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인천, 이재국 기자] 'SK 왕조'의 혈통을 이어온 역전의 용사들이 다시 뭉쳤다. 2018년 가을야구에서 베테랑의 품격을 제대로 보여준 박정권(37)과 김강민(36)이 '삼겹살 데이트'를 통해 진솔한 대화를 나눴다. 야구계에서도 소문난 입담꾼들인 둘은 삼겹살을 구워 가며 SK 우승의 뒷얘기와 내면의 이야기들을 솔직하게 들려줬다. 15일자 <①편>"우승의 영광, 씻을 수 없는 '흑역사'", <②편>"Mr.옥터버 별명 싫었었다"에 이어 16일자에 <③편>과 <④편>을 전한다. <④편>에서는 #4. SK 왕조, #5. 정권이 내, #6. 다음시즌을 주제로 얘기했다.


#4. SK 왕조

과거 SK는 불펜, 수비, 작전 등 짜임새 있는 야구를 통해 왕조를 구축했다. 1회부터 번트로 시작하고, 1회부터 투수를 교체하는 일도 다반사였다. 스몰볼과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야구가 트레이드마크였다. 그러나 이제 SK는 호쾌한 홈런의 야구로 가고 있다. 지난해 팀홈런 234개로 KBO리그 역사상 최고 기록을 세웠고, 올해도 1개가 모자란 233개의 팀홈런을 기록했다. 이번 한국시리즈에서도 SK는 홈런 8개로 두산(3홈런)을 압도했다. 그러나 올 시즌 10개 구단 중 두 번째로 많은 실책(116개)을 기록하는 등 수비와 작은 야구에서 허점이 보이기도 했다.

박정권은 이에 대해 "홈런공장 그런 게 부각이 되다보니까, 조금 수비나 디테일적인 부분이 부족하다고 상반된 시각으로 보시는 분들이 굉장히 많더라"면서 "선수들도 그런 걸 다 자각하고 있다. 새로 부임하신 염경엽 감독님이 워낙 디테일을 강조하시는 분이니까, 지금 같은 방망이에 수비나 이런 부분이 보완되면 제2의 왕조가 시작될 수 있지 않을까"라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SK는 2010년 이후 8년 만에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며 왕조 재건의 길을 다시 열었다. 논공행상을 한다면 박정권과 김강민을 빼놓을 수 없다. 겉으로 드러난 기록뿐 아니라 승부의 고비에서 분위기를 끌어오는 결정타들은 가치를 매기기 힘들 정도로 컸다.

▲ [스포티비뉴스=잠실, 한희재 기자] 두산 베어스와 SK 와이번스 2018 KBO리그 한국시리즈 1차전이 4일 오후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렸다. 6회초 1사 2루, 두산 선발투수 린드블럼을 상대로 역전 투런포를 날린 SK 박정권이 환호하고 있다.

그래서 물어봤다. '이번 우승에 자신의 지분은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느냐'고. 박정권은 "한 10%만 하겠다. 10%만. 난 욕심 없다. 그래도 스스로 생각해보면 10% 정도는 있지 않나"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김강민은 "내갈 볼 땐 정권이 형이 좀 겸손하게 얘기하는 건데, 시작이 반이지 않나. 1차전에서 두 번 다 홈런 쳤다. 결승홈런이고. 50%씩 가져가도 된다"며 높은 평가를 했다.

단기전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1차전. 그런데 박정권이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끝내기 홈런을 날리고,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도 결승 홈런을 터뜨렸다. '시작이 반'이라는 김강민의 논리는 어떤 면에서 보면 그럴싸하다.

박정권은 "야, 어떻게 하려고 그래? 내가 다 가져가면"이라면서 손사래를 치더니 "네가 한 20%만 해. 내가 10%"라며 정리를 하려고 했다. 김강민은 "난 10%? 5%?"라고 말하더니 "플레이오프 때는 내가 생각해도 잘했다. 한국시리즈 때는 체력도 떨어지고 한 게 없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그러자 박정권은 김강민을 향해 "이 친구가 너무 잘 해줘서 내가 고참으로서 묻혀가는 그런 느낌도 있다. 나도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는데 워낙 강민이가 잘해줬다"며 아우를 치켜세웠다.

‘형님먼저, 아우먼저’ 식의 훈훈한 덕담이 오고간 뒤 김강민은 "확실한 건 한국시리즈고 플레이오프고 내가 생각한 것보다 우리 어린 선수들이 정말 잘했다. 진짜 잘했다"며 후배들을 칭찬하는 것으로 지분을 정리했다.

▲ [스포티비뉴스=인천, 곽혜미 기자] 2018 신한은행 MY CAR KBO 포스트시즌 SK 와이번스와 넥센 히어로즈의 플레이오프 1차전이 27일 오후 인천 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렸다. 4회말 1사 1루 상황에서 SK 김강민이 투런포를 날리고 더그아웃을 바라보고 있다.

#5. 정권이 내

이번 포스트시즌 내내 유행한 말이 있다. '정권이 내'라는 네 글자. 처음엔 박정권 기사 댓글에 들불처럼 번지더니, 나중엔 관중석에 ‘정권이 내’라는 플래카드가 등장하기까지 했다. 처음 듣는 사람이라면 무슨 뜻인지 모를 수밖에 없는 말이었다.

혹시 당사자는 이에 대해 알고 있었을까. 박정권에게 물어보자 "필요하거나 중요한 순간이 되면 ‘정권이를 내라’ 이런 뜻"이라며 웃었다. 그 역시 처음엔 무슨 뜻인지 몰랐지만 지인이 알려줬다고 한다.

'정권이 내'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시작된 것으로, 한 팬이 2020년에 벌어질 미래 이야기를 소설로 쓰면서 비롯됐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2020년 한국시리즈에서 3승3패로 맞선 7차전. SK는 1-4로 끌려갔다. 9회말 마지막 공격에서 2사 만루 마지막 찬스가 이어졌다. 덕아웃의 박경완 감독의 한마디. "정권이 내." 시즌 후 예고은퇴를 선언한 박정권을 마지막 찬스에서 대타로 꺼내든 것이었다. 박정권은 껌을 짝짝 씹으며 타석에 들어섰다. 볼카운트 3B-2S 풀카운트에서 6구째를 받아쳐 역전 끝내기 만루홈런을 날린다. 그리고 이듬해 그의 등번호 36번은 영구결번으로 남게 된다.

박정권이 이 소설에서 가장 반긴 대목은 2020년. "정말 좋겠네. 2020년에~"라며 파안대소를 하더니 "그런 게 이름만 바꿔서 '강민이 내'도 되고, '누구누구 내' 그런 게 많더라"며 웃었다. 자신이 부진할 때는 "정권이 빼"가 나오기도 했다고 소개했다.

#6. 다음시즌

2018년은 이제 끝났다. 12월이 지나고 나면 이제 본격적으로 새 시즌을 준비해야한다. 2019년 목표는 무엇일까.

김강민은 "안 다치고 싶다. 이제는 다치면 은퇴와 직결돼서 그냥 한 시즌 잘 했으면 좋겠다"면서 "올해 우승했으니까 내년에도 우승하고 싶은 마음은 당연한 거고. 올해 80경기 정도 나갔는데, 올해보다 잘 했으면 좋겠지만 더 욕심 안 내고 올해 정도만 하면 좋겠다. 준비 잘 하겠다"고 다짐했다.

올 시즌 2군 강화도 생활이 길었던 박정권은 "문학구장에 오래 있고 싶다. 큰 게 아니더라도 작은 것이나마 함께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박정권과 김강민은 이제 전성기를 지났다. 나이가 들수록 세월은 더 빠르게 느껴진다. 선수생활의 종착역이 언제 다가올지 모른다. 그래서 유니폼을 입고 있는 하루하루가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이들은 어떤 선수로 남고 싶고,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을까.

박정권은 "열심히 한 선수, 소나무처럼 항상 묵묵히 그 자리에 있었던 선수가 되고 싶다"면서 "든든해 보이지 않나. 소나무 같은 선수? 괜찮나? 어울리나? 나이가 꽉 찬 그런 노송"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SK를 든든하게 지켜왔던 선수"로 기억된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다는 뜻이었다.

김강민은 "난 그냥 (SK 왕조 시절에) 짐승 같은 선수가 하나 있었다고 기억되면 좋겠다, 그런 기억 한 조각 정도 있으면 내가 지금까지 야구한 게 헛된 건 아니다. 큰 건 없다. 그 정도면 된다"면서 "나중에 시간이 지나서 야구를 그만뒀는데도 그렇게 추억하는 사람들만 있어도 성공한 선수로서의 삶이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끝>

▲ SK 박정권(가운데)과 김강민(오른쪽)이 스포티비뉴스 이재국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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