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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W르포] ‘백야와 만남’ 상트의 태양은 뜨는 중일까, 지는 중일까

기사승인 2018.06.13 13:00
▲ 밤 10시가 다되어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공항에 도착했는데 태양이 강했다. ⓒ한준 기자
▲ 밤 10시가 다되어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공항에 도착했는데 태양이 강했다. ⓒ한준 기자
▲ 러시아 월드컵 홍보로 단장한 상트페테르부르크 공항은 밤 10시에도 환했다. ⓒ한준 기자


[스포티비뉴스=상트페테르부르크(러시아), 한준 기자] 12일 오후 6시께 인천국제공항에서 이륙한 비행기는 태양을 향해 서쪽으로 날아갔다. 

9시간을 넘게 날아 대한민국 축구 국가 대표 팀이 2018년 러시아 월드컵 본선 경기 준비를 위한 베이스캠프로 택한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도착한 것은, 밤 9시 30분을 넘겼을 무렵. 창 밖은 해가 쨍쨍했다. 기내에서 눈을 붙이기 어려웠고, 한국 시간으로는 새벽 3시 30분에 이르러 몽롱한 상태에 맞이한 햇살은 눈과 정신을 더 피곤하게 만들었다. 

기체가 온전히 멈추고 바깥으로 나가기 까지는 30여 분의 시간이 더 걸렸고, 짐을 찾고 공항 밖으로 나가기 까지 또 30분의 시간이 걸렸다. 러시아 월드컵 참가를 위해 입국한 이들을 위해 별도의 출입국 심사대가 마련되어 공항이 꽤 붐볐지만, 신속한 편이었다. 

취재 기자단이 한데 모여 공항 밖으로 이동한 시점에 밤 11시를 향하고 있었는데, 이제 겨우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하늘은 보랏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막 러시아 땅을 밟았을 때, 밤을 꼴딱 새고 맞이하는 아침처럼 몸을 무겁게 만든 무력한 햇살이 물러가자 하늘과 몸의 리듬이 맞물리는 것 같았다. 동행한 현지 코디네이터는 “금방 다시 해가 뜬다”고 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여름은 해가 아주 길다. 밤 11시가 되야 지기 시작하고, 새벽 4시가 되면 다시 떠오른다. 해가 길다고 하루가 길어지는 것은 아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일상과 근무시간은 해가 지는 시간과 관계 없이 리듬을 유지한다. 다만, 이 시기 선선한 날씨에 관광객이 많이 찾아 주요 관광지의 운영 시간이 조금 길어질 뿐이다. 

대표 팀이 지낼 뉴페터호프 호텔은 선수단을 위해 치밀한 암막 커튼을 달았다. 기자단 숙고의 호텔에도 빛을 가리기 충분한 암막 커튼이 설치되어 있었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을 앞두고 있는 대표 팀은 내외부의 적은 물론, 환경이라는 적과도 싸운다. 4.5톤에 달하는 ‘장비와 전쟁’, 온종일 밝은 상태인 ‘백야와 전쟁’을 한다는 데, 백야가 선수들의 리듬과 컨디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더 지내봐야 드러날 것 같다. 

낮이 주는 활력만큼, 밤이 주는 차분함도 필요한 법이다. 

▲ 여름 백야로 유명한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밤 11시께 해가 지기 시작했다. ⓒ한준 기자
▲ 여름 백야로 유명한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밤 11시께 해가 지기 시작했다. ⓒ한준 기자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이 엊그제 같은 데 벌써 4년이 지났다. 4년 전과 비교하면, 대표 팀에 대한 관심은 식었고, 비관론은 커졌다. 기대가 몰리는 쪽은 공격수 손흥민 정도다. 

손흥민은 4년 전 대표 팀이 알제리에 참패를 당하던 때 희망을 살리는 득점을 기록했었다. 그때 나이가 만 22세. 지금은 만 26세로 베테랑이자 팀의 간판으로 성장했다.

인천국제공항에서 월드컵 분위기를 느끼기는 어려웠다. 공항서점에 축구전문지 포포투와 남성지 GQ, 타임지 아시아판 표지에 손흥민이 실려 있는 것 정도가 이달에 월드컵이 열리는 것을 알리고 있었다. 손흥민과 주장 기성용, 기대를 받고 있는 신성 이승우 정도를 제외하면 대표 선수들의 이름과 얼굴은 국민들에게 낯설다. 

이름과 얼굴을 알리고, 엿과 비판이 대신 꽃과 환호를 받기 위해선 승리가 필요하다. 출국에 앞서 지켜본 한국 상대국들의 전력은, 걱정했던 것만큼 무서워 보이지는 않았다. 문제는 우리의 상황이다. 실험과 트릭이 반복되는 가운데 평가전에서 보인 부진은, 다시금 비관론을 증폭시키고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로 향하는 기내에서 영화 대신 스포츠 코너의 2014년 브라질 월드컵 골 모음을 보며 지난 대회를 복기했다. 당시 한국 경기 취재에 집중하느라 제대로 주목하지 못했던 멕시코의 선전을 보다 보니 해볼 만 하다며 가동했던 '행복회로'가 머쓱해졌다. 

4년 전 브라질에서, 그래도 공은 둥글다며 희망을 말하던 기자들이 더러 있었는데 이번 대회는 차분한 분위기다. 그때의 경험 때문일 것이다. 

꿈 같은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 이후 한국 축구는 2006년 독일 월드컵 1승 1무 1패 선전, 2010년 남아공 월드컵 16강 진출 등으로 눈높이를 높여갔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동메달 신화를 쓴 것도 연장선상으로 볼 수 있다.

▲ 인천국제공항에서 월드컵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은 서점의 손흥민 표지 월간지 뿐이었다. ⓒ한준 기자
▲ 인천국제공항에서 월드컵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은 서점의 손흥민 표지 월간지 뿐이었다. ⓒ한준 기자
▲ 인천국제공항에서 월드컵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은 서점의 손흥민 표지 월간지 뿐이었다. ⓒ한준 기자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의 실패(1무 2패)는 그 동안의 성공이 사상누각이었을지 모른다는 자성을 촉발했다. 하지만, 정말 한국 축구는 2002년의 유산을 잃어버리기만 한 것일까? 찬란해 보이던 햇빛은, 사실 백야의 밤에 지는 태양이 산화하는 순간이었을까? 

2015년 FIFA U-17 월드컵에서 브라질을 꺾고 오른 16강, 2015년 호주 아시안컵 준우승.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8강과 2017년 FIFA U-20 월드컵 16강으로 이어진 각급 대표 팀의 성과가 그저 신기루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수많은 논란 속에 외로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대표 팀이 지금 떠오르는 중인지, 지는 중인지는 잘 모르겠다. 처음 만난 백야처럼 혼란스럽다. 역대 어느 때보다도 예측이 쉽지 않다.

떠오르고 있다면 지는 때가 올 것이고, 지는 중이라면 곧 다시 떠오를 때가 올 것이다.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스포츠의 본질이다. 4년에 한 번 열리는 월드컵이, 경쟁과 부담, 압박감과 시험대, 책임 같은 부정적 단어보다, 열정과 투혼, 성원과 환호, 축제와 같은 단어와 함께 즐길 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이 하루 뒤 개막식과 개막전으로 킥오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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