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을 준비하기에는 24시간이 모자라다. 신태용호는 하루를 쪼개고 쪼갠 25시간으로 치열하게 준비 중이다. 오스트리아 전지훈련, 그리고 러시아 현장까지. '스포티비뉴스'가 밀착취재로 '신태용호 25시'를 전한다. <편집자 주>
[스포티비뉴스=니즈니노브고로드(러시아), 한준 기자] 결전의 날. 혹은 심판의 날. 18일 오후 3시에 킥오프한 스웨덴과 2018년 러시아 월드컵 F조 1차전은, 축구를 직업으로 삼고 보기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눈물이 핑 돌았다.
전반 6분. 한국이 얻은 프리킥 공격 기회. 손흥민이 김신욱을 겨냥해 올린 프리킥 크로스. 김신욱을 위한 공간을 만들기 위해 주장 기성용은 올라 토이보넨과 뒤엉켜 안간힘을 쓰며 밀리지 않으려 했다. 32개 참가국 중 신체조건이 가장 좋은 팀. 스웨덴의 육중한 힘과 높이를 견디고, 이겨내기 위해 선수들은 그야말로 이를 악물었다.
경기 내내 울컥한 순간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스웨덴의 크로스와 문전 직격 패스를 예상 못한 바 아니지만, 통제는 어려웠다. 문전에 위험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선수들은 서로 동선이 엉키더라도 몸을 던지고 나뒹굴어 가며 공이 우리 골문으로 향하지 못하게 했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 벨기에와 3차전을 마치고 믹스트존에서 눈시울을 붉히며 인터뷰했던 김영권은, 4년이 지나 “죽을 각오로 막겠다”고 했고, 이 말을 몸으로 정말로 실행했다. 김영권은 자신이 왜 현 시점에서 한국 최고의 수비수인지 보여줬다. 완벽한 수비는 아니었지만 비판할 수 없는 플레이를 했다.
4년 전의 경험은 헛되지 않았다. 치명적 부상과 경기 외적 논란으로 몸도 마음도 고생했던 김영권은 김민재의 부상으로 다시 찾아온 기회를 허비하지 않았다. 왼발로 전개한 패스, 투혼을 불사른 수비는 그를 향해 쏟아지던 비난 여론을 돌려놨다.
한국의 숙제는 수비 불안이었고, 사실 스웨덴과 경기에서 한국은 그 숙제를 풀지 못했다는 것이 드러났다. 조현우의 선방이 아니었다면 더 일찍 무너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선수들이 그 숙제를 풀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신태용 감독은 경기 전에 “몸부림을 치고 있다”고 했다. 그라운드 위에서 선수들은 스웨덴을 ‘견디기’ 위해 모든 걸 쏟았다.
◆ 불안한 대표 팀, 선수들은 연이은 악재 속에 온 몸을 던졌다
지켜보기에 마음이 너무 아픈 경기였다. 전반 27분 장현수가 전개한 무리한 패스를, 박주호는 더 무리한 동작으로 잡으려나 햄스트링이 파열됐다. 4년 전 월드컵을 앞두고 절정의 기량을 보이던 박주호는 봉와직염에서 회복하지 못해 한 경기도 뛰지 못했다.
이번 월드컵을 앞두고는 보루시아도르트문트에서 거의 경기를 뛰지 못하며 감각이 떨어졌다가, 울산현대 입단 이후 가능성을 살렸고, 김진수의 부상으로 기회가 주어졌다. 박주호의 월드컵은 28분 만에 끝났다. 그라운드에 누워 고통을 호소하는 그의 모습을 똑바로 보기 어려웠다. 근육 보다 심장이 더 아파 보였다.
불행은 연쇄적으로 찾아왔다. 김민우는 몸도 제대로 풀지 못한 채 박주호가 빠진 자리에 투입됐다. 집중하려고 했지만 떨리는 마음을 조절하지 못한 모습이었다. 김민우에게 스웨덴은 너무 큰 상대였고, 월드컵도 너무 큰 무대였다. 예기치 못한 부상과 교체로 신 감독은 전술 카드 하나를 잃었고, 선수들은 안정감을 잃었다.
◆ 투혼만 있었다…악재를 극복 못한 아쉬운 한 달
투혼을 쏟는다고 결과가 오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의 오랜 월드컵 도전사가 말해준다. 최선을 다해 노력한다고 결실을 맺을 수 없다. 잘해야 하고, 실력이 있어야 한다. 월드컵은 실력자들이 최선을 다하는 무대다. 김민우는 끝내 후반 16분 문전 우측으로 침투한 클라에손을 막으려고 뻗은 태클이 공이 아니라 다리에 걸리며 페널티킥을 내주고 말았다.
파울을 범하기 10여분 전에 구자철을 향해 좋은 크로스를 공급했던 김민우는 영웅이 될 수도 있었는데 역적이 되고 말았다. 경기가 패배로 끝나고 김민우는 얼굴이 벌개졌다. 흐르는 눈물을 참지 못했다. 그래도 믹스트존에서 취재진의 질문을 피하지 않았다. 자책하고 자책하면서, 먹먹한 가슴을 주체하지 못하면서도, 성실하게 대답하려 했다.
그가 어떤 말을 했는가는 그리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누구보다 고통스러운 월드컵 데뷔전을 치렀다. 주장 기성용은 “실점은 한 선수의 잘못이 아니라 전 선수의 잘못으로 나온다”고 했다. 지탄의 대상이 된 수비수 장현수도 마찬가지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이 끝난 이후 가장 많은 A매치를 소화한 장현수도 월드컵의 무게를 이기지 못했다. 하지만 그가 안간힘을 썼다는 것은 경기를 본 사람이라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손흥민과 황희찬은 열심히 수비했다. 기회가 오면 열심히 질주했다. 전방 원톱으로 나선 김신욱은 자신에게 주어진 전술 주문을 이행하려고 노력했다. 구자철은 토이보넨의 배후 침투를 커버하다 너무 많은 힘을 뺐다. 조현우의 불꽃 같은 선방은 페널티킥 실점으로 인해 결실을 맺지 못했다. 아쉬운 점이 없지 않다. 실수도 많았다. 하지만 선수들이 월드컵이라는 경기에 걸맞은 경기 태도를 보였다. 못 했다고 말할 수 있어도 성실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없다.
대표 팀은 스웨덴을 극복하기 위해 몸부림을 쳤다. 몸부림을 쳐야 한 이유는 부족한 장기 계획과 연이은 부상 악재로 인해 급조한 팀이 본선에 왔기 때문이다. 최종 엔트리는 마지막 소집 훈련에서의 경쟁을 통해 확정됐다. 기성용은 4-3-3 포메이션이 볼리비아전 이후 확정해 훈련한 전술이라고 했다. 이토록 짧은 준비 기간으로 예선을 거치며 완성되어 본선에 온 팀을 제압하기는 어렵다.사실상 무방비 상대로 월드컵에 나가서 악으로 깡으로 버틴 것이다.
신태용 감독이 트릭이라고 말하고 변칙 전략을 준비하며 ‘몸부림’을 친 것은 그것밖에는 방법이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축구는 결과론이고, 그의 선택은 여러가지 변수 속에 패착이 됐다. 새로운 전술을 실전에서 점검하지 못한 선수들은 우왕좌왕했다. 내려 앉아서 버틴 수비 상황을 제외하면 공격 전개 과정에서 일체감을 보이지 못했다. 개개인이 투혼을 발휘했지만 팀으로는 조각난 모습이었다. 그럴 수 밖에 없이 운영된 팀이었다.
소집해서 한 달간 옥석을 고르고 전략을 짜서 성공하기에 월드컵은 너무 큰 무대다. 안타까운 것은 한국이 1986년 멕시코 월드컵부터 이번 대회까지 32년 동안 9회 연속 본선을 경험한 팀이라는 점이다. 그 경험이 쌓여 21세기 들어 열린 월드컵에서 한국은 첫 경기 무패 기록을 이어왔다.
◆ 아직 2경기가 남았다…선수들을 우리가 주저 앉혀선 안 된다
신태용호는 마치 이번에 월드컵을 처음 경험하는 팀인 것처럼 운영됐다. 그래서 기성용은 “1차전 경험이 생겼으나 선수들이 2차전에는 나아질 것”이라고 했다. 안타까운 것은 F조에서 스웨덴은 반드시 잡아야 하는 팀이었다는 점이다. 실제로 붙어보니 마지막 순간 황희찬의 헤더가 동점골이 될 수 있었던 것처럼, 이길 수도 있는 상대였다. 우리가 부족해서 이기지 못한 경기였다.
대표 팀은 비판의 도마 위에 올라 있다. 기록 집계가 이뤄진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이후 반 세기 만에 유효 슈팅을 하나도 기록하지 못한 대표 팀을 향해 쏟아지는 대중의 비판과 비난을 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아직 2경기가 남았다. 이제 와서 바꿀 수 있는 것은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선수들이 자신감을 회복하고 남은 2경기에 전력을 쏟아 기적을 이루길 바라는 것뿐이다.
경기를 보고 솟아오르는 분노의 감정을 삭힐 수는 없다. 하지만 끝내 인터뷰 도중 눈물을 흘린 김민우를, 가슴 속으로는 누구도 눈물을 참지 못하고 있을 대표 팀을 주저 앉히는 것이 우리가 되어선 안 된다.
확실한 준비 없이 월드컵 본선이라는 전장으로 내몰린 것은, 선수들의 잘못이 아니다. 그들은 우리의 대표 선수다. 박지성 SBS 해설위원은 “여기서 포기하면 그게 정말 최악의 월드컵”이라고 했다. 아직 2경기가 남았다. 선수들이 투혼을 발휘해 반전을 일으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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