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울루 벤투 감독 ⓒ곽혜미 기자
▲ 한국-우루과이 포진도 ⓒ김종래 디자이너


[스포티비뉴스=서울월드컵경기장, 한준 기자] 우루과이는 한국 축구가 상대하기 가장 까다로운 팀이었다. 기술이 좋은 남미 대륙에서 결과를 중시하며 실리적인 수비, 거친 플레이를 구사해 좀처럼 반격의 여지를 주지 않았다. 화려함과 끈끈함을 두루 갖춘 ‘남미의 이탈리아’는 우리를 상대로 방심하지도, 우리를 상대로 주저하지도 않았다. 그 결과가 지난 36년 간의 1무 6패. 최근 6연패라는 전적이다.

9월 코스타리카와 칠레, 10월 우루과이와 파나마, 11월 호주와 우즈베키스탄으로 이어지는 파울루 벤투 감독의 여섯 차례 A매치에서 가장 어려운 상대도 우루과이였다. 화려함은 칠레가 앞서지만, 2006년부터 오스카르 타바레스 감독이 지휘하며 한국을 여러 번 상대해봤고, 직전에 열린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서 견고한 경기력으로 8강에 오른 팀이다. 

우루과이는 현재 FIFA 랭킹 5위이며, 지난 달 멕시코를 4-1로 꺾었다. 루이스 수아레스와 호세 히메네스 등 공수의 중심 선수가 빠진 채 한국에 왔지만 허투루 경기할 팀이 아니었다. 그런 우루과이를 부임 세 번째 경기에 만난 벤투 감독은 이겼다. 

한국에 1-2로 패배한 원인을 묻자 타바레스 감독은 “한국이 치열하게 뛰었고, 많이 뛸 수 있었던 반면 우리는 시차와 장거리 비행으로 체력 상태가 좋지 않았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 점이 우루과이가 최상의 경기력을 보일 수 없는 이유가 될 수 있었지만, 타바레스 감독의 말대로 “그럼에도 한국의 경기 수준이 높았다.” 우루과이는 이와 비슷한 서울 원정에서 더 좋은 경기력을 보이며 한국을 제압했던 전력이 있는 팀이다. 

한국은 우루과이를 상대로 명백히 주도적인 경기를 했고, 기어코 사상 첫 승리라는 결과까지 얻었다. 놀라운 것은 요행이 아니라는 점이다. 벤투 감독이 부임해 치른 겨우 세 번째 경기만에 애초 설정한 팀의 철학과 방향성을 발전시키며 내용을 통해 끌어낸 결과다.


◆ 선발 명단: 벤투는 실험하지 않았다

김판곤 국가대표감독선임위원장은 벤투 감독을 선임하며 “기다려주자”고 했다. 이제 막 선임되었고, 당장 2019년 AFC 아시안컵으로 증명해야 하는 입장이지만 2022년 카타르 월드컵까지 계약 했고, 그때까지 팀을 진득하게 만들 수 있는 시간을 줘보자고 했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이후 잦은 감독 교체 속에 급격한 추락과 실망을 경험한 반신반의했다. 벤투 감독이 팬들에게 얻은 신뢰는 ‘호소’ 때문이 아니라 본인이 보여준 방법론과 철학이 훈련 세션과 경기를 통해 빠르게 입증되고 있기 때문이다. 

벤투는 자신의 팀의 철학을 세우고 다듬기 위해 정신 없이 실험하며 우왕좌왕하지 않았다. 자신의 색깔을 무리하게 한국 대표팀에 입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기법으로, 한국 선수들에 적합한 게임 모델을 설정하고 이를 단련하고 있다. 그래서 이 선수 저 선수, 이 전술 저 전술, 이 철학 저 철학을 오가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당장 아시안컵을 앞두고 있기 때문으로도 볼 수 있지만, 세 번째 치른 A매치까지 벤투 감독의 선발 명단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코스타리카전(4-2-3-1): 김승규; 이용(김문환), 장현수, 김영권, 홍철; 기성용(김민재), 정우영; 이재성(문선민), 남태희(황인범), 손흥민(이승우); 지동원(황의조)

칠레전(4-2-3-1): 김진현; 이용(김문환), 장현수, 김영권, 홍철(윤석영); 기성용, 정우영(황인범); 황희찬(문선민), 남태희(이재성), 손흥민; 황의조(지동원)

우루과이전(4-2-3-1): 김승규; 이용, 장현수, 김영권(김민재), 홍철; 기성용(황인범), 정우영; 황희찬(문선민), 남태희, 손흥민; 황의조(석현준)

칠레전에 김진현에 한 차례 기회를 줬던 것 외에 골키퍼는 김승규가 또 한번 넘버원으로 선택됐다. 포백과 두 명의 미드필더는 동일하고, 2선 미드필더 역시 이재성이 이번 소집에는 부상으로 훈련조차 하지 못한 가운데 유지됐다. 원톱 포지션에 지동원이 부상으로 빠져 석현준이 뽑혔고, 후반전에 투입됐다. 교체 선수 기용도 9월 A매치 당시 이용과 홍철이 각각 부상으로 교체되었던 사례가 우루과이전에 발생하지 않으면서 황인범, 문선민, 김민재가 동일하게 선택됐다.

구조도 용인술도 그대로다. 벤투 감독은 훈련을 통해 점검을 끝냈고, 본 경기에선 실험이 아니라 단련과 증명에 집중했다. 벤투 감독은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이번과 같은 짧은 소집 기간에는 팀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팀의 주된 원칙과 철학 만드는 과정에 반복해서 훈련하고, 그 과정에서 지켜본 것 토대로 선발 명단 꾸린다”며 훈련에서 지켜본 것을 통해 선발 명단을 정했고, 파나마전의 경우 “오늘 출전한 선수들이 어떻게 회복할지에 맞춰 방향을 설정할 것”이라고 했다. 

이미 주력 선수는 추려졌다. 9월 1기 소집에서 기회를 얻지 못한 선수들은 2기에 부름을 받지 못했고, 2기에서도 선수들은 훈련장에서 걸러질 것이다. 우루과이전에 두 명 더 교체할 수 있었지만 하지 않았다. 벤투 감독은 모두가 지켜보는 ‘본 경기’를 실험으로 허비하지 않았다. 훈련장에서 보여주지 못한 것을 실전에서 보여주기는 어렵다. 벤투 감독은 철학에 따른 구조와 선수를 확립했다.

▲ 한국 공격을 막느라 분주했던 우루과이 ⓒ곽혜미 기자


◆ 포메이션: 벤투는 우루과이를 ‘가둬놓고’ 경기했다

벤투 감독은 자신이 맡은 한국 대표팀을 설명할 때 ‘맹렬함(intencao)’이라는 단어를 가장 강조하고 있는데, 우루과이를 이끈 타바레스 감독도 이번 한국 대표팀을 설명할 때 스페인어로 치열했다(intensidad)고 했다. 이 치열함은 강한 전방 압박으로 구현된다. 전방 압박에 실패하면 자기 진영에서 4-4-2 대형으로 두 줄 수비를 펼친다. 현대 축구에선 모범 답안으로 통하는 전술이다.

강한 전방 압박은 상대의 빌드업을 방해하고, 빌드업을 방해하는 것은 상대의 안정적인 볼 소유를 방해하는 것이다. 주도권을 가져오는 축구다. 공을 쥐면 뒤에서 빌드업한다. 상대를 끌어올려 배후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이때 무조건 짧은 패스를 고집하며 지공하는 것이 아니라 빠르게 배후 공간으로 때려 놓거나 측면을 활용해 경기에 속도감을 불어 넣는다.

포르투갈 리그에서 오래 활동한 석현준은 “이전 대표팀보다 속도감이 있다. 내가 겪은 포르투갈 감독님들과 비슷한 점이 많다. 크로스와 슈팅으로 이어지는 부분이 그렇다”고 했다. 스페인과 이웃한 포르투갈은 능동적 축구라는 부분에서 공통 분모를 가지면서도 화끈한 측면 공격을 더 강조한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스페인에 상대적으로 중원 기술자가 많고, 포르투갈에 좋은 윙어가 많았던 상황이 낳은 차이기도 하다. 

한국에도 중원 기술자보다 좋은 측면 자원이 상대적으로 많다. 벤투 감독이 만들고 있는 한국 대표팀은 소유하면서 빠른 축구다. 

선발 명단에 큰 변화가 없었듯, 포메이션도 4-2-3-1 내지 수비형 4-3-3으로 표기할 수 있는 틀을 유지했다. 수비 라이는 포백. 좌우 풀백은 공격적으로 올라간다. 대신 두 명의 중앙 미드필더를 배치해 센터백을 보호하고, 후방 빌드업을 위한 숫자를 확보한다. 

공격은 원톱 뒤에 세 명의 선수를 둬서 스리톱과 투톱이 병행될 수 있게 했다. 왼쪽 공격수 손흥민이 전진하거나,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 남태희가 전진할 수 있다. 상대가 공을 소유했을 때 전진한다. 빌드업 시 둘 중 하나가 중원 깊숙이 내려가 볼을 받아준다. 

오른쪽에 황희찬이 설 때 전진성, 이재성이 설 때 2선 중원 플레이의 밀도가 각기 달라진다. 황의조는 보다 마무리에, 지동원은 측면 유연성에, 석현준은 직선적인 플레이에 방점이 찍힌 공격 패턴이 발휘된다. 틀이 유지되지만 기용하는 선수의 개성, 상대 팀의 플레이에 따라 능동적으로 대처한다.

우루과이전에 한국은 효과적인 전방 압박과 자기 진영 그물 수비로 우루과이 미드필드진을 괴롭혔다. 우루과이는 전형적인 측면 자원을 두지 않은 4-3-1-2 내지 4-1-3-2 형태의 4-4-2 포메이션을 썼는데, 두 명의 인사이드하프로 나선 베시노와 난데스가 한국의 측면 공격을 막느라 뒤쳐지면서 주도권을 잃고, 중앙 지향적으로 움직이며 풀백과 투톱 사이에 연결 고리가 되지 못했다. 

우루과이의 투톱은 외로운 경기를 했고, 벤탄쿠르는 공을 주고 받기 어려웠다. 베시노와 난데스가 미드팔더도 윙어도 아닌 어정쩡한 경기를 했다. 공격 연결 과정이 부정확했고, 한국 수비는 이를 차단한 뒤 공격으로 전개하는 속도가 빨랐다. 한국이 경기 주도권을 잡고 우루과이가 물러서야 하는 상황이 많았다. 

그런 가운데 토레이라와 고딘, 코아테스 등 중앙 지역 선수들이 노련하게 수비하면서 한국도 확실한 슈팅 기회를 만들지는 못했다. 한국이 우루과이를 가둬놓고 경기하는 양상이 됐으나 화끈한 장면은 많이 나오지 못했다. 우루과이는 개인 수비력과 팀 수비력이 모두 좋은 팀이다. 양 팀 모두 잔디 사정과 쌀쌀한 날씨의 영향을 받아 공격 과정에 어려움을 겪었는데 우루과이는 그래서 더더욱 자신들의 강점 중 수비적인 면이 더 강조된 경기를 했다. 


◆ 빌드업: 변형 스리백의 완성, 장현수를 오른쪽으로

9월 첫 소집 당시 골키퍼와 센터백이 빌드업에 집중하는 과정에서 실수하고, 수비 안정성까지 흔들리는 장면이 있었는데 우루과이전은 후바 16분에 김승규가 골문을 비우고 나왔다가 무리하게 짧은 패스를 하다 실수한 한 장면이 거의 유일했다. 특히 센터백 라인에서는 거의 실수가 없었다. 벤투 감독은 칠레와 경기 당시에도 강한 압박에 대비해 빠르고 안정적으로 볼을 돌리는 훈련을 실시했는데, 우루과이전을 앞두고는 그 빈도와 밀도를 더 높였다.

그 결과 센터백 라인에서 빌드업 과정에 범하는 패스 미스가 상당히 줄었다. 고작 며칠의 훈련 만으로 눈에 보이는 성과를 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우루과이의 투톱에 대응한 변형 스리백의 구조다. 한국 대표팀이 그동안 빌드업을 위한 스리백을 시도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신태용 전 감독도 기성용을 센터백 라인으로 내린 변형 센터백을 실험한 바 있다. 

벤투 감독이 우루과이전에 시도한 변형 스리백은 김영권이 중앙, 장현수가 우측면, 기성용 또는 정우영에 왼쪽 측면으로 내려오는 패턴이 잦았다. 기성용이 두 센터백 사이로 내려올 때도 없지 않았지만, 김영권이 중앙에서 수비 전환 및 패스 전개 등 연결 동작에 안정적인 위치를 점하고, 장현수가 직접 수비 리스크를 지게 되는 중앙 자역 대신 측면으로 벌렸다. 

▲ 대표팀 데뷔 후 최고의 경기를 펼친 장현수 ⓒ곽혜미 기자


이 구조는 좌우 풀백 홍철과 이용이 전진했을 때 측면 후방 불안, 중앙 지원 불안의 요소를 해결하고, 빌드업 밀도를 높였다. 장현수와 기성용은 좌우 센터백 자리에서 직접 풀백에 주거나, 바로 공격수에게 때려주거나, 다시 옆과 뒤로 공을 빼며 상대 압박 상태에 따라 다양한 패턴을 만들어 높은 수준의 빌드업을 구사할 수 있었다. 상대 압박에 공을 지키거나, 전진하는 과정의 선택지가 늘어 심리적으로나 당장 경기적으로 안정감이 생겼다. 

기성용은 “빌드업은 수비수만 하는 게 아니라 풀백, 미드필더가 할 수도 있다. 기본적으로 상대 공격진 숫자보다 우리 숫자가 일단 더 많아야 한다. 상대가 투톱으로 나왔을때 밑에 세 명이 내려가서 빌드업한다. (장)현수가 가운데 가면 미드필더가 사이드 내려가서 받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장현수는 “양쪽 측면 수비수가 높이 올라가고 미드필더가 약간 처지면서 빌드업한다. 상대가 투톱일 경우, 원톱일 경우를 고려해야 한다. 우루과이는 투톱으로 나왔다. 성용이 형, 우영이 형이 내려오면서 측면에서 공간을 많이 확보했다”고 했다. 

골키퍼에서 패스가 나갈 때는 두 센터백이 옆으로 벌리고, 두 중앙 미드필더가 안으로 들어오는 데, 상대 전방 압박의 숫자와 패턴에 따라 변형해 코스를 만든다. 이 디테일을 선수들이 정확하게 숙지하고 훈련한 뒤 경기에 임하자 추상적으로 여겨진 후방 빌드업이 실제적으로 구현되었다. 

빌드업의 실수가 줄어드니 수비적 위기도 줄어들고, 장현수의 단점 보다 장점이 돋보이는 경기가 됐다. 장현수 스스로도 집중하고 노력했다. 벤투 감독은 자신이 부임한 후 치른 세 경기를 토대로, 한국 대표팀에서 장현수가 대체 불가 수비수라고 공개적으로 칭찬하고 지지했다.

“장현수 선수의 질문에 대해선 길게 말씀 드리진 않겠다. 이 선수의 과거에 대해선 언급할 필요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 이 점은 말하고 싶다. 우리와 현재 소집, 그리고 직전의 지난 소집까지 3경기 했는데, 이 3경기만 놓고 보면 상당히 높은 수준의 축구를 보여줬다. 평균 수준을 상당히 아주 아주(muito muito) 상회하는 능력을 보유한 선수다. 이 선수는 우리가 특별히 관심을 갖고 보호를 해야 한다. 우리의 미래에 있어서 상당히 많이 도움이 될, 도움을 줄 선수다. 그래서 전반적으로 팀이 보여준 모습에 대해서 상당히 만족하는데, 특정 선수에 대해서는 그 이상으로 상당히 아주 많이 만족하고 있다.”

▲ 우루과이 수비도 괴롭힌 황의조 ⓒ곽혜미 기자


◆ 원톱: 황의조의 기술, 석현준의 힘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금메달의 최대 수확 중 하나는 황의조의 재발견이다. 상대가 한 수 아래 아시아 팀이었다지만 황의조가 보여준 결정력은 비범했다. 더 강한 팀을 만난 벤투호 A매치에서도 황의조의 위차 선정과 콘트롤, 슈팅 타이밍은 좋았다. 9월 A매치 당시에는 아시안게임 직후가 지친 기색이 있었지만 우루과이전은 더 수준 높은 수비수를 만났음에도 경기력이 더 좋았다. 자신감이 쌓였고 컨디션이 올라왔다. 

황의조는 전반 4분 문전에서 네 명의 수비를 제치며 슈팅 기회를 만들었고, 전반 6분에는 홍철의 크로스에 이은 황희찬의 헤더 패스를 논스톱 슈팅으로 연결하려 했으나 아슬아슬하게 놓쳤다. 전반 34분에는 손흥민의 패스를 남태희에 넘겨줘 논스톱 슈팅을 끌어냈고, 후반 4분에는 황희찬이 준 어려운 패스를 문전 왼쪽에서 기어코 슈팅으로 마무리했다. 무슬레라의 선방에 막혔다. 후반 18분 기어코 문전으로 침투해 공을 받으며 페널티킥을 얻어냈고, 손흥민의 슈팅이 막혔지만 빠르게 달려들어 골문 구석에 꽂아 넣었다.

황의조의 문전 공격력은 더 검증할 필요가 없다. 황의조는 “정말 짧은 사이에 찬스가 난다고 생각했다. 짧은 틈에 찬스가 나야 득점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골을 넣기 위해선 신속하고 간결해야 한다. 위치, 판단, 슈팅 모두 빨라야 한다. 황의조는 그 점을 확실히 갖췄다. 물론, 황의조의 이러한 장면을 봉쇄할 수 있는 철저한 수비, 끈덕진 수비를 우루과이가 펼쳤다. 좋은 빌드업과 경기 지배력에도, 황의조가 아주 많은 슈팅을 하지는 못했다.

▲ 완벽한 9번의 플레이를 보여준 석현준 ⓒ곽혜미 기자


후반 22분 황의조를 대신해 들어간 석현준은 상대 체력이 떨어진 점도 있지만 힘과 높이, 스피드라는 피지컬 강점을 바탕으로 다른 양상의 경기를 만들었다. 공중볼 경합에서 우루과이 장신 수비와 대등했고, 힘있는 압박으로 우루과아 빌드업을 괴롭히고 저지했으며, 길게 넘어온 볼을 향해 힘차고 빠르게 달리며 기회를 만들었다. 파워 플레이가 가능했다.

석현준은 벤투 감독의 주문을 묻자 “너무 공간 쪽으로 뛰지 말고 나와서 서포트를 많이 해주고, 공중볼 싸움을 해주라고 했다”고 했다. 벤투 감독은 지동원이 다친 뒤 석현준을 뽑은 배경에 대해 우선 황의조와 스타일이 전혀 다르다고 했고, 이날 경기를 마치고 석현준 효과를 묻자 직선적 플레이가 가능한 장점을 가진 선수라고 설명했다. 

“상대가 오늘 경기 같은 경우 우리에게 전방 압박 가했을 때 석현준 선수 같은 스타일의 공격수가 들어가면서 우리가 좀더 직선적 플레이할 수 있었다. 볼을 석현준에게 주면 키핑할 수 있고, 2선에 연계하는 능력 좋다는 것 알고 있었다. 그래서 석현준 기용했다. 수비적인 면도 석현준 선수가 거칠게 상대 수비 라인 몰아세울 수 있는 점을 생각했다.”

필자는 2017-18시즌 석현준이 프랑스 트루아에서 보인 경기력을 바탕으로 대표팀에 꼭 필요한 공격수라고 주장해왔다. 석현준은 190cm로 키가 큰 편이다. 키만 큰게 아니라 힘도 강하다. 몸싸움, 공중볼 경합을 유럽 내에서도 피지컬이 강한 프랑스에서 이겨냈다. 힘과 높이만 강한게 아니다. 스피드도 빠르다. 이를 바탕으로 부지런히 많이 뛴다. 이타적으로 움직인다. 그러면서 결정력도 부족하지 않다. 

석현준은 현대 축구가 원하는 이상적인 9번 공격수다. 이런 9번 유형은 원톱, 투톱, 스리톱 등 모든 전술에 유용하다. 팀의 특성, 동료의 특성, 감독의 성향에 관계 없이 선호할 수 밖에 없는 선수다. 지동원 부상이라는 상황이 있었지만 벤투 감독은 석현준을 뽑았고, 석현준은 후반 교체 투입의 제한된 시간 안에 자신의 장점을 발휘했다. 결국 후반 34분 터진 정우영의 결승골은 석현준의 헤더 슈팅을 카바니가 걷어내려한 것이 기점이 됐다. 석현준이 결승골에 큰 지분을 갖고 있다.

황의조도, 석현준도 이번에 오지 못한 지동원도 각기 다른 자신의 강점을 통해 벤투 감독의 시선을 끌었고, 발휘했다. 어느 누가 앞서있다고 할 수 없다. 상대의 성향, 본인의 컨디션에 따라 경쟁은 계속될 것이다. 벤투 감독에겐 행복한 고민, 건강한 경쟁이 될 수 있는 상황이다.

▲ 3경기 연속 벤투의 교체 카드로 선택된 황인범 ⓒ연합뉴스


◆ 교체카드: 빠른 조커 문선민, 미래 위한 황인범, 생존경쟁 이승우

벤투 감독의 교체 카드도 선수 실험을 위해 이뤄진 것이 아니다. 김민재는 벤투 감독이 9월 소집 당시 따로 많은 메시지를 전한 선수다. 오히려 2018년 러시아 월드컵을 준비하던 과정에는 주전 수비수 위치까지 올랐지만, 김영권-장현수 체제가 안정된 지금은 로테이션 멤버의 위치에서 끌어올리는 단계다. 

우루과이전에는 김영권이 실책 및 부상 등으로 흔들린 뒤에 투입됐다. 김영권이 소속팀에서 경기에 나서지 못하면서도 각고의 노력으로 좋은 경기를 하고 있지만, 김민재가 더 성장할 경우 경쟁의 장이 열릴 수 있다. 여전히 김영권이 갖고 있는 경험과 커팅 능력이 앞서지만, 김민재는 상황에 따라 선발로 나설 수 있는 벤투 감독의 세 번째 센터백이다.

후반전 교체 공격수에게 필요한 능력은 스피드다. 이재성이 부상으로 뛸 수 없는 상황에 문선민은 벤투 감독이 후반전의 ‘스피드 조커’로 3경기 모두 기용했다. 이승우는 문선민보다 기술적이고 결정력이 좋지만, 속도와 저돌성 측면에서 강한 문선민이 우세한 상황으로 보인다. 경기 막판 상대 수비를 깨기 위한 조커 카드로 지난 3경기에서 문선민이 이승우보다 먼저 벤투 감독의 선택을 받았다.

문선민과 나란히 3경기 연속 교체 출전 기회를 얻은 선수는 미드필더 황인범이다. 만 17세의 나이로 대전시티즌에서 데뷔해 믿기지 않는 중원 볼 배급 능력을 선보인 황인범은 한국 축구의 차세대 중원 리더다. 기성용과 남태희의 자리를 모두 볼 수 있는 만 22세 황인범은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는 선발 미드필더로 중용될 가능성이 크다.  

▲ 김승규가 다시 넘버원 경쟁에서 앞서기 시작했다. ⓒ곽혜미 기자


공식 경기에서 쓸 수 있는 교체 카드는 3장이다. 현 자원 안에서는 문선민, 황인범, 김민재 등이 각 포지션에서 교체 투입 1순위다. 공격진은 이재성이 뛸 수 있을 때 문선민의 입지에 변동이 있을 수 있다. 

권창훈이 부상에서 회복하고, 이청용이 현재의 흐름을 이어 전성기 컨디션을 회복한다면 2선 및 측면 공격 경쟁은 더 치열해질 것이다. 두 경기 연속 벤치를 지킨 스무살 이승우의 대표팀 생존 경쟁은 더 험난해질 수 있다. 

미드필드진은 구자철이 향후 어느 정도 컨디션을 올려 벤투 감독의 눈도장을 받을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풀백 포지션은 홍철과 이용의 컨디션에 이상이 생겨야 교체 카드를 쓰게 될 것이다. 

골키퍼 포지션에 아직 2018년 러시아 월드컵의 영웅 조현우가 출전 기회를 얻지 못했다. 우루과이전에 김승규가 기용된 것의 의미는 작지 않다. 9월 소집에 조현우는 부상 중이었다. 이번 소집에는 그의 약점으로 지적되는 빌드업 능력에서 경쟁이 원점에서 시작됐다. 파나마전에 기용되지 않을 경우 넘버 원 자리에서 밀린 것으로 해석해도 무리가 아니다. 파나마전에 뛴다면, 이 경기를 통해 11월 A매치에 본격적인 넘버 원 경쟁의 장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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