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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준의 축구환상곡] 기성용이 겪은 벤투 1기, “감독은 신이 아니다”

기사승인 2018.09.1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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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성용과 벤투 감독(오른쪽) ⓒ곽혜미 기자


[스포티비뉴스=수원, 한준 기자] 개인적인 이유로, 기성용이 대표팀에서 은퇴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 기성용은 경기를 마친 뒤 혼잡한 믹스트존에서 누구보다 차분하게, 그리고 객관적으로 대표팀의 현 상황을 짚어주는 인터뷰이다. 경기의 열기가 채 식지 않았을 순간에도 기성용은 느릿느릿 차분한 어투로 큰 그림을 말한다. 그는 대표팀의 과거와 현재를 알고, 미래를 내다보며, 자신을 객체화해 한 발 떨어진 시점에서 상황을 말해주는 흔치 않은 선수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부임하고, 세밀한 훈련법, 새로운 전술적 방향성이 축구 팬들의 기대를 받고 있다. 선수들의 의욕도 충만하다. 취재진이 선수들에게 가장 많이 묻는 것은 “벤투 감독이 어떻게 새로운가”다. 몇몇 기사는 사실 예전부터 해왔던 시스템과 프로그램까지 새로운 것이라 전하고 있다. 물론 4명의 코치를 대동하고 한국 대표팀에 부임한 벤투 감독이 새로운 방식으로 대표팀을 지휘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조금은 그 효과가 과장된 측면도 있다.

◆ 춤추는 여론 속 중심 잡기: 코스타리카전은 냉정, 칠레전은 긍정

기성용이 7일 코스타리카전, 11일 칠레전을 마친 뒤 믹스트존에서 취재진을 만나 나눈 대화에서첫 출발에 호평받는 대표팀이 중심을 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묻어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용과 결과 모두 완벽했던 코스타리카전 2-0 승리 뒤에 기성용은 “전체적으로 좋은 컨디션으로 플레이를 했다. 전후반 모두 나무랄 데 없었다”면서도 “물론 첫 경기는 모두가 열심히 뛴다. 지난 감독님 때도 그랬다. 앞으로가 중요하다”고 했다.

기성용은 2018년 러시아 월드컵을 앞두고 치른 평가전에 냉정한 이야기를 많이 했던 선수다. 온두라스를 크게 이긴 뒤 기성용은 “취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전에는 경기 도중 노골적으로 불만을 말하기도 했다. 그는 대표팀의 운영 상황과 선수들의 태도, 코칭스태프에 대한 생각을 선을 넘지 않는 선에서 솔직히 밝혔다. 실제로 월드컵을 준비하는 기간 중 주장 기성용의 적극적인 건의로 몇몇 일정과 훈련이 조정되기도 했다. 

▲ 기성용은 경기 외적으로도 한국 대표팀에 미치는 영향력이 큰 선수다. ⓒ곽혜미 기자


기성용는 주장이라는 부담과 국가대표라는 숙명을 내려놓고 싶어 한다. 일각에서는 속도의 측면에서 기성용이 없는 대표팀이 더 강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여전히 기성용은 대표팀이 중심을 잡는 데 매우 필요한 존재다. 기성용은 여전히 2019년 UAE 아시안컵을 자신의 마지막 대회로 여기고 있지만, 벤투 감독은 이 부분에 있어 열어두고 있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까지 가야 할 선수로 분류하고 있다.

믹스트존에서 취재진을 향해 지금 벤투호에 필요한 이야기가 무엇인지 가장 잘 알고 있는 선수는 기성용이다. 코스타리카를 2-0으로 이겼을 때 기성용은 이 경기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대표팀 감독 부임 후 첫 경기는 항상 좋았다. 호의적으로 가다가 고비가 오는 순간이 있다. 그걸 오늘 같은 마음가짐으로 넘겼으면 좋겠다. 지난 10년 동안 분위기가 좋다가도 고비가 왔다. 항상 그랬다. 좋은 분위기를 좋은 경기력으로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오히려 불안감을 노출하며 0-0으로 비긴 11일 칠레와 경기를 마친 뒤 기성용은 벤투호 1기 소집을 결산해보자는 질문에 “패하지 않아 긍정적”이라고 했다. 벤투호가 출발점에 위닝 멘털리티를 잃지 않고, 실험 속에 부담과 불안 없이 2기 소집을 준비할 수 있게 된 것이 가장 큰 의미라고 했다. 이 소집으로 벤투호가 구조적으로나 전술적으로 성취했다고 판단하는 것은 이르다. 기성용은 이 소집의 의미가 ‘상견례’를 성공적으로 했다는 것에 둬야 한다고 했다. 

◆ “감독은 신이 아니다” 벤투 효과를 차분하게 짚어야 하는 이유

“감독님이 한국 축구의 분위기를 익혔을 것이다. 감독님이 신이 아닌 이상 이 소집으로 한국 축구를 바꾸고 급격하게 발전시킬 수 없다. 어느 감독이 와도 불가능하다. 감독님 계약은 4년이다. 믿고 기다려야 한다. 충분히 잘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벤투 감독은 점유를 하면서 속도감 있는 공격으로 한국 선수들의 강점을 살리고자 한다. 벤투 감독은 이 플레이 스타일이 ‘자신의 축구 철학’이 아니라 자신이 설정한 ‘한국 대표팀의 스타일’이라고 했다. 벤투 감독은 자신이 가진 축구 철학을 한국에 가져온 것이 아니라, 한국 대표팀에 적합하다고 여기는 스타일을 자신의 성향에 맞춰 설정했다.

한국 축구의 본래 강점은 속도였다. 점유는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이후 한국 대표팀에 부임한 조광래 전 감독이 이미 한국 대표팀에 주입하려던 테마로, 울리 슈틸리케 감독도 지향했던 스타일이다. 벤투 감독은 후방에서 공을 소유하며 경기를 풀지만, 중원과 공격 지역으로 전개하는 과정에 속도감을 높이고 상대 뒤 공간을 직접 노리는 공격 패턴을 적극 주문하고 있는데, 이 조합으로 설정한 경기 스타일이 처음일 수 있지만, 개별적으로 보면 한국 축구가 익숙하게 해왔던 패턴이다.

▲ 칠레전의 기성용 ⓒ곽혜미 기자


그래서 기성용은 벤투 감독 부임 후 한국 대표팀의 변화를 묻자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고 했다. “볼 소유나 공격을 할 때 세밀하게, 수비할 때는 다 같이 하는 것을 원했다. 크게 스페셜한 것을 원하지 않았다. (코스타리카전은) 훈련 때 한 것을 잘했다. 감독님이 공격할 때 빠르게 세밀하게 하는 것을 원한다.”

코스타리카전 전반전에 잘 먹혔던 기성용의 방향전환 패스는, 사실 당장 2018년 러시아 월드컵을 준비하던 때, 그리고 스완지시티에서 경기할 때도 자주 나왔던 패턴이다. “항상 내가 하던 플레이다. 뒷공간 침투할 때 패스 넣어주는 게 내 임무다. 내가 원하던 플레이다. 가운데는 밀집되어 있기에 사이드로 보내서 세밀한 플레이 만들어가는 게 현대축구의 전술이다. 그런 것들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기성용은 벤투 감독이 부임한 뒤 찾아온 변화를 애써 깎아내리려는 의도로 말한 것은 아니다. 그는 성과가 과장되는 것도, 시행착오가 과장되는 것도 대표팀에 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더 경계한다. 그래서 코스타리카전 승리는 냉정하게, 칠레전 무승부는 긍정적으로 말했다.

“이런 경기를 통해 실수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친선경기니까. 친선 경기는 발전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본 대회에서 이런 실수가 나오면 비판을 받겠지만 우리보다 강한 상대로 연습해볼 수 있다는 건 의미가 있다. 워낙 전반에 상대 압박이 강했다. 조직적으로 잘했다. 우리가 주로 이런 팀을 상대로 빌드업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당연히 초반에 어려움이 있었다. 후반에 좀 더 공간이 생기고 여유를 가지면서 좋아진 것 같다. 칠레는 개인 기량이 좋은 팀이다. 이름값도 말할 것이 없다. 압박이 상당히 좋은 팀이다. 한 단계 높은 팀을 상대로 어떻게 경기해야 하는지 배웠을 것이다. 우루과이 역시 우리보다 좋은 팀이다. 그런 경기들이 팀의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다.”

벤투 감독은 선진 유럽 축구의 현재를 사는 젊은 지도자다. 한국 대표팀과 대표팀 경기를 주로 지켜보는 팬들에게는 모든 것이 새로워 보일 수 있지만, 유럽에서 오랫동안 뛰어온 선수들과, 유럽 축구의 상황을 잘 아는 이들에게 벤투 감독이 들여온 것은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 분업화된 스태프와 철저한 리더십은 2002년 한일월드컵을 지휘한 거스 히딩크 감독이 이미 선보인 개념이기도 하다. 히딩크 감독의 축구도 그만큼 속도감이 있었고, 역동적이었으며, 치열했다.

“피지컬이나 수비적인 부분은 기본적인 것이다. 유럽에서도 그렇게 한다. 기본적으로 세분화해서 한다. 앞으로 많은 경기를 할텐데 이 경기를 이겼다고 판단하기는 이르다. 감독님이 세밀한 부분은 잘 알려주신다. 선수들이 이해하는데 편안함을 느끼고 있다.” (코스타리카전 후)

“감독님이 오신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축구라는 게 마법처럼 변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국에 대해 익숙해지고 분위기도 파악하고 점검도 마쳤다고 생각한다. 감독님이 어떤 것을 원하실지는 모르겠지만, 아시안컵까지 점점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칠레전 후)

▲ 2018년 러시아 월드컵을 앞두고 센추리클럽에 가입한 기성용 ⓒ곽혜미 기자

◆ 캡틴 기성용은 없다, 아시안컵 우승 미션은 있다

기성용은 공을 잡는 자세는 물론 큰 키에 주장 완장까지 차고 있어 멀리서도 한 눈에 알아보기 쉬운 선수였다. 기성용은 변한 것이 없는데, 주장 완장이 없다는 것 때문에 경기 중 아주 잠깐씩 기성용을 파악하는 데 혼선이 있었다. 그런데 관전자의 이 혼선은, 기성용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것 같았다. 벤투호의 변화 중 중요한 점이라면, 기성용이 후방 빌드업의 모든 책임을 갖지 않고, 경기 리딩의 책임에서 자유로워졌다는 점이다. 중원에서는 정우영이, 주장 역할을 손흥민이 나눠가졌다.

왠지 기성용이 자신있게 패스하고 슈팅하며 자유롭게 뛰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슈팅 하나도, 패스 하나도 주장이기에 갖는 책임감이 담겨 묵직했던 이전과 달랐다. 기성용의 최근 두 경기는 전보다 경쾌했다. 기성용은 주장 완장을 내려놔 부담을 덜었냐고 묻자 “당연히 덜어지죠”라며 웃었다.

“주장은 무겁기도 하고 많은 책임감을 요구하는 자리다. 새로운 리더로 (손)흥민이가 잘 이끌 것이라 생각한다. 어려운 자리다. 흥민이 혼자 짐을 다 짊어지기보다 주위에서 서로 도와주고 팀원들이 같이 밀어주는 형태가 되야 흥민이도 부담을 덜 수 있다. 나도 뒤에서 서포트할 생각이다.”

벤투 감독은 주장을 기성용에서 손흥민으로 바꾼 것에 대해 본인의 주도적 결정이 아닌 선수단과 상의한 결과라며 그 내용을 언론에 밝히지 않았다. 기성용이 민감하게 여길 수 있다고 생각해 내부 논의를 세세하게 전하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주장직에 대한 부담을 말하는 데 거리낌 없었던 기성용은 취재진의 질문에 솔직하게 답을 줬다.

“홀가분하다. 감독님께 주장은 흥민이한테 가는게 맞다고 이야기했다. 주장으로 내 할일은 다했다. 물론 부족하기는 했지만, 최선을 다했다. 앞으로 4년을 내다보면 흥민이가 하는 것이 맞다. 주장은 그 나라를 대표하는 영향력 있는 선수가 하는 것이 맞다.”

박지성 시대 이후, 박주영이 기대한 만큼 대표팀의 ‘리더’로 자리매김하지 못했고, 이청용이 소속팀에서의 문제로 방황하면서 기성용이 ‘캡틴’의 대를 이었다. 어린 나이부터 대표팀에 자리잡고 많은 일을 겪은 기성용은, 자신이 걸어온 길을 따르고 있으며, 자신보다 더 큰 기대를 받는 손흥민이 새로운 주장으로 나서는 첫 순간에 느낄 자부심과 부담의 크기를 헤아릴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선수다. 그래서 기성용은 이번 두 차례 친선전 후 믹스트존에서 주장 손흥민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아시안게임에 다녀와서 몸이 피곤할 것이다. 먼저 열심히 했다. 스스로 부담도 될 텐데 운동장에서 나타내려고 하는 것 같다. 도와주려고 하고 있다. (손)흥민이 혼자 짐을 지는 게 아니라 주변에서도 함께 짐을 질 수 있게끔 도와줘야 할 것 같다.”

▲ 기성용은 대표팀의 의미를 잘 아는 선수다 ⓒ곽혜미 기자

“4년 동안 그간 주장으로서 최선을 다했다. 주장은 항상 바뀔 수 있다. 흥민이는 길게 이 팀의 리더로 잘 이끌어야 한다. 부담도 크고 때론 팀을 위해 희생해야 한다. 장거리 이동을 하면서 피로감도 클 것이다. 흥민이가 모두 지고 갈 것이 아니라 동료가 짐을 덜어줘야 한다.”

“대표 팀의 주장은 나라를 대표하는 위치다. 어떻게 보면 하기 싫어도 하는 것도 있고 또 영광스러운 자리다. 부담감도 크다. 흥민이가 모든 압박을 받지 않도록, 저도 마찬가지고 선배들이 같이 도와줘야 할 것 같다.”

벤투호 1기와 기성용의 대표팀에서 또 하나 중요한 포인트는 2019년 UAE 아시안컵이다. 전 대회 준우승팀이자, 반세기 넘게 우승하지 못한 한국 대표팀에 우승이 아니면 실패로 기록될 미션이다. 갓 부임한 벤투 감독에겐 아주 빨리 닥친 검증의 무대이자, 기성용에겐 대표팀 경력에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월드컵하고는 또 다른 대회다. 아시안컵은 우승에 도전할 수 있는 대회다. 월드컵과 다른 방식으로 준비해야 한다. 50년 동안 우승이 없었기 때문에 그것만으로 동기부여가 되지 않을까 싶다. 50년 넘게 우승을 하지 못해서 당연히 하고 싶다. 지난 대회에서도 3위(2011), 준우승(2015)을 했다. 이번에는 우승을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개인을 위한 우승이라기보단, 나중에 우승하면 컨페더레이션스컵에도 나갈 수 있다. 그 자체가 큰 경험이 될 수 있다. 50년 넘게 우승하지 못한 한을 풀었으면 하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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