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은행 위성우 감독 ⓒ 한희재 기자
[스포티비뉴스=장위동, 맹봉주 기자 / 영상 한희재·송경택 기자] "과연 여자농구에 정통센터로서 박지수(21, 198cm)만한 선수가 있었을까?"

위성우 감독은 2005년 여자농구 지도자로 발을 들인 뒤 당대 최고의 선수들과 함께했다. 신한은행에선 코치로 전주원, 정선민, 최윤아, 하은주 등을 지도했고 우리은행과 대표 팀에선 감독으로 박혜진, 임영희, 양지희, 이미선, 변연하 등과 같이했다.

그런 위성우 감독에게도 국가대표 센터이자 청주 KB를 올 시즌 통합 우승으로 이끈 박지수의 기량은 남다르게 다가왔다. 평소 선수 칭찬에 인색한 위성우 감독이지만 박지수를 얘기할 때면 "대단하다"며 높은 평가를 내렸다.

Q. 앞으로 여자프로농구는 박지현(19, 183cm)의 우리은행과 박지수의 KB가 정상을 다투는 양강체제가 될 거라 예상하는 시선이 많다.

"잘 모르셔서 하는 얘기다. 박지수를 보면 21살의 나이에 저렇게 할 수 있는 게 대단하다고 느낀다. 8년 전 아시안게임을 준비하며 박지수를 대표 팀에 뽑은 적이 있다. 그때 '아 이 얘는 아주 좋은 선수구나'라고 느꼈다. 5년 전 아시아여자농구선수권대회 때도 같이 해봤다. 여자농구 센터 계보하면 박신자, 박찬숙 선생님부터 성정아, 정은순, 정선민, 하은주까지 언급된다. 이 분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과연 정통센터로서 박지수만한 선수가 있었을까?'하는 생각은 한다. 내가 옛날 시대 선수들을 가르친 게 아니니까 잘 모를 수 있다. 하지만 박지수는 그 정도로 대단한 선수다. 남자선수들과 비교해도 그렇게 빨리 빨아들이는 선수는 보지 못했다. 내가 대표 팀에서 박지수에게 스펀지라는 별명을 붙였다. 던지면 다 습득을 한다. 한국여자농구 뿐 아니라 WNBA(미국여자프로농구)에서 아시아 선수로 큰 역할을 할 거라 생각한다.

박지현은 포지션부터 박지수와 다르다. 센스는 좋지만 농구는 높이 싸움이다. KB는 박지수가 있어 우승할 수 있었다. 박지수는 외국선수와 대등하게 맞설 수 있지만 박지현은 아직 아니다. 물론 기존 신인 선수들이나 언니들 보다 성장가능성은 엄청 높다. 하지만 양강체제로 가기엔 시간이 조금 걸리지 않을까 싶다. 너무 예쁘게 봐준 것 같다. 냉정하게 보면 시간이 더 걸린다. 다만 워낙 좋은 몸을 가지고 있고 센스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열심히 가르치고 본인이 노력하면 2, 3년 뒤엔 팀의 중심으로 올라 설 것이다. 박지수, 박지현이 앞으로 국제대회에서 한국 대표 팀을 이끈다는 건 두말 할 필요 없다."

▲ 한국 여자농구의 두 미래, 박지수와 박지현(왼쪽부터). 올 시즌 여자프로농구 시상식에서 박지수는 MVP(최우수선수), 박지현은 신인선수상에 선정됐다 ⓒ WKBL
Q. 감독 위성우는 유명하지만 선수 위성우는 많이 모른다. 처음 농구를 하게 된 계기는 어떻게 되나.

"농구 선수들은 보통 비슷하다. 나도 키가 크다는 이유로 선수를 시작했다. 초등학교, 중학교 때 우승을 했지만 그리 돋보이는 선수는 아니었다. 농구는 5명이 다 잘할 수도 있지만, 누구 하나 못하더라도 팀에 꼭 필요한 선수는 있기 마련이다. 내가 농구라는 스포츠를 좋아하는 이유다. 지도자로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이기도 하다. 빛나는 선수를 보며 "난 왜 저렇게 잘하지 못할까?"라고 낙담하기보단 묵묵히 자기 할 것을 하는 게 중요하다. 5명이 다 잘한다고 득점 1위하고 우승하는 건 아니지 않나? 나는 그런 틈새시장을 노린 것 같다. 내가 살아남기 위해 뭘 해야 될까 찾았다. 선수로서 이름을 날리진 못했지만 팀이 필요로 하는 선수가 되자고 마음먹었다. 35살까지 선수생활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치였다."

Q. 선수 은퇴를 하고 곧바로 신한은행 코치가 됐다. 여자농구 지도자로 발을 디딘 계기는?

"사실은 운동을 2년 더 하려고 했다. 오라는 팀도 있었다. 특히 마지막 시즌엔 거의 경기를 못 뛰어서 코트에 보여준 게 없었다. 이대론 아쉬워서 나를 원하는 팀에 가려고 했다. 하지만 마침 신한은행에서 지도자 제의가 왔다. 고민을 많이 했다. 내가 그 순간에 선택을 잘했다고 생각한다. 여자농구는 생소했다. 경기를 많이 본 적도 사실 없다. 여자선수를 어떻게 가르쳐야할지 불안했다. 하지만 지도자로서 한 번 도전해보자는 마음에 선택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가장 잘한 선택이었다."

Q. 여자농구 지도자들에게 가장 자주 듣는 얘기가 있다. "여자농구와 남자농구는 다르다"는 말이었다. 도대체 여자농구와 남자농구는 무엇이 다르다는 말인가?

"우리가 남자선수 출신이라서 다르다는 표현을 하는 것 같다. 기술적으로 얘기하면 힘 있게 하는 플레이를 여자는 남자만큼 하지 못한다. 나도 처음엔 "왜 이걸 못하지?"하면서 접근했다. 또 선수들과 동성이 아니라 이성관계인 것도 다르다고 말하는 주된 이유일 것이다. 특히 심리적으로 여자를 잘 이해하지 못할 때가 있다. 내가 14, 15년을 여자농구에 있었지만 아직도 모르는 게 있다. 이런 점에서 남자 지도자가 여자농구를 어려워하는 것 같다."

Q. 예민하고 섬세한 성격이 여자선수들을 지도 하는데 도움이 됐을 것 같다.

"그런 게 없잖아 있다. 내가 훈련할 때는 강하게 하는 스타일이지만, 그 외적으로는 감성적으로 여자 선수들을 이해하려고 한다. 처음엔 시행착오도 겪고 선수들과 안 좋은 트러블도 있었다. 그러면서 '아 이런 식으로 접근하면 안 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농구장을 벗어나면, 나이 차가 얼마 안 나는 선수는 동생같이 생각한다. 최근 들어온 어린 선수는 딸같이 대하려 한다. 경험이 쌓이다 보니 여자선수들을 지도하는 노하우가 생긴 것 같다."

▲ 위성우 감독은 시간이 지날수록 선수를 지도하는 방법, 스트레스 푸는 법 등에서 노하우가 쌓인다고 말한다 ⓒ 한희재 기자
Q. 술과 담배를 안 한다. 평소에 스트레스를 어떻게 푸는지 궁금하다.

"많이 받는 질문이다. 나이를 먹다보니까 스트레스 푸는 법에도 노하우가 생겼다. 체육관을 걷거나 영화를 보거나 가족과 시간을 보낸다. 내 시간을 찾으려고 한다. 또 농구 생각을 덜 하려고 한다. 처음 지도자할 때만 해도 농구장 안에서나 밖에서나 농구 생각만 했다. 그러다보니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았다. 주위에서도 그렇게 하면 나중에 주저앉는다고 걱정하더라. 유재학 감독님이 너무 농구생각만 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Q. 감독으로서 전략, 전술을 짤 때 어디서 영감을 받는가?

"여자농구는 전략, 전술을 짜기 쉽지 않다. 선수들이 한정되어 있고 외국선수도 특급 기량을 갖춘 선수는 오지 않는다. 큰 틀에선 전략, 전술을 짜지만 많은 변화는 안 주려고 한다. 변화를 주면 선수들이 혼란스러워 성적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다. 우승을 많이 하면서 내가 너무 한 방식에 얽매여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늘 우승하니까 그동안 시즌 끝나고 훈련 방식도 똑같았다. 일종의 징크스라고 해야 할까. 나도 그렇고 선수들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이번에는 훈련 방식부터 다르게 준비하려고 한다."

Q. 농구 말고 좋아하는 스포츠가 있나?

"농구 외에 다른 스포츠는 크게 좋아하지 않는다. 다른 종목은 적성에 안 맞는다. 또 스포츠는 스포츠로서 즐겨야 하는데 그러질 못한다. 모든 스포츠는 다 흐름이라는 게 있다. 다른 종목의 스포츠를 볼 때마다 '이 종목은 이런 흐름이 있구나'라며 나도 모르게 연구하면서 본다."

▲ 위성우 감독의 호통은 우리은행의 에이스 박혜진도 피해갈 수 없다 ⓒ WKBL
Q. 코트 안에서 위성우 감독은 그 누구보다 무서운 '독사'로 변한다. 위성우 감독을 화 많이 내고 무서운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농구 팬들이 많다.

"농구장에만 들어오면 다른 사람이 되는 것 같다. 나도 스트레스다. 내 자신이 싫을 때가 많다. 가끔은 선수들 탓으로 돌린다. 선수들이 열심히 안 하니까 내가 이렇게 화를 내는 거라고. 수박 겉 핥기식으로 운동하는 건 쉬는 것보다 못하다. 열심히 가르치지 않는 건 감독이라는 내 직업으로 봤을 때도 소임을 다 못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선수들에게 화내고 혼내는 모습이 자주 나온다."

Q. 가족들은 코트에서 화내는 위성우 감독의 모습을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이나?

"가족들은 싫어한다. 집사람과 경기 전 항상 통화한다. 그때 집사람이 하는 얘기가 "화내지마"다. 나도 스트레스다. 난 중계방송으로 우리 팀 경기를 다시 안 본다. 화를 내는 내 모습이 너무 싫기 때문이다."

Q. 화를 내지 않으면 되는 것 아닌가.

"너무 경기에 몰입하면 그게 쉽지 않다. 한편으론 내가 아직 완성된 감독이 아니라서 그런 것 같다. 내 마음을 컨트롤 하면서 경기에 집중해야 하는데 경기에 너무 몰입해 버린다. 화를 일부러 안 내본 적도 있었다. 언젠가부터 나도 모르게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를 의식하게 되더라. 선수들한테 호통 칠 때 특히 신경이 쓰인다. 내가 화내는 모습으로 인해 팀 이미지가 안 좋아진다 생각하면 스스로 위축된다. 그래도 감독 7년 차를 맞으면서 옛날보다 조금은 나아졌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지나면 더 좋아지지 않을까? 물론 선수들이 못할 땐 야단을 쳐야하지만 심하게 말하는 건 절제해야한다고 다짐한다."

Q. 가정에서는 고3 수험생 딸을 둔 아버지다. 딸에게 아버지 위성우는 어떤 사람일지 궁금하다.

"무서워한다(웃음). 엄마한테 버릇없게 하면 호되게 혼을 낸다. 집을 자주 못가기 때문에 한 번 혼낼 때 따끔하게 한다. 두루뭉술하게 혼내면 하나마나다. 또 공부보단 예의를 강조한다. 선수들에게도 농구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얘기하는 게 예의다. 그래서 딸한텐 항상 무서운 아빠라는 이미지가 있는 것 같다. 살갑게 다가가려 하지만 그런 점에선 미안하다."

Q. 우리은행 신인 선수들과 딸의 나이 차이가 얼마 안 난다. 과거와 지금 여자농구 선수들을 보는 시선이 달라졌을 것 같은데.

"다르다. 2, 3년 전부터 신인 선수들이 팀에 오면 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접근하니 혼을 내는 게 부담스럽다. 예전 같으면 조금만 버릇없는 행동을 해도 짚고 넘어갔는데 요즘은 모른 척 하거나 코치, 고참 선수들에게 돌려서 말한다. 나도 나이가 드니까 싫은 얘기는 직접적으로 안 하게 되더라. 예전엔 하나부터 열까지 눈에 거슬리면 다 말했었다."

▲ 위성우 감독은 아직 남자농구 지도자를 맡을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 한희재 기자
Q. 여자농구에서 이룰 건 다 이뤘다. 남자농구에 도전하고 싶은 생각은 없나?

"그릇이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남자농구에서 지도자 생활을 처음부터 했다면 모르지만, 난 처음부터 여자농구만 15년을 했다. 남자농구 경기를 보면서 '내가 남자농구에 가면 어떨까?'라는 생각은 한다. 하지만 자신은 없다. 남자농구는 선수 관리부터 여자농구와 다르다. 접근하기 쉽지 않다. 또 내가 모험을 좋아하지 않고 호탕한 성격도 아니다. 고함은 지르지만 소심하다. 여자농구 지도자 생활을 시작해 지금에 이르기까지 이렇게 다져놨는데 다시 도전을 하고 싶지는 않다. 개인적으로 걱정이 되고 남자농구 팀에는 잔뼈가 굵은 사람도 많다. 남자농구에서 감독들이 수를 쓰는 걸 보면 대단하다고 많이 느낀다. 또 난 남자농구 선수를 잘 모른다. 남자농구는 너무 낯설다. 똑같은 농구지만 접근이 두려운 게 사실이다. 언젠가 기회가 되고 연륜이 더 쌓이면 도전하겠지만, 현재는 남자농구 팀을 맡을 자신이 없다."

Q. 끝으로 여자농구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선수들한테 너무 심한 말을 하는 분들이 있다. 댓글이 대표적이다. 남자인 나는 대충 넘어갈 수 있지만, 여자선수들은 그렇지 않다. 작은 거에 신경 쓰고 엄청 상처를 받는다. 우리 팀 선수에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다른 팀 선수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너무 자극적이고 상처가 될 말들이 있다. 농구를 못하고 싶은 선수는 없다. 다 잘하고 싶지 못하고 싶은 선수가 어디 있겠나. 본의 아니게 못할 수 있고 컨디션에 따라서도 부진할 수 있다. 하지만 선수들에게 상처를 주면 다시 일어나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선수가 못해서 진 다음 날 아침에 보면 눈이 팅팅 부어있다. 본인이 속상해서 울기도 했지만 알고 보면 댓글 보고 영향을 받은 경우가 많다. 그래도 여자이지 않나. 스포츠 선수를 떠나 여자다. 여자로 접근해서 그런 점은 자제해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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