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울산은 우라와에 내용과 결과 모두 완전히 패하며 ACL에서 퇴장했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스포티비뉴스=울산, 한준 기자] "잘 안들려요. 소감 다시 말해 주세요."

김도훈 울산 현대 감독은 2019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탈락한 소감을 두 번 말해야 했다. 김 감독 앞에 마이크가 있었지만 잘 들리지 않았다. 

김 감독은 26일 밤 안방 문수축구경기장에서 당한 우라와 레즈와 16강 2차전 0-3 완패가 자신의 책임이라고 말했지만, 경기 후 회견은 목소리 크기는 물론, 내용도 다분히 방어적이었다. 

경기 내용도 마찬가지다. 경기 전 회견에서 "상대 공격을 막는 것보다 우리가 잘할 수 있는 공격을 통해 대응하겠다"고 했지만, 울산의 이날 경기 내용도 대부분 자기 진영에 머무르며 수세에 몰렸다. 

◆ 변명의 여지 없는 완전한 패배

우라와가 1차전에서 패배한 팀이었다고 해도, 우라와가 16개의 슈팅을 뿌리며 3골을 넣는 동안 울산은 단 4차례 슈팅밖에 하지 못했고, 유효슈팅은 전반전 두 차례에 불과했다. 그 중 하나는 사실 패스를 하려던 것이 수비를 맞고 골문으로 향한 것이었다. 득점은 없었다.

김 감독이 사전 회견에서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다. 김 감독은 90분 내내 수비에 급급했던 것에 대해 묻자 "여의치 않은 상황이었다"고 답했다. "전반전부터 우리 경기를 하려고 했다. 상대에게 아무래도 볼 소유권을 넘겨주고 미들 지역에서 우리가 볼을 허용하면서 문제가 있었다."

2018시즌에도 울산은 AFC 챔피언스리그 16강에서 탈락했다. 당시에는 수원 삼성을 만났는데, 1차전에서 승리하고도 2차전에 뒤집혔다. 김 감독은 이 경험을 반복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김 감독은 회견 도중 "좋은 기회를 살리지 못해 아쉽다"고 여라 차례 말했다. 우라와 원정에서 무려 두 골을 넣고 승리해 유리한 고지를 점했기 때문이다. 

2018-19 UEFA 챔피언스리그 토너먼트가 보여줬듯, 1차전 결과가 다음 라운드 진출을 보장하지 않는다. 울산은 우라와와 2차전에 집중하기 위해 상주 상무와 리그 경기 일정도 연기했으나 공염불이 됐다. 

▲ 김도훈 울산 감독은 경기 후 회견에서 자신의 책임을 인정했다. ⓒ한국프로축구연맹


◆ 무리뉴였다면 할 수 있었던 '울산을 위한 변명'

만약 울산 감독이 세계 최고의 입담을 자랑하는 주제 무리뉴 감독이었다면, 회견장 분위기는 많이 달랐을 것이다. 

오츠키 츠요시 우라와 감독과 이날 두 골을 넣어 경기 최우수 선수로 선정된 우라와 공격수 고로키 신조는 "먼 한국까지와서 응원해준 서포터 덕분에 이길 수 있었다"고 했다. 립서비스가 아니다. 문수축구경기장은 대부분의 시간동안 우라와 홈 경기장 같은 분위기였다.

갑작스런 폭우로 사전 신청 규모보다 절반 가량이 줄었지만, 700여 명의 우라와 서포터즈가 울산을 찾아 경기 한 시간전부터 종료 휘슬이 울린 뒤까지 쉼없이 응원가를 불렀다. 함성이 워낙 커서 규모 이상의 위력이 느껴졌다.

이날 입장 관중수는 3,410명이었는데, 우라와 서포터즈의 조직력과 기백이 더 강했다. 무리뉴 감독이었다면 "홈 경기장같은 분위기가 아니었다"거나 "팬들의 응원이 더 필요하다"는 발언이 나왔을 법하다. 

울산 서포터즈도 평일 저녁, 폭우가 내리는 환경 속에도 "힘을 내라 울산!"을 외쳤지만, J리그 안에서도 응원 규모가 큰 우라와를 당해내기는 역부족이었다. 우라와 선수들이 수중전에 원정 경기라는 피로를 이겨내고 죽어라 뛸 수 있었던 배경에는 엄청난 기백의 응원 함성 덕도 있다. 경기 중 대화가 쉽지 않을 정도로 문수경기장이 시끄러운 경우는 많지 않았다. 울산은 원정 팀의 지옥이 되기에 충분한 환경은 아니다.

김 감독은 "선수들은 최선을 다 했는데 감독의 준비가 부족해서 졌다"며 패배의 책임을 온전히 자신에게 돌렸다. 전술과 전략을 구축하고, 선수들을 훈련시키고, 선발 선수 11명을 선택한 것이 자신이니 책임감있는 자세다. 

하지만 이날 내린 엄청난 비가 울산의 경기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 것도 사실이다. 수중전을 감안해 과감하게 문전으로 크로스 패스와 침투 패스, 중거리 슈팅을 뿌린 우라와의 전략적 준비도 좋았지만, 너무 많이 내린 비로 인해 미끄러워진 그라운드, 무거워진 몸이 속도감을 최대 강점으로 삼는 울산의 발목을 잡기도 했다. '모두 내 탓이오'라고 인정하는 것이 담백할 수도 있지만, 환경적 요인이 불리했던 것도 사실이다.  

울산이 K리그 선두를 다투고, 조별리그 1위로 AFC 챔피언스리그 16강에 오르는 과정의 주역들이 정상 컨디션이 아니었다는 점도 김 감독이 변명할 수 있는 대목이다. 

김 감독은 우라와 원정에서 깜짝 선발 투입한 주민규가 동점골, 후반 교체 투입한 황일수가 역전골을 넣어 탁월한 용병술을 칭찬 받았다. 우라와와 2차전에는 소극적으로 경기를 운영해 패배했다고 지탄 받고 있다.

김 감독은 우라와와 2차전에 수비수 윤영선을 선발로 냈다. 본래 주전이던 윤영선은 이날이 부상 복귀전이었는데, 빠르게 뒤를 파고 든 고로키의 헤더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앞서 부상에서 회복한 다비 불투이스도 고전했다. 둘 모두 최근 부상으로 한동안 뛰지 못해 감각이 불완전했다.

공격진에는 김보경이 컨디션 난조를 보여 벤치에서 경기를 시작했다가 후반전에 투입했고, 투입 이후에도 존재감을 보이지 못했다. 주장 이근호는 1차전을 치르고 난 뒤 수술을 받았던 무릎에 통증이 생겨 아예 명단에서 빠졌다. 

이근호와 김보경이 온전한 컨디션을 보이지 못해 라이트백 김태환을 윙어로 전진배치했다. 김태환은 올 시즌 라이트백 위치에서 최고의 활약을 해왔다. 그로 인해 출전 기회가 줄어든데다, 지난해 부상 이후 주춤한 정동호가 라이트백 포지션에서 안정감을 보이지 못했다. 

김태환이 수비로 딸려 내려오면서 기대한 측면 공격이 살아나지 못했다. 김인성을 통해 간헐적인 역습이 진행됐으나 반대편으로 연결되지 못했다. 중앙 지역의 창조자 김보경이 없었고, 반대편의 김태환도 필요한 때 올라오지 못했다.

이날 울산은 중원 대결에서 완패했는데, 훈련 중 신진호가 부상을 당한 뒤 아직 복귀하지 못해 운신의 폭이 좁았다. 이로 인해 중원 밀도가 떨어지기도 했다. 활동량이 좋은 김성준을 선발 투입했으나 일본 특유의 패스 플레이를 당해내지 못해 주도권을 잡지 못했다. 

▲ 울산은 선발 전략에서 우라와에 완패했다. 우라와는 울산의 전방 압박을 가볍게 벗기고 중원을 지배했다. ⓒ김종래 디자이너


◆ 무리뉴처럼 치밀하지 못했던 '전략적 패배'

우라와와 16강 2차전은 울산의 2019시즌 최악의 경기였다. 울산은 리그에서 성남과 포항에 패했고, FA컵에서는 대전 코레일에 패해 탈락했는데, 기회를 살리지 못한 불운이 겹치기도 했다. 우라와전은 변변한 기회도 만들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밀리다가 완패했다. 이토록 처참한 패배에는 핑계거리가 있을 수 밖에 없다. 

김 감독이 무리뉴 감독처럼 능수능란하게 변명하지 못한 것은, 무리뉴 감독처럼 치밀한 계획을 짜지 못했기 때문이다. 더불어 이러한 문제가 부임 이후 분수령마다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회견장에서 목소리의 볼륨이 작았던 것은 그 자신도 극복하지 못한 숙제에 대해 실망스러웠기 때문일 것이다. 

울산은 0-1로만 패했어도 8강에 갈 수 있었다. 치밀하고 철저하게 8강에 갈 수 있는 플랜을 마련해야 했다. 경기 초반 흐름이 완전히 기울었을 때, 선발 전략을 수정할 수 있었고, 0-1로 전반전을 마쳤을 때 후반전에 냉정한 대안을 꺼내야 했다. 하지만 경기가 진행되면서 울산은 반전 카드를 하나도 보여주지 못했다.

전반 42분 내준 선제골 상황에 앞서 울산은 수비수 마키노의 헤더가 골대를 때리고 나오는 행운으로 선제 실점 시간을 늦출 수 있었다. 0-1로만 졌어도 8강에 갈 수 있었던 울산은 후반 30분에 비슷한 플레이 패턴에 두 번째 골을 내줬다. 심지어 후반 42분 쐐기골이 된 에베르톤의 슈팅도 측면 크로스 이후 스기모토 겐유의 헤더 패스로 나왔다. 

오츠키 츠요시 우라와 감독은 "비디오 분석을 많이 했다. 울산 플레이를 분석하고 나서 선수들에게 걱정할 것 없다고 했다"며 의기양양한 모습을 보였다. 두 골을 넣은 고로키는 1차전과 2차전의 차이를 묻자 "1차전에도 기회가 많았는데 살리지 못했고, 2차전에는 기회가 올 때마다 잘 살렸을 뿐"이라며 내용이 크게 달라진 것은 아니라고 했다.

결정적으로 김 감독이 무리뉴처럼 자신있게 변명을 하고 핑계를 대지 못한 것은 이날 경기가 전략적 측면에서도 완패였기 때문이다. 

울산은 라인을 높이고 중원을 장악한 우라와에 잠식당했다.

3-4-3 포메이션으로 나선 우라와는 좌우 윙백을 윙어 영역까지 전진시키고, 세 명의 볼을 잘 다루는 센터백이 하프라인 부근까지 전진해 스리톱 중 좌우 측면의 파브리시우와 무토 유키, 두 명의 중앙 미드필더 에베르통과 아오키와 근거리에 배치했다. 중앙 지역에서 확실한 수적 우위를 점했다. 

주니오는 전방에 고립됐고, 김인성과 김태환도 측면에서 따로 놀았다. 김성준은 이 스리톱 뒤에서 전방 압박을 위해 뛰어 다녔고, 두 명의 중앙 미드필더 박용우와 믹스는 우라와의 패스 플레이를 따라다니기 급급했다. 

김성준을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에 배치해 우라와의 빌드업을 방해하고자 하는 의도는 나쁘지 않았으나 우라와의 스리백은 능숙하게 이를 벗겨냈다. 전방 압박이 통하지 않자 밀려 내려와서 자기 진영을 지키는 상황이 지속됐는데, 풀백이 일대일 싸움에서 고전하고, 수중전 발생으로 센터백과 골키퍼의 볼처리까지 불안해지면서 울산은 거듭 흔들렸다. 

▲ 우라와는 고로키가 제로톱으로 배치되어 울산 수비를 흔들었고, 세 명의 센터백이 중원 빌드업에 활발히 가담하며 경기 주도권을 잡았다. ⓒAFC

◆ 우라와가 준 모든 변화가 골로 연결됐다

우라와는 1차전에 뛰지 못했던 센터백 마우리시우의 후방 빌드업, 윙어 파브리시우의 하프 스페이스 돌파가 잘 먹혔고, 제로톱으로 배치한 고로키의 침투가 장신 센터백 윤영선과 불투이스를 무력하게 만들었다. 1차전에 후보로 뛰었던 우가진이 선제골을 어시스트했다. 우라와는 좌우 윙백을 사이드라인 끝으로 벌리고 높였으나, 이들이 직접 돌파하지 않고, 이들이 만든 공간을 두 명의 측면 공격수, 혹은 중앙 미드필더가 돌파와 침투 패스로 공략하는 공격 패턴을 주력했다. 김 감독도 우라와의 이 점이 달랐다고 말했다.

"(우라와는)1차전에 비해 사이드 돌파가 줄어들었다. 우리 윙포워드와 미드필드 사이 공간을 많이 파고들더라. 전반전에 우리 오른쪽을 노리더라. 후반전에 공간 내주지 않으면 좋은 경기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잘 수행했다고 생각한다. 상대가 그 공간 차지하기 위해 움직인 것이 잘 됐다. 우리가 준비하면서도 고민했는데 허용했다." (김도훈 울산 감독)

후반전 교체 전략도 우라와의 완승이었다. 1-0 리드로 충분하지 않았던 우라와는 후반 30분 오른쪽 센터백 이와나미를 빼고 오른쪽 미드필더 나가사와를 투입했다. 

나가사와가 우가진의 뒤와 옆을 부지런히 커버해주면서 후반 35분 센터백 마우리시우가 전진해 크로스를 올려 고로키의 두 번째 득점을 끌어냈다. 오츠키 감독의 도전적인 교체가 적중한 것이다.

그에 앞서 후반 20분 파브리시우 대신 투입한 187cm의 장신 공격수 스기모토 겐유가 고로키를 견제에서 자유롭게 하기도 했다. 스기모토는 후반 42분 울산을 녹다운시킨 에베르톤의 득점을 헤더 패스로 돕기도 했다. 우라와의 세 골 모두 오츠키 감독이 변화를 준 선수들이 관여해 만들었다. 

울사는 후반 시작과 함께 김보경을 투입했으나 경기 흐름을 바꾸지 못했고, 후반 15분 주니오대신 들어간 황일수도 기대한 압박과 역습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세 번째 골을 내준 뒤 곧바로 라이트백 정동호대신 전방 공격수로 투입한 김수안도 제대로된 패스를 받지 못했다. 

선발 전략부터 교체 용병술까지 모두 작동하지 않았다. 오츠키 우라와 감독은 "울산은 스피드가 있는 선수들이 많다고 분석했다. 두 경기에 큰 변화는 없었다. 울산이 위에서 빠른 공격하는 것을 체크했고, 2차전은 너무 따라가지 말고, 너무 내려서지 말고 앞에서 압박하라고 강조했다. 그런 점을 잘 해줬다. 상대 공격을 잘 기다린 것이 이번 경기를 이길 수 있었던 이유"라고 했다. 

수중전이라는 환경적 요인, 울산 주력 선수들의 컨디션 난조 문제도 있었지만 우라와가 울산의 장점을 잘 대비한 것도 사실이다. 2018시즌 수원도 울산과 16강 1차전은 물론, 리그 대결에서 고전했지만 철저한 분석을 통해 수립한 전략을 통해 2차전 승리를 끌어냈다. 자신이 준비한 전략이 먹혀들지 않았다고 자책한 김 감독은 변명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스포티비뉴스=울산, 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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