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방이동, 박대현 기자 / 배정호 영상 기자] "빙상계 논란이 일 때마다 이름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제가 오래 지도자 생활을 했고 (그 기간에 가볍지 않은) 역할을 맡았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모르쇠와 호소를 오갔다. 전명규(56) 한국체대 교수는 "자세한 내막을 몰랐다"거나 "책임을 통감한다"는 말을 자주 했다.

21일 기자회견에서 전 교수는 젊은빙상인연대(이하 빙상연대)가 제기한 모든 의혹을 부인했다. 수비만 하지 않았다. "저의가 의심된다"며 맞불을 놨다. 

대한항공 취업 청탁과 '옥중편지' 논란, 심석희 기자회견 무마 등 자신을 향한 여러 의혹을 일체 부정했다.

빙상연대는 전 교수에 앞서 빙상계 성폭력 추가 폭로 기자회견을 열었다. 여준형 빙상연대 대표는 "심석희 외에도 피해자가 더 있다. 약 2개월 전부터 의혹을 접수해 사실관계를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더불어 최근 이 같은 폭로를 무마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며 그 배후로 전 교수를 지목했다.

▲ 전명규 한국체대 교수가 21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 곽혜미 기자
양쪽 말이 첨예하게 갈린다. 사실을 밝히는 건 수사권을 쥔 이들 몫이다. 시간이 흐르면 진위가 가려질 터.

본질을 봐야 한다. 핵심은 '전명규 1인 권력' 체제다. 대부분 문제가 한 사람이 수십 년간 권력을 독점해온 기형적인 구조에서 비롯됐다.

피해자 연대도 중요하고, 위법을 가리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보다 막중한 건 목표다. 목표는 반복을 막는 일이다. 열흘 전 용기 있는 고백은 10년 전에도 있었다. 더는 고백하지 않아도 될 세계를 구축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반복을 막기 위해선 구조에 눈을 둬야 한다. 자정 능력이 있다면 모르되, 없다면 외부에서 매스를 대더라도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체육계 파벌 해체가 폭력 근절 첫단추다.

이번 폭로도 같은 맥락이다. 폭력은 최종 결과물이다. 십수 년간 특정인에게 권력이 집중될 때 나타난 부작용 중 하나다.

빙상연대 자문을 맡은 박지훈 변호사는 21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전 교수가 틀어쥔 빙상계 권력 구조를 비판했다.

그는 "체육계에는 독특한 질서가 있다. 수십 년간 한 사람이 권력을 독점하는 기현상이 당연한 상식으로 기능한다. 특히 빙상계에선 전 교수가 차르(황제)다. 그분이 모든 걸 관장한다. 아주 작은 부분 하나 하나까지"라고 말했다.

이어 "(한국 빙상계는) '전명규 사단'에게 어떻게 보이느냐가 정말 중요한 세계다. 그 사단 눈에 드느냐에 따라 선수 앞길이 달라진다. 지도자도 마찬가지다. 일단 (전명규 사단) 눈에 들면 일사천리다. 어떠한 잘못을 해도 컴백이 가능하게 되는 구조"라고 덧붙였다.

이른바 전 교수 중심 '한체대파'와 반대쪽인 '비체대파'로 나뉘어져 있는데 전명규 라인이 중앙을 꽉 잡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빙상계 시스템은 바로 저 기이한 구조에 기생해 왔다. 무대 밖 관객에겐 보이지 않는 속살을 지닌 시스템이 '빙상 강국 코리아'와 메달 수를 투명 망토로 걸쳤다. 자유로이 활보했다.

올림픽 효자 종목이란 효율성 앞에 모두가 면밀히 들여다 볼 생각조차 못했다. 보안이 완벽히 유지된 외벽을 한국사회 스스로가 세워준 꼴이다. 

그 사이 무대 위에 선 배우, 즉 선수들은 폭력과 불합리에 신음했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고 한다. 시스템도 마찬가지다. 때론 분해하고 원점에서 조립하는 게 현답일 수 있다.

선장이라고 배 안 사정을 속속들이 알 순 없다. 모르쇠로 일관한다는 비판을 받긴 하나 전 교수가 정말로 내막을 인지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책임을 비껴갈 순 없다. 19세기 영국 역사가가 남긴 말은 그래서 현재에도 유효하다.

"권력은 부패하는 경향이 있고,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누군가는 새겨들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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