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분하게 답변하는 진창수
[스포티비뉴스=유현태 기자] "내 인생 모든 열정을 쏟았던 축구를 이렇게 그만둬야 하나 생각했다. 하지만 ‘그만두더라도 이렇게 그만두고 싶진 않다, 한 번 제대로 해보고 부딪혀보고 그래도 안되면 축구화를 벗어야지’ 생각했다."

진창수는 스타플레이어가 아니다. 이제 30대 중반이지만 프로에서 활약한 경력은 6시즌. 허나 경력이 축구 선수 한 명을, 그리고 사람 한 명을 온전히 설명할 수 있는가. 진창수가 축구에 쏟은 땀방울은 결코 가볍지 않다. 일본에서 나고 자랐고 한국에 온 지 11년. 매번 도전하며 자신의 자리를 찾아야 했다. 

2019년에는 팀을 찾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까지 맞았다. 누군가 포기하라고 말했지만, 진창수는 스스로 납득할 때까지 축구화를 벗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팀이 없는 '무적(無籍)' 선수로 고군분투한 지 8개월. 드디어 K리그로 돌아갈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아프고 힘든 경험이었지만 이젠 그마저도 자산이 됐다. 진창수는 2020년 다시 한번 K리그에 도전할 생각이다. 34살의 축구 선수는 아직도 꿈을 꾼다. 날씨가 급작스레 쌀쌀해졌던 13일 오후 진창수를 만났다. 그에게 11월 끊임없이 도전했던 이유, 그리고 지금도 도전하는 이유를 물었다.

◆ 축구가 있어 행복했다

진창수는 '한국인'이지만 그는 '재일교포'라고 불린다. 일본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일본인과 다른 존재, 그렇다고 완벽한 한국인도 아닌 이들. 그는 중학교 3학년 때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일본에서 재일교포 학교를 다녔고, 축구 클럽을 다니면서 축구를 배웠다. 언제나 정체성을 고민해야 했고, 한국과 일본 모두에서 겪어야 하는 차별과 편견과 맞서 싸워야 했다. 진창수는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던 이유로 축구를 꼽았다.

"축구는 문화적, 민족적으로 존재감을 나타내는데 도움이 됐다. 일본에서 살아왔던 한국 동포들이 있다는 것을 알릴 수도 있었다. 어려서부터 저희가 일본인이 아니란 것을 당연히 알고 있었다. 학교에서도 그랬고 할머니, 할아버지도, 부모님을 보면서도 많이 느꼈다. 일본에서 차별도 많이 받았다. 축구가 정말 좋은 영향력을 줬다. 축구 덕분에 일본 선수들하고도 교류가 됐다. 한국에 왔을 때에도 (다른 사람들이) 일본 사람이냐 하기도 하고, 좋지 않은 말을 듣기도 했다. 그렇지만 제가 여기서 10년을 활동하면서 편견을 깰 수 있었다. 축구가 있어서 가능했던 일이다."

삶을 지탱해준 축구는 진창수의 꿈이 됐다. J리그에서, 그리고 북한 대표팀 선수로 피치를 누빈 안영학이 바로 그의 롤모델이었다. 진창수는 "(안영학은) 학교 선배고, 또 동네 형님이다. 자주 연락하고 만난다"며 "일본 대학교에서 J리그 알비렉스 니가타에 진출했다. 니가타는 J2에서 J1으로 승격도 했다. 그리고 북한의 대표 선수가 돼서 월드컵까지 뛰었다. 재일교포들에게는 J리그는 눈에 보이는 꿈의 무대였다. 옆에 있는 형님이 그 꿈을 이루셨으니 영향력이 컸다"고 말했다.

▲ 부천 시절의 진창수 ⓒ부천FC1995

◆ 10년째 도전…K3리그부터 내셔널리그, K리그2까지

프로 축구 선수가 되고 싶었으나 현실의 벽은 높았다.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도 주전 선수로 활약하지 못한 그였다. 꿈을 위해 한국행까지 선택했다. 진창수는 자신이 도전할 수 있었던 이유를 '젊음'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그땐 아직 젊었고 축구 선수에 대한 꿈이 있었고 열정도 뜨거웠다. 어디든 부딪혀보고 해보자고 생각했다. 체력적으로도 그렇고 두려움도 없었다. 사회에 대한 현실 감각도 부족했다. 정말 꿈만 꾸고 달릴 수 있는 나이였다."

한국에서 첫 시작은 K3리그 포천 시민구단이었다. 2009년 당시 일본에선 한국의 내셔널리그격인 JFL이 3부 리그로 여겨졌다. 진창수 역시 'K3'란 이름에 실업 축구를 생각하고 한국행을 결정했다. 하지만 상황은 예상과 너무 달랐다. 하지만 포기할 순 없었다.

"월급이나 생활에서도 이야기 듣고 있던 것과 많이 달랐다. 훈련 환경도 그랬다. 선수들이 없거나 훈련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중학교 숙소에서 학생들하고 온돌 바닥에서 잤다. 포천중학교 친구들하고 강진에 가서 동계 훈련을 하는데, 경기하는 것 봐주고 지도를 해야 했다. 선수로서 한국에 왔는데 지금 뭐하고 있나 싶었다. 일본에 돌아가야 하나 생각도 하긴 했다. 한국에 올 때 많은 것을 포기하고 넘어왔다. 내 나름의 목표를 세워두고 (그걸 이룬 뒤에) 일본에 돌아가겠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11년이나 한국에 있게 될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1,2년이 도전이었으니까 포천에서 뭔가 결과를 내야 그 다음 1년이 오겠다고 생각하고 그렇게만 노력했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았다. 2010년부터 2012년까지 강릉시청으로 이적하며 내셔널리그 선수가 됐다. 처우가 크게 좋아진 것은 아니었지만 정식 계약을 맺을 수 있어서 좋았다. 강릉시청에서 활약을 바탕으로 K리그2가 창설되던 2013년 고양HiFC에 입단하면서 프로 선수의 꿈을 이뤘다. 당시 그의 나이 27살. 진창수는 "늦은 만큼 빨리 성적을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잘해서 상위 리그로 진출하고 싶다는 마음이 강했다"고 말했다.

이후 진창수는 2014년 경주 한수원으로 이적해 다시 내셔널리그에서 뛰었고, 2015년엔 다시 고양으로 돌아왔다. 고양에서 39경기에 출전해 7골을 넣고 부천FC1995로 이적한다. 부천에서 3시즌을 보냈고 2016시즌엔 플레이오프, FA컵 4강까지 진출했다. 부천 생활은 2018년까지였다.

◆ 무적 생활 반년, 다시 프로에 도전하다

2019년은 진창수는 또 시련을 맞았다. 부천과 계약 연장에 실패했다. 1985년생으로 이제 30대 중반에 접어들었다. 자신의 거취에 대해 고민해야 했다. 그의 선택은 선수 생활을 이어 가는 것이었다.

"올해는 나이가 차다 보니까,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도 자기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게, 제가 살아왔던 그대로 도전해보자 싶었다. 내 인생 모든 열정을 쏟았던 축구를 이렇게 그만둬야 하나 생각했다. 하지만 ‘그만두더라도 이렇게 그만두고 싶진 않다, 한 번 제대로 해보고 부딪혀보고 그래도 안되면 축구화를 벗어야지’ 생각했다."

"프로 축구 선수가 되고 오랫동안 뛰고 싶다는 것을 목표로 삼고 달려왔다. 어떤 목표를 두더라도 자기 자신이 포기하면 그날 바로 끝이 나는 것이다. 예전에도 (축구를) 잘했다는 생각은 없었다. 정신적으로 무조건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주변에서 ‘팀이 없어서 힘들겠다’고 말해도, 상황이 바뀔 수도 있지 않나. 기회는 쉽게 오지 않고 그 상황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계속 운동하는 것뿐이다. 스스로 ‘이제 됐다’고 생각했다면 다시 (프로) 복귀가 어려웠을 것이다."

프로 무대 복귀를 위해선 치열하게 몸을 만들어야 했다. 하지만 소속 팀이 없었기에 몸을 만드는 일은 더욱 어려웠다. 다른 선수들이 동계 훈련을 떠난 동안 혼자 웨이트트레이닝을 하고 동네 공원을 뛰었다. 한 독립 구단에서 운동을 하게 돼 컨디션 조절은 더 쉬워졌다. 매주 체계적으로 훈련하고 또 프로 구단들과 연습 경기도 뛰었다.

힘든 시기에도 얻은 것은 있었다. 초심을 짚어보게 된 것. "몸 관리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 서른넷에 원점을 찾은 것 같다. 이렇게 (축구에) 열정을 가질 수 있구나 싶었다. 처음에 (독립구단에서) 운동에 나갔을 땐 운동장이 하얗게 눈이 내렸더라. 첫 연습 경기를 고등학생들하고 했다. 프로 선수가 고등학생들하고 연습 경기를 할 일이 있겠나. 그런데 그 경기가 참 고마웠다. 여기서도 준비를 할 수 있구나. 고등학생하고 몸을 부딪히면서 예전의 나를 되새겼다. 힘들었지만 11년 한국 생활 중에 뜻깊은 1년이었던 것 같다,"

묵묵히 땀을 흘린 결과는 프로 무대 복귀였다. 안산 그리너스는 진창수의 경험과 공격력을 높이 사면서 지난 7월 영입을 확정했다. 성실한 하루가 모여 만든 결과였다. 진창수는 "믿기지가 않았다. 등록 마감일 이틀 전에 연락이 왔다"며 "K리그2에서 꾸준히 활동했기 때문에 안산도 제 스타일을 알고 있었다. 한국에서 꾸준히 해온 10년 이상의 시간이 도움이 됐던 것 같다. 그런 시절이 없었다면 안산도 저를 몰랐을 것이다. 그렇게 꾸역꾸역 해온 것이 결국 도움이 됐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진창수는 안산 유니폼을 입고 나선 첫 경기, 7월 27일 부산아이파크와 맞대결에서 득점포를 가동했다. 광대뼈가 함몰되는 큰 부상 뒤에도 다시 돌아와 안산에서 8경기를 출전하고 시즌을 마감했다.

▲ 짧지 않은 공백을 깨고 돌아와 안산 유니폼을 입고 득점한 진창수 ⓒ한국프로축구연맹

◆ 34살에도 축구 선수의 꿈은 끝나지 않는다.

진창수는 안산과 계약이 2019시즌 종료와 함께 마무리된다. 이제 또 새로운 팀을 찾아야 한다. 먼저 안산과 이야기를 나눌 예정이지만, 새로운 팀을 구해야 할 수도 있다. 자신의 실력을 인정받아야 한다.

자신감은 있다. 진창수는 자신의 무기에 대해 질문하자 "어려운 질문"이라면서도 분명히 생각을 밝혔다. 진창수는 "중앙 쪽보단 측면에서 돌파하면서 득점으로 이어 가는 스타일이다. 수비 뒤로 빠지는 움직임, 1대1 상황에서 과감하게 돌파하는 걸 즐긴다. 지금은 어떤 포지션이든 팀에 도움이 되도록 희생하는 움직임을 하고 있다. 전방에서 수비도 많이 도와주고 측면에 머무르지 않고 전체적으로 활동량을 높이려고 한다"고 경기 내에서 영향력을 설명했다. 

하지만 이제 자신에게만 집중하는 시기는 지났다. 10년 동안 축구 선수로 살아가면서 공을 차는 기술 이외의 것들도 배웠기 때문이다. 진창수는 경험과 노련미를 팀에 전달하는 것 역시 중요한 몫으로 꼽았다. 경기장 안팎의 리더가 되는 것 역시 목표다. 

"내년엔 더 노련해지고 싶다. 지금까지 쌓은 경험을 보여드리고 싶다. 지금까진 내가 슈팅하고 골을 넣어야 했지만, 우리 팀 선수들을 활용하고, 선수들이 지칠 때 대신 수비를 해주거나, 위치 선정에서도 능숙하게 하고 싶다."

"나이가 들면 경기에 뛰지 못하는 날도 있을 것이다. 그런 날에도 뒤에서 팀이 하나가 될 수 있도록 좋은 몫을 하고 싶다. 팀에서 중심이 되는 형이 되고 싶다. 여태까진 제가 몸으로 보여주면서 동생들에게 잔소리를 했지만, 좀 더 격려해주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칭찬도 해주고 싶다. 자신감이 떨어지고 있는 선수에겐 힘을 불어넣어주고 싶다. 이제 그런 나이가 됐다고 생각한다."

목표를 위해 빠르게 팀을 찾는 것이 목표다. 도전할 시간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최고의 경기력을 발휘하고 싶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 그리고 주변에서 힘을 주는 사람들, 또 경기를 지켜보는 팬들에 대한 책임감 때문이다.

"내년에 뛰게 된다면 동계 훈련부터 몸을 만들고 싶다. 공격 포인트와 골에서 지금까지 세운 기록들을 깨고 싶다. 나이는 많아졌지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충분히 있다. K리그2 팀에서 뛴다면 승격을 위해 준비하고 싶다. 힘들 때 TNT에서 불러주시고 기회를 주셨기 때문에, 그들에게 또 희망이 되고 싶다. 그게 또 원동력이다. 원동력이 자꾸 생기는 것 같아서 신기하다. 같이 힘든 시간을 지낸 친구들, 동료들, 동생들, 형님들, 선생님들께 감사하고, 그 감사한 마음을 경기장에서 보여드리고 싶다."

스포티비뉴스=유현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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