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세진(7번)은 2018년 AFC U 19 챔피언십 조별 리그 호주와 경기에서 선제골, 요르단과 경기에서 결승 골, 타지키스탄과 8강전에서 결승 골, 카타르와 준결승에서 선제골과 추가 골 등 알토란 같은 골을 넣어 대회 득점 랭킹 2위에 올랐다. ⓒ연합뉴스
[스포티비뉴스=신명철 기자] 스포티비뉴스 이종현 기자는 지난 5일 자 '월드컵 티켓-준우승' 정정용호~ 제하 기사에서 한국이 4일 자카르타에서 열린 2018년 아시아축구연맹(AFC) U-19 챔피언십 결승전에서 사우디아라비아에 1-2로 졌지만 질타보다 박수를 받을 만하다고 대표 팀 선전을 평가했다.

청소년 대표 팀은 그동안 한두 명이라도 될성부른 떡잎이 있으면 역대 최강이니 황금 세대니 같은 수식어가 붙곤 했다. 그런데 이번 대표 팀에는 부정적인 표현 일색이었다.

이강인 정우영 등 주요 선수 몇이 대표 팀에 합류하지 못했고 조 편성도 호주 요르단 등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이른바 ‘골짜기 세대’라는 표현이 다시 등장했다. 내년 폴란드에서 열리는 FIFA(국제축구연맹) U 20 월드컵 본선 티켓을 얻는 4강만 하자는 게 ‘소박한 목표’였다.

그런데 한국은 이 목표를 넘어섰고 전세진(수원 삼성)이 5골로 득점 공동 2위, 조영욱(FC 서울)이 4골로 득점 3위에 오르는 성과를 함께 올렸다.

아시아 지역 청소년 축구 절대 강자답게 한국은 아시아청소년(20세 이하)축구선수권대회 시절 이후 AFC U 19 챔피언십에 이르기까지 많은 스타플레이어를 배출했다. 연대 별로 이 대회 관련 일화와 우수 선수를 살펴본다. 중편에서는 1970년대에 이어 1980년대로 이어진다.

[1980년대] 1970년대 차범근에 이어 최순호가 등장한 연대이다. '한국 축구 100년사'는 최순호의 등장을 아래와 같이 설명하고 있다.

“23일 서울운동장에서 있는 3차전에서 18살의 신예 최순호는 경기 개시 2분 만에 25m가 넘는 롱 슛을 성공시켜 축구 팬들을 열광하게 했다. 이 경기는 최순호의 활약에 힘입어 한국이 2-1로 이겼다. 최순호는 세 경기에서 모두 골을 기록해 스타로 떠올랐다.”

이 내용은 1980년 7월, 포르투갈 클럽 보아비스타[7일 현재 2018~~19 시즌 포르투갈 프리메라 리가 15위) 방한 친선경기를 다른 것인데 18일 서울운동장(동대문운동장)에서 열린 1차전에서는 보아비스타가 2-1로 이겼다. 부산에서 벌어진 2차전에서는 한국이 2-0으로 승리했다.

보아비스타에 앞서 6월에는 차범근 소속 클럽인 아인라흐트 프랑크푸르트가 내한해 국가 대표 팀과 3차례, 할렐루야와 1차례 경기해 모두 이겼다.

1980년 7월이면 최순호의 나이가 18살 6개월 때이다. 말 그대로 혜성과 같이 등장한 축구 꿈나무였다.

최순호는 이어 8월 쿠웨이트에서 열린 제7회 아시안컵에 김황호 조병득 최종덕 장외룡 조영증 조광래 이영무 정해원 등 선배들과 함께 출전했다. 한국은 결승전에서 쿠웨이트에 0-3으로 져 준우승했는데 최순호(FW)는 7골로 득점왕에 오르는 한편 이영무(MF)와 함께 대회 올스타 팀에 뽑혔다. 18살 선수가 아시아 최고의 골잡이가 된 것이다.

최순호는 이에 앞서 1979년 8월 도쿄 요코하마 고베 오미야 등 일본 4개 도시에서 열린 제2회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FIFA(국제축구연맹) U 19 월드컵 전신)에 출전했다. 한국은 1978년 방글라데시에서 열린 아시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 우승국 자격으로 이 대회에 나섰다. 조별 리그 C조에서 포르투갈과 함께 1승1무1패를 기록했으나 골 득실 차에서 밀려 8강에 오르지 못했다.

최순호는 1978년 아시아선수권대회 멤버는 아니었고 1979년 세계선수권대회에 합류해 오연교 정용환 이태호 김석원 김용세 등과 함께 뛰었다.

최순호는 이어 1981년 호주에서 열린 제3회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에서 축구 팬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활약을 펼쳤다. 조별 리그 B조 1차전 이탈리아와 경기에서 두 골을 터뜨리며 한국의 4-1 대승을 이끈 것이다. 한국은 이후 루마니아에 0-1, 브라질에 0-3으로 져 탈락했지만 대형 유망주 최순호의 활약은 축구 팬들을 설레게 하기에 충분했다.

한국은 그해 2월 태국에서 열린 1980년 아시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 우승국 자격으로 이 대회에 출전했는데 아시아선수권대회 결승 리그에서 한국에 1-4로 크게 진 카타르가 이 대회 결승전까지 올라 서독에 0-4로 대패했지만 아시아 나라로는 처음으로 이 대회 입상 기록을 남겼다.

1980년대에 열린 아시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 가운데에는 1982년 대회가 축구 팬들 사이에 화제가 됐다. ‘멕시코 4강 신화’를 이룰 수 있는 사연이 숨어 있었기 때문이다.

1982년 7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제23회 아시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 동부 지역 예선은 제4회 멕시코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 예선을 겸해 열렸다. 한국은 예선 리그에서 3승 1패를 기록해 조 2위로 4강에 올라 북한에 3-5로 진 뒤 순위 결정전에서 태국을 4-1로 꺾고 3위를 차지했다. 이때 확보한 3위가 1년여 뒤 세계 4강으로 가는 발판이 된다.

그해 11월 뉴델리에서 열린 제9회 아시아경기대회에서 북한은 심판 판정에 불만을 품고 주심을 폭행하는 사고를 일으켰고 AFC부터 2년 동안 국제 대회 출전 자격을 박탈당했다. 이 조치에 따라 북한은 아시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 본선에 나서지 못했고 3위인 한국이 출전하게 됐다.

한국은 그해 12월 벌어진 본선에 중국과 함께 동부 지역 대표로 출전해 서부 지역 대표인 아랍에미리트연합을 4-0, 이라크를 2-1로 물리친 데 이어 중국과 1-1로 비겨 2승1무로 우승했다. 한국은 중국과 함께 이듬해 6월 멕시코에서 열릴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할 수 있게 됐고 그 대회 4강에 오르며 ‘붉은 악마’라는 별명을 얻게 된 내용은 축구 팬 모두가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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