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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체전 오늘(12일) 개막… 한국 스포츠의 뿌리 영원하라

기사승인 2018.10.12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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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99회 전국체육대회 엠블럼

[스포티비뉴스=신명철 기자] 대한체육회가 주최하고 전라북도‧전라북도교육청‧전라북도체육회에서 주관하는 제99회 전국체육대회가 12일 막을 올렸다.

2019년 서울에서 열리는 역사적인 제100회 대회에 앞서 벌어지는 이번 대회는 오는 18일까지 익산종합운동장 등 전라북도 일원 73개 경기장에서 열린다.

‘천년의 숨결, 생동의 울림’이라는 주제로 열리는 이번 대회에는 국내 17개 시·도 선수단 외에 중국·일본·미국·캐나다 등 17개 재외 한인 체육 단체에서 참관단을 포함해 1,354명의 재외 동포가 고국을 찾는다. 한마디로 한민족의 스포츠 잔치다. 그래서 전국체전이라는 말을 함께 쓴다.

전국체전은 아마추어 스포츠와 생활체육을 총괄하는 대한체육회가 주관하는 가장 큰 행사다. 1920년 7월 13일 창립한 조선체육회가 그해 11월 4일부터 사흘 동안 배재고보 운동장에서 치른 제1회 전조선야구대회가 제100회를 맞기 직전인 전국체육대회의 효시다.

전국체전은 한국전쟁 와중에도 열렸다. 1951년 10월 27일부터 닷새 동안 펼쳐진 제32회 전국체육대회는 임시 수도인 부산에서는 경기장을 마련하는 게 마땅치 않아 전라남도 광주시의 광주서중 광주고 광주사범 등 운동장을 중심으로 어렵사리 진행됐다. 이 대회에는 15개 종목에 걸쳐 4,000여 명의 선수들이 참가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체전 개최 시도로 떠나는 서울시 선수단이 서울역에서 출정식을 치르는 장면이 신문 지면을 장식하곤 했다. 체전의 시도별 종합 순위가 요즘의 프로 야구 순위만큼 스포츠 팬들의 관심을 모으던 때다.

대회 폐막일 종합 순위 1~3위를 차지한 시도 선수단 단장이 자기 몸집의 절반쯤 되는 큰 트로피를 끌어안고 찍은 사진이 1면에 실리곤 했다. 전국체전은 1960, 70년대 최고의 스포츠 이벤트였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전국체전은 세계로 뻗어 나가는 스포츠 한국을 든든하게 뒷받침했다.

신세대 스포츠 팬들에게는 좀 낯설 수도 있는 전국체전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연대별로 대표적인 대회를 소개한다.

[1950년대] 제36회 전국체육대회는 1955년 10월 15일부터 8일 동안 서울운동장을 주 경기장으로 23개 종목에 6,773명이 참가한 가운데 열렸다. 이 대회에서 올림픽처럼 성화 릴레이가 도입됐다. 올림픽에서 성화 릴레이를 시작한 것은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때다.

전국체육대회에 성화 릴레이를 하기로 했는데 어디에서 성화를 채화하느냐를 놓고 의견이 엇갈린 가운데 한민족의 시조인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지냈던 곳이라는 강화도 마니산 첨성단에서 채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채택됐다. 이번 대회 성화도 이곳에서 채화됐다. 이 대회 종합 순위에서는 서울이 4연속 우승을 이뤘고 경상남도가 2위, 경기도가 3위를 차지했다.

이 대회에 앞서 8월 27일 서울운동장 수영장에서 하계 수상(수영)대회가 치러졌고 다음해인 1956년 1월 21일부터 이틀 동안 한강 특설 링크에서는 동계빙상대회가 열렸다. 그리고 3월 4일부터 닷새 동안 대관령에서 동계스키대회가 열렸는데 애초 이 대회는 2월 4일 시작할 예정이었으나 폭설로 한 달 늦게 열렸다.

[1960년대] 전해 도쿄 올림픽이 열린데 이어 1965년에는 주요 국제 대회가 없어 그해 10월 5일부터 10일까지 전남 광주에서 벌어진 제46회 전국체육대회는 그 무렵 다른 어느 대회보다 성대하게 벌어졌다. 12개 시도 지부 1만3,000여 명의 선수단이 28개 종목에 걸쳐 기량을 겨뤘다.

전라남도는 이 대회를 준비하기 위해 3만 명 규모의 주 경기장과 1만 명 규모의 야구장을 건설했다. 2013년까지 프로 야구 KIA 타이거즈가 홈경기 때 사용한 구장이 바로 이 경기장이다. 광주 공원에는 3,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체육관을 세웠다. 실내 경기장 건립은 지방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1951년 민족상잔의 한국전쟁 와중에 제32회 대회를 치렀던 광주로서는 이 대회를 개최하는 감회가 특별했다. 그러나 호사다마라고 개막일에 밀려드는 관중으로 주 경기장 정문이 넘어지면서 14명이 희생되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다.

1966년 제5회 방콕 아시아경기대회를 1년 앞두고 열린 이 대회에서는 역도 종목에서 뛰어난 기록이 많이 나와 주목을 받았다. 원신희는 라이트급 추상(125kg)과 합계(392.5kg)에서 주니어 세계신기록을, 인상(120kg)에서 주니어 세계 타이기록을 세워 역도 관계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추상은 1972년 뮌헨 올림픽을 끝으로 폐지됐다.

이 대회에서는 육상과 역도 등에서 주니어 세계신기록 2개, 주니어 세계 타이기록 1개, 올림픽 타이기록 1개, 한국신기록 8개, 한국 타이기록 4개 등 이즈음 전국체육대회 가운데 가장 풍성한 수확을 올렸다.

제46회 전국동계체육대회는 서울운동장 링크와 대관령 스키장에서 나뉘어 열렸다

[1970년대] 1970년 제51회 대회에서는 1만6,332명으로 역대 최다 선수단이 서울에 모였다. 전국체육대회의 비대화는 이제 그냥 두고 볼 문제가 아니었다. 대한체육회는 이에 따라 전국체육대회와는 별도로 전국 규모의 주니어 체육 대회 창설을 1970년도 사업 계획으로 정하고 문교부(당시 스포츠 담당 부처)에 승인을 요청했으나 실행에 이르기까지는 2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1971년 제52회 대회에서 1만6,507명으로 소폭 늘어났던 대회 규모는 1972년 6월 ‘스포츠 소년단 창단 기념 제1회 전국스포츠소년대회’(전국소년체육대회 원래 이름)가 열리면서 초등학교부와 중학부가 떨어져 나가 1972년 제53회 대회에서는 1만3,008명으로 축소됐다.

이 대회부터는 성화 봉송이 전국적인 규모로 이뤄졌다. 종래에는 강화도에서 대회 개최지까지 직송되거나 일부 지역만 통과했지만 이 대회에서는 각 도청 소재지에서 1박하는 방식으로 열흘 동안 1,600km를 달렸다. 전국의 스포츠 팬들 호응을 받은 성화 봉송이었지만 경비 문제로 2년 만에 폐지됐다.

28개 종목이 치러진 가운데 한국 신기록 15개, 한국 주니어 신기록 1개, 한국 타이기록 1개 등 비교적 풍성한 성과를 거뒀다. 선수 생활의 절정기를 향해 나아가고 있던 조오련은 남고부 자유형 400m에서 4분31초6, 1500m에서 18분3초9로 한국 신기록을 세웠고 육상에서는 그 무렵 신기록 제조기로 불리던 장대높이뛰기의 홍상표가 4m65로 한국 신기록을 수립했다.

종합 순위에서는 경북이 서울을 제치고 2년 만에 1위를 되찾았고 3위는 전남에 돌아갔다. 제51회 전국동계체육대회는 춘천 링크와 대관령 스키장에서 분산 개최됐다.

1960년대와 1974년까지 전국체육대회 동계 스키 대회는 대관령 스키장에서 열렸다. 그러다가 1975년부터 경기 장소를 진부령 스키장으로 옮겼다. 경기 장소를 바꾼 건 대관령 스키장의 적설량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1980년대] 1986년 제67회 전국체육대회는 서울 아시아경기대회 리허설 성격으로 6월 20일부터 25일까지 13개 시도와 8개 해외 동포, 이북5도 등 2만여 명의 선수단이 참가한 서울과 경기도, 부산에서 분산 개최됐다. 이 대회에서는 3개월 앞으로 다가온 서울 아시아경기대회에 대비해 *아시아경기대회 정식 종목 25개 종목의 채택, *주 경기장을 비롯한 아시아경기대회 정식 종목의 모든 경기장 시설 이용, *모든 종목 경기 결과의 전산화 등으로 사전 점검을 했다.

이 과정에서 잠실 수영장과 미사리 조정경기장, 해운대 요트경기장 등 여러 곳의 시설에서 문제점이 발견됐고 대한체육회와 서울아시아경기대회조직위원회(SAGOC), 서울시 등 유관 기관의 협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등 대회를 앞두고 바로잡아야 할 문제점들이 지적됐다. 또 국제 종합 경기 대회에 투입될 심판들의 자질 문제도 드러났다. 이런 과정을 거쳐 서울 아시아경기대회를 제대로 치렀다는 점에서 제67회 전국체육대회는 서울 아시아경기대회의 성공적인 개최에 또 다른 공로자였다.

서울 아시아경기대회에 대비하기 위해 모든 종목의 국가 대표 선수들이 불참한 가운데 한국 신기록 6개와 대회 신기록 210개로 기록 면에서는 예년 수준을 밑돌았다. 그런 가운데 3개월 뒤 아시아의 최고 중, 장거리 선수로 발돋움하는 임춘애는 육상 여자 3000m에서 종전 기록을 14초35나 단축하는 9분21초69로 우승해 눈길을 끌었다. 임춘애는 서울 아시아경기대회에서 이 기록을 또다시 10초 가까이 줄였다. 이 대회에서는 경기도가 6년 만에 종합 순위 1위를 되찾은 가운데 전남과 서울이 2위와 3위를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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