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중구, 정형근 기자 /김동현 영상 기자] "국민 여러분들이 좋은 모습으로 기억할 수 있는 위치에서 선수 생활을 마감하고 싶다. 살아있는 레전드로 남고 싶다. 스케이트 선수로서 생활은 마감하지만 앞으로 국민들의 사랑에 보답할 수 있게 노력하겠다."
‘빙속 여제’ 이상화(30)는 16일 서울 중구 더플라자 호텔에서 공식 은퇴식을 열었다.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단거리의 전설 이상화는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 여자 500m에서 5위에 오르며 한국 여자 빙속 최고 기록을 세웠다.
2010년 밴쿠버 올림픽에서는 여자 500m에서 금메달을 차지하며 한국 여자 스피드스케이팅의 역사를 새로 썼다.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에서도 여자 500m에서 우승하며 아시아 선수 최초로 올림픽 2연패를 차지했다.
이상화가 2013년 11월 미국에서 열린 월드컵 2차 대회에서 세운 36초36의 세계신기록은 현재까지 깨지지 않았다.
2018년 평창올림픽에서는 단거리 최강자로 떠오른 고다이라 나오(일본)와 치열한 경쟁을 펼쳤다. 비록 은메달을 목에 걸었지만 국민들은 최선을 다한 이상화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은퇴시기를 놓고 고심한 이상화는 평창 올림픽 이후 1년 3개월여 만에 결심을 굳혔다.
다음은 이상화와 일문일답
-은퇴 소감
스케이트 선수로서의 마지막 인사를 드리고자 이 자리를 마련했다. 15살 때 처음 국가대표 선수가 된 날이 생생히 기억난다. 2006년 토리노 올림픽 때 팀 막내로 참가했다. 빙판 위에서 넘어지지 말고 최선을 다하자고 다짐한 게 엊그제 같은데 17년이 됐다. 선수나 여자로서 많은 나이가 됐다. 17년 전 어린 나이였지만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세웠다. 세계선수권 대회 우승, 올림픽 금메달, 세계 기록 보유를 하자고 마음을 먹었고 지금까지 달려왔다. 분에 넘치는 국민들의 응원 덕분에 목표를 모두 이룰 수 있었다.
목표를 이룬 후에도 국민께 받은 사랑에 힘입어 다음 도전을 이어 갔다. 하지만 나의 의지와 다르게 무릎이 문제였다. 몸이 따라주지 못했다. 이런 몸 상태로는 최고의 기량을 보여드릴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수술을 통해 해결하려 했지만 선수 생활을 할 수 없다고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약물치료를 하며 나 자신과 싸움을 했지만 몸은 원하는 대로 따라주지 않았다. 경기를 위한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지 못해서 나 자신에게 실망도 했다. 그래서 은퇴를 결정하게 됐다.
국민 여러분들이 조금이라도 좋은 모습으로 기억할 수 있는 위치에서 선수 생활을 마감하고 싶다. 항상 빙상 여제라 불려진 최고의 모습만을 기억해주시길 바란다. 스케이트 선수로서의 생활은 마감하지만 국민들의 사랑에 보답할 수 있게 개인적으로 노력하겠다. 이 순간이 지나고 당장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되지만 다른 일도 열심히 해보려 한다. 그동안 국민 여러분과 함께 라서 행복했다. 그동안 주신 많은 사랑과 응원을 평생 잊지 않고 살겠다. 그동안 감사했다.
-언제 은퇴 결심을 했나
사실 3월 말쯤에 은퇴식이 잡혀 있었다. 막상 은퇴를 하고 은퇴식을 치르려고 하니 온몸에 와닿았다. 너무 아쉽고 미련이 남아서 좀 더 해보자는 생각으로 재활을 병행했다. 나의 몸 상태는 나만 알고 있다. 예전의 몸 상태까지 올리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생각해서 지금 은퇴를 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앞으로의 목표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30살이 될 때까지 앞만 보고 달렸다. 이제는 누구와도 경쟁하고 싶지 않다. 여유롭게 살고 싶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
2014년 소치 올림픽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당시 2013년에 세계 신기록을 세웠다. 운동선수들에게는 징크스가 있다. 세계 신기록을 세우면 올림픽 금메달을 못 딸 수 있다는 징크스가 있지만 이겨내고 올림픽 2연패를 달성했다는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
-올림픽 메달의 의미
밴쿠버 올림픽 금메달은 첫 메달이었다. 그때 3위 안에만 들자고 목표를 세웠지만 깜짝 금메달을 땄다. 소치 올림픽에서 2연패를 한 자체에 나 자신을 엄청난 칭찬을 해주고 싶다. 평창 때도 3연패라는 타이틀의 무게를 이겨내려 했는데 쉽지 않았다. 부상이 4년 전보다 커지고 있었다. 우리나라라서 긴장된 것도 있었다. 하지만 평창의 메달 색(은색)도 굉장히 예뻤다.
-고다이라 나오와 베이징에서 만나자고 했었다
지난주 금요일에 은퇴한다고 알린 뒤 나오가 깜짝 놀라서 농담 아니냐고 메시지로 물어봤다. 상황을 보자고 일단락시켰지만 오늘 기자회견을 통해서 알리게 됐다.
-부모님께 은퇴 사실을 알렸을 때 어떤 반응이었나
부모님은 운동하는 걸 계속 원하셨던 것 같다. 은퇴 날짜가 잡히기 전에도 속상해하실까 봐 말씀을 안 드렸다. 나만큼이나 섭섭해하신 것 같다. 오늘 아침에 잘하고 오라고 하셨는데 그 말 한마디에 서운함이 묻어 있었다. 부모님께서 이제 겨울에 딸의 경기를 못 본다. 차차 아쉬움을 달래 드리겠다.
-제2의 이상화를 꿈꾸는 후배 선수들이 많다. 지도자 계획이 있나
은퇴를 올해부터 고민했다. 원래 은퇴를 계획했다면 평창 때부터 미래 계획을 세웠을 것이다. 아직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차근차근 세우겠다. 내가 은퇴하면서 스피드스케이팅이 비인기 종목으로 사라지는 게 너무 아쉽다. 생각이 정리된 후 고민해야 할 문제이다. (지도자를 할) 의향은 있다.
-벤쿠버에서 함께 메달을 딴 선수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사실 (모) 태범이는 빙상을 떠나 다른 종목을 하고 있다. 같이 운동할 때가 재밌었다는 얘기를 했다. 나는 은퇴하지만 친구들은 현역이기 때문에 다치지 않고 했으면 좋겠다
-팬들이 어떤 선수로 기억하기 원하나
레전드. 살아있는 레전드로 남고 싶다고 평창 올림픽 이후 얘기했다. 스피드스케이팅 선수 중에 이상화가 있었고 그의 기록은 아직 깨지지 않았다고 기억되고 싶다.
-고다이라 나오에게 하고 싶은 말
나오와는 중학교 때부터 친해졌다. 우정이 깊다. 아직 나오는 현역이다. 정상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너무 욕심내지 말고 하던대로 했으면 좋겠다. 나가노에 놀러가겠다고 얘기했다. 조만간 찾아갈 계획이다.
-베이징 올림픽에 나갔으면 어땠을까
베이징 올림픽을 간다면 부담감 속에 떨 것 같다. 항상 1등만 하던 이미지였던 것 같다. 2등을 하면 죄를 짓는 것 같아서 평창 때도 떨었다. 준비 과정이 지금보다는 더 어려울 것 같다. 평창을 이렇게 준비했는데 결과가 은메달이라서 힘들 것 같다. 해설 위원이나 코치로 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기억에 남는 선수가 있나
2015년 2016년 시즌에 중국 선수가 성적이 좋아서 한중전이라는 얘기를 언론에서 했었다. 그 친구와 번갈아 가며 1, 2등을 다퉜다.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우승을 하는 것으로 목표를 세웠었고 마지막에 우승을 했다. 한중전과 한일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신기록이 깨지지 않았으면 좋겠나
영원히 깨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기록은 언제나 깨지라고 있는 것이다. 선수들의 기량을 보면 많이 올라왔다. 36초대 진입은 쉬워졌다. 그래도 1년 정도는 유지됐으면 좋겠다.
-선수 생활 중 가장 힘든 게 무엇이었나
마인드 컨트롤이 힘들었다. 어떻게 주변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있겠나. 많이 힘들었고 부담이 많았다. 꼭 1등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다. 계속 식단 조절도 해야 했다. 남들이 운동을 1개 할 때 난 2개를 해야 했다. 그런 점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포스트 이상화로 지목하고 싶은 선수가 있나
김민선 선수를 추천하고 싶다. 나이는 어리지만 정신력이 좋은 선수다. 나의 어렸을 때와 비슷했다. 평창에서 나보다 12살 어린 선수가 나한테 떨지 말라고 하는 게 대견스러웠다. 신체 조건도 좋다. 500m뿐 아니라 1000m까지 연습해서 최강자로 거듭나는 걸 보고 싶다.
-곽윤기, 김연아 선수에게 메시지가 왔나
사실 외국의 친구들에게 메시지를 많이 받았다. 한국의 친구들은 축하한다고 말하기 그러니까 연락하기 좀 그랬을 것이다. 오늘 공식적으로 발표하면 많은 메시지를 받을 것이라 생각한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가장 하고 싶은 일은
선수 생활을 할 때 하루에 운동을 4번 하다 보니 힘들었다. 새벽 5시에 일어나서 계속해서 짜여진 스케줄대로 운동했다. 그런 패턴을 내려놓고 싶다. 오후 3시가 되면 운동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는데 이제는 평화롭게 산책하며 지내고 싶다. 앞으로 제2의 인생을 어떻게 살지 고민할 계획이다. 잠을 편하게 자고 싶다. 알람을 끄고 편하게 잘 생각이다. 선수 이상화는 사라졌으니 일반인 이상화로 돌아가겠다.
-선수 생활 중 언제가 가장 힘들었나
평창 전이 가장 힘들었다. 링크장에 나가면 선수들이 받는 느낌이 있다. 독일에서 최고 기록을 세우고 평창으로 넘어갔다. 느낌이 달랐다. 메달을 못 따면 어떻게 하나 하는 부정적인 생각을 했다. 사실 4년 동안 잠을 잔 적이 없다. 평창 올림픽이 가장 힘들었다.
-자기관리 차원에서 한 다른 운동이 있나
자기 분야에서 최고에 있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무릎 부상으로 다른 운동을 할 수도 없었다. 이제 정말 수술을 해야 할 시점이 왔다. 몸 상태가 나아지면 다른 스포츠도 할 시점이 오지 않을까 싶다.
스포티비뉴스=중구, 정형근 기자 /김동현 영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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