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대구, 유현태 기자] 홈 경기라면 상대 선수, 팬들까지 기를 죽이고 들어가야 한다. 압도적인 함성과 박수갈채 그리고 위압감. 홈 경기의 유리한 점이 그것이다. DGB대구은행파크는 원정 팀들이 까다로워 할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다.

대구FC는 그동안 '목소리 싸움'에서 쉽게 이기질 못했다. 이전에 쓰던 대구스타디움은 접근성도 떨어지고 관람 시야도 좋지 않았다. 서포터 '그라지예'도 좁은 가변석에 앉아야 했으니 이른바 '일반석'에 응원 소리가 닿기도 전에 허공으로 흩어졌다. 시민 구단으로 우승보단 생존이 목표였으니 승리에 더 열광하는 스포츠의 특성상 많은 팬을 모으지 못했다.

FC서울을 비롯해 전북 현대, 수원 삼성 같은 팀이 원정 오는 날엔 경기장이 온전히 대구의 것 같지 않았다. 보통 먼 거리 원정에 나선 팬들은 일당백의 '성량'을 자랑한다. 되려 대구를 윽박지르는 듯 목소리를 높이곤 했다.

대구는 22일 DGB대구은행파크에서 FC서울과 하나원큐 K리그1 2019 17라운드에서 맞대결을 펼쳤다. 입장 관중 수는 1만 2068명. 매진이다. 

원정 팬들이 기세를 펴던 것은 이젠 옛날 이야기다. 대구가 새 안방 DGB대구은행파크로 이사하고 3개월이 지났다. 그동안 매진만 6경기. 이젠 팬들도 선수들도 '대팍'에선 어떻게 놀아야 하는지, 기싸움부터 어떻게 눌러야 하는지 알고 있다. 대구가 접전 끝에 1-2로 패했지만 '대팍'의 열기는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경기 전부터 대구와 서울의 분위기는 심상치 않았다. 지난 5월 벌어졌던 시즌 첫 맞대결에서 대구가 서울에 1-2로 패했다. 정태욱이 코뼈가 부러지는 등 육탄전을 벌이고, 경기 뒤엔 안드레 감독이 판정에 불만을 표현하면서 두 팀 모두 신경전까지 모두 벌인 뒤였다. 두 팀 모두 '필승'을 외쳤다.

대구 팬들도 선수단의 마음을 모를 리가 없다. 안방에서 선수들을 기죽게 하고 싶지는 않았을 터. 응원이야 '그라지예'가 주도한다지만 S석의 모든 관중이 목소리를 모은다. 그리고 골대 뒤의 목소리는 서쪽과 동쪽의 관중석으로도 퍼져가기 마련. 명물이 된 알루미늄 좌석 바닥을 활용한 응원은 경기장 전체를 대구의 페이스로 만드는 힘이 있다. 경기장 분위기만 보자면 단 2번, 실점 순간을 제외하고 항상 대구의 페이스였다.

서울의 주장인 고요한은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에 참가하면서 그런 경험은 있었다. 대충은 알고 있었다"면서도 "솔직히 소름이 돋더라. 몸 풀 때부터 (대구) 팬들이 열정적으로 응원하셔서 압도될 뻔했다"고 표현할 정도.

▲ 알리바예프(가운데 왼쪽)의 골에 조용해진 '대팍' ⓒ한국프로축구연맹

선수들도 이제 '대팍'에선 어떻게 팬들과 호흡하는지 안다. 함성을 유도하면 딱 7미터 떨어진 팬들이 뜨겁게 화답한다.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할 때 선수들은 팔을 허공에 내지르며 환호를 유도한다. 개장 경기부터 신을 내던 세징야는 물론이고, 다른 대구 선수들이 팬들을 향해 팔을 휘젓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E석으로 자리를 옮겨보니 확실히 팬들의 박수와 함성은 작아졌다. 이제 전매특허가 된 '쿵쿵, 골!'에는 모두가 익숙하다. 지난 4월 동시다발적으로 튀어나오던 '쿵쿵, 골!'이 이젠 거의 하나로 움직인다. 우선 장내 아나운서의 목소리에 맞추고 조금씩 빨라지는 박자는 S석의 그라지예에 맞춘다.

당연히 선수들도 팬들을 실망시킬 수 없다. 전반에만 2골을 내줬지만 대구는 후반에도 끝없이 공격했다. 후반 10분 만에 황순민의 골이 터지자 '골대 뒤'도 선수들과 함께 힘을 한 번 더 내기 시작한다. 경기 종료 직전 세징야가 서울의 골망을 흔들기까지 했다. 다만 세징야가 패스를 받을 때 한 발이 앞서 오프사이드가 선언됐다.

귀에 손을 댄 주심을 보고 선수들도, 팬들도 마음이 새까맣게 타들어갔을 것이다. 7미터의 거리를 두고 하나로 뭉친 대구는 그렇게 함께 아파했다. 그리고 다음 경기를 기약했다. 전반부터 이어진 유상훈의 선방쇼가 야속했을 것이다.

▲ 하늘색 물결 속 빨간 서울 원정 팬.

이제 '작은 소란'을 일으키게 된 원정팬들은 마지막 퍼즐이다. 원래 모든 싸움엔 맞수가 있어야 재미가 이ㅛ다. 1000명 규모에 불과하지만 서울의 원정 팬들은 대구 팬들의 일방적인 분위기는 허용하지 않는다. 자연스레 대구 팬도, 서울 팬도 목청을 높이며 달아오른 이유가 아닐까.

지난 3월 9일 DGB대구은행파크의 첫 매진을 보며 상투적으로 '축구에 봄이 왔다'고 말했지만 기대 뒤엔 우려가 있었다. K리그가 거창한 출발과 달리 금세 힘을 잃고 관중이 줄곤 했기 때문이다. 야구 시즌이 개막하면 제자리로 돌아올 것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올해는 대구의 축구 열기는 6월까지도 뜨겁다. 이제는 '대팍' 사용법을 모두가 알고 있어 선수들도 즐겁고, 팬들도 즐겁다. 

이번 서울전 결과야 대구 팬들에게 아쉬웠겠지만, 선수는 물론 팬까지 최선을 다한 경기장은 또 찾고 싶을 만큼 환상적이었다.

17라운드까지 대구의 평균 관중 성적은 1만 583명으로 전체 5위. FC서울(1만 7181명), 전북 현대(1만 4246명), 수원 삼성(1만 1293명), 울산 현대(1만 859명)가 대구보다 앞서 간다. 하지만 대구의 경기장은 이미 그 자체로도 뜨겁다. 1만 2000석 규모를 고려하면 대구는 홈 경기마다 매번 관중석을 가득 채우고 있다는 뜻이다. 7번째 매진도 곧 나올 것이다. 그때는 더 능숙한 대구 팬들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스포티비뉴스=대구, 유현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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