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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철의 북한 스포츠 이야기(14)] 역도 강세 자카르타 AG에서도 이어질까

기사승인 2018.08.06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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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런던 올림픽 56kg급과 62kg급 금메달리스트인 엄윤철(위)과 김은국(아래 사진 오른쪽)은 2014년 인천 아시아경기대회 같은 체급에서 각각 아시아 챔피언이 됐다.

[스포티비뉴스=신명철 기자] 한국과 북한은 1945년까지 스포츠도 한 뿌리였다. 일제 강점기에 열린 조선체육회 주최 종목별 ‘전조선대회’에는 전국 8도 강산에서 내로라하는 팀들이 출전해 실력을 겨뤘다.

1933년 11월 경성운동장[이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동대문 운동장]에서 열린 제14회 전조선축구대회에는 26개 팀이 참가해 성황을 이뤘다. 이 대회 중학단 결승에서는 경성농업이 선천 신성을 2-1로 이겨 대회 2연속을 했는데 경성은 오늘날 서울이고, 선천은 평안북도에 있다. 전문단 결승에서는 숭실전문이 연희전문을 4-1로 크게 이기고 정상에 올랐다. 연희전문은 오늘날 연세대학교이고 숭실전문은 오늘날 숭실대학교인데 일제 강점기에는 평양에 있었다.

이는 하나의 사례일 뿐이고 축구 경평전을 비롯해 1945년 이전에는 한반도 남쪽 지역과 북쪽 지역이 수많은 스포츠 교류를 했다. 신의주가 고향인 손기정 선생은 서울에 있는 양정고보(오늘날 양정고등학교)에서 본격적으로 달리기 훈련을 했지만 그전에 이미 평안북도 최고의 육상 선수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

일제 강점기에서 벗어난 뒤 북한은 축구 첫 A매치를 1956년 베이징에서 중국과 치렀고, 1956년 프랑스에서 열린 제2회 세계여자배구선수권대회, 1961년 베이징에서 열린 제26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출전하는 등 스포츠에서 꾸준히 국제적인 교류를 했다. 1964년 도쿄 올림픽을 앞둔 1963년에는 뉴델리에서 한국과 남자 배구 지역 예선을 갖기도 했다.

그러나 정식 국호 DPRK가 아닌 North Korea로 불리는 데 대한 불만으로 올림픽 여름철 올림픽 데뷔는 1972년 뮌헨 대회 때 이뤄졌다. 다만 겨울철 대회는 1964년 인스브루크 올림픽에서 첫선을 보였다.

이런 과정을 거치는 동안 1990년대까지 올림픽과 아시아경기대회 등 주요 국제 대회에서 북한의 효자 효녀 종목은 레슬링과 복싱 유도 체조 사격 배구(여자) 마라톤(여자) 스피드스케이팅(여자) 등 전체적인 성적은 뒤지지만,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또 하나의 종목이 있다. 역도다. 대부분 스포츠 팬은 북한 역도가 2000년대 이후 급성장한 것으로 알고 있다. 역도를 북한의 신흥 효자 효녀 종목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역도 역시 남북한이 하나의 뿌리를 갖고 있다.

아래는 일제 강점기 역도 관련 기사이다.

1937년 제9회 메이지신궁대회 역기[역도]에서는 남수일(57kg급)과 박동욱(60kg급), 김용성(67kg급), 김성집(75kg급), 박효상(82.5kg급)이 정상에 올라 일본 역기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1939년 제10회 메이지신궁대회에서는 이규혁(54kg급)과 남수일(60kg급), 조택희(67kg급), 이영환(82kg급)이 우승했다. 남수일은 세계신기록으로, 이영환은 일본 신기록으로 각각 우승했다.

1940년 제11회 메이지신궁대회부터는 매년 개최로 바뀌지만 중국 대륙 침략이 장기전의 수렁에 빠져 있는 데다 제2차 세계대전에 돌입하기 1년 전이었던 탓에 이른바 국방 경기가 대두돼 메이지신궁대회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런 와중에도 역기에서는 박동욱(56kg급)과 김성집(75kg급)이 세계신기록으로 우승했고 남수일(60kg급), 이병돈(67.5kg급), 이영환(82.5kg급)이 각각 정상에 올랐다.

한마디로 1930년대 후반 조선의 역기 실력은 축구 농구 복싱 등과 함께 일본을 압도하고 있었다.

이 기사에 나오는 김성집 선생은 스포츠 팬들이 잘 아는 1948년 런던, 1952년 헬싱키 올림픽 동메달리스트이다. 런던 올림픽 때 김성집 선생은 29살이었다. 역사에 가정은 없지만 우리나라가 일제 강점기에서 조금만 더 일찍 벗어났다면 김성집 선생은 ‘독립 한국’의 첫 번째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될 수도 있었다.

북한은 해방 이후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 52kg급에서 허봉철이 은메달, 한경시가 동메달을 차지해 한반도 역도의 맥을 이었다. 한국은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항의해 대회를 보이콧한 미국과 뜻을 함께해 이 대회에 출전하지 않았다. 북한의 역도 올림픽 은메달은 한국보다 먼저 나왔다.

북한은 이후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김명남(75kg급)이 동메달,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김명남이 체급을 70kg급으로 내려 은메달을 각각 획득했다. 이 대회에서 전철호(76kg급)는 동메달을 기록했다.

2000년대 들어 북한 역도는 상승세를 탄다. 리성희가 2000년 시드니 올림픽과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여자 58kg급에서 은메달을 획득한데 이어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박현숙은 여자 63kg급에서 북한 선수로는 처음으로 역도 금메달리스트가 됐다.

2012년 런던 대회에서 북한 역도는 올림픽 출전 사상 최고의 성적을 올렸다. 엄윤철과 김은국이 남자 56kg급과 62kg급, 림정심이 여자 69kg급에서 금메달을 들어 올렸다. 량춘화는 여자 48kg급에서 동메달을 보탰다. 림정심은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대회에서 체급을 75kg급으로 올려 올림픽 연속 우승에 성공했다. 북한 선수 첫 올림픽 2연속 금메달리스트가 역도에서 나왔다.

북한은 한국보다 올림픽 출전 횟수가 적은데 역도와 체조에서 한국보다 금메달 숫자가 많다. 역도는 북한이 금메달 5개와 은메달 8개, 동메달 4개이고 한국이 금메달 3개와 은메달 6개, 동메달 6개다. 체조는 북한이 금메달 3개이고 한국이 금메달 1개와 은메달 4개, 동메달 4개다.

아시아경기대회 역도에서는 한국이 출전 횟수도 많은 데다 1990년대까지 세계 무대에서는 고전했으나 아시아에서는 강세를 보여 북한에 훨씬 앞선다. 한국이 금메달 31개와 은메달 26개, 동메달 29개를 획득했고 북한은 금메달 5개와 은메달 14개, 동메달 23개를 수확했다.

그런데 올해 자카르타-팔렘방 대회 직전 대회인 2014년 인천 아시아경기대회에서는 북한이 금메달 4개와 은메달 3개, 동메달 2개로 세계 최강 중국(금 7 은 5 동 2)에 이어 종목 순위 2위에 올랐고 한국은 은메달 1개와 동메달 1개를 기록했다.

북한의 역도 강세는 자카르타-팔레방 대회에서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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