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72회 칸국제영화제의 첫 주말, 내내 비가 내렸다. ⓒ게티이미지
[스포티비뉴스=칸(프랑스), 김현록 기자]날씨는 우중충하다. 가라앉은 기온처럼 가라앉은 분위기. 첫 주말을 보낸 제72회 칸국제영화제의 풍경이다.

지난 14일(현지시간) 제72회 칸국제영화제가 프랑스의 남부 휴양도시 칸에서 성대하게 개막했다. 미국 인디영화를 대표하는 이름, 짐 자무시 감독의 '더 데드 돈트 다이'를 소개하며 문을 연 올해의 영화제는 빌 머레이, 클로에 셰비니, 틸다 스윈튼, 줄리안 무어, 공리, 에바 롱고리아, 셀레나 고메즈에 심사위원 엘르 페닝 등 화려한 각국 스타들의 레드카펫과 함께 시작했다. 그러나 화창했던 분위기는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 제72회 칸국제영화제의 첫 주말, 내내 비가 내린 가운데 레드카펫에 참석한 닉 조나스(왼쪽)와 프리얀카 초프라.  ⓒ게티이미지
기온은 급속도로 떨어졌고, 가장 많은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됐던 지난 17일부터 19일까지 주말 내내 기온은 초봄, 늦가을을 연상시킬 만큼 떨어졌다. 전세계 취재진의 플래시 세례가 쏟아지는 뤼미에르 극장의 레드카펫이 검정 우산으로 뒤덮여 붉은 색이 보이지 않을 정도. 18일 레드카펫 행사에 나선 조나스 브러더스 멤버 닉 조나스는 아내인 인도 배우 프리얀카 초프라와 내내 우산을 든 채로 뤼미에르 극장 앞의 계단을 올랐다.

내리쬐는 햇빛은 간곳없고, 비까지 하루종일 내려 칸 중심가인 크로와제 거리를 걷는 사람들마저 눈에 띄게 줄었다. 호화 요트에서 열리는 화려한 파티들도 추적추적 내리는 비 탓에 줄줄이 취소됐다. 오가는 바이어와 셀러의 수까지 줄어든 건 마켓도 마찬가지다. 현지 사정에 정통한 영화 관계자는 "이상 저온 탓에 칸 영화제의 주말 분위기가 살지 않는 것 같다"며 "영화를 보려는 시네필들도, 마켓의 사람들도 활력이 크게 줄어든 분위기"라고 전했다.

▲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페인 앤 글로리'로 제72회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된 배우 페넬로페 크루즈가 18일(현지시간) 공식 포토콜을 준비하고 있다. ⓒ게티이미지
마켓의 분위기를 냉각시킨 건 영화제 개막을 앞두고 불어닥친 미중 관세전쟁의 여파라는 분석이다. 롤랜드 에머리히의 1억5000만 달러 짜리 SF프로젝트 '문폴'이 전세계 바이어들에게 소개되는 등 마켓 초반 공개된 블록버스터들이 화제를 모았지만, 보복성 조치가 이어지는 미국과 중국의 힘겨루기 속에서 중국 큰 손들이 굳이 이때 움직일 필요가 없다며 대작을 구매하는 데 주저하고 있다고 현지 데일리들은 짚었다.

성평등, 젠더 이슈가 부각된 가운데 미국의 반이민정책 비판까지, 올해 칸 영화제는 정치 이슈를 적극적으로 끌어안은 분위기다. 중국과의 관세 힘겨루기를 차치하더라도,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 반 이민주의에 대한 날선 비판이 영화제 전반에서 포착됐다.

▲ 제72회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심사위원 기자회견에 참석한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가운데). ⓒ게티이미지
멕시코 출신인 경쟁부문 심사위원장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은 작심하고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멕시코 국경 정책을 비판했다. 칸의 첫 남미 출신 심사위원장인 그는 "세계 정치 지도자들은 '분노와 거짓'으로 통치하고 있다"며 "이런 정치적 수사가 반복되면 그 끝이 어떻게 되는지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고 날을 세웠다. '미국을 다시 하얗게 만들자'는 문구의 모자를 쓴 좀비가 등장하는 개막작, 짐 자무시 감독의 '더 데드 돈트 다이' 역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풍자가 가득하다.

제72회 칸 국제영화제는 라인업 발표부터 칸이 사랑하는 거장을 총집결시켰다. 18일까지 절반 가까운 작품이 공개된 가운데 가장 후한 평가를 받은 작품은 스페인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페인 앤 글로리'. 10개 매체의 평가를 취합해 별점을 매기는 스크린데일리 평점에서 4점 만점에 3.4점을 기록하며 유일하게 3점대를 기록했다. 르필름프랑세즈의 평점에선 15개 매체 가운데 무려 11개 매체가 최고점에 해당하는 '황금가지'를 매겼다. 오는 21일 한국영화로는 유일하게 경쟁부문에 오른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높은 기대감 속에 공개되는 가운데 어떤 반응을 얻을지 주목된다.

▲ 영화 '기생충', '악인전' 포스터
한편 경직된 분위기에도 마켓에 소개된 한국 영화들은 비교적 고른 관심을 받고 있다는 후문이다. 칸영화제 공식부문에 초청된 작품들이 일단 한국영화의 얼굴 역할을 하는 중이다. 봉준호 송강호의 '기생충'은 이미 세계적 관심이 쏠린 기대작. 오는 22일 칸영화제에서 월드 프리미어를 가진 뒤 23일 마켓 상영에 들어가는 등 해외 세일즈에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이미 100개국 넘게 선판매된 마동석의 '악인전' 또한 '부산행', '신과함께' 등으로 높은 해외 인지도를 자랑하는 마동석표 액션영화로 마켓의 주목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이밖에도 프랑스 원작을 바탕으로 유서깊은 영화사 고몽이 함께 해외 세일즈에 나선 이성민 주연의 스릴러 '비스트', 이준호 주연의 로맨스 사극 '기방도령'도 바이어들의 관심이 높다. 예능 프로그램의 친근한 이미지를 바탕으로 사랑받은 배우 이광수가 출연하는 '타짜:원 아이드 잭'이나 이시언의 '아내를 죽였다' 등이 주목받는 현상도 지켜볼만 하다. 이밖에도 류준열 유해진의 '전투', 송강호 박해일의 '나랏말싸미', 최민식 한석규의 '천문:하늘에 묻는다' 등 한국 개봉을 앞둔 대작들이 칸 필름마켓의 한국 부스를 장식하며 바이어들을 유혹했다.

스포티비뉴스=칸(프랑스), 김현록 기자 roky@spotvnews.co.kr

▲ 18일(현지시간) 제72회 칸국제영화제 공식 포토콜에 나선 '투 올드 투 다이 영'의 마일즈 텔러. ⓒ게티이미지

관련기사

저작권자 © SPOTV 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