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원 삼성 골키퍼 노동건 ⓒ한희재 기자

[스포티비뉴스=화성, 한준 기자] "결승 2차전에 너무 긴장된 나머지, 경기 시작 휘슬이 울렸는데 헛구역질이 났어요. 그럴 정도로 부담이 됐어요."

2019년 KEB 하나은행 FA컵 결승 2차전 4-0 승리로 수원 삼성의 우승이 확정됐을 때 골키퍼 노동건(28)은 눈물을 흘렸다. 내셔널리그 소속 대전 코레일과 결승 대결은, 수원 삼성이라면 당연히 이겨야 하는 경기였지만 원정 1차전의 무득점 무승부가 수원 선수단에 엄청난 부담을 안겼다. 화성FC와 준결승에서도 원정 1차전 충격 패를 당하고 2차전에 뒤집었던 경험을 했지만, 쉽게 떨쳐낼 수 없는 부담이었다.

19일 경기도 화성에 위치한 수원 삼성 클럽하우스에서 만난 노동건은 살얼음판 같던 FA컵 우승 여정을 돌아보며 부담감을 이겨내는 것이 가장 힘든 싸움이었다고 했다. 

“오히려 프로팀이랑 할 때는 긴장이 덜 됐어요. 경주전도 승부차기에 가면서 부담이 됐지만, 화성전은 원정에서 지고 와서 경기를 하니까… 한 골만 제가 먹어도 팀이 가라앉을 수 있는 경기였잖아요. 경기 전날이 아니라 이틀 전부터 속도 안 좋고 울렁거리고, 잠도 설칠 정도로 예민했거든요. 대전코레일전도 결승에 가서 너무 긴장된 나머지 경기 시작 휘슬 울렸는데 헛구역질이 날 정도로 부담이 됐어요. 홈에서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것을 보시고 싶은 팬들도 많이 오셨고, 안겨드려야 한다는 부담감. 아니 그건 부담감이 아니라 책임감이 있었고. 원정 경기에서 득점을 못 한 불리한 상황이었는데 큰 점수로 이길 수 있어서, 그래서 그 경기 끝나고 눈물을 흘린 것 같아요. 모든 선수들이 마지막 휘슬 울리기 전까지 티 안 내면서도 마음고생을 많이 했거든요. 아마 올해 저말고도, 다른 선수들도 많이 배웠을 거예요.”

◆ FA컵 우승, 16경기 무실점…수원과 노동건은 지옥에서 살아 돌아왔다

내셔널리그 소속 경주 한수원과 대전 코레일, K3리그 소속 화성FC를 만나 거둔 우승은, 외부에서 보기에 손쉬운 대진표였다. 노동건은 "남들은 무조건 이겨야지. 수원이니 ‘거저먹는 거네’라고 하지만 막상 다 프로를 이기고 온 팀"이라며 결코 쉬운 우승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K리그 우승을 다투는 울산 현대와 전북 현대가 탈락했고, 그 팀들을 제치고 올라온 팀들과 우승을 다퉜다. 노동건은 오히려 하위 리그 팀과 경기가 수원 선수단에 정신적으로 가르쳐준 게 많다고 했다. 

"기량으로는 화성FC가 가장 무서웠어요. 우리 팀에 있었던 (문)준호고 있었고, K리그 득점왕을 했던 유병수 선수는 정말 잘했어요. 그런데 코레일이 어떻게 결승에 올라왔는지는 해보니 알겠더라고요. 개인이 특출난 선수는 없었는데 팀으로 끈끈했고, 목숨 걸고 한다는 게 보였어요. 간절하게 뛰는 게 보였고. 저런 것을 배워야 한다. 프로팀이라고 당연히 이긴다는 것은 없지만, 열심히 뛰는 것은 이겨야 하지 않나. K리그 팀이라면 열심히 뛰는 건 당연하고, 퀄리티를 보여야죠. 그런 걸 느꼈어요."

2019시즌 내내 수원은 팬들의 비판을 받았다. 그 비판에서 자유로운 몇 안 되는 선수가 노동건이었다. 하지만 지난 시즌까지만 해도 노동건은 수원에서 존재감이 미미했다. 2014시즌 입단해 정성룡의 후계자로 기대를 받았지만 2016시즌 주어진 주전 기회를 살리지 못했고, 2017시즌에는 포항 스틸러스로 임대됐다. 임대 간 뒤에도 자리를 잡지 못했다. 2018시즌 다시 출전 기회를 잡기까지 경기에 나섰다 하면 실점한다고 해서 '출석 체크'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까지 생겼다. 어린 나이에 고려대 주전 골키퍼 자리를 꿰찬 뒤 수원에 전격 스카우트된 노동건은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금메달 멤버로 승승장구했지만, 그 자신감이 급격히 꺾였다. 누구보다 깊고 짙은 슬럼프를 경험했다. 그 스스로 "지옥에서 돌아왔다"고 말할 정도다.

▲ FA컵 우승이 확정된 후 눈물을 흘린 노동건 ⓒ한희재 기자


◆ 경기에 나서는 게 겁날 정도의 부담, 이운재 코치가 노동건을 깨웠다

수원은 노동건이 정성룡이 남긴 등번호 1번을 달고 시작한 2016시즌에도 FA컵 우승을 했다. 하지만 노동건은 FC서울과 대결로 펼쳐진 결승전에 뛸 수 없었다. 노동건은 3년 전의 자신이었다면, 2019시즌 FA컵 결승전의 부담을 이겨내지 못했을 거라고 했다. “그때는 겁쟁이였죠. 피하려고 했겠죠.” 노동건은 헛구역질이 나올 정도로 부담이 컸지만, 그래도 그 부담과 싸워보겠다고 자처할 정도로 성장했다. 자신이 그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경기에 뛰고 싶으면서도, 기회가 오면 두려워했던 슬럼프를 경험했고, 이겨봤기 때문이다. 

“그 부담이 있었으면서도 올해는 내가 뛰어야 한다고, 뛰고 싶다고 했어요. 그 부담감을 이기니까 K리그1의 골키퍼, 수원 삼성의 골키퍼로 있을 수 있는 거라고. 지금 팬들이 날 응원해줄 수 있는 거라고 혼잣말로 생각을 많이 해요. 그런 부담 없이 어려움 없이 이뤄지는 건 없잖아요. 이런 부담이 있으니까 팬들이 생기는 거고 언론이 주목하는 거잖아요. 이 부담감을 이기지 못한다면… 후배들에게 장난으로 말해요. 동생들에게. ‘편하게만 공 차려고 하면 형들처럼 저런 좋은 차 못 탄다고.  이런 부담감을 이기고 팬들 앞에 서야, 이런 역경을 이겨내야 하지 않냐고.’ 저는 장난식으로 말하지만, 사실 진담을 담아서 말하는 거거든요.” 

“제가 봤을 때 자신감 없어 보이는 선수들에게 얘기해요. 뛰다가 안 뛰다 하는 선수들이 있잖아요. 사실 경기 뛸 때보다 안 뛸 때 마음은 좀 편한 게 있어요. 경기에 들어가면 부담이 되죠. 수원 삼성 팬은 프라이드가 강하잖아요.  저도 겁먹었었으니까. 솔직히 저도 뒤에 있을 때, 경기 안 뛸 때 마음이 편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밖에서 봤을 땐 편한데, 막상 거기 안에서 뛰는 선수들이 이겨서 열광하는 것을 보면 샘이 나죠. 90분의 부담감을 버틸 힘이 없으면 그걸 느낄 자격이 없는 거잖아요. 그땐 정말 무서웠거든요. 그 90분의 시간이. 경기를 뛸 기회가 왔는데도 무서웠어요. 그렇다고 밖에 있으면 뛰고는 싶은데, 뛰려니 무서운 거예요. 헛구역질할 정도로 긴장하고 예민했지만, FA컵 끝나고 팬들이 떠나지 않고 열광하는 순간을 받기 위해 버텨야 한다. 그 생각이 들었어요.”

노동건은 근거 없는 자신감을 안고 프로에 입성했다가 큰코다쳤던 뼈저린 경험을 했다. 

“첫해는 그냥 성룡이 형 뒤에서 보고 배우고, 프로가 이런 거라고 재미있어서, 어리고 20대 초반에 처음 프로에 들어와서 철없던, 멋 모르던 때였는데 프로에 2, 3년차 되면서 벽이 높다는 걸 느끼고, 내가 우물 안 개구리구나. 청소년 대표, 연령대만 있던 우물에 있었는데, 너무 자만이 컸던 거 같아요. 그러다 보니 한번 꺾였는데, 개인적으로 정말 힘든 해가 오고, 개인적으로 내가 너무 우물 안에 있고, 여기까진데 내가 너무 큰 걸 바랐구나, 난 여기까지구나라고 진지하게 생각하기도 했고, 힘들어서 심리 상담을 받은 해도 있었으니까요. 침대에서 자기 전에 혼자 눈물을 흘릴 정도로 힘든 해가 있었거든요. 2016년 3년 차 때, 성룡이 형이 나가고 1번을 달면서, 팬들도 되게 기대하고, 저 스스로도 기대와 지신감이 넘쳤는데 경기 수에 비해 실점도 많이 하고, 나왔다 하면 골을 먹어서 '출석 체크'라는 별명도 생기고. 1, 2년 차에 K리그 준우승하던 팀이 하위 스플릿에 떨어졌는데, 자신감이 많이 무너진 게, 모든 게 다 제 탓 같은 거예요. 어떻게 실점하든, 자책골이 들어가도 내 탓 같고. 공이 무섭다는 트라우마가 생길 정도로… 공이 오면 무서울 정도였어요. 그 이후에 포항으로 임대를 가게 됐죠.”

포항으로 임대를 떠나고, 포항에서도 자리를 잡지 못한 채 이미 신화용이 자리를 잡고 있던 수원으로 돌아왔을 때 노동건의 프로 경력은 크게 꺾였다. 자신감을 잃은 노동건을 되살린 것은 골키퍼 코치 이운재였다. 

“(이)운재 선생님을 만나면서, 떨쳐냈어요. 정말 운동 시간이 재미있게 해주셨어요. 그렇다고 어영부영하는 타입은 아니거든요. 냉철하게 잡아줄 땐 잡아주면서, 운동 분위기를 재미있게 이끌어주시니까. 험악함 속에 유연함이 있어요. 츤데레 같은(무심한 척 챙겨주는 스타일의 속어). 항상 저는 아시안게임 때도 있었지만 운재 선생님에게 다시 배워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운동을 나가는 게 재미있었어요. 두렵지가 않고, 힘들 땐 운동 나가는 것도 무서웠거든요. 정신적인 것을 많이 배운 거 같아요. 실점에 대한 두려움을 이기는 법, 골키퍼에 대한 자부심을 배웠어요. ”

“작년에 전남에 6골 먹었을 때도 있었는데, 그때도 운재 선생님이 '골키퍼는 골 먹는 거야, 골 먹는 직업이고 그러면서 배우는 거야. 반복되면 안 되는거지 자신감을 가지라'고. '누가 뭐라 해도 내가 막아줄 거다. 그래서 내가 있는 거'라고 해주셨어요. 솔직히 제자가 저러면 스승이 욕먹잖아요. 내가 더 정신 차려야겠다고 다짐했죠. 다시 운동 나가면서도 재미있었고, 다시 기회를 주셨을 때 무실점 경기를 했어요. 그걸 배우니까 플레이건, 콜 플레이,  센터링 나가는 거나 세이빙 모두 자신감이 생겼어요. 심리적 부분이 해소되니까 점점 제 기량이 회복되고 근육 하나하나가 깨어났죠. 포항에 임대 갔을 때도 1년 동안 무실점 경기를 못 하다가 돌아와서 처음 무실점 경기를 했어요.”

▲ 이임생 감독 체제에서 노동건은 수원 넘버원 자리를 꿰찼다. ⓒ한희재 기자


노동건은 무실점 경기를 했다는 그 자체가 모멘텀은 아니라고 했다. 

“무실점 경기가 의미가 있는 게 아니라, 실점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진 게 중요했어요. 운재 선생님이 그랬어요. '잘 때린 걸 어떻게 막아. 골대가 이렇게 큰데.' 누가 보기엔 골 먹는 걸 가볍게 생각한다고 할 수 있지만, 그만큼의 부담을 줄이면 못 막던 걸 막는 게 나오니까. 실점하면 어때. 속으로 생각했어요. (골을) 넣어주겠지. 경기가 질 수도 있는 거지. 그렇게 편하게 마음을 먹으니까 오히려 무실점 경기를 하고, 승리가 많아지고. 그랬던 거 같아요. 작년에 많이 배웠죠. 재미있었죠. 올해 실점이 줄어들었고, 어느 순간 들리는데 제가 무실점 경기 1, 2위를 다투고, 실점률 1위라고 기사도 나오고. 내가 이렇게 됐구나. 느껴지는 거죠. 보면 모든 사회에서도 똑같은 거 같아요. 일에 대한 부담감이 없어야 잘 되잖아요. 운동에서 특히 잘 드러나는 거 같아요.”

이운재 코치에 이어 올 시즌 2014년 FIFA 브라질 월드컵을 지휘했던 김봉수 골키퍼 코치와 함께하면서 노동건은 세밀한 부분에서 더 배웠다고 했다.

"학창 시절에는 진학에 대한 걱정이 없을 정도로 축구에만 열중했는데, 좋은 학교도 가고 스카우트 제의도 오고 그랬어요. 친구들이 가진 고충을 공감못했는데, 내가 해도 안되는 구나라는 걸 느끼게 됐어요. 그때 운재 선생님을 만나면서 골키퍼에 재미를 붙였고, 지금 김봉수 선생님을 만났죠. 김봉수 코치님은 예민하세요. 말수가 많지 않지만 냉철하고, 송곳같이 뾰족해요. 경기 끝나고 아무리 잘해도 말수를 아끼라고. 행동 하나하나, 플레이 하나하나, 킥할 때 자세, 무릎 각도까지 알려주시니까. 다듬어주시는 거죠. 그러다 보니 민감해지고, 실점에 대한 퀄리티도 높아진 거 같아요.”

(2)편에 계속...

스포티비뉴스=화성, 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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