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판곤 위원장 ⓒ한희재 기자

[스포티비뉴스=한준 기자] 2018년 러시아 월드컵 조별리그 탈락과 함께 지난 7월 본격 시작한 신임 감독 선임 작업이 지체되고 있다. “서두르지 않겠지만 역동적으로 움직이겠다”는 김판곤 국가대표선임위원장은 “9월 A매치에는 새 감독이 벤치에 앉을 것”이라고 했다. 8월 2차 유럽 출장에 나선 김 위원장은 말처럼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있고, 섣불리 계약하지 않고 있다. 남은 것은 9월 A매치에 새 감독을 볼 수 있을까다. 

김 위원장은 부임 이후 시스템을 구축하고, 프로세스에 따라 움직이겠다고 했다.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다. 눈앞의 일에 급급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대한축구협회의 기존 방식과 달리 2018년 러시아 월드컵이 열리기 전부터 혹시 발생할 수 있는 외국인 감독 선임 작업을 위해 여러 감독의 경기 영상을 분석하며 후보 리스트를 만들었다. 월드컵 직후 시작하면 지체되는 시간이 많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의 철저한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원하는 수준의 감독을 선임하는 데 난항을 겪고 있다. 국내와 해외를 오가며 활동하는 에이전트들은 이미 1차 협상을 위한 출국 시점에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했던 바 있다. 결국 새로운 리스트를 둘러보게 될 것이라며 플랜B에 해당할 리스트를 준비한 에이전트들도 있다. 

▲ 스페인 대표 팀 후보에 오른 바 있고, 몇몇 프리미어리그 클럽의 제안과 이집트의 거절한 키케 감독


◆ ‘돈보다 시간’ 한국에서 약 5년의 시간을 보낼 A급 지도자를 찾기는 어렵다

첫 번째 이유는 아시아 축구계의 일정표 때문이다. 2019년 AFC 아시안컵은 내년 1월로 임박했고, 2022년 카타르 월드컵이 겨울에 열린다. 아시안컵과 월드컵 사이에 동아시안컵이 있지만, FIFA 캘린더에 들어 있는 대회가 아니다. 그 사이 일정은 월드컵 아시아 예선 정도뿐이다. 유럽과 남미가 아닌 지역의 대표 팀을 맡기 위해 이름 있는 감독이 움직이는 이유는 대부분 월드컵 본선에 참가하고 싶어서다. 

한국은 월드컵 단골손님이라 매력적인 팀이지만, 4년 6개월, 거의 5년의 세월을 보내는 것은, 한창 주가가 높은 이들에게 부담스럽다. 현 시점에 한국 감독에 부임하고, 최종 목표까지 이루고 나면 2023년이 된다. 감독직 수행에 정년은 없지만, 40~60대의 나이에 전성기를 보낸다. 대한축구협회는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이후 외국인 감독을 물색하면서 60대는 많다고 했다. 하지만 50대의 감독들은 남은 10년이 정점에 있는 시기라는 점을 고려하면 한국행을 택하기 쉽지 않다.

멕시코축구협회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 멕시코 축구계 관계자는 “멕시코 역시 후안 카를로스 오소리오 감독과 재계약에 실패한 뒤 새 감독 선임이 난항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페루를 이끌었던 리카르도 가레카, 아르헨티나 대표 감독이던 타타 마르티노, 안드레 빌라스보아스 등에 제안했으나 모두 거절했다. 이들은 다른 팀을 더 원한다는 입장이다. 멕시코 대표팀이 현 시점에서 매력적인 팀이 아닌 게 사실”이라고 했다.

가레카 감독은 페루와 재계약을 택했고, 빌라스보아스 감독은 유럽 밖의 팀을 맡지 않겠다는 생각을 밝혔다. 멕시코 역시 2019년 코파아메리카가 열리는 남미, 2020년 유로가 열리는 유럽과 달리 2022년 카타르 월드컵 외에 도전하고 싶은 대회가 없는 팀이다. 유럽과 남미의 팀에는 유럽에서 활동하는 스타 선수들이 많아 이 팀에서의 활약이 추후 유럽 주요 클럽의 시선을 꾸준히 받고, 교류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월드컵을 1년 앞두고 신태용 감독은 선임하던 시점에는 한국 대표 팀을 원하던 외국인 감독이 많이 있었다. 협회는 아시아 예선 마지막 2경기에 본선 진출이 좌절될 수 있는 위험성을 안고 있어 선택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때 한국행을 원했던 감독들도 지금은 한국 대표 팀에 매력을 느끼지 않고 있다. 한 에이전트는 “유로2020 대회가 끝나고 나면 한국이 제안할 경우 오고 싶어 하는 감독들이 꽤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라고 했다.

이미 검증을 마치고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나이의 감독이라면 유럽에서 제시하는 연봉을 크게 뛰어넘는 수준을 보장해야 택할 수 있다. 현실적으로 한국에서 중국이나 서아시아처럼 엄청난 조건을 제시할 수 없다. 협회는 코칭스태프 포함 60~70억원을 연간 지출하는 것도 감수하겠다는 생각이지만, 시기적 문제로 후보자들이 이를 뛰어넘는 수준을 원하고 있다. 

▲ 카를루스 케이루스 이란 감독은 대규모 사단의 동행이 무조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 A급 지도자들에게 코칭스태프 사단은 포기할 수 없는 자산이다

두 번째 이유는 사단의 동행이다. 중국과 서아시아의 경우 이 감독들이 본인들의 사단을 모두 데려오는 것에 대해서도 거리낌이 없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비용 문제로 동행 코치를 최소화하길 바란다. 이 역시 받아들이기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람이 곧 재산이다. 검증된 감독들 상당수가 팀으로 움직이고, 그 팀이야 말로 큰 성공의 원동력이다. 

한국행을 택하며 일부를 떨군다면, 프로적인 관계를 고려해도 해당 감독에겐 그 다음 팀을 택할 때 필요해질 수 있는 이들을 잃어버릴 수 있는 위험성이 생긴다. 국내 감독들도 두 세 명의 코치와 팀으로 움직인다. 기존 팀에서 떠나야 하는 상황이 되거나, 새로운 팀을 찾기 위해 움직일 때 본인뿐 아니라 코치진의 생계도 함께 고민하며 결정한다.

한국 대표 팀에 외국인 감독이 오더라도 한국 코치가 포함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외국인 스태프에게 한국 선수들의 특성과 문화, 기존 한국 대표 팀의 정보를 전하고, 선수단 사이 가교가 될 역할은 중요하다. 하지만, 외국인 감독과 코치 한 두명을 데려온 뒤 나머지를 한국인 코치로 구성하는 것은 외국인 감독의 효과를 온전히 누릴 방안이 아니다. 

오히려 한국 축구의 발전을 위한 외국인 감독 선임을 한다면, 함께해온 스태프를 온전히 데려와 한국 축구에도 대표 팀과 클럽 레벨 모두 스태프의 선진화를 위한 노하우를 전수 받는 것이 더 효과적인 일이다. 물론 이 역시 비용과 직결되는 문제로 김 위원장이나 협회가 원하는 대로 과감하게 선택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축구계에서는 김 위원장이 선임 기준을 너무 높게 잡아서 생기고 있는 문제라고 했다. 상기 이유로 협상에 난항을 겪는 이들은 ‘유명한 감독’들이다. 김 위원장은 “유명한 감독이 아니라 유능한 감독을 뽑겠다”고 했는데, 김 위원장이 본 ‘유명’의 기준이 생각보다 높았던 것 같다. 축구 팬이 아닌 일반 대중의 시선으로 본다면 리스트에 오른 바히드 할릴호지치, 카를루스 케이루스, 키케 산체스 플로레스 감독이나 슬라벤 빌리치, 파울루 벤투 등이 유명하지 않은 유능한 감독일 수 있지만, 이들은 유럽 축구계에서 이미 충분히 유명한 감독들이다.

▲ 대한축구협회가 새로 접촉한 것으로 알려진 후안데 라모스 감독


◆ 높은 선임 기준의 덫, 덜 유명해도 유능한 감독 찾아야

일정 수준의 연봉을 보장하면 한국에 5년 가까운 시간을 쏟을 수 있고, 사단의 규모가 작은 ‘유능한’ 감독을 찾아야 한다. 이미 유럽에서 전성기가 지났다는 평가를 받아 재기를 도모하는 감독이나, 주요 1부리그 중하위권 팀에서 내실 있는 경기력으로 가능성을 보인 젊은 감독들이 현실적인 옵션이 될 수 있다. 김 위원장이 조건으로 내건 월드컵 예선 돌파 경험, 유럽 주요 대회 우승 경험 등이 없어도 팀 운영과 전술적 역량을 유럽 최상위 리그에서 어느 정도 인정받은 인물로 범위를 확대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축구계 내부 사정에 정통한 인사는 김 위원장이 잠재력 있는 지도자보다는 이미 경험을 가진 베테랑 지도자를 선호한다고 했다. 나이가 있더라도 조건으로 내건 경험을 쌓은 이들이 우선순위다. 공을 소유하고 주도적인 경기 철학을 선호하는 점도 확실하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위치한 이베리아 반도 출신의 지도자를 원한다. 동유럽에서도 기술 축구의 가치를 높게 두는 발칸 반도 지역 지도자들도 그래서 물망에 올랐다.

1,2차 협상 대상 감독 중 일부와는 의미 있는 진척이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여전히 합의 가능성은 미궁에 있다. 그런 와중에 스페인 축구계 내부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는 “키케 감독과 어떤 식으로든 접촉이 있었던 것은 확실하다”고 전하며 “후안데 라모스 감독도 물색하고 있더라”고 알렸다. 후안데 라모스 감독은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이후 울리 슈틸리케 감독과 함께 리스트에 올라 있던 후보자였다. 슈틸리케 감독이 선임되면서 미팅 자체도 하지 않았다.

세비야, 토트넘홋스퍼, 레알마드리드 등을 지휘하며 전성시대를 열었던 후안데 라모스 감독은2009년 CSKA모스크바, 2010년~2014년 디니프로드니프로페트로프스크, 2016년 말라가 등을 지휘한 뒤 현재는 무직 상태다. 대한축구협회가 라모스 감독과 접촉했지만, 감독직을 정식으로 제안하고 협상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접촉이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다른 건이 성사되면 백지화될 수 있는 접촉이 더러 있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거듭된 협상 난항 속에 김 위원장이 9월 A매치부터 지휘할 감독을 찾기 위해 범위를 넓히고 있다는 것이다. 빌리치, 벤투, 라모스 등은 지금 유럽 무대에서 뜨거운 러브콜을 받는 감독들은 아니다. 축구계 관계자들은 22일 전에는 신임 감독 계약 및 발표가 이뤄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대한축구협회는 새 외국인 감독 선임에 사활을 걸고 있다. 정몽규 회장도 40억 원의 기부금을 냈다. 지난 몇 년간 이어져 온 비판을 극복하려면 이 프로젝트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야심 차게 출범한 국가대표선임위원회가 계약할 첫 A대표 팀 감독이 누가 될지, 안개 속 결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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