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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던을 보지 못한 세대라면 코비를 보라"

기사승인 2020.01.28 0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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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6년 미국프로농구(NBA)에 데뷔한 코비 브라이언트는 2016년 코트를 떠났다. 은퇴 4년 뒤인 2020년 1월. 우리 곁을 떠났다.
[스포티비뉴스=박대현 기자] "마이클 조던에 가장 근접한 선수였다. 역대 두 번째로 위대한 스코어링 가드" - 매직 존슨

"LA 레이커스 역사상 최고의 선수" - 샤킬 오닐

"플레이스타일부터 조던이 지닌 암살자 마인드까지. 조던과 가장 흡사한 이를 꼽으라면 단연 첫손에 꼽힐 선수다" - 스티브 커

"1대1 승부라면 나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 마이클 조던

"예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렇다. 코비는 내 우상이다. 그는 우리 세대 마이클 조던이다" - 케빈 듀란트 

'블랙 맘바' 코비 브라이언트(41)가 떠났다. 불의의 비행기 사고. 코비는 WNBA 선수를 꿈꿀 정도로 농구를 좋아하던 둘째 딸 지아나와 함께 마흔한 살 짧은 생을 마감했다. 불귀의 객이 됐다.

21년. 코비는 눈부신 업적을 쌓았다. 1996년 미국프로농구(NBA)에 데뷔한 그는 레이커스에서만 20시즌을 뛰었다. 요즘은 흔치 않은 원 클럽 맨으로 누구보다 화려한 선수생활을 보냈다.

1996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13순위로 호명된 코비는 이후 LA 레이커스 블라디 디박과 맞트레이드됐다.

당시 논란이 일었다. 검증받지 못한 고졸 가드를 주전 센터와 맞바꾼다며 수군댔다. 여러 전문가가 샬럿 손을 조심스레 들어 줬다.

당대 최고 센터 오닐 영입으로 디박 입지가 애매해진 걸 고려하더라도 농구 지능이 높고 경험이 풍부한 센터를 고졸 슈팅가드와 트레이드하는 건 위험하다는 평가가 많았다.

그러나 레이커스 수뇌부는 단호했다. 제리 웨스트 단장과 미치 컵책 부단장, 마이클 쿠퍼는 "코비는 걸물이 될 재목"이라며 트레이드를 밀어붙였다.

오히려 웨스트 단장은 "코비 같은 선수가 13순위까지 떨어진 걸 이해할 수 없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믿음은 결과로 돌아왔다.

역대 최고 슈팅가드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히는 코비지만 그 역시 출발은 벤치 멤버였다. 데뷔 첫 2시즌 동안 식스맨으로 뛰었다.

코비는 데뷔 첫해 71경기에 출전해 평균 7.6점 1.9리바운드 1.3어시스트를 거뒀다. 경기당 평균 15분 30초 코트를 밟았다.

숫자는 미미했다. 하나 임팩트는 강렬했다. 코비는 1997년 2월 클리블랜드에서 열린 루키 올스타 게임에서 31점을 챙겼다. 슬램 덩크 콘테스트에도 참가해 환상적인 레그 스루 덩크로 우승을 차지했다. 

마이클 핀리, 레이 앨런, 밥 수라를 제치고 슬램 덩크 왕좌에 올랐다. 전 세계에 코비 이름 두 글자를 심었다. 올스타전 이후 신드롬에 가까운 인기를 누렸다.

당시 NBA는 '넥스트 조던 찾기'에 혈안이었다. 앤퍼니 하더웨이, 그랜트 힐, 앨런 아이버슨, 제리 스택하우스 등 리그에 갓 데뷔한 전도 유망한 스윙맨 또는 가드는 한번씩 포스트 엠제이(Post MJ) 칭호를 달았다.

코비가 바통을 이었다. 수치로는 담지 못할 강렬한 데뷔로 단숨에 조던 계보를 잇는 핵심 선수로 올라섰다. 머리를 빡빡 깎은 19살 가드가 데뷔 1년 만에 리그 대표 아이콘으로 부상했다.

레이커스 델 해리스 감독은 코비를 배려했다. 어린 선수에게 너무 큰 부담을 지우면 안 된다며 출전 시간을 제한했다. 되레 성장을 저해할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코비는 첫 2시즌간 에디 존스 백업 슈팅가드로 뛰며 경험을 쌓았다. 감독 배려에 화답했다. 데뷔 2년째인 1997-1998시즌 평균 15.4점 3.1리바운드 2.5어시스트 0.94가로채기를 거뒀다.

성장세가 가팔랐다. 선발 출전은 1경기에 그쳤으나 79경기에 나서 20득점 이상 경기 13회, 30득점 이상 경기 2회를 챙겼다. 출전 시간 대비 공격력이 눈부셨다. 코비 기록을 48분 기준으로 환산하면 28.5점에 달했다.

주전 슈팅가드로 올라선 때는 데뷔 3년째. 직장 폐쇄로 50경기만 치러졌던 1998-1999시즌부터다.

그해 코비는 50경기 모두 선발 출전해 평균 19.9득점 5.3리바운드 3.8어시스트 1.4가로채기를 기록했다. 팀은 해리스 감독이 경질되고 빌 버트카, 커트 램비스가 대행으로 올라서 어수선했지만 코비의 선발 2번 자리는 요지부동이었다. 꼬박꼬박 코트를 밟았고 출전 시간을 늘려도 그에 부응하는 경기력을 보였다.

이듬해 데뷔 첫 평균 득점 20점대를 찍었다. 당당히 팀 주포로 올라섰다. 66경기에 출전해 평균 22.5점 6.3리바운드 4.9어시스트를 수확했다. 물 만난 고기였다. 펄펄 날았다.

이때 이미 미국 언론으로부터 "조던 플레이가 기억에서 희미해져 가는 게 안타까운 팬이라면 코비 움직임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는 호평을 얻었다.

"3점슛 빼고 모든 걸 다할 수 있는 선수다. 외곽 공격을 많이 시도하지 않는 점까지 조던을 빼닮았다"는 평까지 나왔다.

우승 반지는 4년 만에 끼웠다. '공룡 센터' 오닐과 원투펀치를 이뤄 정상을 밟았다.

레이커스는 1999-2000시즌 파이널에서 레지 밀러, 제일린 로즈, 릭 스미츠 등이 활약했던 인디애나 페이서스를 시리즈 스코어 4-2로 꺾고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코비는 이 해 플레이오프 22경기에 모두 나섰다. 평균 21.1점 4.5리바운드 4.4어시스트 1.5가로채기 1.5블록슛을 수확했다.

인디애나 감독이었던 래리 버드는 파이널이 끝난 뒤 "코비 나이가 의심스럽다. 이제 겨우 스물두 살인 선수가 주축으로 빼어난 성적을 거두면서 봄 농구 여정을 끝까지 마쳤다. 그저 놀라울 뿐"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 2000년대 초반 LA 레이커스에서 뛸 때 코비 브라이언트(왼쪽)와 샤킬 오닐은 앙숙이었다.
장밋빛만 그윽했던 건 아니다. 차기 시즌 코비는 농구 인생 첫 암초를 마주했다.

2000-2001시즌 코비는 더 많은 공격 기회와 볼 소유를 원했다. 그러나 여전히 팀 중심은 당대 최고 센터 오닐이었다. 자존심 강한 둘은 정규 시즌 내내 대립각을 세웠다. 라커룸에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악동' 데니스 로드맨을 다루는 데 성공하고 스코티 피펜-토니 쿠코치 기 싸움도 봉합했던 필 잭슨 감독이 둘 상생을 도모했지만 허사였다.

많은 전문가가 레이커스 2연패는 어렵다고 전망했다. 팀 전력이나 부상 등 코트 위 문제가 아닌 스타끼리 '힘겨루기'가 경기력을 갉아먹는다고 혹평했다.

또 아직은 오닐이 레이커스 중심을 맡아야 하며 코비 언행은 성급하고 위험한 '도발'이라고 비판했다. 대다수 언론이 오닐 손을 들어줬다.

코비는 그해 평균 28.5점 5.9리바운드 5.0어시스트를 거뒀다. MVP급 성적. 하나 팀 화합을 해치는 '건방진 젊은 피'로 낙인 찍혔다. 이 탓에 팀은 서부 콘퍼런스 결승 진출도 장담할 수 없다는 평가를 들었다.

호사다마.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레이커스는 역대 가장 빼어난 페이스로 2001년 플레이오프를 보냈다. 

서부 결승에서 샌안토니오 스퍼스를 시리즈 스코어 4-0으로 물리치는 등 파이널까지 단 한번도 패하지 않고 승승장구했다.

코비도 맹활약했다. 플레이오프 동안 평균 29.4점 7.3리바운드 6.1어시스트 1.6가로채기를 올렸다. 팀 무혈입성 일등공신이었다. 

레이커스는 파이널에서 앨런 아이버슨이 이끄는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에 1차전 일격을 맞았지만 이후 무난히 4연승을 거뒀다. 21세기 첫 우승 반지에 입맞춤했다.

◆마이애미로 떠난 '공룡'…코비, 리더가 되다 

새 국면을 맞이했다. 2003-2004시즌이 끝난 뒤 오닐이 마이애미 히트로 이적했다. 

레이커스 리더로 낙점된 코비는 폭발적인 득점쇼로 NBA 팬들을 열광하게 했다.

2005-2006시즌이 절정이었다. 2005년 12월 20일 댈러스 매버릭스와 경기서 62점을 올리며 사람들을 놀라게 하더니 이듬해 1월 22일 토론토전에선 81점을 퍼부었다. 

토론토와 경기는 원정이었는데도 팬들이 코비 득점이 올라갈 때마다 뜨거운 함성을 던졌다.

코비가 이날 올린 81점은 월트 체임벌린(100득점)에 이은 한 경기 최다 득점 기록이었다. 이 경기가 끝난 뒤 코비는 '미스터 81(Mr.81)'이라는 영예로운 별명을 얻었다.

그러나 팀 사정은 달랐다. 눈부신 개인 스탯과 엇박자를 냈다. 

레이커스는 해가 갈수록 우승권과 점점 멀어졌다. 코비 없는 레이커스는 우승할 수 있어도 오닐 없는 레이커스는 결코 우승하지 못할 거라는 목소리가 흐르기 시작했다.

오닐 정도 빅맨 없이 4번째 우승 반지는 요원한 일이 될 거라는 비판도 뼈아팠다. 코비도 여러 차례 좋은 빅맨 동료를 원한다는 인터뷰를 하며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다.

구단이 응답했다. 레이커스는 2007-2008시즌 도중 멤피스 그리즐리스를 떠나고 싶어 했던 리그 수준급 센터 파우 가솔을 품에 안는 데 성공했다.

가솔 합류는 묘수였다. 코비에게 다시 한번 대권 도전을 꿈꾸게 하는 동력으로 자리했다. 가솔은 긴 슛 거리와 빼어난 보드 장악력, BQ를 두루 갖춘 빅맨. 여기에 내외곽을 오가며 A패스를 제공할 수 있는 뛰어난 콘트롤 타워이기도 했다.

코비는 가솔, 데렉 피셔, 라마 오덤, 앤드루 바이넘 등과 함께 2009~2010년 2연속 파이널 우승을 거머쥐었다. 파이널 MVP도 모두 그의 차지였다.

2000년대 초반 3연속 우승을 챙길 때는 오닐이 주연이었다. 세 차례 모두 오닐이 파이널 MVP에 선정됐다. 

2000년대 후반 2연패 때는 달랐다. 코비가 주연이었다. '주연급' 조연에서 주인공을 꿰차도 작품을 성공으로 이끄는, 명실상부 톱 배우로 입지를 끌어올렸다.

히어로였다. 코비는 연속 우승을 차지한 2시즌 동안 플레이오프 46경기에 나서 평균 29.7점 5.7리바운드 5.5어시스트를 쓸어 담았다. 

2000년대 통틀어 봄 농구에서 가장 눈부신 경기력을 보인 선수 가운데 한 명이 코비다. 클러치 상황 마지막 포제션에서 가장 믿음직한 선수로도 코비는 단연 첫손에 꼽힌다.

▲ 라마 오덤(왼쪽)이 옛 동료 코비 브라이언트(오른쪽) 은퇴전을 찾아 축하해주고 있다.
◆ 코비의, 코비에 의한, 코비를 위한…'마지막 48분'

전성 시절로 돌아간 줄 알았다. 코비는 은퇴전에서도 코비다웠다.

공수에서 눈부신 플레이로 '마지막 48분'을 채웠다. 21년 동안 향상심을 잃지 않으며 많은 이에게 영감을 줬던 그가 선수생활 마지막 경기서도 자기다운 플레이를 펼쳤다.

특히 4쿼터에서 보인 승부처 집중력은 코비가 왜 NBA 역대 최고 승부사로 평가 받는지 확실히 일러 줬다. 코비가 은퇴전에서 남긴 득점 기록은 '60점'. 

그 어떤 선수도 은퇴 경기에서 코비보다 많은 점수를 쌓은 선수는 없다.

코비는 2016년 4월 13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스테이플스센터에서 열린 유타 재즈와 홈 경기서 60점을 몰아치며 팀 101-96 승리를 이끌었다. 

3점슛 6개를 포함해 야투 22개를 림 안으로 집어 넣었다. 백미는 4쿼터였다. 코비는 마지막 경기 마지막 쿼터에서 연속 15점을 몰아 넣는 폭발적인 화력쇼로 대역전극 척추 노릇을 했다.

원맨쇼는 1쿼터 중반부터 진행됐다. 레이커스 동료들은 고별전에서 코비에게 슛 기회를 집중적으로 몰아 줬다.

코비는 거침없는 돌파와 빠른 슛 릴리스로 꽂는 3점슛, 여전히 힘 있는 덩크를 보이며 동료 배려에 화답했다.

1쿼터에만 15점을 쓸어 담았다. 코비는 첫 12분 동안 3점슛 1개를 포함해 야투 5개를 집어 넣었다. 성공률은 그리 높지 않았으나 숫자는 큰 의미 없었다.

코비 슛이 터질 때마다 스테이플스센터에 모인 팬들과 벤치를 지키는 동료가 폭발적인 환호성을 보냈다. 눈물을 글썽거리는 팬도 있었다.

전매특허 리버스 동작으로 엔드라인을 뚫고 자유투를 얻어낼 땐 오랜 동료 메타 월드 피스가 '물개 박수'를 치기도 했다.

1쿼터 종료 뒤 잠시 휴식을 취한 코비는 2쿼터 5분여가 흘렀을 쯤 다시 코트를 밟았다. 

명장면이 널렸다. 코비는 31-37로 뒤진 2쿼터 7분 10초께 유타 코트 왼쪽 코너에서 3점슛을 노렸으나 림을 외면했다.

스테이플스센터를 찾은 영화배우 잭 니콜슨과 래퍼 제이지가 탄식하는 장면이 TV 화면에 잡혔다. 야투 실패도 역사였다.

2쿼터 종료 4분 55초 전에는 유타 오른쪽 엔드라인을 타고 들어가 두 손 덩크를 터트렸다. 홈 구장이 들썩거렸다. 

곧바로 이어진 공격에서도 상대 파울을 유도하는 영리한 움직임을 보이며 자유투 2개를 뺏었다. 이후 왼쪽 45도에서 수비수 1명을 제친 뒤 깔끔한 3점슛을 꽂았다.

은퇴를 눈앞에 둔 서른여덟 살 노장 가드가 펼치는 플레이라곤 믿기 어려운 움직임이었다.

3쿼터 시작과 함께 환상적인 더블 클러치와 크로스오버 드리블 돌파를 연이어 펼쳤다. 연속 4점을 올리며 28점째를 채웠다. 위대한 슈팅가드 위상을 뽐냈다.

이후에도 시그니처 무브인 턴어라운드 페이드어웨이 슛을 선보였다. 로드니 후드, 쉘빈 맥 등 유타 1선 수비진 앞에서 농익은 농구 강의를 펼쳤다.

4쿼터 들어 코비는 연속 15점을 쌓았다. 현지 캐스터가 "믿을 수 없는 집중력" "이것이 코비" "환상적인 클라이맥스"라며 극찬했다. 10점 넘게 끌려가던 경기를 4분여 만에 97-96으로 역전시켰다.

코비는 유니폼을 입는 마지막 경기에서도 NBA 역사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대선수다웠다. 마지막까지 농구 팬들 입에 회자될 전설을 썼다. 

81에 이어 '60'이라는 또 하나 위대한 숫자를 남기며 유니폼을 벗었다.

스포티비뉴스=박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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