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남자 배구 대표 팀 ⓒ FIVB 제공

[스포티비뉴스=조영준 기자] 어느 정도 예상된 결과였지만 현실은 혹독했다. 프로배구는 국내 4대 구기 인기 종목으로 자리 잡았다. 프로 리그의 열기는 뜨겁지만 선수들의 기량은 반비례했다. 한국 남자 배구 대표 팀은 세계 상위 15개 팀과 맞붙어 단 한 번 이기는 데 그쳤다.

한국 남자 배구 대표 팀은 24일 이란 테헤란에서 열린 국제배구연맹(FIVB) 발리볼 네이션스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불가리아에 세트스코어 2-3(25-19 22-25 18-25 25-22 12-15)으로 석패했다.

이번 대회에서 1승 14패 승점 6점을 기록한 한국은 출전 국가 16개국 가운데 최하위에 그쳤다.

한국은 이미 22일 열린 이란과 경기에서 1-3으로 져 이번 대회 최하위가 확정됐다. 한국은 이번 대회에 핵심(Core) 팀이 아닌 도전(challenger) 팀 자격으로 출전했다. 도전 팀 가운데 순위가 가장 낮은 국가는 발리볼 네이션스리그에서 강등된다.

한국은 내년에는 발리볼 네이션스리그가 아닌 2부리그 월드 챌린지 컵에 출전한다. 이 대회에서 우승해야 다음 년도 네이션스 발리볼리그에 나설 수 있다.

올해 처음 출범된 네이션스 발리볼리그는 여러모로 의미가 큰 대회다. 무엇보다 FIVB가 부여하는 세계 랭킹 포인트가 걸려있다. 2020년 올림픽 출전을 위해 이 대회에서 포인트를 쌓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세계 배구의 흐름과 국가 경쟁력을 다질 경험의 장이기도 하다. 이번 대회 도전 팀 자격으로 출전한 한국은 네이션스리그 잔류에 도전했다. 그러나 세계의 벽은 생각보다 높았다. 대회 개막 이후 한국은 11연패에 빠졌다. 유럽 국가들을 상대로 한 세트도 따지지 못한 것은 물론 '숙적' 일본에 2-3으로 아깝게 졌다.

한국은 지난 17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중국과 경기에서 3-0으로 이기며 연패에서 간신히 탈출했다. 12번 째 경기 만에 대회 첫 승을 거둔 한국은 VNL 마지막 5주차 경기에서 이란, 독일, 그리고 불가리아에 모두 무릎을 꿇으며 두 번째 승리에 실패했다.

▲ VNL 불가리아와 경기에서 언더로 볼을 올리는 황택의(가운데) ⓒ FIVB 제공

약점으로 드러난 중앙, 20점 이후 나타나는 뒷심 부족

김호철 남자 배구 대표 팀 감독은 이번 VNL을 앞두고 "당장은 좋은 성적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과거와 달리 장기적인 플랜을 짤 수 있다는 점은 다행이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운 점이 많다"고 털어놓았다.

이번 VNL에서 한국과 세계 정상급 팀들의 격차는 예전보다 한층 커졌다. 한국이 국제 대회에 나갈 때 가장 고민했던 문제는 '높이'였다. 그러나 이제는 높이만 고민할 시대는 지났다. 무엇보다 미들 블로커들의 경쟁력 저하는 이번 대회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2017~2018 시즌 V리그 MVP인 신영석(현대캐피탈)은 부상으로 이번 대회에 출전하지 못했다. 그러나 신영석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세계 각국 미들 블로커들의 블로킹과 속공 능력은 한국과 비교해 몇 수 위였다. 중앙에서 힘을 전혀 쓰지 못한 한국은 좌우 날개에만 의지하는 단순한 배구를 펼쳤다.

한국을 상대하는 팀들은 기회만 생기면 중앙 속공을 시도했다. 유럽과 남미 국가는 물론 이란도 한국의 중앙을 집요하게 공략했다.

또한 20점을 넘긴 이후 나타나는 뒷심 부족도 보완할 과제다. 한국은 몇몇 배구 강대국을 상대로 20점까지 대등한 경기를 펼칠 때가 많았다. 그러나 세트에 매듭을 짓는 과정에서 문제점이 드러났다. 중요한 상황에서 범실이 쏟아졌고 공격수들의 해결 능력도 떨어졌다. 국내 V리그는 20점이 넘어갈 경우 대부분 외국인 선수가 공격을 책임진다.

'이기는 배구'를 위해 어쩔 수 없는 현실이지만 국내 공격수들의 해결 능력 부족은 이번 대회에서 여실히 나타났다.

▲ VNL 불가리아와 경기에서 득점을 올린 뒤 환호하는 서재덕 ⓒ FIVB 제공

공격, 수비, 조직력 모두 문제…지더라도 강한 상대를 만나본 경험 필요

유럽과 남미 그리고 북중미는 물론 아시아 국가들도 이미 '토털 배구'를 오래전부터 시작했다. 세터들의 토스 속도는 한층 빨라졌고 단순한 패턴의 공격은 사라지고 있다.

이런 세계 배구의 흐름은 한국은 늘 뒤처졌다. 여기에 기존에 지녔던 장점도 사라졌다. 과거 한국 남녀배구는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한 조직력을 앞세워 배구 강국들과 대등한 경기를 펼쳤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공격과 수비에 모두 능한 '올라운드 플레이어'는 사라졌다. 한국 배구는 토털 배구는 물론 기본기와 수비 능력까지 없었다. 이런 한국 배구에 닥친 현실은 '추락' 밖에 없었다.

지난해까지 한국 배구의 국제 경쟁력을 위한 밑그림은 전혀 없었다. 대한배구협회는 지난해 상반기까지 회장 없이 공중 분해된 상태였다. 올해 전임감독제를 도입하며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멀다.

이번 대회에서 한국은 쟁쟁한 세계 강호들과 경쟁했다. 결과는 좋지 않았지만 강한 상대들을 만나 문제점을 발견한 점은 나름 값졌다. 중요한 것은 이런 경험을 앞으로 어떻게 성장의 발판으로 만들 지의 여부다.

한 배구 관계자는 "정말 성장하려면 아시아 약체를 상대로 이기는 것보다 지더라도 강한 상대를 만나는 것이 낫다. 그래야 팀은 물론 선수 개인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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