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4일과 5일 평양 류경 정주영체육관에서 열린 남북 통일 농구 경기 장면. ⓒ평양공동취재단
[스포티비뉴스=신명철 기자] 요즘 남북 스포츠 교류 관련 내용들을 보면 ‘백가쟁명(百家爭鳴)’이란 말이 생각난다. 많은 학자나 문화인 등이 자기의 학설이나 주장을 자유롭게 발표하여, 논쟁하고 토론하는 일. 이건 사전적 풀이인데 최근 남북 스포츠 교류 관련 주장이나 제의 등은 쟁명 수준을 넘어서서 앞서간다는 느낌이 든다.

체육 관계자들이 최종적인 결정을 내릴 일이고 아이디어 차원이라는 전제를 달고 한 발언이지만 특정 종목 북한 팀을 국내 리그에 참여하게 하자는 의견을 해당 종목 수장이 기자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했다고 한다. 여자 농구 얘기다.

전제가 붙은 아이디어 차원의 제안 수준 얘기지만 국내 리그 문제점이 산적한 상황인데다 과거 사례를 봐 남북 스포츠 교류가 정치적인 문제와 민감하게 연계된다는 점에서 볼 때 좀 앞서 나간 느낌이 든다.

글쓴이는 1990년대 초반 반짝했던 남북 스포츠 교류 현장에 있었다. 1990년 10월 베이징 아시아경기대회 이후 1991년 4월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를 거쳐 그해 6월 포르투갈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FIFA(국제축구연맹) 20세 이하 월드컵 전신] 출전 남북 단일팀 남 측 선수들이 판문점을 거쳐 서울로 돌아올 때까지 10개월 남짓이긴 했지만.

이후 2000년 시드니 여름철 올림픽을 시작으로 올림픽과 아시아경기대회에서 몇 차례 공동 입장이 이뤄졌고 지난 2월 평창 겨울철 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등 남북 스포츠 교류가 간헐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그런데 남북 스포츠 교류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는 올림픽과 아시아경기대회 전체 단일팀 구성은 아직은 좀 더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서두르지 말고 차분히 단단하게 꾸려야 한다는 게 글쓴이 생각이다.

▲ 남북 혼성 경기에서 번영팀이 접전 끝에 평화팀에 승리를 거뒀다 ⓒ 평양공동취재단
지난달 18일 판문점 남 측 지역 평화의집에서 열린 남북 체육 회담에서는 7월 평양에서 남북 통일 농구 경기를 열기로 합의했고 지난 4일과 5일 이행됐다. 또 남북은 8월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개·폐회식 공동 입장과 일부 종목 단일팀 구성에 합의했다. 일부 종목으로는 여자 농구와 조정 카누가 결정됐다.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단일팀은 이 세 종목에 한정된다. 대회가 코앞으로 다가온 데다 단체 종목은 손발을 맞출 시간, 개인 종목은 남북 선수들이 모여 평가전을 치를 시간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단일팀을 급조할 수 있기는 하다. 탁구 사격 등 남북이 일정한 수준 이상의 경기력을 갖추고 있는 종목은 국제 대회에서 자주 만나 양측 관계자들이 서로의 수준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서로 조금씩 양보하면 당장 내일이라도 단일팀을 구성할 수 있다.

1991년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나설 단일팀을 만드는 판문점 실무 회담 때, 취재기자들은 현장에 가지 않고 서울 삼청동 남북대화사무국에서 대기하고 있었는데 회의 시작 30분이 채 안돼 팩시밀리로 단일팀 명단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초고속 회의 결과 도출이었다.

이때 들어온 명단은 여자 단체전 우승과 김성희-리분희 혼합복식 동메달로 양측 경기인들 예상과 분석이 빗나가지 않았다는 걸 증명했다. 이때 들어온 주요 명단은 여자 단체전=현정화, 홍차옥(이상 남 측) 리분희, 유순복(이상 북 측), 혼합복식=유남규(남)-현정화(남) 조, 김성희(북)-리분희(북) 조, 리근상(북)-홍순화(남) 등이다.

개인전은 리- 홍 조처럼 남북 혼성이 기본이었지만 혼합복식 유-현 조(1989년 도르트문트 세계선수권대회 1위)와 김-리 조(북한의 간판 혼합복식 조이자 뒤에 부부)는 메달 가능성을 따져 예외로 했다.

글쓴이는 지난달 18일 남북 체육 회담에 나선 명단에 주목했다. 남 측은 전충렬 대한체육회 사무총장을 수석 대표로 김석규 통일부 과장, 이해돈 문화체육관광부 국제체육과장이 참석했다. 북 측은 원길우 체육성 부상을 단장으로 박천종 체육성 국장, 홍시건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부장이 대표로 나섰다.

남북 스포츠 문화 교류에 대한 큰 틀의 합의는 이미 이뤄졌고 이후 세부 사항 가운데 행정적 지원 사항을 다루는 회담이어서 남북 모두 체육 담당 정부 부처 중심의 대표단이 꾸려진 것으로 이해된다.

그다음 단계인 실무 회담에서는 경기인이 중심이 돼야 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서로의 경기력에 대해 남북 체육인들은 매우 잘 알고 있다. 이들이 지혜를 모으면 남북 화해와 성적의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다.

독일은 통일 전 1956년 멜버른 대회부터 1964년 도쿄 대회까지 3차례 올림픽에 동·서독 단일팀이 출전했다. 이후 1968년 멕시코시티 대회[동독 종합 5위 서독 종합 8위]부터 1988년 서울 대회[동독 종합 2위 서독 종합 5위]까지 동독과 서독은 각자 올림픽에 나섰다.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에는 동독[종합 2위]만 출전했다.

그리고 1992년 바르셀로나 대회 때 1936년 베를린 대회 이후 56년 만에 ‘통일 독일’[종합 3위]로 올림픽에 참가했다. 겨울철 올림픽에서는 1992년 알베르빌 대회에 ‘통일 독일’로 출전해 곧바로 종합 1위를 차지했다. 1988년 캘거리 겨울철 올림픽에서는 동독이 종합 2위, 서독이 종합 8위를 기록했다.

2020년 도쿄 여름철 올림픽과 2022년 베이징 겨울철 올림픽에, 차분하게 준비하고 단단하게 꾸린 남북 단일팀이 출전하기를 기대한다. 이후 통일의 그날까지 단일팀 ‘코리아’가 여러 국제 대회에 나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장면을 그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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