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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지웅의 MLB센터] 2차례 이혼, 딸은 노숙자, 형은 감옥, 여동생은 사망…에커슬리의 '기구한 인생'

기사승인 2019.07.22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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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투수 데니스 에커슬리의 1992년 오클랜드 시절 모습. 에케슬리는 1992년 아메리칸리그 사이영상과 MVP에 선정됐다.

[스포티비뉴스=LA(미국 캘리포니아주), 양지웅 통신원] 멋진 콧수염의 투수 데니스 에커슬리를 기억하는가.

다저스 팬들이라면 에커슬리는 1988년 월드시리즈 1차전에서 커크 깁슨에게 홈런을 허용한 오클랜드 클로저로 기억한다.

에커슬리는 메이저리그에서 24시즌을 뛰면서 통산 390세이브와 197승을 거둬 명예의 전당에 오른 레전드 투수다. 올스타에 6차례 뽑혔고, 1992년에는 아메리칸리그(AL) 사이영상과 MVP를 동시에 석권했다. 1989년에는 월드시리즈 우승도 했다. 선발과 마무리를 오가며 100완투승과 100세이브를 달성한 역사상 유일한 투수라는 사실만으로도 에커슬리는 존중을 받을 만하다.

에커슬리는 현재 보스턴 레드삭스를 중계하는 NESN 채널 해설을 맡고 있다. 2003년부터 게스트로 시작해 2009년부터는 고정 해설자가 됐다. 풍부한 경험과 거침없는 언행, 특히 에커슬리만 아는 단어(?)들을 구사하면서 보스턴팬들에게 인기가 많다.

2017년에는 방송 도중 재활경기를 하던 보스턴 투수 에두아르도 로드리게스에 대해 "형편없었다"고 말한 후 그날 비행기 안에서 팀 동료를 감싸고 싶었던 데이비드 프라이스와 대판 싸웠다. 그리고 아직도 화해하지 않고 있다. NESN 방송 진행자들은 보스턴 선수들과 같은 비행기를 타고 원정경기에 나선다. 에커슬리는 게다가 화해를 위해 마련된 자리에 나오지도 않으면서 둘의 관계는 더 악화됐다.

에커슬리에게는 프라이스와 말다툼 따위는 별 것 아닌지도 모른다. '막장 드라마'의 주인공 같은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최근 보스턴글로브 매거진의 채드 핀 기자가 보도한 에커슬리의 드라마 같은 삶의 일부를 들여다 본다.

▲ 2004년 7월 25일 미국 뉴욕주 쿠퍼스타운에 있는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데니스 에커슬리가 자신의 명판을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트레이드와 이혼…한날에 접한 두 가지 충격적 통보

1975년 클리블랜드에서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에커슬리는 보스턴, 시카고, 오클랜드, 세인트루이스를 거처 1998년 보스턴에서 1시즌을 보낸 후 은퇴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에서 태어난 에커슬리는 1972년 메이저리그 신인드래프트 3라운드에서 클리블랜드에 지명됐다. 만 20세가 된 1975년 메이저리그에 콜업됐다. 클리블랜드에서 3시즌 뒤 에커슬리는 올스타에도 선정되고 노히터도 기록한 선수로 성장한다.

그러나 승승장구하던 에커슬리의 삶에 충격적인 변화들이 찾아왔다.

1978년 스프링캠프가 끝나기 직전 3월 30일에 에커슬리는 갑자기 두 가지 큰 소식을 접해야만 했다. 우선 클리블랜드 구단으로부터 보스턴으로 트레이드됐다는 사실을 통보받았다. 그리고 같은날, 18세 성인이 되자마자 결혼한 동갑내기 아내로부터 이혼 요청도 받았다. 몇 달 뒤 아내는 클리블랜드 팀 동료이자 절친이었던 외야수 릭 매닝과 재혼을 할 것이라고 알려왔다.

◆분노의 나날, 알코올에 중독된 삶

에커슬리는 보스턴에서의 삶에 대해 "남들은 몰랐지만 나는 매일 분노의 세월을 보냈다"고 회상했다. 매일 밤 술을 마시고 파티를 했다. 경기장 바로 옆에 살고 있었는데도 매일 지각을 했다.

그럼에도 에커슬리는 1978시즌 20승8패 2.99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하지만 절제를 몰랐던 생활로 인해 호성적은 오래가지 않았다. 성적은 시즌이 갈수로 하락했고 1983시즌에는 데뷔 후 처음으로 승률이 5할(9승13패) 밑으로 떨어졌다.

에커슬리는 그때를 생각하며 "팔이 죽었다고 생각했다. 전혀 힘이 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보스턴은 1984년 에커슬리를 시카고 컵스로 트레이드했다. 에커슬리는 컵스에서 3시즌 동안 27승을 거둔다. 당시 리글리필드는 조명탑 설치가 되어있지 않아 낮경기만 할 때였다. 밤경기가 없었으니 그만큼 에커슬리에게는 술을 마시는 시간이 길어진 셈이었다.

어둠의 세월을 살아가던 에커슬리는 1987년 1월, 마침내 알코올 중독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가족들이 술에 취한 모습을 녹화해 그에게 보여주며 충격 요법을 준 것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에커슬리는 "더 이상 그런 모습을 누구에게도 보여주기 싫었다"고 떠올렸다. 에커슬리는 그 뒤로 술을 마시지 않고 있다. 술을 끊고 난 후 에커슬리는 오클랜드로 트레이드된 것을 알게 됐다. 오클랜드에서는 클로저로 변신한다.

▲ 데니스 에커슬리(왼쪽)가 2018년 10월 27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LA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월드시리즈 4차전에서 경기 전 시구를 한 후 커크 깁슨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깁슨은 1988년 월드시리즈에서 에커슬리에게 홈런을 쳤다.

◆화해와 용서

에커슬리는 오클랜드에서 전성기를 보낸다. 물론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으로 꼽히는 1988년 다저스와 월드시리즈 1차전 피홈런도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30년이 지난 2018년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다저스와 보스턴의 월드시리즈 4차전에 앞서 에커슬리는 시구를 한 뒤 커크 깁슨과 같이 경기를 지켜봤다. 자신에게 실망과 아픔으로 남을 수 있는 장소에서 자신에게 홈런을 친 선수와 같이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에커슬리는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다.

에커슬리는 현재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해설을 하고 있는 깁슨에게 사과를 받았다고 한다. 깁슨은 월드시리즈에서 홈런을 친 후 베이스를 천천히 돌면서 자축한 것을 사과했다고. 그러자 에커슬리는 "나였다면 베이스를 춤을 추면서 돌았을 것"이라며 깁슨에게 "사과할 필요가 전혀 없다"고 말했다. 한편 현역 시절 거칠고 터프한 모습을 자주 보였던 깁슨은 2년 전 파킨슨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에커슬리는 또한 클리블랜드 경기 해설자와 친하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목격됐다. 알고 보니 그 해설자는 자신의 첫 부인과 재혼한 릭 매닝이었다. 에커슬리는 "용서는 중요하지 않다. 40년이 지났다. 당시엔 어렸고 많은 상처를 받았지만 나도 좋은 남편이 아니었다"며 "내 딸을 잘 키웠으니 나도 잘 해줘야 한다"고 웃으며 말했다.

◆아픔으로 점철된 가족사… 행복을 찾는 에커슬리

에커슬리는 두 차례 이혼했다. 아픔과 눈물로 점철된 굴곡진 인생. 그래서인지 에커슬리는 자신의 존재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더 좋아한다. 그렇다고 일부러 자신을 숨기지는 않는다.

에커슬리의 인생도 기가 막히지만, 그의 가족사는 더 큰 아픔으로 점철돼 있다. 여동생은 지난해 알코올 중독으로 세상을 떠났다. 형은 살인미수와 납치 등으로 1989년 법원으로부터 '48년형'을 받고 복역 중이다. 두 번째 부인과 함께 살 때 입양한 22세 딸은 정신질환으로 현재 노숙자 생활을 하고 있다. 에커슬리가 공개적으로 언급하기를 꺼려하는 유일한 부분이다.

그러나 언제까지 슬픔에만 갇혀 살아갈 수는 없다. 에커슬리는 현재 18년 전에 만난 3번째 부인과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 그는 인터뷰에서 "나도 정상이 아니고 우울해질 때가 있다"고 실토를 하면서도 "그러나 소중한 시간을 허비하기 싫다. 야구 시즌이 끝나면 태어난 지 9개월 된 쌍둥이 손주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 것"이라고 말했다.

스포티비뉴스=LA(미국 캘리포니아주), 양지웅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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