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은 전원백수인 기택(송강호)네 장남 기우(최우식)가 고액 과외 면접을 위해 박사장(이선균)네 집에 발을 들이면서 시작된 두 가족의 만남이 걷잡을 수 없는 사건으로 번져가는 가족희비극을 담았다. '살인의 추억', '괴물', '설국열차'에 이어 4번째로 봉준호 감독과 함께 한 송강호는 생계를 위해 연체동물처럼 주어진 상황에 적응해가는 백수 가족의 가장 기택 역을 맡아 봉준호와 송강호의 만남은 늘 옳다는 걸 증명해냈다.
'기생충'을 향한 칸의 뜨거운 기립박수가 쏟아진 다음날, 영화제 메인 행사장인 프랑스 칸의 팔레 드 페스티벌에서 만난 송강호는 여전히 여유있는, 한껏 자신감있는 모습으로 '기생충'과 봉준호 감독에 대한 애정과 신뢰를 드러냈다. 한국영화의 수많은 마스터들과 함께 지금의 한국영화를 이끌어 온 배우 송강호는 힘주어 말했다. 영화 '기생충'은 "봉준호의 진화이자 한국영화의 진화"라고.
-칸영화제에 다시 온 소감은? 기립박수를 받으며 기분이 어땠나.
"오랜만이라고 해도 10년 만이다. 변한 것은 없고 똑같은데, 많은 분들이 또 관심을 가져주시고 주목했던 영화고. 긴장도 되고 기대가 되기도 그랬던 것 같다.
아무리 익숙해도 쑥스럽기도 하고 벅차기도 하다. 너무 오랫동안 박수를 치시니까 '이 시간을 어떻게 자연스럽게 보내야 하나' 생각도 하고. 다행스럽게도 이번에는 배우들도 많고. 시선이 많이 분산이 돼서 좋았다."
-반응이 뜨겁다. '설국열차'를 함께 한 틸다 스윈튼도 공식상영에 와서 박수를 치더라.
"기본적으로, 우리도 영화를 보고 잘봤다고 하지 뭐.(웃음) 틸다 스윈튼은 '마스터피스'라는 말을 여러번 했다. 진심이 느껴졌다. 너무 감사했죠."
-늘 붉은 얼굴의 백수 가장 기택을 연기했다.
"중년 남자의 모습이다. 상태가 좋은 사람은 아니니까 분장으로 표현했다. 영화를 보면 코미디도 있고 서스펜스도 있고 호러 분위기도 있다. 다양하게 복합적으로 롤러코스터를 타듯 한다. 그것이 우리네 인생이고 삶인 것 같다. 희극이다가 '이 정도에서 비극으로 가자' 이런 삶은 없다. 희비극과 함께 모든 것들을 복합적으로 동시에 느끼면서 살아가는 게 인생이고 우리 삶인데, 그런 점에서 이 영화의 흐름을 탔던 것 같다."
-'살인의 추억'에 이어 '괴물', 이번 '기생충'까지 봉준호 감독과 만나면 서민적인 캐릭터를 자주 연기했지만 이번엔 또 다르다.
"친숙하고 서민적이고 우리 이웃같은 느낌이다. 그런 점에서 자연스러웠다. 기택은 연체동물처럼 환경에 나름대로 적응해간다. 그 또한 기택만의 특별한 성격이 아니다. 누구나 그렇게 살고 있는 모습인 것 같아서 자연스러웠다. 이 영화는 어떤 적대적인 관계의 대결 구도, 원망과 증오를 표현하는 게 아니다. 남의 자리를 뺏어도 그게 항상 켕긴다. 열심히 살아갈 뿐 악한 사람이 아니다. 그러다보니 어떤 상황에 빠진다. 그래서 더 아이러니하고 슬프기도 하다."
-'설국열차'에선 꼬리칸의 혁명가였는데, 이젠 체념하고 순응한다는 느낌도 든다.
"기택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방법론이자 기택의 해석이다. 이 사회에 대한 해석이다. 약간 자조적이면서도 허무주의적인 냄새가 나는 대사가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뚫을 수 없는 막연한 벽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기택이 대변하는, 사회적인 열등감을 가지고 있는 중년 남자의 보편적인 정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봉준호 감독과 4번째 작품이다. 최고의 호흡을 봤다.
"그렇게 봐주셨다니까 고맙다. 봉감독도 어제 레드카펫 직전에 프랑스 인터뷰에서 '눈빛만 봐도 다 안다'고 하더다. 어느 정도 경지까지는 온 것 같다. 지나온 세월이 근 20년 가까이니까. '살인의 추억'이나 지금이나 작업의 방식이 달라지지는 않았다. (봉준호 감독은) 늘 항상 완벽한 준비, 치밀한 계획과 함께 작업을 하시니까 그것이 익숙하다. 시범을 보이시기도 하는데, 연기를 이렇게 해달라가 아니라 감정이라든지를 보여주는데 그런 게 웃기기도 하다."
-봉준호 감독과 함께하면 필요 이상의 연기를 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마음이 편안한 게, 시나리오의 방향성-감독이 이 시나리오로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가가 명확하다. 배우 입장에서는 물리적인 시공간을 메꾸기 위해서 필요 이상의 연기를 할 필요가 없다. 간혹 가다가 그런 작품이 있다모면 안 좋은 연기가 나온다. 안 그러면 그걸 메꾸지 못한다. 그런 지점이 없는 감독이 봉준호 박찬욱 김지운 이런 감독님이다. 그런 점에서 제 입장에서는 편했다. 믿고 갈 수 있는 지점이었다."
-'기생충'을 두고 봉준호의 진화라는 표현을 자주 했다.
"한국영화의 진화다. 1990년대 후반부터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를 이끈 분들이다. 홍상수 박찬욱 이창동 김지운 홍상수 허진호까지 1990년까지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를 이끌었다. 20년이 지난 이 지점 진화했다. '기생충'으로 확인할 것이다. 그렇게 느껴지실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씀드릴 수 있다. 한국영화가 이정도로 발전했구나, 이 정도의 철학적인 깊이감을 표현하는 단계까지 왔구나. 자신있게 말씀드린다."
스포티비뉴스=칸(프랑스), 김현록 기자 roky@spotv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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