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일러 머레이. 오클라호마대학 미식축구 쿼터백이자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의 외야수 유망주.

[스포티비뉴스=신명철 기자] 스포티비뉴스 신원철 기자의 10일 자 “대학 최고 풋볼 선수 오클랜드 캠프 간다…제2의 보 잭슨” 제하 기사는 흥미로운 내용을 담고 있다.

기사를 요약해 소개한다.

제2의 보 잭슨이 나타났다. 전미 최고 대학 미식축구 선수에게 돌아가는 헤이즈먼 트로피를 받은 카일러 머레이(오클랜드)가 내년 스프링캠프에 참가해 야구로 프로 선수 커리어를 시작한다.

그의 에이전트인 스캇 보라스는 "머레이는 오클랜드 스프링캠프에 참가한다"고 밝혔다. 머레이는 위에서 4위에 오른 특급 재능이다. 미식축구로 대학을 평정했고, 야구 선수로도 올해 10개의 홈런을 때렸다.

MLB.com '컷4'에 따르면 머레이는 빅 자노비츠와 보 잭슨에 이어 3번째로 헤이즈먼 트로피를 받은 메이저리거에 도전한다. 이 분야의 최고 권위자는 역시 잭슨이다. 메이저리그 올스타와 NFL 프로볼(올스타) 경력을 가졌다.

기사에서 말한 ‘이 분야’는 두 종목에 걸쳐 모두 잘하는 ‘양수겸장’의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

고시엔 구장에 잊을 만하면 ‘괴물’이 나타나듯이 미국 스포츠에서는 두 종목에 걸쳐 정상급 경기력을 보이는 선수가 이따금 나와 스포츠 팬들의 얘깃거리가 되곤 한다.

이 분야의 대표적인 사례는 1980년 레이크플래시드 겨울철 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전관왕(500m 1000m 1500m 5000m 1만m) 에릭 아서 하이든이다. 육상경기로 치면 100m부터 마라톤까지 휩쓴 하이든은 500m~5000m에서는 올림픽 신기록, 1만m에서는 세계신기록으로 금메달을 차지했으니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매우 뛰어난 빙속 선수였다.

그런데 하이든은 1984년 자국에서 열린 로스앤젤레스 여름철 올림픽에서 미국 사이클 선수단 명예 감독으로 활동했다. 여기에는 특별한 사연이 있다. 하이든은 어릴 때부터 미식축구 아이스하키 등 여러 종목의 운동을 했는데 여름철에는 스피드스케이팅에 도움이 되는 사이클을 탔다. 1936년 제11회 베를린 여름철 올림픽 축구 종목에 출전한 김용식 선생이 겨울철에는 한강에서 열린 스피드스케이팅 대회에 출전해 다릿심을 기른 것과 같은 맥락이다.

하이든은 1980년 레이크플래시드 겨울철 올림픽을 마치고 곧바로 얼음판을 떠나 사이클에 도전했지만 같은 해 열린 모스크바 올림픽 미국 국내 선발전을 통과하지 못했다. 출전권을 땄더라도 미국이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대한 항의로 대회에 불참해 동·하계 올림픽에 모두 출전하겠다는 꿈은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이든은 이에 좌절하지 않고 1985년 전미프로사이클선수권대회에서 우승했다. 동·하계 올림픽에서 모두 메달리스트가 된 데 버금가는 업적을 이뤄 냈고 사이클 쪽에서도 일할 수 있는 경력을 쌓았다.

하이든은 미국의 '유아 스포츠 계획'에 따라 5살 때부터 체계적으로 키워져 세계적인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로 성장했다. 운동을 열심히 하는 가운데 공부도 게을리하지 않았고 스포츠맨십을 훌륭하게 배웠다.

레이크플래시드 올림픽 전관왕 이후 수백만 달러의 각종 광고 계약과 모델 섭외가 밀려 들어왔으나 하이든은 이를 단호히 거절했다. 요즘의 시각으로 보면 신기해 보일 정도의 일이지만 그 시대에 하이든은 아마추어 스포츠맨의 본보기가 됐다. 하이든은 은퇴한 뒤 정형외과 전문의로 활동하고 있다.

미국 프로 야구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시절 김병현의 동료인 장신 투수 랜디 존슨은 남캘리포니아대학교를 다닐 때 농구 장학금을 받았다. 청소년들의 스포츠 활동이 세계 최고 수준인 미국의 경우 여러 종목에서 재능을 보인 선수들은 프로 스포츠에 진출해서도 시즌에 맞춰 양다리를 걸쳐 놓는다.

보 잭슨(야구=캔자스시티 로열스 미식축구=오클랜드 레이더스)과 디온 샌더스(야구=신시내티 레즈 미식축구=댈러스 카우보이스)가 이런 유형의 대표적인 선수이다.

2010년 밴쿠버 겨울철 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0m 동메달리스트인 클라라 휴즈(캐나다)는 이 메달이 동계와 하계 올림픽에서 딴 여섯 번째 메달이었다. 휴즈는 1996년 애틀랜타 여름철 올림픽에서는 사이클 도로경기와 타임 트라이얼에서 동메달을 차지했다. 겨울철 올림픽에서는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대회에서 5000m 동메달, 2006년 토리노 대회에서 5000m 금메달과 단체 추발 은메달을 획득했다.

에드워드 이건(미국)은 동·하계 올림픽에서 처음으로 메달을 딴 선수이자 동·하계 올림픽 유일의 금메달리스트이다. 이건은 1920년 앤트워프 여름철 올림픽 복싱 라이트헤비급에서 금메달을 차지했다. 이건은 12년 뒤인 1932년, 이번에는 동계 종목에 도전했다. 레이크플래시드 겨울철 올림픽 봅슬레이에서 금메달을 땄다. 동·하계 올림픽 메달을 딴 선수는 휴즈와 이건 외에도 여럿 있다.

상당수의 선수들은 자신의 주 종목이 아닌 종목에서도 일정한 수준 이상의 실력을 발휘한다. 타고난 운동신경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태릉선수촌 시절 역도 선수들이 축구 경기를 하는 걸 본 적이 있는데 볼 다루는 기술이 수준급이어서 놀란 기억이 있다.

국내에서도 예전에는 이런 유형의 선수가 많았다. 전국 규모 고교 야구 대회에서 타격을 가장 잘한 선수에게 주는 이영민 타격상의 주인공인 이영민 선생은 1928년 조선인으로는 처음으로 경성운동장(이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동대문운동장의 옛 이름)에서 홈런을 때린 뛰어난 타자이자 투수이면서 1933년 창단한 경성축구단 멤버였다. 그 무렵에는 한 선수가 야구·축구는 물론 육상경기·럭비 등 서너 개 종목을 하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그런데 요즈음에는 양수겸장 선수를 보기 힘들다. 왜 그럴까.

무엇보다 즐기는 스포츠가 아니기 때문이다. 청소년 시절 학업과 함께 운동을 즐겨야 하는데 우리나라의 교육 환경은 그렇지 못하다. 이런 여건을 만들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데 그보다 앞서 일선 지도자를 비롯해 체육 관계자들이 풀어야 할 숙제가 있다.

사회 전반에 퍼져 있고 체육계에도 있는 '올인' 현상이다. 아이들에게 자기가 가르치는 종목만 하게 한다거나 다른 종목에는 출전하지 못하게 한다거나 하는 일들이다. 믿기 힘든 일이지만 체육 일선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현상이다. 당연히 지양해야 할 일이다.

‘양수겸장’ 외국 선수들, 특히 미국 선수들을 부러워할 게 아니고 한국 스포츠도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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