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슈투트가르트전 선수들을 격려하는 차범근 전 감독.

[스포티비뉴스=프랑크푸르트(독일), 유현태 기자] 출국하기 전 교환 학생으로 한국에 체류하는 20살의 독일 출신 대학생을 만났다. 그 청년에게 '붐쿤차'를 아냐고 물었다.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어보이던 그는 '차두리'라는 이름은 안다고 대답한다. 비교적 최근 함부르크에서 뛰었던 손흥민, 현재 함부르크에서 뛰는 황희찬은 아주 잘 안다고 한다. 그에게 한국 축구란 손흥민, 황희찬으로 기억되고 있다.

장강후랑추전랑(長江後浪推前浪). 중국 춘추전국시대부터 있던 말이란다. 아시아에서 가장 긴 양쯔강(揚子江)의 앞 물결도 뒤따라오는 물결에 밀릴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정점에 섰던 인물도 시간의 흐름 속에선 결국 후배들에게 자리를 내준다는 뜻이다. 앞서 흐른 물은 떠나가지만 새로운 물은 그 뒤를 따라 흐른다. 

한국 축구엔 앞서 큰 물결을 일으킨 인물이 있다. 바로 차범근 전 국가대표팀 감독이다. 1980년대는 바야흐로 '차붐의 시대'였다. SV다름슈타트, 바이엘 레버쿠젠과 아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에서 뛰는 '갈색 폭격기'는 독일 분데스리가에서만 308경기에서 98골을 넣었다. 그 가운데 페널티킥은 하나도 없다. 프랑크푸르트에서 각각 DFB포칼과 UEFA컵 우승을 한 번씩 차지했고, 레버쿠젠 유니폼을 입고 UEFA컵에서 한 차례 우승했다. 세계 축구계에선 변방으로 알려졌던 한국 축구는 선수 차범근을 통해 알려졌다.

2018년 현재 독일의 젊은이는 선수 차범근을 잘 알지 못한다. 그렇다고 해도 잊혀지는 것은 아니다. 차 전 감독은 비록 축구화를 벗고 지도자를 거쳐 해설위원으로도 활약하지만, 그가 남긴 유산은 뒤에 고스란히 남았다.

먼저 '길'을 만들며 지나간 이가 있기에 현재의 선수들도 존재한다. 현재 독일 분데스리가엔 구자철과 지동원이 활약하고 있다. 이재성, 이청용, 황희찬을 비롯해 새로운 도전을 하는 선수들이 분데스리가2에 있다. 아들인 차두리 전 축구 대표팀 코치를 비롯해 이영표, 안정환, 손흥민, 박주호, 지동원, 김진수 등도 모두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뛰었다. 차 전 감독이 만든 길을 더 확고하게 다진 이들이다.

▲ 차범근 전 감독과 구자철이 만났다.

길은 반복적으로 사람들이 오고가야 만들어진다. 그래서 처음 가는 길은 더 어렵고 험하다. 차 전 감독은 그렇게 험난하게 쌓은 경험과 자산을 후배들과 나누고 싶은 것이 아니었을까. 이제 '팀차붐'이란 이름으로 한국은 물론 아시아 전역의 유망주들에게 선진 축구를 보여주는 것이 한국 축구를 넘어 아시아 최고의 선수로 꼽히는 차 감독의 새로운 사명이 됐다.

'팀차붐 프로젝트'는 차 전 감독이 아시아 유소년 축구의 동반 성장을 위해 올해 여름 중국 선전(심천)에서 출범했다. 2017년 29회 차범근 축구상 수상자들로 팀을 꾸려 '팀차붐' 1기 프로젝트가 진행됐다. 이번 '팀차붐 플러스'는 중학교 3학년 학생들로 팀을 꾸렸다.

"(팀차붐플러스 선수에게) 너희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신이 나. 이렇게 보고 난 것을 경기에서 한번 해볼 수 있잖아. 난 이런 경험을 못 해보고 컸어. 경기를 잘해도 늘 두려웠어. 한국인 혼자 독일에 와서. 너희들에겐 선배들이 있잖아." (차범근 전 감독)

지난 10일 차 전 감독은 팀차붐플러스 선수들을 이끌고 호펜하임의 홈 구장 라인넥카아레나를 찾아 호펜하임과 아우크스부르크의 경기를 지켜봤다. '팀차붐플러스'는 독일 축구를 경험하기 위해 한국에서 날아온 16명의 중학생 유망주들이다. 팀차붐은 수준 높은 분데스리가, 그리고 그 가운데 활약하는 구자철을 눈앞에서 체험했다.

사실 '팀차붐 프로젝트'는 '길을 보여주는 것'이 가장 큰 목표다. 팀차붐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올리브 크리에이티브 정의석 대표는 "차 전 감독님은 어린 선수들에게 동기부여가 되길 바라셨다"고 말한다. 독일에서 얼마간 시간을 보낸다고 해서 경기력 측면에서 큰 변화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은 차 전 감독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는 분데스리가의 뜨거운 경기장 분위기와 팬들, 거액의 연봉을 받는 스타플레이어는 없지만 기본기가 탄탄한 분데스리가 선수들, 나아가 독일 축구의 넓은 저변과 환경, 문화까지 직접 마주치며 경험하길 바랐다는 것이 정 대표의 설명이다.

대의에 공감하는 이들 역시 힘을 보탠다. 차두리 코치 역시 이 프로젝트에 기꺼이 참여한다. 이번 팀 차붐플러스 일정에도 차 코치는 시간을 내 선수들과 만날 예정이다. 현지 시간으로 15일 오전 진행될 훈련을 차 코치가 직접 지도한다.

호펜하임전을 마친 뒤 서둘러 샤워를 마치고 경기장 밖에 나온 구자철도 후배들 앞에 섰다. "(독일의 선수들은) 살기를 가지고 하고 있다. 나도 자극 받는다. 열심히 해서 모두 프로가 되고 여기(분데스리가)에서도 뛸 수 있길 바란다." 차범근과 구자철 두 한국 축구의 영웅은 경기 마치고 만나 뜨거운 포옹과 격려를 나눴다.

▲ 슈투트가르트와 연습 경기 하프타임 차범근 전 감독의 말에 귀기울이는 팀차붐플러스.

팀차붐플러스의 후배들도 '대선배'의 마음을 알았을까. 독일 축구를 느끼며 다시 한번 축구화 끈을 조인다.

"독일은 처음이에요. 사실 분데스리가는 원래도 꿈이었어요. 손흥민 선수도 함부르크, 레버쿠젠에서 활약했잖아요. 구자철 선수도 원래 텔레비전에서 보던 것과 정말 다른 느낌이더라고요. 뭔가 더 멋져보인달까. 분데스리가의 경기장 분위기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나도 꼭 오고 싶다고 다시 한번 다짐하게 됐어요. 확실히 동기부여가 됐죠. 목표를 다잡게 됐어요." (팀차붐플러스 측면 공격수 강성진)

아직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이 선수들이 무럭무럭 자라 K리그 무대를 누비고, 독일처럼 한 수 높은 무대에 도전장을 던지고, 나아가 붉은 대한민국 유니폼을 입길. 그리고 그들이 또 후배들에게 기억될, 또한 길을 보여줄 멋진 '역사'가 될 날이 올 것이라 믿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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