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0년 시드니 올림픽 개회식에 한반도기를 앞세워 공동 입장하고 있는 남북 선수단. 기수는 남측 정은순(농구 선수)과 북측 박정철(유도 임원)
[스포티비뉴스=신명철 기자] 2020년 제32회 도쿄 여름철 올림픽에 완전체 남북 단일팀 ‘코리아’가 출전하는 일이 꿈이 아닌,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대한민국 문재인 대통령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19일 함께 발표한 '9월 평양 공동 선언'에는 남북 스포츠 교류에 관한 내용이 들어 있다.

전체 6개 항 가운데 “남과 북은 화해와 단합의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우리 민족의 기개를 내외에 과시하기 위해 다양한 분야의 협력과 교류를 적극 추진하기로 하였다”고 선언한 4번째 항에는 두 번째로 “남과 북은 2020년 하계 올림픽 경기 대회를 비롯한 국제 경기들에 공동으로 적극 진출하며, 2032년 하계 올림픽의 남북 공동 개최를 유치하는 데 협력하기로 하였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남북 정상이 전 세계에 약속한 것이기에 이제 2020년 도쿄 올림픽에 남과 북이 하나의 팀을 꾸려 출전하는 건 되돌릴 수 없는 일이 됐다.

남과 북은 1964년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IOC(국제올림픽위원회) 중재로 1963년 1월 스위스 로잔에서 단일팀 구성을 위한 체육 회담을 연 것을 시작으로 여러 차례 테이블에 마주 앉았고 탁구와 청소년 축구, 여자 아이스하키, 여자 농구 등에서 ‘코리아’를 만드는 성과를 이뤘다.

오른손 펜홀드 전진 속공형 현정화(남측)와 왼손 셰이크핸드 드라이브 전형 리분희(북측)로 대표되는 여자 탁구, 뛰어난 개인기와 득점력을 갖춘 로숙영과 발 빠른 가드 장미경(이상 북측)이 남측 선수들과 호흡을 맞춘 여자 농구는 남북 단일팀 코리아를 어떻게 꾸려야 할지를 알려 준 대표적인 사례다.

이들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남북 단일팀은 일체 정치적 고려 없이 최고의 경기력을 발휘하기 위한 선발이 이뤄져야 한다. 그 과정이 결코 쉽지 않을 텐데 모든 내용을 남북 경기인에게 맡기면 된다.

19일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린 2018년 세계유도선수권대회 혼성 단체전 단일팀 구성 결과가 하나의 예시가 될 수 있다.

남과 북 경기인이 현지에서 합의한 혼성 단체전 멤버는 여자 57kg=김지수(재일 동포) 권유정(안산시청) 김진아(북측) 여자 70kg급=정혜진(안산시청) 김지정(한국체대) 권순용(북측) 여자 70kg 이상급=김민정(한국마사회) 한미진(충북도청) 남자 73kg급=안창림(남양주시청) 안준성(용인대) 김철광(북측) 남자 90kg급=곽동한(하이원) 이승수(한국마사회) 남자 90kg 이상급=김민종(보성고) 조구함(수원시청)이다.

최근 남북 유도 경기력 수준을 봤을 때 북측에서 합류한 3명의 선수 숫자는 적절해 보인다.

내년 상반기부터 본격화될 단일팀 구성과 관련해 단체 구기 종목은 여러 사례가 나올 수 있다.

예를 들어 여자 농구는 22일 스페인에서 개막하는 세계선수권대회(본선 티켓 1장)에는 단일팀이 나서지 않지만 2020년 상반기에 열리는 세계 예선(본선 티켓 10장) 때는 로숙영과 장미경이 합류할 가능성이 크다. 세계 예선을 통과하면 박지수와 로숙영은 도쿄 인근 사이타마에 있는 슈퍼 아레나 코트에서 함께 뛰게 된다.

슈퍼 아레나에서는 그동안 소녀시대 빅뱅 샤이니 등 많은 한류 그룹이 성공적으로 공연을 펼쳤다. 2020년 7월 26일 시작하는 도쿄 올림픽 여자 농구에서는 ‘스포츠 한류’가 슈퍼 아레나를 수놓을지 모른다.

남과 북은 1991년 탁구와 청소년 축구 단일팀 구성을 계기로 2000년대 초반까지 꾸준히 교류했다. 분위기도 좋았다. 가끔 엉뚱한 일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1992년 제25회 여름철 올림픽 개막을 며칠 앞둔 바르셀로나 국제공항. 1972년 첫 출전한 뮌헨 대회 이후 가장 큰 규모의 선수단을 꾸린 북한이 도착했다. 1980년 모스크바 대회 이후 12년 만의 올림픽 나들이였다. 장웅 단장을 앞세우고 감색 상의에 상아색 하의로 나름대로 멋을 낸 60여 명의 북한 선수단이 올림픽 패밀리 전용 게이트로 빠져나왔다.

한국 취재진이 장웅 단장을 둘러싸고 즉석 인터뷰를 했다. 그 무렵 매우 좋았던 남북 스포츠 분위기를 반영하듯 장웅 단장과 한국 기자들은 농담을 주고받으며 부드러운 분위기 속에 이야기를 나눴다. 4년 뒤 북한의 IOC(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이 된 장웅 단장은 1991년 탁구와 청소년축구 단일팀 구성 과정에서 남쪽에 제법 얼굴이 알려져 있었다. 농구 선수 출신인 장웅 단장은 훤칠한 용모에 세련된 매너로 이전의 북측 인사들과는 전혀 다른 인상을 풍겼다.

“장 단장님, 남쪽에서 단장님 인기가 아주 좋습니다. 특히 중년 여성들에게.” “허허, 그렇습니까. 제 안부 인사를 그분들에게 꼭 전해 주세요.” 좋은 분위기 속에 북한 선수단의 이모저모를 취재하고 있는데 어느 기자가 느닷없이 “그런데 북한은 왜 LA와 서울에는 오지 않았죠”라고 큰소리로 물었다.

미분 적분을 공부하고 있는데 1차방정식에 대한 질문을 한 꼴이었다. 뜬금없는 질문에 당황한 건 장웅 단장이 아니라 동료 기자들이었다. 장웅 단장은 빙그레 웃음을 지었고 기자들은 분위기를 깬 기자에게 눈총을 줬다.

단일팀을 구성한 뒤 열린 올림픽이었기에 한국 취재진에게 북한 선수들은 한국 선수나 다름없었다. 북한 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거둔 경기장에서 한국 기자들은 북한 기자들이 할 일을 대신했다.

바르셀로나 대회에서 북한은 금메달 4개와 동메달 5개를 획득해 올림픽 출전 사상 최고의 성적을 거뒀다. 금메달 기준이긴 하지만 종합 16위로 금메달 3개 은메달 8개 동메달 11개로 17위를 기록한 일본보다 앞섰다.

레슬링 자유형 48kg급 김일과 52kg급 리학선, 복싱 51kg급 최철수 그리고 체조 안마의 배길수가 올림픽 챔피언이 됐다. 1년 전 지바에서 열린 제41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한국 선수들과 힘을 모아 중국을 꺾고 단체전 우승을 차지한 리분희는 여자 단식과 복식에서 동메달을 땄지만 금메달이 쏟아지는 바람에 한국 취재진의 눈길을 끌지 못할 정도였다.

그리고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17살 소녀 계순희가 일본 여자 유도의 영웅 다무라 료코를 누르고 금메달을 차지했을 때는 한국 선수가 우승한 것 같은 분위기였다. 계순희는 이때 이후 주요 국제 대회에서 한국 취재진과 인터뷰할 때마다 남쪽 동포들의 성원에 감사한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을 시작으로 남북은 주요 국제 종합 경기 대회 개회식과 폐회식에서 공동 입장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2년 부산 아시아경기대회와 2003년 대구 유니버시아드대회에 북한은 선수단뿐만 아니라 응원단까지 파견했다.

그런데 2000년대 중반 이후 남북 스포츠 교류에 냉기가 돌기 시작했다. 10여년 전만해도 남북 스포츠 교류는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었다.

남과 북은 2006년 도하 아시아경기대회 기간을 포함해 몇 차례 접촉에서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단일팀 구성과 관련해 서로의 의중을 타진했지만 뚜렷한 결론을 내지 못했다. 이 무렵 남북 스포츠 교류는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2008년 들어 북한은 홈에서 한국과 갖기로 돼 있던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월드컵 아시아 지역 3차 예선 3조 경기를 그해 2월 26일 제3국인 중국 상하이 홍커우 스타디움에서 여는 등 남북 스포츠 교류의 기반이 흔들렸다.

그렇게 다시 10여년의 시간이 흘렀고 2018년 들어 남북 스포츠 교류의 불씨가 되살아났다.

동독과 서독은 1956년 멜버른, 1960년 로마, 1964년 도쿄 올림픽에 독일 단일팀(United Team of Germany)을 꾸려 출전했고 도쿄 대회 이후 28년 만인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 ‘통일 독일’로 나서 종합 3위에 올랐다. 그해 알베르빌 겨울철 올림픽에서는 1위를 차지했다.

이제 독일에 이어 남북 단일팀 ‘코리아’가 올림픽 무대에서 힘들기도 하고 멀 수도 있는, 통일을 향한 여정을 시작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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