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의지. ⓒ한희재 기자
[스포티비뉴스=정철우 기자]두산 양의지는 현역 최고 포수라는 평가를 받는다. 변화 무쌍한 볼 배합으로 상대 타자들을 무력화 시키는 힘을 갖고 있다고들 말한다.

양의지에 대한 두산 타자들의 신뢰는 대단히 높다. "양의지(선배)의 볼 배합대로 따라했을 뿐"이라는 승리 소감은 고정 레퍼토리처럼 나온다.

볼 배합에 정답은 없다. 하지만 양의지의 볼 배합이 매우 효율적인 것 만은 분명하다. 타자의 심리도 잘 이용하고 때에 따라 타자의 약점을 공략하거나 반대로 투수의 장점을 살려주기도 한다.

그런 양의지도 어쩔 수 없는 것이 한 가지 있다. 바로 '실투'다. 아무리 머리를 짜내 상대의 허를 찌르는 사인을 내더라도 투수가 따라와 주지 못하면 실패가 될 수 밖에 없다.

10일 인천 SK 행복드림 구장에서 열린 SK와 한국시리즈 5차전서 매우 상징적인 순간이 연출됐다. 양의지의 사인이 실투와 만나면 어떤 결과를 만드는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 있었다.

상황은 1-1 동점을 허용한 7회 1사 3루에서 나왔다. 마운드엔 바뀐 투수 이영하가 서 있었고 타석엔 김강민이 들어섰다. 김강민은 한국시리즈서 타격감이 매우 좋은 상황. 안타가 아니더라도 1점을 만들 수 있는 기회인 만큼 적극적인 타격이 예상됐다.

양의지는 그런 김강민의 심리를 이용하려 했다. 플라이 타구가 나오기 쉬운 공은 가운데 높은 공이다. 힘 들이지 않고 쳐도 외야로 공을 보낼 수 있는 존이다.

양의지는 이 부분을 역으로 이용하려 했다. 타자의 눈 높이로 더 높게 공을 던지도록 유도하려 했다. 타자는 자신이 좋아하는 코스에 반대로 약점이 있다고들 말한다. 치고 싶은 존으로 들어오다 빠지는 볼이 되는 공은 그래서 더 위력적이 될 수 있다. 초구의 눈 높이 빠른 공은 외야 플라이를 치고 싶은 타자에게 좋은 덫이 되는 이유다.

타자가 좋아하고 기다릴 수 밖에 없는 높은 공. 그 보다 좀 더 높은 공을 던져 헛스윙을 유도해 카운트를 선점하려 했었던 양의지다.

일단 높은 공에 헛스윙이 나오면 카운트를 선점할 수 있고 이후 낮게 떨어지는 변화구로 시선의 차이를 두며 땅볼을 유도하기 쉬워진다. 양의지는 최대 삼진 최소 땅볼을 결과물로 염두에 두고 역순으로 볼 배합을 시작했던 것이다. 그 출발점이 바로 가운데 눈 높이의 높은 패스트볼이었다.

이영하에게 사인을 낸 양의지는 살짝 일어나며 높은 공을 받을 준비를 했다.

하지만 여기서 실투가 나왔다. 이영하는 눈 높이로 던지라는 사인을 받았지만 그 만큼 높은 공을 던지지 못했다. 반대로 김강민이 가장 치기 좋은 존으로 계획 보다 낮은 공을 던지고 말았다.

타격감이 좋은 김강민이 이 공을 놓칠리 없었다. 가벼운 스윙으로 큼지막한 타구를 좌익수쪽으로 깊숙하게 보냈고 3루 주자 김성현은 여유 있게 홈을 밟을 수 있었다. 양의지의 타자 삼리를 이용한 볼 배합이 무산되는 순간이었다.

사실 김성현에게 맞은 2루타도 후랭코프의 실투였다. 경기 내내 확실하게 꺾이며 SK 타자들의 방망이를 빗나가게 했던 커터가 한 가운데로 몰려 들어오며 장타로 연결되고 말았다. 이 역시 양의지가 뜻한 바가 아니었다.

어떻게든 역전을 막아야 하는 상황, 양의지는 매우 현명한 선택을 했지만 결과는 실패로 돌아갔다. 천하의 양의지도 실투 앞에선 어쩔 수 없다는 것이 여실히 증명된 순간이었다.

-자료 제공 : 애슬릿 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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