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남원 감독(가운데)과 KGC인삼공사 선수들 ⓒ KOVO 제공

[스포티비뉴스=보령, 조영준 기자] "개인적으로 선수들에게 골고루 기회를 주는 편입니다. 뒤에서 도는 사람 없이 훈련은 물론 경기에서도 기회를 주려고 하지요. (주전 선수) 6~7명만 믿고 가는 스타일은 아닙니다. 그러다 보니 이를 잡으려는 선수들도 많습니다."

대형 국내 공격수가 없어도 KGC인삼공사는 기대 이상으로 선전했다. 믿음과 기회의 리더십을 앞세운 서남원 감독은 2016년부터 이 팀의 지휘봉을 잡았다. 2016~2017 시즌 KGC인삼공사는 최하위에 그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외국인 선수 알레나 버그스마(28, 미국)의 활약이 기대 이상이었다. 그러나 다른 팀과 비교해 이름값이 떨어졌던 국내 선수들의 분전도 KGC인삼공사의 돌풍을 이끌었다.

2017~2018 시즌, KGC인삼공사는 12승 18패로 5위에 그쳤다. 시즌을 앞둔 서 감독은 "이번에는 챔피언 결정전 진출도 노려보겠다"며 자신감을 드러냈지만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KGC인삼공사는 늘 '알레나가 없으면 안 되는 팀'이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그러나 외국인 선수가 뛰지 않는 컵 대회에서 KGC인삼공사는 최종 승자가 됐다.

KGC인삼공사는 12일 충남 보령종합체육관에서 열린 2018년 보령·한국도로공사컵 여자 프로 배구 대회 결승전에서 풀세트 접전 끝에 GS칼텍스를 3-2(25-27 25-22 25-27 31-29 16-14)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KGC인삼공사는 타 팀과 비교해 국가 대표로 차출된 선수가 비교적 적었다. 이런 점도 우승 요인 가운데 하나였지만 다른 팀에서 빛을 보지 못한 선수들의 선전이 돋보였다.

▲ 최은지 ⓒ KOVO 제공

이번 대회 MVP는 결승전에서 32점을 기록한 최은지(26)에게 돌아갔다. 여자 배구 명문 선명여고를 졸업한 최은지는 IBK기업은행에 입단했다. 고교 시절, 힘이 넘치는 공격이 일품이었던 최은지는 청소년 국가 대표로 활약했다.

그러나 강팀인 IBK기업은행에서 그가 주전으로 설 자리는 없었다. 중앙과 라이트에는 김희진(27, IBK기업은행)이 버티고 있었고 레프트에는 박정아(25, 한국도로공사)라는 대형 공격수가 있었다.

보조 공격수로 나서기에는 리시브와 수비 능력이 떨어졌다. 오랫동안 벤치에만 머물렀던 그는 2016년 한국도로공사로 이적했다. 그러나 도로공사에서도 최은지는 그늘에 가려졌다. "이대로 안 되는 걸까"라며 자책했던 그에게 마침내 기회가 왔다.

올 시즌을 앞두고 서남원 감독은 알레나의 뒤를 받쳐줄 날개 공격수 물색에 나섰다.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은 이소영(24, GS칼텍스)은 GS칼텍스에 잔류했고 김미연(25, 흥국생명)은 흥국생명 유니폼을 입었다. 결국 최은지를 선택한 서 감독은 선수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

최은지는 "(감독님이) 우리 팀에 오라고 말씀하셨다. 이런 제의를 받은 것은 처음이었고 감독님의 진심이 느껴졌다"고 말했다.

KGC인삼공사에 새 둥지를 뜬 최은지는 이번 컵 대회에서 맹활약했다. 매 경기 팀의 해결사로 나선 그는 알레나의 빈자리를 대신했다. 결승전에서는 중요한 고비처에서 알토란 같은 득점을 올리며 GS칼텍스의 주 공격수인 이소영과 대결에서 승자가 됐다.

▲ 왼쪽부터 오지영, 채선아, 유희옥, 최은지, 이재은 ⓒ KOVO 제공

최은지는 "결승전 3세트에서 힘들었는데 결국 나는 이것밖에 안 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그런데 감독님이 힘내라고 말씀해주셨다. 그래서 힘을 내고 결국 잘 했던 거 같다"고 밝혔다.

서 감독은 호된 다그침보다 선수의 자존심을 살려주는 리더십이 특징이다. 끝까지 선수를 믿어주는 가르침에 최은지는 우승으로 보답했다.

최은지와 이번 컵 대회에서 새롭게 떠오른 이는 채선아(26)다. 채선아는 2011년 IBK기업은행에 입단했다. 그러나 최은지와 비슷하게 걸출한 밀려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다. 채선아는 IBK기업은행에서 살림꾼으로 활약했다. 지난해 12월 KGC인삼공사로 이적한 그는 이번 컵 대회에서 수훈갑이 됐다.

채선아는 최은지 다음으로 많은 20점을 올렸다. 외국인 선수와 주전 선수들이 빠진 컵 대회는 그에게 자신의 가능성을 증명할 기회였다.

서 감독은 "채선아는 살림꾼 소임은 잘하는데 연습 경기할 때는 공격력이 지금보다 더 좋았다"며 "아직 공격적인 면은 시원하지 않고 범실도 있지만 믿고 기용할 수 있는 선수"라고 평가했다.

▲ 채선아 ⓒ KOVO 제공

과거 수비에 무게 중심을 뒀던 KGC인삼공사는 이번 컵 대회에서 한층 공격적인 경기를 선보였다. 서 감독은 "훈련 방법을 조금 바꿨다. 예전에는 수비 훈련을 많이 했지만 공격 비중을 높였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 공격수들은 한 번에 득점이 나지 않기에 한 번 볼을 때리고 2단으로 볼을 올린 뒤 다시 공격하는 훈련을 반복했다"고 설명했다.

서 감독은 범실이 나오더라도 과감하게 서브를 때리라고 주문했다. 채선아는 "고등학교 시절에는 스파이크 서브를 넣었다. 감독님도 실수해도 좋으니 그냥 세게 대리라고 말씀하셨다"며 "실수보다 소극적으로 하면 더 뭐라고 하신다. 그래서 강하게 때릴 수 있었다"고 말했다.

프로 무대에서 빛을 보지 못했지만 서 감독은 선수들을 믿으며 기회를 제공했다. 선수 생활을 결정할 기회를 얻은 최은지와 채선아는 비장한 각오로 이를 놓치지 않았다.

KGC인삼공사는 컵 대회와는 차원이 다른 정규 리그에 도전한다. 최은지는 "리그에서는 외국인 선수와 대표 팀 선수들이 뛴다. 그러면 달라질 거라는 말도 있는데 자극을 받았다. 리그에서도 이 악물고 해내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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