의 아버지)로 불리며 국내 축구 팬들에게 절대적인 영향력을 끼쳤다. 박지성과 손흥민이 비교되는 건 어쩌면 당연한 흐름이었다. 하지만 설기현은 누구 한 명을 선택하지 못했다.

“박지성과 손흥민 둘 다 특별한 것 같습니다. 스타일이 다르죠. 박지성, 손흥민 서로의 특징이 있습니다. 박지성이 맨유 같은 세계 최고의 팀에서 오랫동안 살아남은 건 기량도 기량이지만 기존 맨유 선수들이 갖고 있지 않은 장점을 가졌던 선수였기 때문이에요.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이를 잘 활용했죠. 두 선수의 스타일이 너무 상반됩니다. 그래서 누가 더 낫다 그런 것보다는 둘 다 PL에서 오래 기억될 것 같습니다.”

일찌감치 해외로 떠난 설기현이지만 ‘해버지’라는 단어에 대해서는 박지성이 어울린다며 확실하게 선을 그었다.

“저는 놀다가 온 거죠. 아버지라는 존칭은 일찍 나가서 오래 있었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유럽에서 어떤 활약을 했냐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런 건 박지성이 맞는 것 같아요. 제가 (박)지성이 같은 친구들 안에 들어가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만 23살이었던 설기현은 어떻게 큰 무대인 월드컵에서 당당하게 뛸 수 있었을까? 16강 이탈리아전 후반 43분, 극적인 동점골 장면에서 슈팅 후 어떤 생각을 했을까?

<편에 계속>

스포티비뉴스=신문로, 박주성 기자 이성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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