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2년 롯데 자이언츠 창단식 장면. 맨 왼쪽이 초대 사령탑인 박영길 감독이다. ⓒ롯데 자이언츠
[스포티비뉴스=고봉준 기자] 롯데 자이언츠는 19일 늦은 저녁 취재기자들에게 급히 문자 한 통을 보냈다. 이틀 뒤인 21일 예정됐던 FA 영입 내야수 안치홍의 입단식을 연기한다는 내용이었다.

구단 측은 연기 사유를 따로 밝히지 않고 내부사정으로 입단식이 미뤄졌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날 오후 신격호 명예회장의 부음이 알려진 터라 내부사정은 짐작이 어렵지 않았다.

9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신 명예회장은 재계에서도 거인이었지만, 한국야구사에도 굵은 발자취를 남겼다.

신 명예회장은 한국과 일본을 거쳐 ‘롯데 야구’의 기틀을 닦은 인물로 불린다. 첫 삽을 뜬 곳은 먼저 사업을 일군 일본이었다. 1969년 도쿄 오리온스를 후원하면서 롯데 오리온스라는 이름으로 일본프로야구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1971년에는 아예 구단을 인수해 정식으로 롯데 오리온스로 탈바꿈시켰다. 이후 구단은 1992년 지바로 연고지를 옮기면서 이름을 지바 롯데 마린스로 바꿨고, 지금까지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신 명예회장의 처음 손때가 묻은 지바 롯데는 한국 선수들과 인연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2003년 56홈런을 기록하며 아시아 야구 역사를 다시 쓴 ‘국민타자’ 이승엽은 이듬해 지바 롯데로 건너가 중심타자로 활약했고, 소속 마지막 해였던 2005년 일본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다. 초년생 시절 ‘포스트 이승엽’으로 불렸던 김태균 역시 2010년과 2011년 같은 유니폼을 입었고, 2010년 일본시리즈 우승 멤버가 됐다. 메이저리그 시카고 컵스에서 뛰던 이대은도 2015~2016년 지바 롯데 유니폼을 입기도 했다. 롯데 오리온스 시절에는 백인천과 재일교포 장훈이 속한 바 있다.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 초에는 한국 실업야구의 슈퍼스타로 자리잡고 있던 김재박을 비롯해 최동원과 김시진 등 특급투수들의 영입을 시도했으나 병역 문제와 국내 여론의 반대 등으로 이루지는 못했다. 이처럼 유독 한국인과 재일교포들이 많이 뛰었던 배경에는 한국 출신 구단주의 존재감이 자리 잡고 있었다.

▲ 19일 별세한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 ⓒ연합뉴스

일본에서 꽃피운 신 명예회장의 야구 사랑은 한국에서도 계속됐다. 1970년대 중반부터 “일본처럼 한국에도 프로야구가 필요하다”고 역설한 신 명예회장은 1975년 10월 10일 기존 롯데 오리온스의 선진 시스템을 빌려 실업야구단을 창단했다. 당시 실업야구의 인기가 떨어지기 시작할 무렵 제10구단으로 창단해 실업야구 인기 부활을 이끌었다.

롯데 자이언츠는 사실상 세미프로의 성격을 갖는 구단이었다. '빨간장갑의 마술사' 김동엽 감독을 영입하는 한편 남우식, 계형철, 천보성, 김인식, 김정수, 김성관, 조창수, 정현발 등 실업과 대학야구 특급 선수들을 대대적으로 영입해 기존 실업팀들을 긴장시켰다. 이어 실업야구 참가 첫 해였던 1976년 춘계리그 2위를 차지한 뒤 하계리그 우승과 추계리그 우승을 연달아 달성하면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또한, 여성 치어리더단인 ‘롯데 에인절스’를 조직해 흥행몰이를 하는 등 실업야구 시절 파격적인 행보로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기도 했다.

한국과 일본 사정을 모두 잘 아는 신 명예회장은 양국 교류를 통해 본인의 장점을 살려내려고 했다. 데뷔를 앞둔 1976년 겨울 롯데 자이언츠를 일본 가고시마로 불러 롯데 오리온스와 합동 스프링캠프를 진행하도록 했다. 또한 1980년 롯데 오리온스의 내한 경기를 성사시키며 한국야구가 선진 문물을 빨리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왔다.

롯데 오리온스를 운영하며 ‘그룹 마케팅 차원에서 프로스포츠라는 매개체가 가장 효과적이다’는 사실을 깨달은 신 명예회장은 1982년 KBO 출범과 발맞춰 자신의 고향(울산)이 닿아있는 부산과 경남권을 연고로 하는 ‘프로’ 롯데 자이언츠를 창단해 초대 구단주를 맡았다. 1984년 롯데가 최동원의 역투를 앞세워 한국시리즈를 제패하면서 프로야구 우승 구단주가 됐고, 1992년 한 차례 더 우승 감격을 맛봤다.

▲ 1984년 롯데 자이언츠의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합작했던 김용희와 김용철, 최동원, 유두열(왼쪽부터). ⓒ롯데 자이언츠

물론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는 법. ‘거화취실(去華就實·겉으로 드러나는 화려함을 배제하고 내실을 지향한다)’을 중시하는 실리 위주의 기업 경영은 프로야구단에도 그대로 투영됐다. 이로 인해 구단 살림을 팍팍하게 꾸려 이른바 ‘짠물 경영’을 펼쳤다. 이는 1992년 마지막 우승 이후 계속된 롯데의 부진 원인으로 지목돼 팬들의 비난을 받기도 했다.

롯데는 2010년대 중반부터 FA 시장에서 거액을 투자하면서 큰손으로 자리잡기도 했지만, KBO리그에서 최장 기간인 27년 동안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롯데 야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신 명예회장은 최근 들어 병세가 급격히 나빠졌고, 결국 19일 세상을 떠났다. 야구계에서도 고인을 향한 평가가 엇갈리고 있지만, 야구를 위하는 애정만큼은 남달랐다는 점은 누구나 인정하고 있다. 경영 일선에서 퇴진을 하면서도 눈을 감는 마지막 순간까지 롯데 자이언츠 구단주로 남아있었다.

롯데 구단은 창단 구단주이자 모그룹 명예회장이 별세함에 따라 당분간 추모 분위기를 갖기로 했다. 또한, 21일 예정됐던 안치홍 입단식도 잠정 연기하기로 했다.

스포티비뉴스=고봉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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