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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니, 2032년 올림픽 유치 의사 확인…"그냥 해 본 말이 아니었네"

기사승인 2018.10.08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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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자카르타 팔레방 아시안게임 개회식 장면 ⓒ연합뉴스

[스포티비뉴스=신명철 기자] 2018년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을 연 인도네시아가 2032년 여름철 올림픽 유치 경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7일 올림픽 관련 전문 매체인 인사이드더게임즈에 따르면 여름철 유스(청소년) 올림픽에 참석하기 위해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찾은 토마스 바흐 IOC(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장은 인도네시아로부터 2032년 여름철 올림픽과 패럴림픽 신청 의사를 공식적으로 접수했다.

바흐 위원장은 IOC가 인도네시아의 2032년 여름철 올림픽 유치 신청을 공식화하는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과 인도네시아올림픽위원회의 친서를 받았다고 밝혔다.

인도네시아가 올림픽 유치에 성공하면 개최 도시가 될 것으로 보이는 자카르타시의 올림픽 유치 신청서 및 인도네시아올림픽위원회의 자카르타시 지원 확인서 그리고 인도네시아 정부 책임자가 서명한 올림픽 유치 보증서를 IOC에 제출하는 일부터 시작해 여러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가장 먼저 드는 의문은 인도네시아 중앙 정부와 자카르타시가 올림픽 유치와 관련해 완전한 합의를 이뤘는지이다.

올림픽은 도시가 여는 것이기 때문이다. 중앙 정부만 뛰고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14년 뒤이긴 하지만 그때쯤 자카르타가 올림픽을 열 만한 역량을 갖출 수 있겠는지에 대한 의문이 뒤를 잇는다.

어쨌거나 IOC로서는 남북한을 비롯해 인도네시아 인도 독일 호주 이집트 중국 태국 등이 너도나도 올림픽 유치에 관심을 보이니 2024년 대회(프랑스 파리)와 2028년 대회(미국 로스앤젤레스)를 어렵사리 성사한 일이 꿈만 같을 듯하다.

인도네시아와 인도가 나름대로 자신감을 갖고 올림픽 유치 의사를 밝힌 배경에는 아시아 스포츠 3강인 한국과 일본, 중국이 1964년(도쿄)과 1988년(서울), 2008년(베이징) 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른 역사가 있을 터이다.

그런데 이 세 나라가 그냥 쉽게 올림픽을 연 건 아니다. 일본이 1964년 여름철 올림픽을 열기까지 과정이 인도네시아에 교훈이 됐으면 한다.

1896년 제1회 대회가 아테네에서 열린 이후 1964년 도쿄 대회 전까지 올림픽은 유럽과 북미 대륙에서만 열렸다. 이 대회를 열 때쯤 일본은 1958년 제3회 아시아경기대회를 도쿄에서 성공적으로 치렀고 1959년 5월 뮌헨(당시 서독)에서 열린 제55차 IOC 총회에서 디트로이트(미국)를 1차 투포에서 34-10으로 가볍게 따돌리고 제18회 여름철 올림픽 유치에 성공했다. 빈(오스트리아)과 브뤼셀(벨기에)은 각각 9표와 5표를 얻는 데 그쳤다.

이런 투표 결과를 얻을 만큼 일본과 도쿄는 그 무렵 국제 스포츠계에서 올림픽 개최 능력을 인정받았다. 이런 평가를 받는 데에는 경기장 시설과 숙박 교통 통신 등을 뒷받침할 경제력이 기준이 되는 법니다. 그리고 경기력도 무시할 수 없다.

1948년 런던 올림픽에 전범국(戰犯國)으로 출전을 금지당했던 일본은 이후 1952년 헬싱키(핀란드) 대회와 1956년 멜버른(호주) 대회에서 종합 17위(금 1 은 6 동 2)와 10위(금 4 은 10 동 5)에 오르며 제2차 세계대전 이전 경기력을 빠르게 되찾았다.

그런데 일본은 이에 앞서 1940년 제12회 여름철 올림픽을 도쿄에 유치했지만 자기들이 일으킨 중국 침략 전쟁 여파로 대회 개최를 포기했다. 이 대회는 헬싱키로 넘어갔다가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결국 열리지 못했다. 이때를 기준으로도 일본은 올림픽을 열 만한 나라로 인정받았다.

이때에도 일본은 오늘날 아시안게임의 모태라고 할 수 있는 ‘극동아시아선수권대회(Far Eastern Championship Games)’를 3차례(1917년·1930년 도쿄 1923년 오사카) 열면서 국제 종합 경기 대회 개최 경험을 쌓았다. 이 대회는 제1회 대회가 1913년 마닐라(필리핀)에서 열린 이후 1934년 제10회 마닐라 대회까지 일본 중국(오늘날 중화인민공화국과 정치 체제가 다른 국가) 필리핀 인도 네덜란드령 동인도(오늘날 인도네시아) 등이 참가한 가운데 열렸다.

일본은 이와 함께 이 무렵 종목별로 상당한 수준의 경기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일본은 1912년 스톡홀름(스웨덴) 대회에 처음 출전 이후 1936년 베를린 대회까지 올림픽에서  꽤 좋은 성적을 올렸다.

1928년 암스테르담 대회에서 처음으로 올림픽 금메달(육상 남자 세단뛰기 수영 남자 평영 200m)을 따면서 종합 순위 15위에 오른 일본은 1932년 로스앤젤레스 대회에서 5위(금  7 은 7 동 4), 1936년 베를린 대회에서 8위(금 6 은 4  동 8)를 기록하며 기세를 올렸다. 베를린 대회에서 일본은 손기정 남승룡의 마라톤 금메달과 동메달도 있었지만 18개의 메달을 남녀 수영과 남자 육상에서 모두 획득하는, 의미 있는 성적을 올렸다.

가정이긴 하지만 1940년 올림픽이 예정대로 도쿄에서 열렸으면 손기정의 첫 마라톤 2연속 우승과 함께 당시 세계적인 수준의 기록을 갖고 있던 역도의 남수일 김성집 등 강점하고 있던 한반도 지역 선수들이 일본 선수단에 금메달을 안겼을 수도 있다.

또 자동 출전했을 축구에는 베를린 대회에 이어 올림픽에 2연속 출전했을 김용식 외에 1938년 파리 월드컵 지역 예선 대비 일본 대표 팀에 소집됐던 이유형 배종호 박규정 등이 올림픽 그라운드를 누볐을 수도 있다.

또한 1936년 베를린 대회 이성구 장이진 염은현(이상 연희전문, 오늘날 연세대)에 이어 1938년부터 1940년까지 전일본종합농구선수권대회에서 3연속 우승한 보성전문(오늘날 고려대)의 신광호 최해룡 조득준(조승연 전 삼성 썬더스 고문 부친) 이호선 오수철 등이 올림픽 코트를 달렸을 수도 있다.

1940년이든 1964년이든 일본은 경제력이나 경기력에서 그 시절 기준으로 올림픽 개최 능력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았다. 이는 1988년 서울이나 2008년 베이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인도네시아로서는 이런 본보기가 있는 게 다행일지도 모른다. 무턱대로 덤벼들지 말고 전례를 잘 살펴보기를 인도네시아 체육 관계자들에게 권한다

인도네시아는 15차례 출전한 올림픽에서 32개의 메달을 획득했는데 배드민턴에서 금메달 7개 모두와 은메달 6개, 동메달 6개를 기록했다. 배드민턴 외 메달 종목은 역도와 양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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